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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無神論) 요소를 간파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며칠 전 나의 공간장에서 바로잡지 않은 변이 요소를 발견했다. 사람의 표면적인 공간에서 본다면 매우 정상적인 일이지만 나를 심란하게 했다. 이런 심란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일을 할 때 생각이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어떤 영향을 줄까? 잠재적으로 안전상에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것 같지만 찾아보면 강한 ‘자아’로서 변이된 물질이다. 그것은 매우 완고하고 깊이 숨겨져 있는데, 우연처럼 보이는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와 ‘무신론(無神論)’은 또 어떤 연관이 있는가?

오늘 아침 사부님의 시사 ‘홍음5-명시(明示)’를 외웠다.

명시(明示)

우리는 대법도
아름다움과 축복을 지니고
진상과 구도(救度)를 펼친다네
세상기풍과 도덕이 갈수록 저속해지고
현대 관념과 행위는 독을 지니고 있도다
무신론이 신성(神性)을 뒤엎고
진화론은 사람과 신을 모독하네
나는 노래로 진상을 묘사하고
신과 함께 춤추며 당신을 도와 난을 제거한다네
전통의 길을 벗어나 위험한 길로 가지 말지니
창세주가 이미 인간 세상에 발을 디뎌
위난 전에 사람을 구하나니 어서 깨어날지어다
세인(世人)은 모두 그를 기다렸나니 흐리멍덩하지 말며
진상은 하늘로 통하나니 더는 망설이지 말라

사부님의 “무신론이 신성(神性)을 뒤엎고” 이 구절이 크게 와 닿았다. 나는 갑자기 내 공간에서 이런 변이된 물질이 발견되지 않고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점을 깨닫자, 이 변이된 물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자기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한 장면씩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습관적인 관념이 있는데, 내가 항상 다른 사람보다 (상황이) 낫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을 보호해줘야 할 것 같고 이 사람이 불쌍해 보이거나 그 사람이 (상황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정(情)으로 뭘 해주려 하는데, 그게 서글픈 결과로 나타난다. 내 추측대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상대방이 자존심 상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건데 몰라주네”라고 원망했다. 이런 변이된 순환 때문에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은 대법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당이 선전하는 ‘무신론(無神論)’의 독소 속에 스스로 오염된 것이다. 20년 넘게 수련해 왔으니 이것은 뿌리깊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자기 공간장에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불경스러운 요소가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양성되고 길러진 사고방식, 일을 처리하는 경직된 방법, 당문화의 영향으로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고 소문을 내는 것 등 이런 변이된 물질이 잠재돼 있었으니 수련에서 대법이 요구하는 것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한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우리를 양성해 냈고 우리는 사부님의 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동화된다. 수련하는 일체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은 사부님의 장악 속에 있는데 나는 왜 ‘하늘의 공을 탐하고’ 자기를 대법의 위에 놓았을까? 개인적으로는 무신론의 패괴 물질이 깨끗이 청리되지 않고 해체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을 완전히 해체하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글로 쓴다.

약간의 얕은 깨달음으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3/4228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