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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법을 외우면서 진수(真修)하다

글/ 중국 창춘 대법제자

[밍후이왕]

두 번째로 법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진수(真修)하다

2020년 4월 7일 두 번째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원고를 쓸 때 322쪽까지 외웠다. 이제 2~3일이면 ‘전법륜(轉法輪)’을 두 번째로 끝까지 외우게 된다. 최근에는 문장 부호도 법이므로 법을 외울 때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법을 한 번 끝까지 외운 것은 2004년이다. 당시에는 아이가 어려서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전법륜’을 한 번 외우는 데 1년쯤 걸렸다.

내가 법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1999년 ‘7·20’이 되어 사악한 박해가 시작됐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악한 내용을 보며 마음이 괴로운 동시에 대법에 대한 이런 모함과 날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고하게 알았다. 그러나 나는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였다.

두 번째로 ‘전법륜’을 외우는 기간, ‘사흘 고기잡고 이틀 그물을 말린다(일을 하다말다 하다)’라는 말을 보게 되었다. 법을 배울 때 나는 줄곧 ‘사흘 고기잡고 이틀 그물을 말리는’ 식으로 흐지부지해왔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다. 최후의 최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각에 진정으로 걸어 나올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 유감이었고 후회되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떠한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격과 예전에 잘하지 못해 후회막급한 심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앞으로 수련하는 길에서 더는 게으름을 부리거나 노는 데 사로잡히지 말고 법으로 말과 행동을 바로잡아, 수련인으로서 갖지 말아야 할 것을 담담히 보아 내려놓고 제거하여 수련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표준에 부합하는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하겠다.

이전에 법을 배울 때는 사부님께서 예로 드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았는데, 이번에 법을 외울 때는 이 부분에서 몇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1]

당시 몇몇 동료와 제품을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 그 동료들에게 마땅히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용을 좀 주었다. 그랬더니 동료들은 오래전 일인데 왜 갑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돈까지 주느냐면서, 자기들도 제품을 사용했는데 그 돈을 가지는 것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열심히 법공부를 하려니, 예전처럼 해서는 안 되기에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씨는 저 때문에 비용을 들여서 제품을 구매했고 저를 믿고 그랬지만, 그 제품은 그만한 가치가 없는 제품이었답니다.”라고 말했다. 비용을 갖다 줄 때 일부 사람에게는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대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성명하는 것)를 시켜 주었다.

장사할 때 신상품을 공급받기 전에 샘플이 필요했다. 요 몇 년간 파트너들은 샘플을 무료로 제공해주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그 샘플 값을 지급해주었다. 처음에 그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비용을 받지 않으려 했다. 내가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진상을 알려주자, 어떤 파트너는 “샘플 수요자들이 다 사장님 같으면 우리 같은 도매상들이 부담이 적어질 거예요. 사실 1년에 들어가는 샘플 비용이 적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을 배우고 나서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비용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가 삼퇴를 했으며, 나는 이후에도 샘플이 필요하면 비용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 지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분들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다. 그들이 중국공산당 3대 조직에서 삼퇴를 성명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 생명을 위해 기뻤다.

얼마 전 주문서를 쓰면서 수량을 계산해보고 잠시 멈췄다가 더 적게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도 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합당하게 생각되는 숫자를 주문서에 썼는데, 갑자기 몸이 많이 편안해졌다. 신체에서 무언가 제거된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셨다고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신체의 변화는 그렇게 컸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장사할 때 고험을 잘 넘기지 못할 때도 있다. 한번은 고객이 주문서에 사인하고 영수증을 요청하면서 실제보다 높게 발행해달라고 했는데, 당시 나는 그 주문한 청구서의 이윤이 높아서 마음이 움직였다. 영수증을 발행하려고 잠시 줄을 서 있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수련인이 요만한 이익마저 탐내고 있는가? 하지 않고 돌아갔다. 고객은 이해하지 못하며, 다른 곳은 모두 높게 떼주는데 왜 여기는 안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객이 간 후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앞으로는 어떤 주문의 청구서이건 얼마나 큰 유혹이건 절대로 부풀려서 발행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에서 진실하게 하겠습니다. 이익에 대한 마음을 꼭 제거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장의 상품도 한 번 정리정돈하고 법으로 가늠했다. 일부 상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 제품의 유혹을 멀리하다

법을 외우고 얼마 가지 않아 핸드폰을 초기화했다. 위챗, 알리페이, 모바일뱅킹, 타오바오 등이 모두 사라졌다. 핸드폰을 쓰지 않으니 좋은 점이 많았다. 더 많은 시간을 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현장에서 물건을 구매해야 했고, 쇼핑하면서 진상도 알릴 수 있었다. 어디에 가도 도청될 염려가 없었다. 인간 세상의 이 이치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안전하다. 핸드폰을 쓰지 않으니 자발적으로 위챗과 기타 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동시에 이런 욕망과 유혹을 끊어버렸다. 이런 것은 모두 수련인의 이지를 소모하고 세 가지 일을 해야 할 시간을 낭비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수없이 도입해 들여왔고, 사람의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있는데, 속인 중에서는 누구나 다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두 측면으로 나눠 생각해 보고, 변증법적으로 보면, 좋지 않은 것도 개혁개방을 따라 들어왔는데, 형형색색이다.”[1] 이런 좋지 않은 것은 가짜 부처와 가짜 보살과 같다. 위챗을 쓰면 위챗으로 지인들에게 뭔가를 판매하게 된다. 돈을 버는 것과 같이 그것을 구하고 그것을 우러러보고 그것에게 에너지를 더해준다. 그것이 강해질수록 사용자를 더욱 통제한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쓰게 만들고 사용자의 소중한 것을 가져갈 수 있다.

위챗을 제거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더니 남편은 여러 번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주었다. 어느 날 내가 퇴근하여 막 집에 들어선 후 아직 슬리퍼를 바꿔 신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얼굴을 붉히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는 나에게 심성을 제고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 연공은 헛된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사회보험 기한이 만료예정이라며 재발급 받으려면 길상 코드(吉祥碼)가 필요하니 위챗에서 길상 코드를 스캔하라고 했다. 나는 위챗을 지웠고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간 불만이었던 것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결혼한 지 10여 년인데 그가 처음으로 나를 거칠게 밀고 당기며 거실에서 침실로 끌고 가더니 옷장을 열고 호구부를 꺼냈다. “오늘 사회보험 절차를 밟으러 가지 않을 거라면 이혼 절차를 하러 가자.”

격분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나는 수련인이다. 잘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대하자.’라고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온몸이 매우 강대한 에너지에 휩싸인 것처럼 뜨거웠고 매우 평온하고 안정되었다.

나는 남편을 침대에 앉도록 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저와 함께 있기 싫고 기어이 이혼하고 싶은 것이라면 오늘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너무 감정적이니 며칠 좀 지나서 논의하면 어떻겠어요? 저는 지금 예전보다 나아졌잖아요. 이전에는 밥도 하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고 제 몸 관리만 하면서 종일 핸드폰만 봤죠. 지금은 핸드폰 보던 시간에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가사를 하면서 이전에 당신이 너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십 년 넘게 당신이 가사를 돌봐주셨는데도 저는 당신께 잘 하지도 않고 감사할 줄도 몰랐어요.”

그러자 남편은 많이 진정되었고 나와 차를 타고 영업점에 갔다. 볼일을 다 볼 때까지 나는 소위 길상 코드를 스캔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남편은 다시는 내 앞에서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결혼 전에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알았다. 신혼 때는 내가 밤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가면 위험할지 모른다며 따라나서려 했다. 출산 후 병이 났는데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자 완쾌되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사부님 법상도 모셨고, 새집으로 이사할 때는 일부러 불단도 주문했다. 남편이 아무 말 없기에 나는 그가 내가 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위챗 관련은 사실 남편이 화낼 이유가 없다.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많은 마음을 찾았는데, 우선 찾은 것은 의심이었다. 올해 설 쇠기 전에 나는 남편이 보낸 위챗 메시지 때문에 다투고 한밤중에 혼자 밖으로 나가버렸다. 너무 분개했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자 소리 내서 울 정도였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그때 내게 9자 진언(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떠올려주셨다. 나는 속으로 연거푸 외웠다. 얼마나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눈물이 멈추었고 마음도 진정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랫동안 보지 않던 대법 책을 펼쳤다. 이렇게 사부님의 자비로 나는 다시 수련으로 돌아왔고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의심을 찾은 뒤에 질투심을 끄집어냈다. 질투심에서 또 쟁투심, 원망하는 마음을 끄집어냈다. 이런 마음은 모두 속인의 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아침에 터우딩빠오룬을 할 때 갑자기 며칠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꿈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대략적인 뜻은 이러하다.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 질투심, 쟁투심, 의심을 비롯해 색욕도 담담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담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심하지 않고 대법으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그런 마음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내가 다시 법을 배우기 시작한 근본 집착이 아닌가! 이런 집착심을 갖고 세 가지 일을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남편을 보니 그는 무던하고 고생을 견디는 사람이었다. 수년간 가정을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도 법을 위해 온 생명이지만 속인 속에 미혹되어 법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수련인으로서 이것저것 원망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이 원망하는 마음은 진아(真我)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승인해서는 안 된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가짜 나, 그 이기적인 낡은 본성에서 온 원망을 자신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진상을 알리면서 있었던 일화 몇 가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했다. 버스를 타면 자리를 양보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거들고, 물건을 살 때 고르지 않고 잔돈을 깎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 평범하고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진상을 알리는 계기로 삼았다.

매일 자투리 시간에 발정념을 하여 대법을 파괴하고 중생이 진상을 듣지 못하게 하는 사악(邪惡)을 제거하고, 출퇴근길에는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도중에 탄 젊은 여성이 손에 들고 있는 주머니가 너무 꽉 차서 터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하이힐까지 신고 있길래 자리를 양보했는데, 앞자리에는 세련돼 보이는 부인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에서 내린 후 나는 부인이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내릴 때 좀 도왔다. 그녀는 젊었을 때 무용 교사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리에 문제가 생겨 걷기도 힘들고 물건을 들기란 더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장바구니를 대신 들어주었다. 도착하자 그녀는 “우리 같은 방향이네요.”라고 말했다. 내가 “아니에요. 모셔다드린 것이었어요. 돌아가야죠.”라고 말하자, 그녀는 감동해서 “너무 좋으신 분이네요.”라고 말했다. 내가 “우리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알려주셨거든요. 누구든 잘 대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한답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장××은 어쩜 그렇게 나쁘죠? 이전에 홍콩에 갔었는데 거기에는 배우는 사람이 많더군요. 장××은 왜 수련하지 못하게 하고 말도 못 하게 할까요? 저는 파룬궁(法輪功)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길에서도 말할 수 있다고요. 저는 그가 두렵지 않아요!” 나는 참으로 기뻤다. 얼마나 좋은 생명인가! 몇 마디 평범한 말 같지만, 그녀 세계의 중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경사이다! 이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저 지금 ○○에요. 짐이 무거웠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들어다 주셨어요.” 그녀는 붉은 넥타이를 매고 독한 맹세를 한 적이 있었고, 나는 가명으로 탈퇴를 시켜 주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자마자 버스 손잡이에 손이 베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 여성이 반창고를 주었고, 그 인연으로 나는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그녀가 버스에서 내릴 때 따라서 내렸다. 고맙다는 말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금방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유감스러워서 마음속으로 다시 만났으면 했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거리를 오가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보름 정도 지났는데 버스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가 먼저 인사했는데 나는 처음에 멍했다가 곧 생각이 났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정거장을 지나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도 따라서 내렸다. 그녀는 한 정거장을 되돌아가야 했기에 진상을 알릴 시간이 생겼다. 그녀는 진상을 다 듣고 나서 소선대를 탈퇴했다. 이 여성이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진상을 알릴 시간이 생기고 반창고로 연분을 맺게 해주신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렸다.

보슬비가 내리던 아침, 내 앞에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신발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신을 가지고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줄 약을 사러 가는 길이었는데, 내게 집 사정을 약간 말해주었다. 벌이가 적은데 집에 있는 가족에게 돈이 들어갈 일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이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며,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9자 진언을 외워도 고통을 덜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소박한 사람 같았는데 몹시 절박한 표정으로 “제가 기억력이 나쁜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9자 진언을 써주겠다고 했다. 가방에서 펜을 꺼내려는데 아차 싶었다. 전날 펜이 잘 나오지 않아서 바꾸려다 잊어버린 것이다. 종이에 써보자 써지지 않았다. 다시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써지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펜으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사부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쓰자 글씨가 써졌다. 그러나 끊김 없이 나오지는 않아서 계속 덧썼고 결국 써냈다. 그녀는 보물을 얻은 것처럼 9자 진언을 주머니에 넣었고 소선대도 탈퇴했다.

요즘은 진상을 알릴 때 삼퇴한 사람이 매우 많지만, 탈퇴하지 않은 이도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다른 수련생을 다시 만나 진상을 듣고 탈퇴할 기회가 있기를 희망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례한 사람도 있었으며 아주 선량한 사람도 있었다. 한 여사님은 당원이었는데 내가 가명을 지어주고 탈퇴시켜주자 진상 자료를 보았다며 대법이 좋은 것을 안다, 안전에 주의하라고 내게 당부했다.

한번은 한 남성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그는 지금 사복경찰이 많다며 말을 걸 때 우선 잘 보고 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귀띔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달간 진상을 알릴 때 삼퇴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전에 진상을 들었거나 진상 자료를 본 분들이었다. 수년간 수련생들께서 노력해오신 것이 기초가 되어서 몇 마디만 말해도 탈퇴시킬 수 있었다. 수련생들께서 겨울에 준비한 씨를 봄에 심고 여름에 벌레와 잡초를 제거하고 나서 가을이 되어 내게 돌아온 것이다! 이 사계절의 시간과 천지는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하사해주셨다. 우리는 손과 다리를 움직였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주셨다.

사부님의 안배로 수련생을 만나다

막 수련으로 돌아왔기에 예전에 나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던 수련생들과 다시 만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게도 자료와 호신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날처럼 아주머니에게 손으로 써주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게다가 손으로 쓰는 것은 일반적이고 정확한 방식이 못 된다. 길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만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되면 자료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 마음을 보셨다. 얼마 가지 않아 출근길에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조롱박을 하나 주셨는데, 보니까 위에 글귀가 있었다. 그 글자를 보고 마음이 격동되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조롱박을 받자 연이어 메모리 하나를 주었다. 나는 말 없이 감격에 겨워 있었다. 수련생 아주머니가 나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나는 말은 들리지 않고 격동될 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아주머니를 껴안았다. 그분은 깜짝 놀라더니 곧이어 웃으며 “우리는 같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줄곧 고개만 끄덕였다. 가족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수련생 아주머니는 나에게 자료, 메모리, 호신부를 가져다주었다.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리고 아주머니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매일 가방에 여러 가지 진상 자료를 가지고 다니면서 연령대에 맞춰 배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출퇴근길에 사람을 구하는 다양한 방법을 갖추게 됐다.

모든 것이 이제야 시작됐다

위에서 말하고 경험한 것은 다른 수련생들은 진작에 겪은 것이지만 나는 이제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입문한 선후는 가리지 않는바 모두 제자다.”[1] 아무튼 지금은 매일 법 공부, 연공, 진상 알리기 외의 자투리 시간에는 대부분 시간 발정념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 쓰니 가부좌가 생각난다. 나는 아직 가부좌가 너무 고통스럽다. 처음에는 반가부좌도 끈으로 묶어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도 조금만 지나면 아파서 땀을 흘렸다. 나중에서야 조금씩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때로 가부좌할 때 아프면 정력을 집중해 정공 음악을 들었다. 한번은 듣다가 다리가 심하게 아팠지만, 사부님께서 어리벙벙하고 비틀거리는 아이 같은 내 손을 잡고 높고 긴 계단을 걸어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우 평온하게 걸었고 사부님께서는 따뜻하고 자비롭게 웃으시며 나를 보셨다. 나는 하나 또 하나 이어진 계단을 비틀거리며 올라갔다. 다리 통증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아픔 속에서 계속 견지할 수 있었다.

최근 반년간 가부좌를 한 시간 한 것은 몇 차례인데 모두 심성 상에서 고비를 넘고 나서 도달한 것이다. 첫 번째는 꿈에서 색욕의 고비를 넘은 후였는데, 이튿날 아침 가부좌를 1시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아침에 연공을 마치고 예전에 알던 어느 수련생을 만나러 가려 생각했던 때이다. 그 수련생은 위챗 그룹을 만들어 계속 핸드폰으로 물건을 팔았다. 그래서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미리 전화하고 가지 않았다. 일단 그녀가 있는 곳에 가고 나서 이 일을 말하고 나는 위챗을 쓰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그녀도 외출할 때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세 번째는 남편이 나에게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주었던 때였다. 나는 넘기지 못해 혼자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다가 핸드폰을 들고 수련생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당시는 저녁 8시가 넘은 때였다. 그런데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를 닦아내고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며 속인을 선량하고 자비롭게 대해야 하고 수련생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하신 사부님 말씀을 생각했다. 내가 전화하면 분명 표면 현상을 가지고 논할 것이 뻔한데 그런 말은 법에 있지 않고 사람의 이치이다, 이는 안일함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전화하면 수련생에게 지장을 주지 않겠는가? 이 시간에 법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모든 수련생의 시간은 소중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전화를 다시 내려놓았는데, 이튿날 아침 정공을 1시간 연마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책을 보면 법을 얻는 것으로 여겼는데, 시험지를 제출할 종이 울릴 때가 돼서야 진수(真修)해야 법을 얻고, 법을 실증해야 대법제자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맺음말

법을 외우면서 차츰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을 의식할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을 진정한 나와 분리하고 서서히 그것들을 똑똑히 보고 담담히 여겼다. 차츰 자신이 아주 맑아진 것을 느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제게 대법의 크나큰 은혜를 입을 기회를 주시고, 현 층차에서 가장 큰 선념으로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게 하시고, 한 생명이 진정으로 회귀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2/25/4146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