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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 팀은 속인 모임이 아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지의 일부 법공부 팀은 줄곧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교류하고 법공부 시간이 길어지면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수련생 A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우리는 갑자기 자신의 사상 중에 틀린 인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부 수련생의 행위가 법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조심성’이 많거나 매 사람의 수련 상태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와 A는 이런 표현들은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깨달았습니다. 모든 일은 다른 요인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현지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를 마친 뒤, 수련생은 간식이나 과일을 내놓고 함께 먹으면서 서로 의견을 나눕니다. 수련 과정의 일을 이야기하고 때때로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두 수련생은 여전히 그들의 수련 과정의 일로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마지막에 ‘어느 집의 오리 알이 더 맛이 좋은가’를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와 A는 이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알았고 법공부 팀에서도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매번 수련생이 매우 열정적으로 과자와 과일을 한가득 가져다줄 때, 일반적으로 두 번 정도 거절하지만 결국 체면상 거절하지 못합니다. 오래 지속되다 보면 또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처럼 먹는 것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지나치게 걱정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련의 엄숙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나중에 어떤 법공부 팀은 온종일 법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 끼를 법공부 팀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 모두 스스로 조금씩 음식을 가져와서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한 수련생이 모두에게 밥을 지어줬습니다. 밥과 반찬이 맛있었기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더 나중에는 수련생이 음식의 정교함과 심미성, 그리고 맛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식당에서 만든 요리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힘껏 노력했습니다. 밥을 짓고 식자재를 구입하는 수련생이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 식사하는 수련생도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되어 법공부를 해야 할 시간이 속인 중의 모임처럼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1]라는 법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어차피 모두가 밥은 먹어야 하기에 혼자서 먹는 것이나 여러 사람이 먹는 것이나 집착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식사 문제를 불필요하게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수련생의 집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밥을 짓는 수련생은 수련생들이 칭찬하자 자신도 모르게 환희심이 생겼고, 밥을 먹는 수련생은 맛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체 법공부라는 이런 형식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속인의 일을 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미래에 참조할 실 예인 것이다.”[2] 맨 처음 간식을 먹을 때는 법공부 팀은 순정하고 엄숙한 수련환경으로, 절대 일반 속인 중의 한담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길을 비뚤게 걷는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요!

전부터 저와 A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우리는 이 일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법의 기준으로 가늠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떤 법공부 팀의 수련생 사이에서 여전히 위챗으로 연락하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고 이 일로 몇 번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은 늘 이 상태였으며 줄곧 위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와 A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들은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의견을 나눈 뒤 우리는 갈수록 우리의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변고’ 유무는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대법이야말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홍음-도 중에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20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0/4102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