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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얼음이 드디어 녹다

글/ 중국 대법제자 지밍

[밍후이왕] 1998년 5월 아들이 태어났다. 큰 처형이 병원에서 아내를 돌봤다. 아내의 출산을 담당한 의사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었다. 그는 아내의 가슴에 단 파룬 마크를 보고 수련생임을 알게 됐다. 아내는 어떠한 진통제도 사용하지 않기를 요구했고 의사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아들의 출산은 아주 순조로워 모자는 건강하고 또한 큰 비용을 절감했다. 4일 후 상처가 아물어 퇴원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큰 처형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6층에 사는데 택시가 1층 입구까지 태워줬다. 큰 처형은 아내에게 먼저 1층에서 잠깐 쉬라고 하면서 나와 함께 아이를 안고 물건을 올려놓고 다시 내려와 업고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나와 큰 처형이 금방 집에 들어서자 아내도 뒤에서 따라 올라와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빗자루로 청소하려고 했다. 큰 처형은 매우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넌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산후병을 앓게 되면 어쩌려고?”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쉬엄쉬엄하고 있어요. 아무런 병도 나지 않을 거예요.”

큰 처형은 아내가 막무가내라고 하면서 엄명을 내렸다. “여자의 산후조리는 장난이 아니야! 산후조리 기간에는 냉수로 세수하고 양치질하면 안 되고 육체노동도 안 되고 책을 보거나 글을 써도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산후병에 걸려 한평생 고생스럽고 책을 보면 눈이 나빠져 장님이 될 수도 있어. 이는 노인들이 남겨놓은 경험과 교훈이므로 무리하다가는 자신을 해칠 수 있어!” 아내는 큰 처형에게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신체가 보통 사람과 달라요.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기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큰 처형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신신당부했다. 큰 처형이 간 후 아내는 해야 할 일을 했으며 할 수 있는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책을 보고 글도 썼다. 퇴원 10여 일 후 회계사 시험을 보겠다고 고집했다. 누구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높은 점수로 통과되고 더욱 건강해졌다.

큰 처형은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신기하다고 탄복했다.

큰 처형은 아내보다 10살 많고 친절했으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여동생을 대신해 일을 처리하고 우리 앞에서 항상 강하게 큰언니 역할을 했다. 큰 처형은 어릴 적에 ‘홍위병’에 가입했고 직접 소위 ‘문화대혁명’ 시기의 폭력 투쟁을 목격했으며 나중에 농촌으로 하향한 지식청년이 됐다. 1989년 ‘6·4 사건’을 겪으면서 중국공산당이 학생들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하고 각종 정치 운동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공포를 느껴 공격의 상대가 될까 봐 공산사당과 관계되는 일은 모두 피하면서 멀리했다.

큰 처형의 건강은 항상 좋지 않았다. 특히 위장병과 불면증이 아주 심해 너무나 여위었으며 약을 복용하면서 지탱했다. 나와 아내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파룬궁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했으며 ‘진선인(真·善·忍)’ 대법의 표준으로 심성을 수련해 도덕이 향상되고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셔서 온몸에 병이 없이 가뿐하다. 우리는 자신이 혜택을 받은 사실을 알렸지만 큰 처형은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손을 내젓고 도리질하면서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으며 공산당의 일언당(一言堂) 유언비어 날조 매체가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대규모로 파룬궁을 비방했다. ‘자해’, ‘분신자살’, ‘살인’ 등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했다. 실생활에서는 ‘610’ 경찰과 지역사회 인원이 집에 들이닥쳐 소란과 협박, 심지어 납치해 감금했는데 끊임없이 수련자들이 노동교양 및 판결을 받았다.

이전에는 가족들이 모두 우리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박해가 시작되니 두려움에 대법 수련을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특히 큰 처형은 우리에게 ‘임기응변’을 하라면서 말했다. “공산당이 너희 집과 가족을 잃게 하는 것은 한 마디면 되니까 절대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말고 바보짓으로 손해 보지 말아.” 우리는 완전히 날조된 유언비어를 가족에게 설명해줘 그들도 점차 이해하긴 했지만 절대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큰 처형은 텔레비전에서의 유언비어를 믿고 자신이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것도 모두 부인하면서 영문도 모르는 원한을 내비쳤다.

한번은 회식하면서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고 있는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중국공산당이 조작해낸 연극이고 완전히 가짜로써 원한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 사부님의 설법에서는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가르치고 자살은 유죄로서 수련인은 절대 금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쩌민 무리는 파룬궁에 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비방하며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해 파룬궁과 수련생에 대해 원한을 품게 했으니 우리 가족들은 절대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큰 처형은 즉시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허튼소리 그만해! 너희들은 미혹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잡히면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려고 그래!”

어느 한 일요일에 아내는 부모님을 뵈러 갔다. 점심에 안방 침대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연공하는데 큰 처형이 보고 욕하면서 달려가 끌어내리면서 심지어 때리려고 했다. 큰 처형은 자신의 집에서 연공만 해도 경찰이 뛰어들어 납치해 갈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그 해 ‘올림픽’이 끝난 어느 날, 아내가 ‘9평 공산당’을 한 사람에게 줬다가 신고를 당해 파출소 경찰이 아내를 납치해 현지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았다. 그 사이에 아내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친척들이 나에게 아내에 대해 묻자 이미 80여 세인 장모님이 줄곧 공포 속에서 참아오다가 바로 이때 너무 슬퍼서 목을 놓아 우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산당이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박해한다고 비난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 처형은 충격을 받아 장례가 끝난 후 내 아들을 데리고 노동교양소에 아내를 보러 갔다. 만난 후 위로의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만 쓰면 집에 돌아올 수 있는데 왜 쓰지 않아? 너희들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면서 노동교양을 당할지언정 왜 복종하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이 너를 걱정하게 하고 너 자신도 학대를 받으니 바보가 아니야?”

노동교양소 면회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단발머리에 창백하게 여윈 아내가 화나 날뛰는 큰 처형과 눈물을 머금은 아들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죠?” 큰 처형은 바로 말문이 막혔다.

외부 사람들은 점차 파룬궁 수련생들이 노동교양소에서 잔혹하게 박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내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죄수들에게 욕먹고, 매를 맞은 일이 외부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냉정하게 다른 방면으로 생각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아무런 잘못이나 죄도 없는데 이러한 박해를 받고 있으니 일리가 없다. 이것은 깡패 같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중국공산당과 장쩌민 무리가 사악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졌다.

아내는 2개월 형을 추가 당해 불법적으로 20개월 감금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아무런 ‘보증서’ 따위도 쓰지 않고 ‘전향’하지 않아 집에 돌아와서도 지속적으로 ‘610’ 악당 및 경찰의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감시와 미행당하고 소란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 돼 점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단히 만나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폭로해 공산당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했다. 공산당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선악에는 보응이 있듯이’ 천벌을 받는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모든 조건을 이용해 각종 파룬따파의 진상 전단지, 소책자, CD,’9평 공산당’ 등 진상 서적을 많이 제작하고 배포했다.

큰 처형 일가에게는 직접 말하면 듣지 않아 진상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대문 손잡이에 걸어놓거나 조용히 집에 가져다주었다.

노력은 뜻이 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듯이 시간이 지나니 큰 처형과 동서는 많은 진상 자료를 봤다. 더욱이 큰 동서는 ‘미래인의 신화’ 이 CD를 보고 이해했다. 큰 처형은 그래도 믿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수련과 관계있는 말을 못하게 했다.

그런데 큰 처형은 장모님이 병세가 위급할 때 진정하게 대법에 감동했다. 장모님은 연세가 많아 건강이 줄곧 좋지 않으셨으며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암암리에 한 가지 조상 대대로 전해진 도를 믿으면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신선의 보호를 구하셨다. 두 분은 파룬따파를 이해할 기회가 많았지만 중국공산당이 박해를 시작한 것과 큰 처형의 태도로 인해 감히 진상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장모님의 병세가 심해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담낭암이었고, 한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으니 의사는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임종에 이른 장모님은 심하게 아팠으며 돌란틴(마약성 진통제) 등 마취약을 맞아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다. 이때 아내는 장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렇게 아프시니 제 한 마디 말을 들어보세요. 저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지 않으시겠어요?” 이때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내 고통이 사라진다면 뭘 해도 좋아!”

장모님과 아내는 함께 ‘아홉 글자 진언’을 읽었다. 장모님은 첫날부터 더는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않으셨고 20여 분 읽다 잠이 드셨다. 깨어난 후 계속 읽으셨고, 계속 기적이 나타나 돌란틴을 맞지 않아도 아프다고 하지 않으셨다. 식사하고 잠자고 화장실 가는 것도 규칙적으로 변하셨다. 장모님은 끊임없이 울면서 말씀하셨다. “파룬궁이 이렇게 영험한 것을 알았더라면 일찍이 이 공법을 연마했으면 좋았을걸!”

한 달이 지나서 장모님은 조용하고 편안히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변화와 생사 과정을 목격한 큰 처형은 큰 감명을 받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공포를 잊게 했다. 20여 년간 큰 처형의 마음을 뒤덮었던 견고한 얼음이 마침내 녹았으며 파룬궁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이 드디어 큰 처형을 일깨웠다!

장모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큰 처형은 스스로 파룬궁 관련 화제를 말하면서 자신의 방법으로 파룬궁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정중히 나타냈다. 아내에게 자신의 홍위병을 탈퇴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현재 큰 처형은 자신이 성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읽으며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줬다. “절대 신문과 텔레비전의 방송을 믿지 마세요. 파룬궁이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입니다.” 큰 처형은 친척이나 친구를 보러 갈 때 아내가 시간이 되면 데리고 가서 말했다. “빨리 이분들에게 ‘아홉 글자 진언’을 말해드려.”

큰 처형의 변화에 온 가족은 공포와 상서롭지 못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났으며 큰 처형도 건강해졌다. 매번 큰 처형의 변화를 말할 때마다 나와 아내는 모두 감개무량하며 가슴이 벅찼다.

큰 처형은 2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으며 마음을 뒤덮은 견고한 얼음을 정말 녹이기 어려웠다. 장모님의 임종 과정을 겪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기연을 잃어 만회할 수 없는 생명의 유감이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크나큰 기연을 주셔 큰 처형이 드디어 새로운 삶을 얻게 됐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25/4094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