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한 80년대 생의 대법 수련 경험

글/ 장쑤(江蘇)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5년 초, 나는 새로 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중에서 그는 공산당의 일부 사악하고도 어두운 내막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나중에 그가 국내에서 보지 못하는 아주 많은 자료들을 위챗으로 보내줬다. 국내에서 본 여러 가지 혼란한 현상을 연결해보니 앞뒤가 맞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수십 년간 중국공산당에 세뇌당해 공산당이 위대하고 광명정대하다고 생각했는데 단번에 무너진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국가가 어떻게 거짓말로 자신들의 국민을 속이고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수십 년 동안이나?

그리하여 나는 동료와 마찬가지로 매일 대량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장과 동영상 등을 위챗 단체채팅방에 올렸다. 그 기간에 일부 국외 어린이가 밝힌 환생의 기억에 관한 문장도 보았다. 나는 왜 그런 현상이 존재하는가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환생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확고한 무신론자였고 노인들이 말하는 신기한 이야기들을 우매한 봉건 미신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른바 초자연적인 일들은 환각이라고 생각하거나 거기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들을 믿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위챗을 통해 알게 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이 도시를 떠나려 했는데 가기 전에 나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나에게 감사의 말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 친구와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왜 나에게 감사하다고 할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친구 단체채팅방에 사악한 당에 대해 폭로한 것이 그에게 진상을 알게 했을까? 그가 간다고 하니 작별 인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단체채팅방에서는 말하기 곤란한 말을 나에게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그는 “네가 나를 ‘민주주의 단체채팅방’에 들어오게 한 후, 밴드에 어떤 사람이 올린 것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어. 사적인 대화를 나눠보니 그 사람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었어. 나에게 전자책 ‘전법륜’을 주었고 나는 보고 나서 아주 좋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에게 “이 책을 돌아가서 꼭 봐봐. 보면 알아”라고 말했다. 그가 이 책을 매우 인정하는 것을 보고 나는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전에 동료에게서 파룬궁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호기심과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자책은 보기가 좀 힘들었고, 당시 마음속에는 공산악당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기에 책을 보는 것보다 단체채팅방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소식을 대량으로 단체채팅방에 올렸다. 책도 며칠에 한 번씩 보았기에 반년이 지나도 다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전반 세계관은 이미 완전히 바뀌었다. 반복적인 사고(思考)를 통해 ‘이 사회는 반드시 선악에 응보가 따르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당시 나는 수련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었고 다만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이 좋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나 수련할지 안 할지, 사부님께서 정말로 나를 관할하실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떤 때 길에서 갑자기 책에서 말씀하신 이치가 생각났고 세상의 온갖 고초가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알고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생명이 서서히 깨어난 후의 감동이었다.

반년이 넘은 후, 수련생은 나에게 ‘전법륜’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때야 나는 ‘전법륜’을 제대로 한 번 다 읽었으며 5세트 공법도 배웠다.

그동안에 나는 건강 때문에 출근하지 않았다. 하루는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찐득한 풀을 두껍게 바른 것처럼 몹시 아팠다. 십몇 년 동안 신경쇠약증과 심한 빈혈로 머리가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예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많이 좋아졌지만 그날은 퇴근하고 나니 힘들어서 말할 기운도 없었고, 걸음도 발이 질질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머리가 아프기는 처음이었고 침대를 보면 눕고 싶었고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아침을 먹은 후에 한두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자고 싶었다. 하루에 몇 시간만 정신이 좀 희미하게나마 들었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잠을 잤다. 처음에는 전날 몸이 너무 허약한 상태로 찜질방에 가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전에는 찜질방에 가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렇게 거의 5~6일 아프고 나서 몸 상태는 서서히 좋아졌다. 머리가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은 것을 발견했고 정신상태도 아주 좋았다. 나는 아주 기쁘고 신기했다. 어느 날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신체 청리인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수련생과 통화하니 모두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은 세 번이나 있었고 내 머리는 한 번 또 한 번 가벼워졌다.

사부님께서는 “과거에 많은 지역의 수련생이 나에게 쓴 심득체험 중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스승님, 저는 학습반에서 강의를 듣고 돌아가는 길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화장실만 찾았습니다.’ 이는 내장(內臟)까지도 모두 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한 일주일 넘게 설사를 했는데 하루에 화장실에 몇 번이나 갔는지도 몰랐지만 몸은 불편하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데 지장이 없었고 기분도 아주 좋았다. 나는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20년 가까이 앓았었다. 법을 얻은 그해부터 약을 끊었고 오늘까지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수련한 후, 가장 넘기 어려웠던 난관은 정에 관한 것인데 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여러 해 동안 어머니에 대한 짜증과 경멸이 쌓여, 나는 속으로 수없이 질문했다. ‘전생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기에 이번 생에 이런 지경까지 처했을까?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나는 20년을 적게 살더라도 어머니와 가족이 되고 싶지 않다. 어머니에게 빚진 것은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 갚을 수 있다.’ 어머니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아주 나빴고 우리는 늘 당연한 듯 다퉜다.

사부님의 법을 생각할 때마다 자책했다. 그러나 어머니 앞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면 즉시 화를 냈고, 심지어 듣기 거북한 말로 어머니를 자극했다. 정말 참을 수 없었고 꼭 말을 해야 속이 후련했다. 사부님의 법으로 좀 이지적이 되면 어머니를 좀 잘 대해 드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퉜다. 이런 상태는 줄곧 올해 2월까지 지속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와서 나는 긴장했다. 예언 중의 재난은 이미 닥쳤고 시간은 긴박했다. 나는 사부님의 각지 설법 및 경문을 겨우 절반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서둘러 법공부를 해야 했다. 그날부터 나는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매일 적어도 한 편씩 읽었다. 나는 그렇게 각지 설법을 다 읽으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어머니를 싫어하는 원인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너무 어리석으셨고, 늘 사고를 거치지 않고 말씀하시며 뜻밖의 일을 저지르신다. 어머니께 말씀드려도 또 똑같은 실수를 하시는데, 어머니는 수준이 그 정도이기에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왜 늘 이 모양이고 발전이 없는지, 왜 변하지 않는지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기대하는 모습이기를 희망한다. 어머니도 그럴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이 단락의 설법에서 나는 수련인은 타인이 좋게 변해야만 잘 대해줄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 잘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본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수련인의 상태는 마땅히 평온해야 하고 타인의 좋고 나쁨에 따라 자신의 정서가 영향받거나 다른 사람의 태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그들에게 잘 대해야 한다. 오직 나 자신이 내심으로부터 변해야 내 주변 환경이 좋아질 수 있다.

다음날 일어나니 내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러 억제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의 어머니를 싫어하는 요소들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더 이상 어머니와 다투지 않았고 말투는 평화롭고 사고는 냉정하고도 명확했다. 앞으로 인내심을 갖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 드릴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다시 이전처럼 그렇게 어머니를 대하라고 하면 그때의 정서와 상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의 아주 악한 요소는 사부님께서 이미 아주 많이 제거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몇 년 전, 사부님의 배치로 인터넷에서 다른 한 수련생을 만났다. 그녀의 계발을 받아 사람의 집착심을 찾아낼 줄 알게 됐다. 어떤 사람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반응, 정서의 변화, 평소의 일사일념에 숨어 있던 각종 집착심을 찾아내 즉시 부정했다. ‘이런 마음은 내가 아니다. 제거해야 한다. 방금 그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다. 제거해야 한다.’ 비록 그런 마음은 아직도 있지만 이런 습관은 나에게 시시각각 경각심을 갖게 했다. 그것을 일단 느슨하게 하고 부정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런 관념과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수 있고 틈을 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1], “이 우주 중에는 또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이 아주 큰 고통을 감당했기 때문에 당신 자신의 업력도 전화를 가져오게 된다. 당신이 대가를 치렀기 때문인데, 얼마만큼 크게 감당했으면 얼마만큼 크게 전화해 모두 德(더)로 변한다. 연공인(煉功人)은 바로 이 德(더)를 가지려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업력도 제거했으니 양득(兩得)이 아닌가.”[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서서히 담담하게 보았다. 내가 얻어야 하는 것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준다고 약속하고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생에 내가 빚진 것이고 만약 빚진 것이 아닌데 그가 가져갔다 하더라도 나는 기뻐해야 한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고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은 ‘덕’이다. 그가 나에게 보상해 주지 않았는가?

나도 주변에서 발생한 일을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사부님 설법을 듣는데 이전에 산 미디어 플레이어는 아주 좋았다. 두 번째로 산 플레이어(같은 브랜드)는 얼마 듣지 못하고 문제가 생겼다. 어떤 때는 들을 수 있고 어떤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일 년 가까이 지속했다. 나는 줄곧 운이 나빠서 내가 산 것이 품질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는 플레이어가 어떤 때는 잘 되고 어떤 때 안 되는 것이 내 수련 상태를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때는 법공부와 연공을 제대로 못하거나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요즘은 법공부와 연공을 이전보다 좀 잘했다. 게다가 이렇게 오래 견지했다. 다시 플레이어를 켜보았더니 소리가 잘 들렸는데 최근에는 계속 잘 된다. 나는 아주 기뻤다. 원래 나는 그것을 폐기하려 했는데 내 일념의 차이로 플레이어에게 새 삶을 주게 됐다.

나는 수련의 기묘함에 몹시 감탄했고 자신이 정확하게 깨달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이 정진하지 못해 사부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부끄러웠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나에게 점화해 주셨는데 나는 깨닫지 못해서 소중한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는지 모른다.

사부님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23/4087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