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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과 같은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전에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은 겨울의 설산 같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가고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10여 년간 고치기 힘든 기관지 천식이 다 나았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니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결혼한 후 나는 시어머니가 계모인 것을 알았다. 한 번은 남편이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그는 이 집에서 어릴 때부터 대부분 천대받고 욕을 들었으며, 일을 가장 많이 해도 욕은 제일 많이 들었으며 가족의 따뜻함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확실히 이랬다. 우리가 결혼할 때 가구와 침대 용품을 모두 우리가 샀다. 술을 준비하고 손님을 청하는 일도 우리가 돈을 냈고 그의 집에서는 돈 한 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손님에게 받은 축의금은 시어머니가 반씩 나누자고 했다.

아이를 낳았으나 나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다. 우리 친정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나를 도울 수 없었고,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아이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6월의 여름 날씨에 나는 갓 태어난 아들을 솜이불로 싸서 안았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아들은 병원에서 3일 동안 울었다. 그때부터 나는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그녀의 친아들보다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모든 면에서 우리가 그녀보다 조금 낮아야만 마음 편해 했다. 나는 농촌에서 현성으로 옮겨 일할 때 직장이 새로 설립되어 기숙사가 없었다. 현 공급 판매 협력사 주임은 우리 시아버지 직장(공급 판매 협력사의 산하 부문)에 집 한 채를 임대해서 우리가 살도록 하겠다고 제의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 우리에게 집을 임대 해주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우리가 그들의 덕을 볼까 봐 걱정했다. 그때 시아버지는 부서의 지배인이었다. 우리는 공급 판매 협력사 1층의 10평밖에 안 되는 사무실에서 살았다. 화장실, 주방 없이 겨우 좁은 입구에서 밥을 지을 수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면 커튼을 치고 보모는 한쪽에서 잤다. 그 방은 서향이라 오후가 되면 햇볕이 들어 여름에는 매우 더웠다. 그때는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도 비싸서 살 돈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우리를 집에서 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나와 내 아들을 호적에 올려주지 않았다.

더욱더 끔찍한 것은 아들이 막 두 살을 넘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아들이 보모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보모가 집에 잠깐 물건을 놓고 나와 보니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12월 28일이었고 마침 장이 섰다. 장 보러 오는 사람이 특히 많았고 모두 설을 지낼 설맞이 물건을 샀다. 나는 부식품 판매원이어서 특별히 바빠 몸을 뺄 수 없었다. 남편은 시골에 근무 중이어서 나는 급히 시아버지, 시어머니, 삼촌께 알렸다. 그들에게 아들 찾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인명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냉담했는가! 당시 그들에 대한 원망과 미운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울면서 물건을 팔 수밖에 없었고 보모 혼자서 아들을 찾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부터 시댁에 대한 미운 마음은 갈수록 깊어졌다.

아들이 한 살 반이 되었을 때 나는 낙태 수술을 했다. 게다가 과로로 기관지 천식에 걸렸다. 몸이 허약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고 늘 모자가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 시댁이 병원 가까이 있지만 한 번도 병문안으로 점심을 챙겨준 적이 없다. 가끔 친정엄마 친구가 우리 모자 먹으라고 죽을 끓여왔다. 나는 늘 수액을 다 맞은 후 집에 돌아가 밥을 해 먹었다.

나는 늘 이런 일로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매번 이런 일을 언급하거나 시어머니를 만나면 특별히 괴로웠고, 만나고 싶지 않았고 상대하기는 더 싫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중병에 걸리면 보복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무엇 때문에 좋은 집에 시집가지 못하고 하필이면 계모인 남편에게 시집왔는가? 이것은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자신을 원망했다.

수련한 후 나는 이 모든 것이 인과에 따라 발생한 것을 알았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1]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여러 해가 지난 후 시어머니는 집과 땅을 모두 친아들 세 명에게 나누어주고 맏이인 우리에게는 상의도 없이 나누어 주지 않았다. 사부님은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개의치 않고 아주 담담하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쯤에 시어머니가 고혈압과 폐렴으로 입원했다. 첫날, 시누이와 삼촌은 저녁에 시어머니를 돌보기 싫어 당일에 퇴원하라고 했다. 그들이 간 후 나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는 혈압이 정상이 되었지만, 폐렴이 낫지 않았어요. 지금 집에 돌아가면 병이 심해질 수 있고 열이 날 수 있어요. 그러면 치료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며칠 더 입원하고 치료를 다 한 후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의했다. 나는 그녀가 돈 쓰는 것이 아까워할까봐 걱정했다. 그녀의 친아들은 땅을 받은 후 집을 지었고 시어머니는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 나는 몇 년 전 장사해서 번 돈 천 위안으로 그녀를 치료해주었다. 이것은 나의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 남편은 화가 나 큰소리로 나에게 욕했다. “집, 땅도 당신 몫이 없어요. 우리가 결혼한 지 오래되어도 그 집 물건 하나 가지지 못했어요. 게다가 그녀는 또 월급을 받는데 친아들에게 간호하라고 하세요. 또, 손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당신이 왜 거기에 신경을 쓰나요? 잘못하면 그들 형제는 당신이 재산 다툼을 한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당시 나는 한 수련인은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병이 들었는데 상관하지 않으면 수련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참을성 있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남편에게 말하고 화를 낼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며느리에게 손녀를 혼자 돌보라고 말하고 매일 시어머니를 보러 갔다. 시어머니는 간호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까다롭고 또 나에게 줄곧 편견이 있었다. 셋째 동서 말처럼 “형님은 어떻게 된 거예요? 잘해도 욕 듣고 잘못해도 욕 듣고 우리는 잘못해도 욕은 안 들어요.” 확실히 그랬다.

며칠 후 병이 낫자 나는 오늘 병도 낫고 또 명절이니 퇴원하고 싶으면 퇴원하고 며칠 더 있고 싶으면 있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짜고짜로 병실의 많은 사람 앞에서 한바탕 나를 욕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마음이 괴로웠고 억울했다. 또 남편도 나를 욕했다.

그때 내 마음은 정말 바다의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었고 또 밀어낼 수도 없어 곧 그녀와 다투려 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나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물론, 난(難)이나 모순이 오기 전에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모두 당신에게 알려 준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그것은 역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흔히 갑자기 나타나는데, 이래야만 비로소 사람의 心性(씬씽)을 고험(考驗)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의 心性(씬씽)을 진정으로 제고하게 할 수 있다. 心性(씬씽)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려면, 이렇게 해야 비로소 보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모순이 오는 것은 우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1]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 “장래에 어쩌면 당신이 가장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의 뺨을 두어 번 때려 당신으로 하여금 망신을 당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당신이 참아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1] 마음을 조용히 하고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정말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니? 무엇 때문에 욕을 듣니? 네가 잘하지 못했니? 확실히 이랬다. 보기에는 잘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속인에게 잘 보이려는 발견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었다. 당신이 보라.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돈도 내려놓고 시어머니의 옛날 과실도 개의치 않고 또 원망도 하지 않고 매일 그녀를 보살핀다.

사실 나는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불만, 악한 염두는 근본적으로 버리지 못했다. 이 물질은 나의 매우 깊은 공간장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들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영원히 거기에 존재하고 수련을 방해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녀를 원망할 일인가?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대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마음은 천천히 평온해졌고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꼭 진심으로 그녀를 잘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어머니도 매우 가련하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그녀는 혼자 10여 년을 살았고 그녀의 성격도 좀 이상하다. 그녀에게 세 친아들이 있으며 셋째 아들, 넷째 아들은 모두 성(省) 소재지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만 현지에서 일하며 그녀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그녀가 자주 아프고 올해 또 가벼운 치매가 있자 둘째 아들은 이사를 와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당시 나는 그녀를 집에 모셔와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고 간혹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것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수련인으로서 시시각각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나는 자주 물건을 사서 그녀를 보러 가고 또 청소를 도왔다. 최근 몇 년간 그녀가 늘 병이 들었을 때 입원시켜 퇴원할 때까지 돌봐주었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녀를 위해 한 이 모든 것에 온 가족이 감동했다. 특히 남편의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천천히 없어졌다. 그도 나를 따라 늘 시어머니를 보러 간다. 나의 둘째 동서는 “큰 형님이 제일 잘해요.”라고 말했다. 이웃도 내가 시어머니께 제일 효도한다고 말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3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20/4026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