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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우리 가정의 변화

글/ 화만팅(花滿庭)

[밍후이왕] 아빠가 바람을 피워서 부모님은 이혼했다. 한때는 화목했던 가정이 비극으로 끝났다. 우리 집에 일어난 이런 일은 오늘날 아주 보편적이고 많은 가정이 겪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은 이혼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 엄마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십여 년의 시간이 증명하듯이 엄마의 선택은 한 가정을 만회했고 우리 아빠를 구했으며 나의 행복한 생활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모든 공을 파룬따파에 돌린다.

1. 아빠가 변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아빠가 바람피운 것을 엄마가 알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 당시 엄마는 나에게 누구랑 같이 살 것인지 물었는데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엄마랑 살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나는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이 빨리 이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아빠에 대한 인상은 갈수록 나빠졌다. 아빠와 나 사이도 갈수록 멀어졌다. 아빠는 늘 사람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주먹질을 하거나 밤늦게까지 마작을 해서 방안에 연기가 가득했다. 엄마는 쉬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밥을 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밤늦게 술을 마시고 와서 토하면서 욕을 했다. 이 사람은 이것이 안 좋고 저 사람은 저것이 좋지 않다고 하고 그 사람은 옳지 않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아빠의 눈에는 좋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매번 한밤중에 술주정을 할 때면 나는 시끄러워서 깼고 무서워서 이불로 머리를 감쌌다. 그래서 엄마가 이혼하겠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기뻤고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니 집이 조용했다.

이혼 후, 아빠는 빈털터리로 나갔다.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며 도박하는 사회 기풍 속에서 더 심해졌고, 현지에서 악명 높은 아가씨와 오랫동안 동거를 했다. 그 후에 사업이 실패하고 도처로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언행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특히 술을 조금만 마셔도 온통 거짓말을 늘어놓아 엄마 쪽 친척들은 모두 싫어했다. 내가 수능시험을 본 후, 나와 엄마는 원래의 집을 팔고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았다. 한번은 아빠가 술을 마시고 외할머니네 집으로 와서 내가 만약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도 괜찮다면서 지금 어린 아가씨가 나이가 많은 남자를 모시고 춤을 추는 것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도 대학에 입학하면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나의 성적은 학년에서 앞자리를 차지했고 줄곧 반 간부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선생님께서 자랑스러워하는 학생이었다. 내 성적으로는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내가 수능시험을 본 후에 엄마는 파룬따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그 당시 외할머니는 화가 났는데 아빠의 엉뚱한 말을 듣고는 화가 치밀어 호되게 꾸짖어서 쫓았다. 나는 옆방에서 듣고 있었는데 오싹하고 두려웠다. 세상에 어찌 이런 아빠가 다 있을까! 내가 큰 다음 친척들은 서서히 나에게 부모님이 이혼 전에 아빠가 줄곧 다른 여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엄마만 몰랐을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때 경찰이 찾아와서 아빠한테 묻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직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엄마에게서 들었는데 사실 젊었을 때 아빠는 성실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일을 특별히 잘했고 고생을 견뎌낼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기초부터 아빠가 다했기에 외할머니도 고생을 잘 견뎌낸다고 칭찬했다고 했다. 그 당시 아빠엄마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 아빠는 월급을 모두 엄마에게 맡겼고 집안의 일은 엄마가 하자는 대로 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아빠는 나를 아주 예뻐했고 인내심으로 나를 달래주었다. 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매일 하교하면 아빠가 집으로 데려왔고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아빠는 나에게 진심으로 잘해줬지만, 지식이 없어서 거칠었고 지식이 있는 아빠들처럼 많은 도리를 말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철이 들기 시작했고 좀 많은 일들을 기억할 때부터 아빠는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회의 문란한 기풍에 물들어서 아빠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이것도 내가 갈수록 아빠를 싫어했던 원인이다. 만약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형편없는 아빠도 예전에는 그렇게 성실하고 정직한 청년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2. 엄마가 변하다

이혼한 지 8년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아빠가 재결합을 원한다고 말했고 나와 친척들은 모두 심하게 반대했다.

아빠의 일 때문에 엄마는 전에 심신이 지치고 고달팠다. 엄마는 삼차신경통으로 밥도 지을 수 없어 온돌에 앉아서 돈을 주면서 나더러 부근의 식당에 가서 사 먹고 오라고 했다. 후에 엄마는 신경쇠약으로 매일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하고 사람이 사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기에 도저히 목숨을 끊지 못하고 포기했다고 했다. 엄마는 불교를 믿어보고 몇 가지 기공도 배워보면서 인생의 의지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고서야 몸이 건강해졌고 활력이 생겼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다리 힘부터 빠진다고 했다. 결혼 후 임신 기간 동안에 나는 50여 세의 시어머니가 다리를 끌면서 걷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시어머니는 피부가 희고 좋은 편이고 외모도 동갑내기보다 젊어 보였지만 다리의 노화는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시어머니보다 두 살 많았는데 화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았지만, 수련 후 젊어 보였고 젊은 사람처럼 가볍고 민첩했다. 겨울에 엄마는 솜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서 반나절이나 책을 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로 일어나서 일한다. 길을 걸을 때면 젊은 사람보다 더 가뿐하게 걷는다.

엄마가 전에 앓던 삼차신경통, 신경쇠약, 심장병, 결절성 갑상선낭종 등의 병들은 파룬궁을 연마한 초기에 나았고 십여 년 동안 의료비로 돈을 쓴 적이 없다. 엄마는 삼십 여세 때 결절성 갑상선낭종으로 수술을 받았었는데 2년 후에 또 재발했다. 이 두 가지 병은 뿌리를 뽑지 못하고 쉽게 암으로 된다고 했다. 엄마의 한 동료는 이 병으로 사망했다. 후에 엄마는 파룬따파를 배웠고 종양은 억제되어 더 커지지 않았다. 그 후에 엄마는 그 계란만 하던 종양이 갈수록 작아져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그 신기한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엄마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병이 나았고 마음도 편안해졌으며 낙관적으로 변해 아빠를 그렇게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았다. 비록 나도 부처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그럽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사람과 재결합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가 아빠의 재결합 제의를 받아들이려고 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아빠는 내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함께 나의 학비를 댔고 심지어 2원짜리 삼륜차도 타기 아까워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돈이 아까워서 몇 역을 걸어서 다닐 정도로 예전의 먹고 마시고 돈을 막 쓰던 나쁜 습관은 고쳤지만 나는 아빠가 그동안의 나쁜 습관이 근본적으로 고쳐진 것이 아니라 너무 곤란한 데다가 내 학비도 대야 하는 상황에서 부득이 검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빠가 재결합을 얘기했을 때 엄마는 집이 있고 퇴직금이 있었으며 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할 무렵이어서 엄마는 자유롭게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럴 때 재결합하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나는 엄마에게 옛정이 그리워서 결합하려 하냐고 물었고 엄마는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아빠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했지만 이어서 한 말은 뜻밖이었다.

사실 아빠는 후에 서서히 나쁘게 변했고 나쁜 습관이 생겼지만, 아빠의 가장 큰 장점은 시종 가정을 돌봤다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벌면 모두 엄마에게 줬고 집안의 일도 엄마 말에 따랐다고 했다. 그해에 비록 엄마를 속이고 밖에서 바람을 피웠지만, 엄마와 이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일이 터지자 엄마가 매정하게 주저 없이 확고하게 이혼을 결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빠는 죽는다고 협박했지만 엄마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엄마는 처음 아빠가 바람을 피운 일에 대해 들었을 때 확고하게 이혼하려 했다. 그것은 엄마의 성격이 눈에 모래가 들어가도 꿈쩍도 하지 않게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따파를 수련했고 일을 함에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엄마는 이혼을 포함한 생활 속의 많은 일을 다시 보게 되었고 다른 견해가 생겼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는 우리가 살던 집을 팔기로 하고 우리는 새로 방을 얻어 살기로 했다. 그러면 집을 판 돈에다 엄마의 월급에서 조금씩 저금하면 나의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었다. 집을 판 돈은 아빠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또한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집을 팔아서 학비를 댈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엄마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기에 이 일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었다. 비록 아빠가 잘못해서 이혼했고 아빠가 맨몸으로 그냥 나가기로 합의를 봤기에 집 판 돈은 법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우리가 가져야 하지만 엄마는 수련하기에 진선인의 표준으로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집을 지을 때 기초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혼자서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집 판 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면 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엄마는 집 판 돈을 아빠에게 나눠주기로 하고 나에게 아빠한테 갖다 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아빠가 바람피운 것을 알았을 때 참고 양보하고 넓은 마음으로 아빠를 대했더라면 가정도 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집을 잘 돌보는 아빠 성격에 우리 집의 생활도 줄곧 괜찮았을 것이고 몇 번 시달리다가 나중에 대학 입학금도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며 친척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했다. 보기에는 아빠가 먼저 잘못을 했기에 이혼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엄마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수련하기 전에 성격이 세고 너무 이기적이어서 가정의 모든 일을 엄마 마음대로 했기에 아빠는 따를 수밖에 없어 늘 억제하고 살았다고 했다. 후에 엄마가 참지 못해서 이혼을 해서 이 가정이 이렇게 어렵게 되었고 나도 고생을 적지 않게 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엄마가 수련한 후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이전의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이 과거를 따지지 않고 그해에 잘못한 점을 반성하고 자신이 가정에 영향 준 것을 반성하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감동했다.

만약 재결합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둘은 조용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아빠를 돌볼 사람이 없게 되어 사회에서 나쁜 것을 더 많이 배우게 되어 나중에 오염된 세상에서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재결합을 하면 아빠는 돌봐줄 사람이 있고 머물 집이 있게 되는 것은 한 방면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빠가 엄마 옆에 있으면 대법수련자가 있는 가정환경에서 조금씩 바르게 될 것이고 나락으로 떨어져 속수무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대법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박해를 받는 동안에나 감금되었던 기간에도 아빠는 엄마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었다고 했다.

3. 아빠의 정념

1999년 7.20 이후에 엄마는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러 번 박해를 받았다. 불법으로 구치소에 납치되지 않으면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감금된 시간을 다 합치면 5년이 넘는다. 그동안 각종 혹형에 시달렸고 몇 번이나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불법으로 감금되었을 때와 노동교양을 한 기간에 아빠는 줄곧 엄마를 보러 갔다. 어떤 때는 술을 마시고 공안국과 정부 기관에 가서 사람을 풀어달라고 난리를 쳤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엄마는 진상 자료를 집집마다 배포했고 아빠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아빠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았는데 아빠가 눈을 부릅뜨면 급히 가버렸다. 이러한 일들은 많았다.

단호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엄마의 성격이라면 아빠가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용서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오히려 아빠가 도덕 품성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하지만 사악이 하늘을 뒤덮을 듯이 대법을 박해하고 대법제자들이 엄혹하게 박해를 당할 때 멀리 숨지 않고 줄곧 박해받는 엄마를 선하게 대했다고 했다. 아빠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엄마가 선량하고 정직하며 그가 만났던 이기적이고 실익을 따지는 사람들과 달랐기에 엄마의 신앙을 지지한다고 했다. 아빠가 재혼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인성 중의 소중한 정념이고 파룬따파와의 선한 인연이다. 아무리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고 얼마나 나쁜 일을 했던지, 대법제자를 선량하게 대했다는 이 한 가지 조건만으로도 아빠를 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비록 나는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엄마가 그런 말을 한 것도 다년간에 쌓인 원한을 내려놓고 입장을 바꿔서 아빠를 위해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엄마에게 정말로 엄청난 변화였다. 그해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 아빠를 데려가서 캐물어서야 아빠가 나이트클럽에서 바람을 피운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엄마는 알고 나서 울면서 매달리지 않았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혼하자고 했다. 심지어 아무에게도 상의하지 않았다. 더없이 확고하고 빠르게 이혼 수속을 밟았다. 이것이 바로 내 기억 속의 강인하고 고집이 센 엄마다. 만약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엄마 성격에 원한을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재결합하는데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엄마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아빠가 반대하지 말아야 하고 두 번째는 아빠는 기타 여성들과의 왕래를 끊고 오로지 결혼생활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조건에는 아빠는 당연히 동의하셨는데 만약 엄마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재결합을 절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조건은 파룬따파 수련자는 선을 말하지만, 도덕이 패괴된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이 선이 아니다. 엄마는 전통적인 혼인관념을 이용하여 아빠에게 점차 언행을 바로잡게 하고 나쁜 기풍 속에서 따라가게 할 수 없다는 선량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가끔 말했다. 그렇다. 결혼 후 한결같이 가정을 꾸렸고 이혼하고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결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아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려 하고 다시 가정을 이루길 원하는데 이런 여인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로 파룬따파 사부님의 가르침만이 엄마를 이토록 선량하고 너그러워지게 할 수 있다.

전에 나는 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친척과 자녀들과의 다년간의 응어리와 모순을 화해했다고 들었다. 아빠가 공장에 다닐 때 아빠가 데리고 일하던 후배는 자신의 아빠를 때리고 아내를 때리는 전형적인 ‘망나니’였는데 아빠 말만 좀 들었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개과천선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었다. 아빠는 그 ‘망나니’ 후배의 거대한 변화를 직접 목격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주 감동했다. 파룬따파를 배우면 정말로 사람들을 선하게 하도록 하는데 진정한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파룬따파가 우리 집에서 기적을 펼쳐 보였고 엄마가 수련 중에서 원한을 조금씩 내려놓고 갈수록 선하게 변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만약 더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를 배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더 많은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할 수 있고 더 많은 아이가 한부모 가정에서 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4. 엄마의 수행(修行)

이것은 축복받지 못할 재결합이다. 그것은 친한 친구들이 모두 알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빠는 왕년의 그 아빠가 아니다. 각종 악습과 빚이 있고 노년이 처량하게 보였는데 엄마가 아빠를 용서하리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재결합 한 지도 1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비록 아빠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대법제자로서의 엄마의 흉금에 진심으로 탄복한다. 엄마는 아빠를 잘 보살펴주고 늘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이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려준다. 그러나 석 자 두께의 얼음이 하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다년간에 형성된 아빠의 나쁜 습관들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고쳐지지 못했다. 방학 때 집에 가서 아빠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고 밥을 짓느라 바쁜 엄마에게 이것도 안 좋고 저것도 잘못됐다고 하면서 계속 잔소리를 해서 나를 몹시 화나게 했다. 엄마는 아빠가 날마다 그렇게 말이 많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는 벌써 싸웠을 건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진선인을 말하면서 줄곧 참느라고 노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참아야 하기에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화가 났다.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마음이 점점 평온해졌다. 그 과정은 정말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엄마는 수련하고 나서야 일체가 모두 업력윤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일은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다. 아마 전생에 아빠한테 빚진 것이 너무 많았기에 이생에 아빠가 늘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듣기 싫은 말을 하며 괴롭히고 빚을 갚게 하는 것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생활 속의 고생을 수련의 기회로 여기고 자신의 성격을 바르게 고쳤다.

몇 년째 나는 엄마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았다. 무서운 성격은 점차 사라지고 상냥하게 말했으며 더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모든 일을 엄마가 하는 대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용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각했다. 이전처럼 우리가 좋아하든 말든 대충 반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요리를 배웠고 인터넷에서 요리 메뉴를 찾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할까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우리 입맛에 맞게 해줬다. 이런 사소한 변화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반백이 넘은 엄마가, 반평생 그렇게 고집스럽고 독단적이던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면서 노력한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매번의 변화는 참고 반성하는 과정인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어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병이 없고 몸이 가벼웠으며 사상이 새로워졌다. 엄마는 수련하면서 인생의 참뜻은 개인 이익을 위해 다투고 하찮은 원한을 갚는 것이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이고 이전에 심지어 생생세세에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피해를 입혔기에 오늘날의 고통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과 행복은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지 아무런 원인도 없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위덕이 최고인 파룬따파를 얻어 오직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에 따라 일을 해야만 진정한 좋은 사람이고 자신의 생명의 경지를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아빠와 함께 살았고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고 화가 나도 대법의 요구대로 일을 했으며 인생의 편견을 바꾸고 선을 수련해냈으며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했다.

한번은 방학에 집에 와서 주방 입구에 서서 엄마와 얘기하고 있었다. 말하면서 나는 엄마의 눈에서 전에 없던 부드러움과 선량함을 발견했다. 속으로 놀라면서 그 드세고 날카롭던 엄마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매번 집에 갔을 때 엄마를 관찰했는데 엄마의 눈길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눈빛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그것은 극히 흔치 않은 변화다. 현재 엄마는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으로 말하고 처사한다. 다년간의 수련은 정말로 엄마가 내심에서 그런 상처와 원한을 내려놓게 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서 나는 엄마의 환골탈태를 직접 느꼈고 엄마는 더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5. 불법(佛法)의 힘

재혼하고 아빠의 채무를 갚은 후 생활이 나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아빠는 뇌경색으로 여러 차례 입원했고 후에 또 궤양성 전결장염으로 입원했다. 퇴원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염이 낫지 않았고 또 심각한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CT 사진을 보고 나서 가망이 없다면서 입원을 거절했다. 매번 입원했을 때 모두 엄마가 보살폈다. 나와 남편은 차로 모셔다드리고 수속을 할 때 심부름을 한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기에 아빠 때문에 일과 아이를 돌보는 것을 미룬 적이 없었다.

아빠가 2개월 동안 입원했을 때 엄마는 매일 밤에 많아야 2~3시간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빠가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겠다며 부를 때마다 동작이 조금만 늦어도 이불에 싸기 때문에 엄마는 하루도 편히 주무시지 못했다. 입원했을 때 며칠을 기다려서야 1인실로 옮길 수 있었고 엄마는 거기서 법공부하고 연공을 할 수 있게 되어 시간이 날 때면 다그쳐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몇 시간만 자고 계속되는 그런 환경에서 엄마는 법공부를 해서 양호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고 연공을 하여 체력이 생겨 아빠를 잘 보살필 수 있었다.

그때 아빠는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 그렇게 소탈하고 즐겁게 놀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지경이 되었으니 실망이 아주 컸다. 엄마는 늘 정성을 다해 아빠를 보살폈고 파룬따파 중에서는 자살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살생이라고 알려주었고 허튼 생각을 하지 말고 강해져야 한다면서 격려해주고 인도해주었다.

환자를 돌보는 것 특히 그런 중증환자를 돌보는 것은 정말로 몸과 마음의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대법이 부여해준 힘으로 강인하고 평온하게 모든 고생을 감당했다. 그 당시 나는 동료에게 엄마가 주무시지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아빠를 보살핀 일에 대해 말했더니 동료는 대뜸 “어머님이 정말로 정정하시네요, 나라면 혈압과 심장이 견뎌내지 못해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그렇게 건강하고 강한 의지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파룬따파가 엄마에게 난관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이전에는 아빠가, 엄마와 재혼하기 위해 엄마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해주었지만 대법을 진정으로 믿지는 않았다. 심지어 어떤 때 엄마가 진상을 알려주면 듣기 싫어했다. 아빠가 뇌경색에 걸린 후부터 엄마와 함께 파룬궁을 연마하고 몸이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 어느 날 저녁에 아빠가 거실에서 ‘전법륜’을 볼 때 책에서 빛이 나는 것을 봤는데 눈이 노화되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책에서 정말로 빛이 났다. 후에 전결장염과 중증폐렴의 이중 타격으로 생명이 위험해서 180cm의 큰 키에 몸무게가 50kg으로 줄었다. 볼품이 없게 되었고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게 되자 집으로 가서 요양하면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물 마시기도 힘들어했다. 그 당시 친척들과 친구들은 아빠 후사를 준비해놓은 상황이었다.

처음에 엄마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후에 법공부를 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엄마는 아빠가 죽는다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수련인의 사상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했을 뿐만 아니라 늘 아빠에게 마음속으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많이 염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아빠는 어느새 신기하게 호전되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 간장을 쌀죽에 비벼서 반 공기 드시고 매일 벽에 기대어 몇 분씩 앉아계시다가 후에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가슴, 등과 다리에 점차 살이 붙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통통해지시더니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다고 할 수 있다. 죽어가던 아빠가 살아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아빠를 보러 왔다. 그 전후의 변화는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면서 엄마가 잘 보살펴주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아빠가 엄마와 함께 대법을 보호하는 일을 많이 했고 그동안 엄마가 대법 진상을 알리는 것을 통해 아빠는 갈수록 대법을 인정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고 중의와 양의가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아빠가 보답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아빠 엄마는 알고 있었다. 궤양성 전결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의사는 아빠의 배를 누르면서 아프지 않냐고 반복적으로 물었지만, 아빠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의사는 장 전체가 궤양이 있어 멀쩡한 곳이 없는데 보통 사람들은 이 지경에 이르면 아파서 견디지 못한다면서 아빠가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의들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대법사부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고통을 적게 받게 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회복된 후에 아빠는 파룬궁을 배웠는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렇게 늦잠을 자던 아빠가 매일 아침 4시가 넘으면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서 연공을 했고 꾸준히 견지한다. 매일 오후 엄마와 함께 ‘전법륜’을 한 강씩 공부했다. 어떤 때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지체하면 아빠는 “언제 법공부를 할 거야?”라면서 계속 재촉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연공하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말했다. 아빠는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아픈 느낌이 없었는데 현재는 아픈 느낌이 있고 발가락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으며 말초신경이 지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 아빠는 팔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고 오른손은 피가 통하지 않았기에 검붉었다. 또한 뇌경색을 앓는 아빠에게는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이 동작은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 의사는 분명히 아빠에게 그 동작을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아빠는 파룬궁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고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연공함에 따라 아빠에게 아무런 위험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태가 갈수록 좋아졌고 손을 제대로 들 수 있었으며 팔뚝도 검붉은 색이 아니라 정상이었다. 퇴원한 후, 산소 병에 의지해서 숨을 쉬던 것에서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엄마와 함께 ‘전법륜’을 읽을 때 아빠는 숨이 올라오지 않아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법을 우렁차게 읽는다. 아빠는 파룬따파가 준 변화를 직접 겪었고 많은 친척과 친구들도 대법의 신기함을 또 한 번 목격하게 되었다.

어떤 때 나는 운명은 참 기묘하다고 생각된다. 전에 반평생을 방탕하게 살았던 아빠가 어느 날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고 수시로 대법 중의 말로 나를 격려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와 엄마는 리훙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고 감탄했다.

6. 잘못을 깨닫다

엄마가 법을 얻고 수련한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그동안의 공부, 일, 생활 속의 애환을 되새겨보면 꿈만 같다. 그러나 수련한 후의 심신의 거대한 변화, 엄마가 이 가정에 가져다준 상화함과 파룬따파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진실하고 생생하며 반짝반짝 빛난다.

전에 엄마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여러 차례 ‘610’과 국가보안대의 박해를 받았다. 감옥에 갇혀있었기에 나를 돌볼 수 없었고 나는 불안에 떨었고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집이 없는 가련한 아이였다. 후에 엄마는 수련을 견지하면서 진상을 알렸기에 주변의 환경도 갈수록 좋아졌다. 나도 엄마가 잡혀갈까 봐 두려워하던 것에서 엄마가 진리를 견지할 수 있는 용기에 자부심을 느꼈다. 동시에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파룬따파의 신기한 효능을 엄마의 몸에서 검증했다. 70세에 가까운 엄마가 보기에 50여 세 같아 보이고 시종 몸이 건강하기에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고 또래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도와 창문을 닦는다. 한번은 외할머니가 구들에 앉아서 엄마가 창턱을 오르내리면서 가뿐하게 일하는 것을 보고 “봐라, 그래도 네가 건강하구나!”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건강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이 몇 년 동안 심장이 이렇게 불편한 것이 늘 너를 욕했기 때문이 아니야?”(엄마가 박해를 받은 후 외할머니는 엄마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고 늘 엄마를 욕하고 대법을 욕했다)라고 물었다. 엄마는 “아마 그럴걸요, 엄마는 우리를 박해한 장쩌민은 욕하지 않고 나만 욕하면 뭐 해?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뭘 잘못했어?”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그래, 맞아”라고 말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고 매일 집에서 할 일도 없이 한가하니 나와 함께 연공하면 얼마나 좋아요”라고 말했다.

전에 외할머니가 엄마가 수련하는 것을 얼마나 반대했던지 엄마는 줄곧 지혜롭게 외할머니에게 진상을 알렸다. 후에 외할머니는 드디어 대법이 박해받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69세 때 엄중한 심근경색 판정을 받았었다. 주치의는 현지 병원장이고 현지에서 가장 실력있는 내과 의사였다. 그 당시 그 의사는 가족에게 외할머니는 길어야 3년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마와 가족들은 정성으로 보살폈고 외할머니는 79세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자정이 넘어서 침대에 앉아서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주신 파룬따파 진상 호신부를 목에 건 상태로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우리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더 살 수 있었던 것은 편견을 바꾸고 진심으로 파룬따파를 믿었기에 복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맺음말

엄마가 박해를 당했기에 친구들도 따라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았다. 그 시절은 정말 비바람에 흔들려, 생이별이 언제라도 눈앞에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친구들은 모두 엄마가 병이 없이 몸이 가벼운 것을 목격했고 엄마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망가진 가정을 만회한 것을 목격했으며 초라해진 아빠를 선하게 대하고 아빠가 만년에 의지할 곳이 있게 해주었으며 나와내 집 및 시부모님들이 안심하고 일하고 생활할 수 있게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무리한 대우를 받고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은 파룬궁수련생들은 참혹한 박해 중에서 자신의 안일함을 포기했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위협에도 불법(佛法)을 견지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갈수록 많은 세인이 중공의 거짓말에서 벗어나 인성의 선량함을 되찾았다. 그들이 한 것은 보편적인 악을 징벌하고 선을 찬양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선행이고 진리를 굳게 지킴으로써 미끄러져 내려간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올해 5월 13일은 제21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자 존경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69주년 생신이다. 나는 파룬따파 제자의 가족으로서, 이익을 본 자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이 문장으로 리훙쯔 사부님과 파룬불법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원문발표: 2020517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7/4049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