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을 구하는 기점에서 위법하게 압류된 연금을 되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30대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어느덧 수련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겪었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이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불법적으로 압류된 연금을 되찾는 과정에서 겪은 수련 과정을 교류하려 합니다.

1.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닦고 다방면으로 진상 알리기

2021년, 사회보험센터는 저에게 억울하게 복역한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제 연금 지급을 중단했고, 이미 몇 년간 지급된 연금까지 환수하려 했습니다. 한순간 저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렸습니다. 저는 혼자 살고 있고 모아둔 돈도 많지 않은데, 만약 연금을 환수당한다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생각을 돌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대법제자이고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는데, 어찌 사부님을 잊었단 말인가?’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을 많이 구하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저는 이 일을 계기로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사회보험센터가 제 연금 지급을 불법적으로 중단한 것은 저에 대한 경제적 박해인데, 제가 어찌 박해를 인정하고 사악한 사고방식에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제 연금을 환수하러 올 것이라고 지레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박해를 인정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반박해하며 사람을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상의해 한 가지 항목 팀을 꾸렸습니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를 하고, 진상을 알리며,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인민대표대회, 총공회, 부녀연합회, 청원 부서, 사회보험, 감찰 부서 등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부서라면 어디든 청원이라는 명목으로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전달했습니다.

A 수련생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마음을 닦는 과정도 겪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습니다. 제가 동쪽을 말하면 A는 서쪽을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 마치 일부러 저와 맞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A는 제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제가 하는 모든 말에서 흠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이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법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임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수련생 간 역사적인 은원(恩怨)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세력이 강제한 요인이 우리에게 간극을 만들어 우리가 중생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가상이었습니다. 누구든 가짜 현실, 사람의 관념, 일의 표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구세력의 배치를 초월해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안으로 찾았고, 마침내 사악의 배치를 타파하며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자신의 과시심, 환희심,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공산당 당문화(黨文化), 독선, 질투심, 원망심, 수구(修口)하지 못하는 것, 강압적인 태도 등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자신이 법 암기를 빨리 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인원수가 많아 그들이 모두 저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A가 때때로 저에게 화를 내도 저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안으로 찾지도 않았으며 잠재의식 속에 수련생을 깔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A는 매우 선량했고, 그녀는 자아를 내려놓고 계속 저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A에게 정말 조금 미안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저는 거대한 고난 속에 처해 있었고, 그것은 구세력이 다른 공간에서 짓누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은 꿈에서도 제 등에 무거운 것 두 개가 짓누르고 있어 제가 허리조차 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한 장면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의자 하나만 들어갈 수 있고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비좁은 공간 안에 제가 앉아 있었는데, 몸에는 굵은 밧줄이 칭칭 감겨 의자와 함께 묶여 있었습니다. 표면 공간에서는 우리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마음이 매우 억눌렸으며, 때로는 몹시 고통스러웠는데, 고난 속에서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고 다른 수련생의 입장에서 배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A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를 전력으로 협력해 주었는데, 이는 이미 매우 도량이 넓고 사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수련생의 부족한 점만 보았단 말입니까?!

수련생이 저에게 화를 낼 때 표면적으로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는데, 어떻게 아직도 화를 낼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의 부족한 점만 보았을 뿐, 구세력이 강제한 간격 요인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은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을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왜 화를 냈을까? 왜 나에게 보게 했을까? 나의 어떤 마음을 닦으려 한 것일까? 내 어떤 마음 때문에 수련생이 화를 내게 된 것일까?’ 시간이 길어지고 갈등이 많아지자 마음의 균형을 잃게 됐고, 다른 수련생을 찾아 하소연하며 표면적인 일 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수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심성을 제고할 많은 기회를 놓쳤고, 자신과 수련생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며, 갈등에 빠진 양측이 모두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 저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참으로 좋은 일임을 체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표현을 이용해 우리의 심성을 제고하려 하시는데, 자신은 당시에 제고하지 못했고 단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정도에 그쳤던 것입니다. 일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이 뒤집혀 올라왔으니 사부님의 고심어린 안배에 부끄럽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고된 시련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안으로 찾았고 수련에서 진정한 비약을 이루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 고비를 넘겼습니다.

우리는 우선 사회보험센터와 인력자원사회보장국에 가서 관련 직원들을 찾아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전달하며, 제 연금 지급을 회복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점점 접촉이 많아지자 어떤 간부는 삼퇴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자신들도 무력하며 윗선의 정책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으려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에게 살짝 자료 한 부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다시 청원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모든 부서를 다 돌아본 후 우리는 행정소송을 시작했습니다. 1심, 2심, 재심, 항고까지 모든 절차를 밟았지만 전부 기각됐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중시하지 않았고 과정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치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접촉한 모든 사람에게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2. 압박 속에서 나아가며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잊지 않다

그 기간에 B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보도 글 쓰는 것을 도와주었고, 이렇게 저는 또 B, C 수련생과 협력하게 됐습니다. B는 법리가 명확하고 정념이 매우 강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법에서 교류했고, 이는 제 제고에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게다가 B, C는 일년 내내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나 아침 연공을 꾸준히 했는데, 저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우리는 때때로 함께 아침 연공을 했습니다. 그녀들의 이끌림 덕분에 저도 기본적으로 아침 연공을 견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그녀들을 보내 저를 돕게 하셨다고 느꼈습니다.

B는 정념이 강한 만큼 요구도 높았습니다. 그녀는 종종 저에게 이것저것 하라고 제안했는데, 예를 들어 판사, 법원장, 검사, 검사장 등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라거나 사악이 저를 박해한 사실을 폭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약간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1인칭으로 쓴 것이라 주심 판사에게 보내는 것은 괜찮지만 법원장에게 보내려니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이 박해 속에서 저 역시 수없이 붙잡히고, 박해받고, 고문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마음속으로는 좀 더 안정적으로 하고 싶었고 자신에게 너무 큰 압박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사람을 조종해 나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박해의 본질을 똑똑히 보게 되자 자연스레 압박감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100퍼센트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지 못했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여전히 아주 조금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생의 정념 어린 격려 아래 저도 점차 자아를 내려놓게 됐습니다. 오직 중생구도를 목적으로 삼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중생을 위해 온 것이니, 그가 어떤 직위이든 모두 마음을 다해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만약 진상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보통 사람의 권익 수호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물론 B와의 협력 중에도 심성을 제고할 일들이 몇 번 일어났습니다. B는 매우 정직해서 말투가 다소 날카로웠고 때로는 화도 냈습니다. 까닭 없이 화를 내기도 했는데 심지어 A가 냈던 화보다 더 클 때도 있었습니다. A와의 심성 시련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 큰 파동이 일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따금 아주 작은 동요가 일었을 뿐이고, 잠시 자신을 닦고 안으로 찾으면 이내 지나갔습니다. 저도 이 모든 것에 구세력의 교란과 간격 요인이 있고,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신 안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이용해 우리를 성취시키시는 것이니, 법이 있고 우리가 모두 법 안에서 수련하며 안으로 찾으면 구세력의 모든 요인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합니다. 저와 B는 여전히 막 알게 된 사람처럼 아무런 간격이 없습니다.

수련생을 볼 때는 그 사람의 장점을 보아야 합니다. B, C는 전력을 다해 저를 도와주었고 저보다 더 마음을 썼습니다. 모든 자료는 B가 썼고 저는 그저 약간 수정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저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법을 구상하고 실행해 주었습니다. 항목이 어느 단계에 이르든 그들은 그곳을 향해 정념을 보냈습니다. 저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렇게 마음을 쓰지 못했습니다. 대법의 신성한 인연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 주었고 우리는 줄곧 매우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최근 저는 또 사회보험센터로부터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당해, 이미 지급된 몇 년간의 연금을 환수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회보험센터가 연금 지급을 중단한 것 자체가 위법인데 오히려 강제집행까지 신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즉각 집행이의신청서를 작성해 그들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연금 지급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으며, 판사와 간부들에게 각각 다시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판사는 편지를 뜯어보고 다시 반송하며 저에게 직접 법원에 와서 설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붙잡힐까 봐 약간 망설였지만 그래도 갔습니다. 대법제자에게는 사부님이 계시니 응당 당당해야 합니다. 법원에 도착하자 판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사건 상황만 물어보았습니다.

그 후 사건은 돌파구 같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법원이 먼저 저에게 연락해 사건 경위를 묻고 무슨 요구사항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연금 지급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최근 몇 년간 지급되지 않은 연금을 소급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율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 하나만 품고 있을 뿐이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십니다. 과정 속에서 그저 자신을 시련으로 단련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닦아냈을 뿐인데, 가장 큰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항상 이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간부를 포함해 그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야 했으니, 마음속 압박감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하려면 심성을 높여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셨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수년간 저는 줄곧 직장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 고심했습니다. 이전 간부들이 모두 퇴직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이번 퇴직금 일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직장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직장의 각 부서 간부들에게 총 17통의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주관 간부에게만 6통을 보냈지만, 나중에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11통을 추가로 보냈습니다.

그 기간에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처음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고 진상 편지 6통을 부칠 때 W 우체국 직원이 처리해주었는데, 태도가 아주 좋았고 파룬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오후 5시 전에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매일 수거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진상 편지 7통을 부칠 때 F 우체국 직원은 태도가 몹시 불량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어제 그 편지를 제가 부친 것인지 묻더니, 반드시 창구에서 부쳐야 하고 우체통에 넣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오후 3시 전에 가야 한다고 요구하며 늦게 가면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겨 저를 찾지 못할 때 어떡하느냐고 했습니다. 사건 때문에 그들은 제가 무엇을 부치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두 시간이나 앞당겨서 오라니 나를 신고하려는 건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부칠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가 하는 모든 일은 미래에 남겨주기 위한 것이지, 일을 성사시키려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한다. 진상 편지는 본래 실명으로 보내는 것이고 얼마나 부치든 내 자유이니 아무도 간섭할 자격이 없다.’ 저는 오전에 갔고 F 우체국 직원은 정신없이 바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편지 무게를 재고는 곧바로 저를 가게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주민센터를 찾아가 최저생활 보장금을 신청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편지를 썼습니다. 이를 핑계 삼아 새로 부임한 가도판사처 서기에게도 한 통을 보냈는데, 서기는 곧바로 저를 보러 왔고 위문품까지 가져와서 저는 무척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얻고 잃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니 어떤 사람이든 접촉하기만 하면 진상을 알리려 합니다.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진상 편지를 쓸수록 더 쓰고 싶고, 부칠수록 더 부치고 싶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회만 있다면 사람을 구하려 하고, 마음을 다해 사람을 구하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 소원입니다!

물론 많은 경우 수련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동으로 법에서 인식을 제고한 결과입니다. 수련생은 제가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단순하고 꼼꼼하지 못하며 세심하지 않은 사람인데, 저와 협력한 수련생도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비바람 속에서 저와 함께 나아갔기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맺음말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연금 사건에서 겪은 수많은 비바람을 돌이켜보면, 중생이 구원된 기쁨이 있었고, 수련생과 협력이 잘 안 되어 겪은 고뇌도 있었으며,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압박감도 있었고, 의지할 곳 없는 생활의 고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제가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수련생이 제 생활을 개선하라고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도 했지만, 저는 일년 내내 대면 진상 알리기를 견지해왔기에 속인의 일로 바쁠 시간이 정말 없었고 더욱이 속인의 삶을 즐길 시간도 없었으며,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제 수련 길에서의 유일한 선택이며, 비록 고되지만 달콤합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26/5139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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