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암기와 함께 사악한 ‘7·20’을 넘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우리 마을에 널리 전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외지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법을 얻다

1999년 섣달그믐날 저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남자친구와 집을 짓는 문제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생겨 그와 헤어졌습니다. 헤어진 이후 저는 우울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온종일 눈물로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몹시 마음 아파하며 몰래 어머니에게 당부했습니다. “애 마음이 안 좋으니 맛있는 것 좀 많이 해줘요.” 당시 저는 마음이 번잡하고 답답했습니다. 한 홍콩 의류 공장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는 지원해서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나가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아쉬워하면서도 걱정했지만 저를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저 근심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밥을 먹을 때 부모님이 마을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부모님도 잘 몰랐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 흥미가 생겨 한번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연공장은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웠고 집 두 채와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됐습니다. 제가 공법을 배우려 하자 부모님은 적극 지지하며 제가 배우러 가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게 되면 제가 외지로 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연공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막 가부좌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대부분 노인이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고 제 자신이 젊다는 생각에 좀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자원봉사 보도원은 저를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다음 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처음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을 때 사부님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아주 풍부하다는 생각에 저는 흠뻑 빠져들어 들었고 그저 듣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한 강의 한 강의 계속 들어나갔습니다. 10여 일 이후 저는 일기장에 진지하게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확고하게 수련해 나갈 것이다!’ 제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소원을 발했습니다. 불과 10여 일이라는 시간 만에 저는 철저한 무신론자에서 확고한 대법 수련자로 변했고 이 질적인 변화는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입증했습니다. 오직 대법만이 사람을 가장 빨리 변화시킵니다.

법 암기

보배로운 책 ‘전법륜(轉法輪)’을 모셔 온 이후 저는 아주 빨리 한 번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연공장의 늙은 수련생에게서 ‘전법륜법해’, ‘파룬따파의해’, ‘시드니법회 설법’, ‘미국법회 설법’을 빌려 단숨에 다 배웠으며 저는 사부님이 설법하신 법에 깊이 감동해 수련하려는 결심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1999년 5월 중하순 저는 보도원을 따라 우리 지역 보도소장 집에 가서 회의를 했는데 소장은 우리 각자에게 집으로 돌아가 정진요지 중의 ‘뿌리를 캐다’, ‘대폭로’ 두 편의 경문을 외우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후 저는 진지하게 이 두 편의 경문을 모두 외웠습니다. 그때부터 제 법 암기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저는 또 정진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외웠습니다.

1999년 ‘7·20’ 이전에 우리 지역 상황은 이미 아주 심각해졌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이 없어져 모두들 각자 집에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사상업이 무겁고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아 반나절이나 법공부를 해도 무엇을 배웠는지 몰랐으며 책을 덮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저는 조급했습니다. ‘법이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어쩌면 좋지?’

저는 생각했습니다. ‘전법륜을 외우면 어떨까?’ 그래서 저는 전법륜을 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법을 베껴 쓰면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거의 3개월의 시간을 들여 마침내 전법륜을 모두 외웠습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방송, 텔레비전, 신문의 엄청난 유언비어와 모함 속에서도 제 머릿속에는 오직 사부님의 법만 있었으며 사악한 유언비어와 모함은 제 머릿속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낮에도 법을 외우고 밤에도 법을 외우고 자전거를 타고 장에 갈 때도 법을 외우고 밭에서 일할 때도 법을 외우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법을 외웠으며 대법은 제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집안이 가난해 형편이 몹시 열악했고 저는 낡은 두 칸짜리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집 밖에는 사방의 지대가 높고 집 안은 지대가 아주 낮아 일 년 내내 바닥이 축축했고 벽에 기대어 침대를 놓은 쪽이 약간 더 건조했으며 집 앞뒤 벽에는 약 20cm 크기의 통풍구가 6~8개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낡은 옷 몇 벌로 틀어막아도 찬바람이 여전히 틈새로 들어왔습니다. 문과 창문도 꽉 닫히지 않아 곳곳에 틈이 있었고 어떤 유리는 깨져서 종이 한 장을 대충 발라놓았습니다. 낡은 나무 침대는 수수깡으로 엉성하게 엮어 엉덩이가 쑥 들어갈 정도로 큰 구덩이가 패었고 낡고 해진 솜뭉치를 기워 만든 요를 깔았는데 그 위에 누우면 배기고 차갑고 딱딱했습니다. 바지도 해진 솜바지였고 덮는 이불도 무겁고 차가웠으며 그 위에 솜외투를 덮으면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 정도로 눌렸습니다.

방 안에는 잡동사니가 가득 차 연공할 때 손을 뻗으면 자칫 들보 위에 있는 잡동사니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저는 보통 새벽 3시 반경에 일어나 연공을 했는데 여름에는 모기와 벌레에 물렸고 겨울에는 정말 추워서 더 어려웠습니다! 손가락은 얼어서 마치 고양이에게 물린 것 같았습니다. 연공을 마친 이후 부모님이 그분들의 방에 난로를 피워 놓으시면 저는 부모님 방으로 달려가 폴짝폴짝 뛰며 발을 녹였는데 아버지는 즐거워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얘가 언 것 좀 봐, 얼른 난로 곁에 와서 좀 녹이거라.” 아버지는 제가 이미 몇 시간이나 얼어 있었다는 것을 어찌 아시겠습니까.

당시 마을 간부들이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마을 사무실로 모아놓고 이른바 폭로 비판, 결렬서를 쓰게 했습니다. 저는 보도원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절대 쓰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미 결심했습니다. 목은 자를 수 있고 피는 흘릴 수 있어도 오직 대법만은 버릴 수 없다고요!” 저는 밤새 고민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촌장 집으로 가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결렬서는 저는 절대로 쓰지 않을 겁니다. 촌장님이 압력을 느끼고 책임지는 게 두려우시다면 제가 호적을 옮기겠습니다.(당시 저는 아직 남편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촌장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를 난처하게 하는 몇 마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는 저를 괴롭히지 않았고 이 일은 그렇게 유야무야 끝났습니다.

제가 사악한 ‘7·20’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법이 제 마음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법을 얻은 지 4개월도 안 돼 사악한 박해가 발생했는데 만약 제가 당시 정진요지와 전법륜을 모두 머릿속에 담지 않았다면 저는 그 가혹하고도 사악한 박해를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법을 외울 때 쓴 방법은 베껴 쓰면서 외우고 쓰면서 외우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법 한 구절을 다 썼을 때는 입으로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운 상태였고 그런 다음 몇 번 더 외우면 다 외워졌습니다. 계속해서 이 한 단락을 전부 연결해 한 번 외우고 단락이 길면 여러 번 나눠서 외운 다음 다시 연결해서 전체 단락을 외웠으며 익숙하게 외운 이후 다시 다음 단락을 외웠습니다. 이렇게 한 단락 한 단락 외워 나가며 전체 소제목을 전부 연결해서 한 번 외웠고 익숙해질 때까지 외운 이후 다시 다음 소제목을 외웠습니다. 저는 그렇게 끈기 있게 지속해 전법륜을 다 외웠습니다.

당시 저는 시간을 아주 소중히 여겨 새벽 3시 반경에 일어나 연공하고 6시 전에 연공을 마친 후 법을 외웠습니다. 어머니가 6시에 일어나 밥을 지으시면 저는 6시 반에 씻고 밥을 먹었으며 7시가 넘어서 밭에 나가 일하다가 10시쯤 집에 돌아와 손을 씻은 이후 법을 베껴 쓰고 법을 외웠습니다. 2시경에 계속해서 법을 외웠고 오후 3시에 밭에 나가 일하다가 오후 6시 전에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습니다. 저녁 대략 7시경에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다가 9시경에 잤습니다. 매일 법공부와 연공하는 시간을 합치면 대략 8시간이었고 법을 외우던 그 시기에는 거의 매일 이랬습니다.

사실 시간도 꽤 빠듯해서 저는 장에 가서 한 번도 해바라기 씨를 사지 않았는데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먹을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부모님과 잡담할 시간조차 없어서 밥을 먹고 발을 씻을 때만 어머니와 몇 마디를 나누었고 일이 끝난 이후에는 ‘휙’ 하고 사라져 순식간에 제 낡은 작은 방으로 뛰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 법을 외웠습니다.

부모님이 중공 악당의 박해를 두려워해 제가 수련하지 못하게 하셔서 저는 부모님 몰래 수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때때로 투덜거리셨습니다. “저 애가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뭘 하는 거지? 방 안에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소리만 들리는데 마치 누구랑 말하는 것 같아. 이 집에 아무도 안 왔는데? 저 애 무슨 병에 걸린 거 아니야?” 제가 법을 외울 때 소리를 내어 외웠기 때문인데 저는 이렇게 외우는 것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외우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빠르게 외워졌고 확실하게 외워졌습니다.

이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는 것은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던 애초의 법공부 열정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이 일을 기록함으로써 제 자신을 격려하려 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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