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외우며 진수할 줄 알게 되고 본질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8년 말, 나와 아내는 동시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함께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걸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 이후 우리의 수련에 병목 현상이 나타난 듯했고 어떤 본질적인 것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1년부터 우리는 수련생들과 함께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미 4번째 외우고 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모두의 수련 상태에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했고 대법의 오묘함을 깊이 깨달았다.

‘전법륜’을 첫 번째와 두 번째 외울 때 우리는 한 단락씩 외웠다. 법 암기 초기에는 뚜렷한 느낌이 없었고 단지 사람의 사유로 외웠다. 끊임없이 법을 외운 이후 ‘전법륜’ 속에 적지 않은 부분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예전에 그렇게 많이 읽었어도 아무런 인상이 없었다. 계속해서 외우다 보니 종종 일부 내용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와 동시에 법 암기 내용과 관련된 심성 고비에 자주 부딪혔는데 실제 수련 속에서 다시 제고하게 됐고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었다.

‘전법륜’을 세 번째와 네 번째 외울 때 우리는 한 강의씩 통째로 외웠다. 각 단락의 내용을 외워야 할 뿐만 아니라 단락과 단락 사이의 연관성도 기억해야 했다. 이렇게 하니 법에 대한 깨달음이 더 이상 하나하나의 점에 국한되지 않고 서서히 전체적인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점에서 깨닫고 제고하든 모두 법의 더 깊은 함의를 깨닫는 것이었다.

법리에 대한 인식이 승화됨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법을 외운 후 가져온 내적인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관념이 바뀌고 집착과 욕망이 약해지며 본성이 되돌아 나왔다. 이런 변화는 수련에 체현됐다. 법을 외우기 전 수련은 혼돈스럽고 감성적인 상태에 처해 있었다. 수련 중 문제에 부딪히면 인위적으로 법리를 찾아 끼워 맞췄고 수련이 좀 덜 익은 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법을 외운 후 수련은 서서히 맑고 이성적인 상태로 진입했고 법리가 더욱 선명하고 명확해졌으며 정념이 갈수록 충만해졌다. 법 암기와 실제 수련은 심성과 경지의 제고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전체 수련도 전면적으로 제고됐다.

1. 진수할 줄 알게 되다

우리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공산당(중공)은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반(反)박해 속에서 나는 일을 하느라 바빴고 수련을 아주 오랫동안 하면서도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몰랐다. 속인 속에서 나는 원래 일을 잘하는 데 능숙해서 자신에게 어떤 단점이나 부족함이 발견되면 곧 행동으로 고쳤는데, 이렇게 하면 눈에 보이고 효과도 뚜렷했다.

수련의 길에 들어선 후 나는 속인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던 관성을 가지고 수련 중에서 일을 했다. 자신에게 과시심이 발견되면 행동으로 자신이 과시하지 않도록 통제했다. 친구의 아이가 내 아이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더 좋은 학교에 합격해 마음이 불편할 때 그것이 질투심이라는 것을 알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하며 행동으로 질투심을 없앤 것처럼 표현했다. 수련생이 내게 두려움이 무겁다고 말하면 스스로 박해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급진적으로 행동해 두려움이 없어졌음을 증명했다. 세 가지 일도 열심히 했다. 법공부 중이나 수련생과 교류 중에 법리를 깨닫게 되면 법리에 따라 행동했는데, 겉보기에는 수련에서 매우 정진하는 것 같았지만 경지는 늘 아주 더디게 제고됐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자신의 행동이 연공의 ‘연(煉)’을 대체하고 있을 뿐 정작 그 마음은 ‘수(修)’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닦기 시작했을 때 수련에서 단번에 깨달음이 열렸고 예전에 얽혀있던 많은 문제가 모두 한 번에 해결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 수련 중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우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수련인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지금 나는 우선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일어났고 어떤 집착이 생겼는지 본 다음 그 마음을 겨냥해 수련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문제를 고려하는 기점이 이기적인 것인지 이타적인 것인지, 진정으로 남을 위해 고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인지 살펴보고 사적인 마음을 닦아 없앤다. 또한 자신이 어떤 기점에 서서 남을 고려하는지, 상대방이 사람 속의 좋은 점을 얻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생명의 미래를 책임지려는 것인지 살피며 정법 수련의 기점에서 문제를 인식하려 한다. 어떻게 할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경지의 기준에 따라 하면 되며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이다.

마음을 수련하는 전제는 바로 안으로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안으로 찾기다. 내가 이해하는 ‘무조건’이라는 것은 일 자체에 빠지지 않고 쌍방의 갈등에 빠지지 않으며 사람의 옳고 그름에 빠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만 보는 것이다. 제대로 찾아야만 목적성 있게 수련하고 제고할 수 있다.

2.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 없애고 ‘진정한 나’가 주도하게 하다

안으로 찾는 이 법보(法寶)를 터득하면서 나는 단번에 ‘잘해 보이려는 것’이라는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각종 집착심을 보았다. 나는 이 집착심들을 따라 하나하나 뿌리를 파헤쳐 갔다. 두려움에서 시작했다. ‘수련은 이렇게 신성한데 나는 왜 아직도 두려워하는가? 잘하지 못해 박해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왜 박해를 두려워하는가? 박해받으면 자신이 고생해야 하고 고생하기 싫으며 가족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어 혈육의 정이 상처를 받고 일에 영향을 주어 명예와 이익에 손실을 입으며 ‘나’의 다방면적인 현실 이익에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실을 두려워하는데 왜 수련하려 하는가? 구우주가 괴멸하려 하고 수련하지 않으면 출로가 없으며 수련해야만 ‘나’를 영구히 존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 현실과 미래의 이익을 모두 얻기 위해 되도록 안전을 보장하는 전제하에 노력해서 세 가지 일을 하고 자신이 박해받지 않는 것과 수련을 견지하는 것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후 나는 또 질투심, 과시심, 쟁투심을 찾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적해 보니 최종적으로 모두 생명 속의 그 뿌리에 있는 ‘나’에게로 모아졌다. 그것은 내 생명 속의 각종 관념, 집착, 욕망을 한데 모아 놓은 것으로 그것이 한 모든 일은 내 몸과 마음이 최대한 만족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각종 관념을 조율할 수 있었고 인생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각기 다른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여 내가 그것을 위해 악착같이 싸우고 분투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수련하기 전에 줄곧 나를 지배하던 ‘가짜 나’였고 나는 이 ‘가짜 나’를 위해 존재했으며 선천적인 본성인 그 ‘진정한 나’는 오히려 묻혀 있었다. 내가 대법을 접하고 진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선 그 순간 ‘진정한 나’가 깨어났다. 법공부 과정에서 ‘진정한 나’는 법에 동화됐고 반면에 ‘가짜 나’는 수련의 장애물이 됐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근본 집착에 관한 법을 말씀하셨다. 이전에 나는 줄곧 근본 집착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근본 집착을 없애지 않으면 진수가 아니고 사부님의 제자라 할 수 없는지 등 문제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았다. 내가 ‘가짜 나’를 확실히 보았을 때 단번에 명백해졌다. 대법 속에서 단지 개인 수련의 원만을 구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근본 집착이었다. 대법 수련은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만 대법 수련의 원만은 사심이 없고 자아가 없는 상태를 닦아낸 후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경지이며, ‘가짜 나’가 집착하는 ‘원만’은 개인의 집착과 추구다.

나는 이기적인 목적을 품고 대법 속에서 수련한다면 실질적인 제고가 있을 수 없고 진정하게 수련해 나갈 수 없으며 이것은 가짜 수련이 아니겠는가 하고 깨달았다. 어떻게 사부님의 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근본 집착을 찾을 때 단순히 자신이 입문할 때의 생각만 찾아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선을 따라 계속 파고들어 자신이 수련 중에 또 어떤 사심을 감추고 있는지, 또 어떤 이기적인 목적을 품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대법을 이용해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에 도달하려는 모든 생각은 근본 집착에 속하며 모두 진수제자가 반드시 닦아 없애야 할 것이다.

수련 중에서 나는 줄곧 어떻게 해야 자비를 닦아낼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사심이 없고 자아가 없는 상태를 닦아낼 수 있는지 몰랐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가짜 나’를 똑똑히 보고 ‘가짜 나’를 약화시키며 ‘진정한 나’의 본성이 되돌아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자비이고 이타심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수련 중 문제에 부딪혔을 때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반영돼 나오는 대로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진실한 경지에서 한 행동이며 만약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법 속에서 이 마음을 닦아 더 높은 경지로 승화해야 한다.

3. 정법 수련의 경지에 도달해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하다

수련 속에서 나는 줄곧 자신에게 정법 수련의 길을 걷고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하라고 요구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종종 그것을 일종의 방법이나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으로 여기고 기계적으로 법리를 가져다 맞췄기에 결코 법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진정한 나’가 되돌아 나왔을 때 나는 정법 수련이 사실 진실하고 착실한 수련 경지라는 것을 갑자기 의식했다. 내가 모든 면에서 중생을 위하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자연스럽게 중생을 구하려는 관점에서 선택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법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법 수련과 구우주의 개인 수련은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일로서,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안배에 대해 근본적으로 승인하지 않으시므로 만약 대법제자 자신도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고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진수제자를 주재하시어 우리가 정법 수련의 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수련한 후 만약 능동적으로 대법으로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못하고 근본적인 집착을 품은 채 없애지 않으며 각종 관념을 붙잡고 놓지 않고 ‘가짜 나’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 개인 원만을 위해 수련한다면, 입으로 아무리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개인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진정한 나’가 주도하게 하고 이기적인 기점을 없애며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수련하고 고생을 겪으며 업력을 소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하게 정법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4. 법을 외우는 중에 함께 정진하다

우리와 함께 법을 외운 사람 중에는 우리 법공부 팀의 수련생도 있고 이 과정에서 인연이 있어 함께 걷게 된 수련생도 있는데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우리 법공부 팀의 한 수련생은 수년 전 거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돼 납치됐다. 나온 후 나와 아내는 그녀와 한 번 교류를 했는데 이 수련생이 아주 선량하고 법에 대해서도 아주 확고하지만, 단지 법공부 상태가 좋지 않아 법공부할 때 쉽게 졸음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로 ‘머리가 멍하고 법이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 들며 각종 방법을 써보아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당시 그녀의 집에 법공부 팀을 만들고 다른 몇몇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단체 법공부 후 이 수련생의 상태가 어느 정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우리는 함께 법을 외우기로 결정했다. 수련생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홍음(洪吟)’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 이어서 ‘정진요지’를 외우기로 결정했다. 2021년부터 우리는 또 함께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수련생은 여러 번 ‘머리 위에 마치 틈이 열린 것 같고 끊임없이 빛이 들어오며 무언가 깨달음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수련생은 매우 정진했는데 나이가 우리보다 모두 많고 학력도 높지 않았지만 법을 외우는 데서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었고 자신에 대한 요구도 아주 엄격해, 자신에게 한 글자도 틀림없이 외우도록 요구했으며 종종 우리보다 더 잘 외우곤 했다.

현재 이 수련생의 법공부 상태는 아주 좋아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으며 법리에 대한 인식도 매우 선명하고 세 가지 일도 아주 잘한다. 법 암기의 장점을 직접 체험했기에 이 수련생은 또 별도로 다른 법공부 팀을 만들어 다른 수련생과 함께 법을 외우고 있다.

또 다른 한 수련생은 병업 교란으로 잠을 자지 못했고 심각한 우울증 가상을 보여 심지어 기본적인 법공부와 연공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그와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한동안 견지했지만 뚜렷한 개선은 없었다. 수련생은 법리로는 모두 명백히 알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명혜망의 한 교류 문장에 이런 말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으며 만약 지름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법 암기다. 오직 법만이 진정으로 당신이 시련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다.’” 수련생은 듣고 약간 주저하며 “나는 지금 머리가 하루 종일 어지러워서 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수련생을 격려했다. “법 암기는 양에 있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따라 외울 수 있는 만큼 외우면 되며 외우는 것이 외우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수련생은 동의했다.

우리는 2주일 동안 ‘전법륜’ 제1강의 첫 절 ‘진정하게 고층차(高層次)로 사람을 이끌다’를 다 외우기로 약속했다. 2주일 후 우리는 약속대로 만났고 모두 책을 보지 않은 채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한 단락씩 외웠다. 첫 절을 다 외운 후 수련생이 계속 외울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어서 외웠고 줄곧 ‘기공(氣功)은 곧 수련(修煉)이다’까지 외웠다. 제1강을 꼬박 절반을 외우자 수련생의 정신 상태도 뚜렷하게 바뀌었고 모두 아주 기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2주마다 반 강씩 진도를 나가며 외우기로 약속했고 현재 ‘전법륜’을 곧 다 외워 간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수련생은 병업 가상에서 벗어났고 현재 완전히 정상적으로 수련, 생활, 업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수련생은 사악한 인원에게 감시받는 상태에 처해 고정적인 단체 법공부 환경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법공부를 보장하지 못하면 처지가 더욱 위험해진다. 이런 상황을 겨냥해 우리는 ‘전법륜’을 외우는 방식을 채택해 법공부를 보장하기로 결정하고 매달 한 강이나 반 강을 외웠다. 이 수련생은 예전에 ‘전법륜’을 외운 적이 있었지만 매번 제1강을 다 외우지 못하고 멈추곤 했다. 이번에 법을 외울 때 수련생은 아주 진지하게 아주 노력해서 줄곧 견지해 나갔으며 현재 이미 제6강까지 외웠다. 수련생 가족의 말에 따르면 수련생은 매일 일찍 일어나 법을 외운다고 했다. 수련생이 아주 좋은 법공부 상태를 갖춘 것을 보고 모두 마음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법 암기에 참여한 우리 모든 수련생은 하나의 공통된 느낌을 받았다. 법 암기 과정이 바로 법에 동화하는 과정이고 수련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법을 외울 수 없고 어느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면 외우기가 아주 힘들며, 확고한 수련 의지와 결심이 없으면 계속 견지해 나가기 힘들고 법공부 팀의 단체 환경을 떠나면 혼자서도 견지해 나가기 힘들다.

끝까지 법 암기를 견지한 수련생 모두는 법 암기가 자신의 수련에 가져다준 실질적인 제고를 체험했고 주변에도 갈수록 많은 수련생이 법 암기 대열에 가입하고 있다. 만약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하지 못한다면 법 암기는 확실히 법공부하고 법을 얻는 좋은 방법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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