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또 90세 노년 수련생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 우리 지역에는 아직 나이 든 수련생 몇 명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병업 고비를 넘고 있는데 대부분 예전에 일 년 내내 꾸준히 대면으로 진상을 알렸던 수련생들이다.
설을 앞두고 한 수련생이 92세 된 노년 수련생을 찾아갔다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노인이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종이 기저귀까지 차고 있다는 것이다. 수련생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마음이 아팠다. 이 노년 수련생은 1996년에 법을 얻었고 박해 전에는 우리 지역의 주요 협조인 중 한 명이었다. 1999년 이후 온갖 박해와 괴롭힘을 당했지만 노년 수련생은 대법을 수련하는 확고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줄곧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견지해 매일 몇 명, 십여 명의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받아냈다. 한 수련생이 대략 계산해보니 수년 동안 그녀 혼자 권해 탈퇴시킨 사람만 4~5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니 수련생들은 매우 가슴 아파하며 몹시 자책했다. 다들 자기 일만 돌보느라 관심이 절실한 이 노년 수련생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생 한 명도 빠뜨리지 말라고 요구하셨고 대법제자는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일깨워 주셨다. ‘포기하지 마라!’ 이에 내 작고 얕은 인식을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지난겨울 내 주변의 두 노년 수련생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병마의 교란을 겪었다. 한 명은 90대인 A 수련생이고 다른 한 명은 80대인 B 수련생이다.
A 수련생 집은 법공부 장소였고 그녀는 일 년 내내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해왔다. 30여 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으며 자녀들도 모두 그녀의 연공을 지지했다. 작년 겨울에 들어선 이후 그녀는 식사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고 점점 밥을 먹고 싶지 않아 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밥을 삼키지 못했다. 사람도 갈수록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자녀들은 그녀의 몸을 걱정해 병원으로 모시고 갔고 검사 결과 간에 낭종이 자란 것을 발견해 최소 침습으로 관을 삽입하는 배액 시술을 했다.
노년 수련생은 입원 기간에 가족들에게 당부해 수련생들이 계속 자신의 집에서 법공부를 하게 했다. 우리 몇 명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오후에 우리는 함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해 수련생을 박해하는 모든 사악을 제거하고 정념으로 노년 수련생의 정념을 가지(加持)했다. 우리는 하루 이틀 걸러 병원에 문안을 가서 노년 수련생에게 정념을 더해주었다. 며칠 후 노년 수련생은 집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법공부와 연공을 회복했다. 수련생들은 안으로 찾는 동시에 인내심을 갖고 노년 수련생과 법에서 교류했다. 노년 수련생은 자신이 오랫동안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고 심성이 제고되지 못한 것을 찾았고, 남이 지적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집착심 등도 찾아냈다. 지금 노년 수련생은 배액관을 이미 뽑았고 몸도 점차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
B는 수련에서 좀 해이했다. 그녀의 집도 예전에 법공부 장소였지만 그녀가 자주 입원하는 바람에 자녀들도 연공을 지지하다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기에 몇몇 수련생이 A의 집으로 옮겨 법공부를 했던 것이다.
A, B 두 집의 거리는 100미터 남짓에 불과했지만 B는 단체 법공부에 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작년 3월 무렵 나는 B의 집에 가서 그녀와 함께 법공부를 했다. 그녀는 매우 기뻐했고 상태도 점차 정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 마음이 비교적 무거워서 조금이라도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면 즉시 약을 먹었다. 나는 그녀와 교류하며 그녀가 고생을 두려워하고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년 수련생도 자신이 너무 나약함을 인정했다. 법공부를 통해 그녀의 오성도 올라와서 오랫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자 그녀는 버티지 못하고 또 병원에 입원했다. 한 달 이후 내가 다시 그녀를 보러 갔을 때 나는 그녀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음을 발견했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말에 기운이 없었다. 그녀 딸이 내가 집에 오는 것을 싫어했기에 나는 그녀 딸이 출근한 시간을 이용해 그녀를 찾아가 법공부를 하거나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이렇게 두 달을 견지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우리 오늘 하루 쉴까요? 정말 너무 괴로워요”라고 말했다. 그녀 아들이 그녀에게 약을 찾아주고 있었다. 내가 그러자고 하고 또 그녀에게 “연공은 하셨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했어요, 연공을 마치니 이렇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듣고 나서 마음이 아주 불편했지만 그녀 아들의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진상을 알리러 가는 길에 또 B가 생각났다. ‘그녀가 이러는 걸 수련이라 할 수 있을까? 안 그러면 나도 그녀 집에 가지 말아야지, 자녀들 눈치를 보지 않게 말이야.’
점심때 나는 집에 돌아와 밥을 하면서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들었다. 갑자기 “포기하지 마라!” 하는 한마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어서 자세히 들었다.(예전에 이 문장을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나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네가 무슨 근거로 포기하려 하느냐?!”라는 위엄 있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사부님께서 나를 질책하시는 것이 느껴졌고 B를 포기하려 하는 내 생각에 대한 사부님의 ‘방할(棒喝)’이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제자를 보살피고 계심을 안다. 예를 들어 나와 노년 수련생이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때 노년 수련생이 종종 비몽사몽 할 때가 있었고, 어떨 때는 나도 다시 그녀를 깨우기 귀찮았는데 그녀 몸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깨어나는 것을 보게 됐다. 나는 사부님의 법신(法身)께서 그녀를 밀어주셨음을 알았다. 그녀도 일찍이 나에게 “오늘 기적이 일어났어요. 오전에 막 누워서 눈을 좀 붙이려는데 어떤 목소리가 저에게 ‘너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거예요. 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내려와 포륜(抱輪)을 했어요. 제 생각엔 사부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너무나 자비로우시다. 침대에 15년을 누워 지낸 제자라도 사부님께서는 모두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무슨 권리로 수련생을 포기한단 말인가? 나는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참회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제자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노년 수련생 집에 갔다. 그녀는 산소 호흡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내 마음의 변화 과정을 그녀에게 들려주었으며, 자신에게 체면 차리는 마음과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노년 수련생은 듣고 난 이후 감동해 소리 내어 울었다. 아울러 앞으로 반드시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에서 언급했던 세상을 떠난 수련생은 비록 침대에 여러 해 누워 있었지만 그녀 역시 아주 훌륭한 수련생이었다. 농촌에 있을 때 자주 옥수수 줄기로 전봇대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써 붙였다. 남편은 은퇴한 중의사였고 주변의 서민들이 자주 그녀 집에 와서 진찰을 받았는데, 수련생은 사람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주고 진상 자료를 주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도시로 이사해 살면서 수련이 해이해졌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써내는 것 역시 여러분에게 일깨워 주려 함이다. 오늘날까지 걸어온 대법제자는 하나하나 모두 쉽지 않았으니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손을 맞잡고 법정인간(法正人間)의 그날까지 걸어가야 한다!
층차의 한계가 있으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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