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고 말주변 없던 데서 정념으로 선하게 알리기까지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심지어 청년 시절까지 모두 곤궁과 굶주림 속에서 보냈다. 일곱 식구가 아버지의 오랜 세월 50~60위안 수입에 의지해 힘들게 살았다. 나는 한 살 때 큰 병을 앓았는데,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기침과 천식이 남았다. 기억 속 어린 시절은 매일 마시기 힘든 한약과 주사를 맞으며 보냈다. 몸도 왜소하고 약했으며, 학교 다닐 때부터 직장 생활 후까지 줄곧 다른 사람들이 화풀이하고 괴롭히는 대상이 됐다. 비록 억울하고 분했지만 나약했고, 사람들과 어떻게 따져야 할지 몰랐다.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나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을 무척 동경해 나중에는 도(道)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당시 기공 열풍 속에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것들을 많이 수련해봤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1998년, 친구가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렇게 여러 해를 찾아 헤맸는데 어떻게 이제야 찾은 걸까!’ 수련 후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위장병과 걱정스러웠던 심장병이 사라졌다. 더 신기한 것은 며칠 동안 몸에서 진한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주사약 냄새가 났는데, 어린 시절 몇 년간 맞았던 주사가 내 몸속에 수십 년간 잠복해 있다가 지금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며 제거해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 소인배가 질투해 중공(중국공산당)과 함께 대법에 대한 박해를 일으켰다. 아내(수련생)는 천안문에서 법을 수호하다 납치돼 구금됐다. 아이가 어려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전(深圳)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공안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에 사람을 석방해달라는 과정을 시작했다. 아내가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집은 그때부터 편안할 날이 없었다. 가도판사처, 파출소, 국보 대대 사람들이 3~4일마다 찾아와 괴롭히고 소환했으며, 나도 수시로 가서 따지고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2003년 봄여름, 나는 혼자 베이징행에 올랐다. 천안문 광장은 음산했고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무장경찰과 사복 경찰은 적지 않았다. 나는 천안문 광장 깃대 아래로 가서 몇 사람 옆에 앉았다. 한참이 지나도 수련생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해서, 금수교(金水橋)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금수교에 잠시 서 있다가 광장 주변에서 베이징 신방국(청원국)에 진상 편지를 부친 후, 기차를 타고 거주지로 돌아가 바로 출근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상경해 대법을 실증했는데 나는 그냥 형식적으로 다녀온 것이었다. 당시 수련생들 사이에 “천안문에 가지 않으면 수련이 온전하지 않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나의 인식과 정념은 모두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어릴 때의 소심하고 겁 많던 모습이 아직 벗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박해 초기에 우리는 소량의 등사 자료와 일부 손으로 쓴 자료만 있었다. 나는 밤에 자주 현수막을 걸러 갔다. 기억에 남는 한번은, 나와 다른 수련생이 입체교차로에 올라가서 대형 현수막을 성공적으로 걸었다. 다음 날 오전에 현수막이 공중에서 펄럭였고, 지나가는 행인과 차량이 모두 볼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생각했다. ‘현수막이 더 길고 더 크면 좋겠다!’

소형 프린터가 보급된 후 우리집에도 ‘작은 꽃’(자료점)이 피었다. 아내가 자료를 인쇄해서 주변 몇몇 수련생들에게 공급했고, 나도 자주 나가서 배포했다. 주로 점심시간 퇴근 후 아파트 단지에 사람이 많을 때나 밤에 배포했다. 아파트 단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배포했는데, 몇 년 동안 여러 번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무사했다. 나중에는 전체에 융합돼 수련생들과 협력해 다른 현과 시, 농촌 시장으로 가서 대규모로 배포했다.

아내가 두 차례 납치를 당했고 나도 잠시 간고한 진상 알리기와 수련생 구출의 과정에 들어갔다. 파출소, 국보 대대, 검찰원, 법원, 중급법원, 그리고 감옥까지, 변호사를 선임하고 전 과정에서 변호사와 동행하며 대법제자는 모두 법을 지키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경찰의 위법 진상을 알렸으며, 동시에 공안·검찰·법원·감옥에 진상 편지를 보냈다. 진상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보 대대가 두 차례 날 납치하려 했으나,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서 진상을 알리며 해소시켰다.

중급법원 부원장에게 전화했을 때 부원장이 말했다. “당신의 편지를 봤습니다. 동정하지만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중에 아내가 여자감옥에서 박해당하자 나는 즉시 감옥 옥정과(獄政科)로 가서 과장을 찾고 담당 감옥장을 찾아, 아내가 공안·검찰·법원의 위법 박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알릴 수 있는 만큼 알렸다. 전면적인 진상은 주로 각 주요 부서와 책임자에게 보내는 특급우편에 담았다. 이 과정에서 감옥 내부 전화번호도 얻어 국내외 진상 전화에 편의를 제공했다.

나는 수시로 감옥 구역에서 직접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감옥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몇 마디라도 말할 수 있으면 말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의 긴장, 공황, 그리고 태도의 변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공안, 검찰, 법원, 사법기관에 진상을 알린 경험이 있어서, 수련생들이 나를 찾아 수련생 구출 활동에 참여하게 됐고, 수련생 가족들과 함께 관련 부서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정념을 발하는 항목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수련생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의 정념과 신념을 세우며 적시에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했다.

나는 대면해서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다. 시장, 공사장, 공원, 대학 캠퍼스, 역 등 말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았다.

나중에 가정용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우리 지역에서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전에 반드시 거리에서 교통경찰을 도와 반나절 동안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시행됐다. 방대한 집단이었고, 드문 기회였으며, 이 집단에는 각종 직업과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있었지만, 난이도도 컸다. 교차로에서는 때때로 빨간불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고, 수시로 경찰이 돌아다니며 지켜보고 있어서, 몇십 초의 빨간불 대기 시간 안에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 교차로에 8명이 교통정리를 하는데, 수련생 한 명이 8명 모두에게 말하려면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둘이 가서 말하자니 또 너무 눈에 띄었다. 이는 우리의 심성과 삼퇴 권유 기교를 적시에 향상시킬 것을 요구했다.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사람을 끌어야 하고, 어조는 관심 어린 듯하여 듣기 좋아야 했다. 정념 속에서 몇 마디 말로 상대방이 삼퇴를 선택하도록 이끈 후, 다시 상대방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받아들이게 하고,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간단하게 몇 마디 대법 진상을 중점적으로 보충했다.

몇 년 동안 나는 반나절에 20여 명을 탈퇴시키던 것에서 점차 30~40명을 탈퇴시키게 됐다. 시간이 지나자 교통경찰의 주목도 받게 됐다. 나는 두 차례 경찰에게 납치됐지만 사부님의 가지 하에 나와 수련생은 이 집단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을 계속 견지했고, 대량의 중생들을 탈퇴시켰다.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한번은 차량과 인파가 많은 교차로에 도착해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하는 30세 정도의 여성 옆으로 빠르게 다가가서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애쓰시니 여러분도 평안하셔야죠!”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이어서 말했다. “대역병 중에 하늘이 사람을 거두고 있는데, 구원받는 것은 염황자손(중화민족)이에요! 당원이세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공청단원이었어요.” “××라는 가명으로 탈퇴하세요, 무엇보다 평안이 좋잖아요!” 그녀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나는 설명했다. “장기적출, 죄악이 하늘을 찌르는데 하늘이 용서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그것 때문에 화를 입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 그녀가 정중하게 나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 절을 했고, 주변의 많은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끌려왔으며, 순간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말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해 주세요.” 그녀도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몸을 돌려 파란불 쪽으로 걸어갔다.

또 한번은 진상을 알리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서둘러 다른 거리 쪽으로 달려가서 아직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남녀 학생들에게 급히 삼퇴를 권했다. 그 두 사람은 매우 감동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비가 오는데도 우리에게 알려주러 오시다니, 여러분은 정말로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 같네요.”

10여 년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과정에서 중생들의 감사하는 마음은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당신도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당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감격해서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한번은 50세 정도의 남성이 갑자기 나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말씀 해주셨어요.” 한번은 버스 안에서 60대 정도의 선해 보이는 지식인 여성이 옆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생각했다. ‘이분은 진상을 들으실 분이구나.’ 그런데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나는 말했다. “저도 이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당원이냐고 물으니 그녀가 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톈진(天津)에서 자본가 성분이 높아서… 나는 “고생하셨네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말했다. “이제는 좋아졌어요, 정법이 널리 전해지고 중생을 구원하니, 사람들이 생생세세 기다려온 것을 우리가 기다려낸 거예요. 구원받아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녀가 갑자기 정중하게 나에게 크게 절을 했다. (그녀는 나보다 10여 살 많았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안 됩니다, 대법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더 이야기한 후 그녀는 아쉬워하며 나와 헤어졌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대법은 말을 잘하지 못하던 나를 감히 말하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련시켰고, 또한 어릴 때부터 겁이 많고 나약했던 나를 정념으로 선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귀중한 수련의 시각에, 나는 더욱 나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며, 진정으로 수련하고,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엄격히 나 자신을 수련해,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더 잘 구원하고 서약을 실현하겠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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