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四川)성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을 수련하기 전, 저는 병약한 몸으로 오랫동안 병치레를 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온몸에 염증이 있었는데 장염, 위염, 관절염, 오십견, 치주염 등이었고, 치주에는 자주 고름이 차서 얼굴이 찐빵처럼 부어올라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40대 초반인데도 육칠십 대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제가 죽을까 봐 두려웠는지, 20년 전 아들이 컴퓨터에 제 사진을 저장해두었는데,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그 사진을 보고는 제 어머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죽지도 못하고 제대로 살지도 못했으며, 극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왜 사람은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수많은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그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중공이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한 직후, 한 나이 든 수련생이 제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며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권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외우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 인연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지 그때는 믿지 않았습니다. ‘양약, 한약, 약초 등 온갖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는데, 우리집은 늘 약으로 가득해서 문만 열면 약 냄새가 진동하는데 어떻게 몇 글자 외운다고 병이 낫겠어?’
2003년 3월 어느 날, 저희 현(縣) 남쪽 거리의 한 식당에 갔는데, 그곳은 같은 동네 파룬궁수련생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그 나이 든 수련생이 자료를 전달하러 온 것을 만났습니다. 그가 저를 보자 식당 주인에게 “이분(저를 가리키며)에게 연공을 가르쳐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마 제게 인연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는 크게 두 번 숨을 내쉬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수련생이 준 찐빵을 먹고 집에 와서는 국수 한 그릇까지 다 먹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저를 돌보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습니다. 14일째 되던 밤, 갑자기 고열이 나서 ‘내일 또 중의원에 가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목이 몹시 말라 남편이 가져다준 큰 컵의 물을 단숨에 마셨더니 온몸에 땀이 흘렀고, 다음날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났습니다. 깨어나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몸이 개운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몸을 완전히 정화해주셔서, 지금 76세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병에 걸리거나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습니다. 많은 의료비를 절약했고 자녀들의 부담도 크게 덜어주었습니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가 젊어 보인다며 피부가 매끄럽고 부드럽고 흰머리도 없다고 합니다. 서른, 마흔, 쉰 살 사람들이 자주 저를 언니라고 부릅니다.
1. 오묘한 광경을 보다
대법을 얻은 초기, 우리 아파트 단지의 한 수련생이 매일 저를 사람 많은 곳으로 데려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알렸습니다. 당시 사악이 여전히 기승을 부렸지만 저는 두렵지 않았고, 대담하게 세인들에게 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얼마나 많은 병을 앓았는지, 대법 수련 후 어떻게 변했는지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벽면에 크고 작은 은백색 보살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다리를 틀고 수인을 맺은 채 연꽃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나이 든 수련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었고, 우리 둘 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주 꿈에서 푸른 잔디밭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꿈속에서 수많은 수련생들이 우리집에 와서 법회를 열었고 사방에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희 지역에 오신 꿈도 꾸었는데, 제가 “다시 떠나실 건가요?”라고 여쭈니 사부님께서는 “떠나지 않고 너희 이곳에 머물겠다”고 하셔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려고 갔습니다. 사부님이 우리 곁에 계시니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또 대법 수련 후 얼마 안 되어 제 눈에서 매일 분홍색에 옥색, 하늘색이 섞인 아주 밝은 원이 나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2.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다
대법을 얻은 초기, 집 안팎으로 교란이 심했습니다. 중공의 거짓말과 공포 앞에서 친척 친구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와서 수련하지 말라고 권했고, 남편도 제가 연공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우리집에 왔다가 딸과 마주쳤는데, 딸이 사정없이 고함을 지르며 당장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위도 거들었는데, 한번은 제가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서 베란다에 막 설치하려는데 사위가 와서 보더니 컴퓨터 설치하러 온 사람을 억지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헐값에 반품시키며 설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계속 수련하자 일부 가족들이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되어 더는 간섭하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공에게 박해받는 동안 그들은 저를 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하며 돈도 꽤 썼습니다.
딸 가족이 규모 있는 농가락(農家樂, 농촌 체험형 관광업소)을 지었는데 지역에서 꽤 눈에 띄었습니다. 중공의 하급 관리들이 딸 가족이 부유해 보이자 시기심을 품고 온갖 방법으로 터무니없는 죄명을 씌워 딸과 사위를 괴롭혔습니다(사위는 감옥에 갔습니다). 수백만 위안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번에 가족들이 중공의 쓴맛을 보고 공산당의 본성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족들은 파룬궁을 새롭게 인식하고 대법 진상을 알게 되어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했습니다. 사위는 자발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 수련생들에게 대접했고, 예전에 제가 준 ‘파룬따파하오’ 연꽃을 직접 대문 양쪽에 걸었습니다. 딸은 제가 달력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딸도 우리 수련생들을 매우 신뢰하여 장부 관리, 입고, 출고를 수련생들에게 맡기려 합니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인품이 좋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대법에 대해 정념을 갖게 되었고, 제가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지지해줍니다. 제가 어디에 올바른 일을 하러 가면 아들, 손자, 사위가 모두 차로 데려다주는데, 종종 반나절이나 하루를 지체시켜도 불평이 없고 비용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차례로 복을 받았습니다.
3. 한 번 또 한 번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큰오빠는 50년 넘은 오랜 당원인데, 매번 진상을 알려주러 가면 말하지 말라고 하며, 그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나는 뭐든 믿지만 너희 파룬궁만은 안 믿는다.” 제가 “오빠도 언젠가는 반드시 믿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이 일념이 정말 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빠 집에 갔을 때, 다른 공간의 사악한 난귀(爛鬼)가 교란하여 기침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정념을 보내며 일념을 더했습니다. ‘저급한 것들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도 못하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고, 뭇 신들, 호법신, 법신, 천룡팔부에게 오빠의 공간장에서 그가 법을 얻고 진상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난신(亂神)·난귀를 깨끗이 청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잠시 후 기침이 멈췄습니다.
오빠가 보청기를 제게 주며 소리를 조절해달라고 했는데, 다 조절해도 소리가 안 나자 제가 “고장 났네. 내게 작은 라디오가 있는데 들어볼래?”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몇 개 방송국을 들을 수 있니?”라고 묻기에 “전 세계를 다 들을 수 있어. 들어보실래?”라고 하니 듣겠다고 했습니다. mp3를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으로 맞춰주니, 당장 정신을 집중해서 아주 진지하게 들었고, 올케언니도 그렇게 전심으로 듣는 것을 보고 이어폰 선을 가져와 함께 들었습니다.
4~5일 후 오빠 부부가 우리집에 왔는데 발이 문턱에 닿기도 전에 오빠가 큰 소리로 “막내야, 빨리 펜하고 공책 준비해라. 내가 직접 써서 진(鎭)에 가서 공개 탈당하겠다! 공산당이 수십 년간 날 속였어. 아동단부터 시작해서 이른바 혁명 일을 해왔는데”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거기 가서 하지 마시고 여기서 해!”라며 ‘성오(醒悟-깨어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더니 “듣기 안 좋네”라고 해서 제가 “드디어 깨어났잖아!”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오빠는 수십 권의 대법 책을 다 읽고, 읽은 자료를 친척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농가락 강가 나무에 걸어두어 인연 있는 사람들이 가져가 보도록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또 가서 가져간 것이 있는지, 버린 것은 없는지 확인했고, 땅에 떨어진 것은 주워서 정리해 다시 나무에 걸었는데 아주 잘했습니다. 사부님도 오빠를 격려하셔서 오빠 집에 많은 것을 연화(演化)해 보여주셨습니다. 오빠 부부는 복을 받아 지금 90대인데도 몸이 아주 건강하고, 지금은 둘 다 대법을 수련합니다.
4. “당신 집은 부처님을 높이 모셨네요”
10여 년 전, 아들이 막 운전을 배웠을 때입니다. 어느 날 한 진(鎭)에서 자동차가 오토바이와 충돌했는데, 오토바이가 아들이 운전하던 길로 곧장 돌진해왔습니다. 오토바이에는 세 명이 타고 있었고, 아들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실수로 액셀을 밟았습니다. 아들이 운전석에서 보니 세 사람이 단번에 2미터 넘게 튕겨 올라 무겁게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들은 놀라서 울었습니다. 며느리가 달려와 “사고가 났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도 빨리 현장에 갔는데 그 광경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땅에 누워있고, 누군가는 그들의 인중을 누르고, 누군가는 그들의 코를 만져 숨이 있는지 보고, 한 사람은 귀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저는 재빨리 한 사람씩 달려가 말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빨리 대법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세요. 괜찮을 거예요. 대법 사부님께서 반드시 구해주실 거예요.” 그들도 따라 외웠습니다. 아들이 120에 전화했고 근처 의사가 왔으며, 구경꾼들도 둘러싸고 보았습니다. 검사 후 의사가 괜찮다며 그저 가벼운 외상이니 일어나 앉으라고 하자 모두 안도했습니다.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아들이 현(縣)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하룻밤만 자고 세 사람 모두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한 사람은 의족이 필요해 의족을 만들어주었는데, 총 2천여 위안이 들었습니다. 병원 환자들이 “당신 집은 부처님을 높이 모셨네요. 저 사람들이 보름이나 열흘씩 뜯어먹지 않은 것도 다행인데, 어떻게 그렇게 운이 좋을 수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우리 엄마가 불법(佛法)을 닦는 사람이고,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위험을 해결해주셨다며 리(李) 대사님께 한없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5. 모든 것이 사부님 보호 아래
우리집은 몇 번 위험을 만났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정오에 우리집에서 고기를 삶고 외출했는데, 오후 7시가 넘어 갑자기 집에서 뭔가 끓고 있다는 생각이 나서 급히 달려가 보니 냄비가 빨갛게 달궈져 있었습니다. 꼬박 7시간 넘게 끓었는데도 무사했습니다!
한번은 기름을 볶다가 거실에서 자료 작업을 하느라 잊어버렸습니다. 기름에 불이 붙어 짙은 연기가 창밖, 문밖으로 뿜어나왔고, 불꽃이 거의 천장까지 올라가 레인지후드가 ‘탁탁’ 소리를 냈습니다. 부엌으로 달려가 급히 냄비 뚜껑을 덮었는데 뚜껑까지 불이 붙었습니다. 위아래층과 경비원도 달려와 빨리 문을 열라고 외쳤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급히 사부님께 불을 끄도록 도와달라고 빌었습니다. 물 한 대야를 끼얹자 불이 작아졌고, 혼란 중에 재빨리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기름이 사방에 튀어 제 얼굴 대부분이 기름에 데었습니다.
아들딸들이 돌아와 제 모습을 보고 놀라서 병원에 보내려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관리하시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치료도, 약도 바르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는데 아프지도 않고, 다만 눈이 좀 부었을 뿐입니다. 보름 후 얼굴의 딱지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흉터 하나 없이 새 피부가 더 곱게 자라났습니다.
아들은 동창에게 화상을 입었을 때 얼마나 아픈지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파트의 한 언니가 “너처럼 잘 견디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감당 능력이 큰 게 아니라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해주신 거라고 했습니다.
큰 손자가 세 살 때, 어느 날 제가 데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집까지 10여 미터 남은 곳에서 화물 삼륜차가 다가왔습니다. 아주 가까이서 경적을 울려 손자가 놀라 도망가다 넘어졌습니다. 그 길은 경사가 있어 너무 위험했습니다. 차가 급정거했는데 앞바퀴가 손자 엉덩이에서 5센티미터도 안 되는 곳에 멈췄고,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전혀 무섭지 않았는데, 그때는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지켜보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사부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은 저와 가족에게 가장 큰 영광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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