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남을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다

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사존의 제자가 되고, 정법시기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다. 그래서 나는 수련의 길에서 바람이 잔잔할 때나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나 언제나 사존을 바짝 따랐다. 집착이 많고 깨달음이 부족해 방향을 잃거나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위급할 때마다 구해주셨다. 아래 수련하면서 얻은 몇 가지 깨달음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1. 비학비수(比學比修)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다

어느 날 명혜 라디오에서 수련생 교류 글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투고한 글인 줄 알고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다른 수련생의 글이었다. 우리 둘 다 진상을 알리다가 신고당해 불법 체포됐고, 납치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중에 그 수련생은 무사히 풀려났지만 똑같이 한 나는 ‘부정한 수단’으로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나는 신체검사를 거부했는데, 노동수용소는 신체검사 서류가 부족해 나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전에 그 노동수용소에서 완고하게 ‘전향’을 거부한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를 호송한 경찰도 진상을 들은 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나를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610사무실’(파룬궁 박해 전문조직) 담당자는 인맥까지 찾아, 기어이 나를 노동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우리 둘은 모두 진상을 알리고 박해에 맞섰는데 결과는 왜 하늘땅 차이일까? 그 수련생의 글을 다시 듣고 잘 분석해 보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구치소 경찰과 함께 병원에 갔을 할 때 나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파룬궁 수련자예요. 파룬궁은 아무런 죄도 없이 박해받고 있으니 부디 박해에 참여하지 마세요. 지금 이 신체검사는 노동수용소나 감옥에 가두려고 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은 매우 사악하고 잔인한 박해를 받고 있어요. 그들을 도와주면 나쁜 일을 하는 것이라 응보를 받게 되고, 협조하지 않으면 덕을 쌓아 복을 받을 거예요!”

나는 진상을 알리는 한편 신체검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떤 의사들은 짜증을 내며 검사해 주지 않고 “가! 가! 가!”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바로 이것을 원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의사들이 진상을 제대로 듣기나 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내가 의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한 목적은 검사를 피하려는 것이었지,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만 생각한 것이었다. 얼마나 깊이 감춰진 이기심인가! 얼마나 더러운 마음인가!

하지만 그 수련생은 어떻게 했는가? 그 역시 경찰에 협조하지 않고, 그들의 사악한 명령과 요구, 지시를 따르지 않았지만 자비로운 태도로 대했고, 진상을 알릴 때도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진심으로 경찰을 위하고, 그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경찰은 대법제자의 자비로운 에너지를 느끼고 감동했으며, 진상을 알고 진정으로 구원받았다. 얼마나 흉금이 넓고 경지가 높은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덕이다. 그 수련생과 비교해 보니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올바른 방향을 알게 했다.

2. 남을 위하는 기점에서 박해에 맞서니 사부님께서 구해주시다

작년에 나는 진상을 알리다가 신고당해 국내안전보위대(파룬궁 박해 담당)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 수색을 당했다. 또다시 박해받아야 했지만 나는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과거 일을 교훈으로 삼고 더 나아져야 한다. 벗어날 생각만 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놓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남을 위하는 것을 기점으로 해야 한다.’

‘내 생명은 오직 사부님과 대법이 관할하며, 구세력은 박해할 자격이 없다. 박해를 인정하지 말고 맞서야 한다. 단, 박해를 집행하는 경찰들 역시 사부님의 가족이고, 구해야 할 대상이므로 미워하지 말고 진상을 알려 거짓말을 깨뜨려 줘야 한다. 진상을 알게 되면 그들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 대법에 죄를 짓지 않아 진정으로 구원받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신체검사 내내 경찰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게 했다. 나는 손금과 지문 채취는 거부하는 데 성공했지만, 몸을 다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 채혈은 허용하고 말았다. 강제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구해주세요! 경찰이 대법에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세요!” 결과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고, 나중에 구치소는 이 문제로 나를 받지 않았다. 내 심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이것은 사부님께서 만들어주신 가상이었다. 소변 검사를 할 때도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설득하는 여의사에게 내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경찰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했고, 진상을 알려주면서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했다. 여의사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남자 경찰이 “남자 경찰 세 명을 불러서 도뇨관을 삽입할 거야. 그래도 겁내지 않는지 보자”라고 하면서 바로 도뇨관을 갖고 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수치심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흔들리지 않았다. 이후 한 경찰이 혈액 검사로도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여 그들은 도뇨관 삽입을 포기했다.

한 국내안전보위국 경찰은 우리집에서 찾아낸 물증을 근거로 나에게 실형이 선고될 거라고 위협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당신 말은 소용없다. 나는 당신 관할이 아니다. 당신은 관여하여 죄를 짓지 말라. 나는 사부님께서 지켜주신다.’

그 경찰은 나를 강제로 고문 의자에 앉히고, 손발을 수갑으로 채운 후 심문 기록을 작성하려 했다. 나는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이 어르고 달래도, 험악하게 협박해도 모두 무시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 경찰은 신체검사, 심문기록 작성, 가택수색을 마친 후 득의양양해하며 말했다. “이제 확실히 원수지겠네.” 이 말은,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있게 됐고, 나를 구치소로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고, 나를 해치면 그도 해를 입게 되므로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말했다. “저와 원수가 되려고 하시는데, 전 그러지 않겠어요! 경찰관님이 죄를 저지르게 하지 않겠어요!”

저녁이 되자 경찰은 서류 처리를 마무리하고 음식을 사다가 먹으면서, 내게도 나눠줬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전 됐어요, 전 집에 가서 먹을게요.” 그때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은 나를 구치소에 데려갔지만 거기서 수용을 거부하자 다시 파출소 유치장으로 데려왔다. 그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나는 경찰이 족쇄와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말했다. “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죄도 없어요. 이런 건 살인범에게나 채우는 거예요. 저에게 채워서는 안 돼요.” 그러자 경찰은 “밤에는 착용해야 해. 이건 규정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규정을 보여주라고 했지만 경찰은 무시하고 강제로 족쇄와 수갑을 채웠다. 나는 바로 발정념을 했는데, 발정념 도중 갑자기 선한 마음이 나와, 그 경찰에게 에너지를 보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덕분에 그 경찰은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그곳을 떠나라고 일깨워주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사부님께 도움을 부탁드리고, 수갑과 족쇄에서 억지로 손발을 빼냈다. 그리고 유치장 문을 열어보려고 두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경찰이 갑자기 깨어날까 봐 나는 중간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나는 탈출을 포기하려 했지만, 사부님의 일깨움이 떠올랐고 거미 한 마리가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나는 경찰들이 창문을 통해 물건을 주고받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고, 마침 두 번째 문을 지키던 경찰이 자리를 비우고 없어 파출소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그곳을 지키던 경찰이 나와서 경찰차 옆에 얼른 몸을 숨겼다. 경찰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 나는 담장 쪽으로 가서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담장이 너무 높았다. 그때 마침 바닥에 고정된 나무 구조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딛고 담장을 넘어갔다. 담장 밖에 마침 경찰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경찰차 위에 뛰어내린 다음, 다시 바닥으로 뛰어내려 착지했다. 나는 이렇게 세 번의 관문을 통과해 파출소를 무사히 빠져나갔다. 사부님의 일깨움과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납치된 후 나는 경찰이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만 생각했고, 내가 어떻게 하면 박해를 피할까 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기점을 타인을 위하는 데 두자 사부님께서 구해주셨다.

3. 평소에도 남을 위하는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한 수련생의 교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큰 고비를 겪을 때마다 생사를 내려놓음으로써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한번은 아무리 생사를 내려놓아도 넘어가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니 새로운 우주의 특성은 이타적이며,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어떻게 고비를 넘길지, 생사를 어떻게 내려놓을지,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박해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지만 생각해 고비를 넘겼다.

이처럼 큰 난관을 만났을 때 남을 위하는 정념을 수련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매사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행동할 때 항상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했는지 지난 1년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박해를 피해 떠돌이 생활을 할 때, 한 수련생이 나를 A 수련생과 함께 지내게 해줬다. A는 강압적이어서, 다른 사람은 늘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세숫대야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전등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옷을 어떻게 말려야 하는지, 모두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래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A가 말했다. “당신은 안으로 찾아야 해요.” 나는 말했다.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한번 교류해 봐요.” A는 말했다. “본인 생각은 본인이 잘 알잖아요. 뭘 교류해요?” 나는 말했다.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래도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A는 말했다. “전 당신을 보자마자 잘 지내기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말을 안 듣고 어떻게든 나와 맞서려고 했으니까요.” 나는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A는 말했다. “세숫대야는 이렇게 놓으라고 하면 저렇게 놓고, 전등도 위로 향하게 하라고 하면 아래로 향하게 하고, 늘 그랬잖아요.” 나는 말했다. “세숫대야는 시키는 대로 놨는데요? 언제 거꾸로 놨죠? 전등은 아래로 향하게 해야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더 밝잖아요.” A는 말했다. “그동안 여기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전등을 위로 향하게 했어요. 당신만 빼고.” 나는 말했다. “전 정말 맞서려는 게 아니에요. 전 박해를 피해 여기에 왔고 직장도 잃었는데 그런 생각을 왜 하겠어요?” 그래도 A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A는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러니 항상 나를 못 마땅해 했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내가 쓰는 방에서 전등 방향은 내가 결정하는 거지, 이런 것까지 간섭하다니.’

이 일은 겉보기에는 A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내가 억울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의 수련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나는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하는 마음을 발견했고, 평소 무슨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당초 내가 A의 입장을 생각해 “전등을 아래로 향하게 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더 밝아서 좋아요”라고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내가 그녀와 맞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어느 날 A가 나에게 자기가 하고 있던 일을 이어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는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나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내 방식대로 했다. 잠시 후 A는 내 옆을 지나가다가 알려준 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내려간 후 A는 혼자 괴로워하며 중얼거렸다. “아, 나는 왜 항상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듣길 바라지?”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왜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방식을 고집할까? 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까?’

나는 대부분 혼자 살다 보니 무엇이든 다른 사람과 의논할 필요 없었다.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방식대로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상대방을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이 면에서 더 잘 수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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