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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법 암기를 통해 안으로 찾는 것과 진정한 수련을 배우다

글/ 랴오닝(遼寧)성 대법제자

이 글에서는 제가 법 암기를 꾸준히 실천하면서 안으로 찾고 진정한 수련을 배운 소소한 체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법 암기로 난관을 돌파하다

‘전법륜(轉法輪)’을 체계적으로 암기하기 전에는 단지 ‘홍음(洪吟)’이나 사부님의 짧은 경문만 외우는 데 그쳤습니다. 수련에서 법 암기의 이점을 알면서도, ‘전법륜’ 전체를 끝까지 외우겠다는 결심을 하려고 하면 내적 저항감이 항상 교란이 되어 여러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수련은 매우 엄숙한 일입니다. 수련에 부족함이 있고, 진정한 수련을 모르며, 안으로 찾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결함임을 깨달았을 때, 또 이를 극복하고 싶으면서도 계속 극복하지 못했을 때, 마음속에는 항상 괴로움이 따랐습니다. 특히 한 차례 납치와 불법 구류를 겪은 후, 제 수련에 큰 결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랫동안 원인을 찾았지만, 결국 표면적으로 ‘수구(修口)하지 못함’만 발견했습니다.

수련과 중생을 구하는 일 모두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던 시기에, 대만 법회에서 발표된 교류 글을 명혜 라디오로 듣게 되었는데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원고는 한 수련생이 ‘전법륜’을 어떻게 암기했는지에 대한 체험이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자신이 어떻게 꾸준히 법을 외웠는지 과정과 법 암기 후의 변화를 나누었습니다. 수련생이 마침내 ‘전법륜’ 전체를 다 외운 그 순간, 그녀의 집 아래에서 불꽃놀이가 터졌고, 이것이 사부님의 격려라고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깊은 감동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 같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수련생들이 각자의 장애를 극복하고 법을 외울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전법륜’을 체계적으로 암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소망이 생긴 후, 명혜 라디오에서 법 암기에 관한 다양한 체험담을 듣게 되었습니다. 수련생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법을 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중에서 ‘한 문장씩 외우는 방법’이 제게 가장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 암기에서 이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시작하니 모든 게 상상했던 것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신체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주로 저녁에 법을 외웠는데, 오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면 저녁이 되면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워 그저 자고 싶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 한 서약을 생각하며 매일 반드시 법을 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초기에는 말 그대로 자신을 강제로 밀어붙이며 암기했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얼굴을 벽쪽으로 향한 채, 한 문장씩 차근차근 외웠습니다. 가끔 아무리 해도 외워지지 않는 문장은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읽어야만 비로소 쉽게 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이 넘쳤지만, 계속 외우다 보니 점차 조급함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도대체 언제 다 외울 수 있을까?’ 자신의 조급한 마음을 발견한 후 저는 그것을 제거하고 동시에 주의식(主意識)을 더 강화하며 스스로에게 일깨웠습니다. ‘그냥 꾸준히 외우는 거야, 시간에 얽매이지 말자.’

법 암기는 수련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복부에서 파룬이 강하게 회전하는 것을 뚜렷이 느꼈고, 자비로운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때도 마음은 늘 자비로웠고, 말하는 내용에서도 자비로운 에너지가 느껴졌으며,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또한 법 암기는 제가 법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전에도 대법을 통독하며 어느 정도 법리를 깨달았지만, 법을 암기하는 것만큼 깊고 철저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운 후, 마음속에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한 번 다 외웠으니 더 이상 아쉬움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암기를 중단하자 제 수련은 다시 돌파하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명혜망에 실린 한 편의 교류문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한 수련생이 ‘전법륜’을 천 번 이상 외운 체험을 나눈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련생의 놀라운 인내와 끈기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 나는 멈추면 안 돼. 나도 꾸준히 전법륜을 외워야 해. 한 번 했으니, 또 한 번 하자.’ 그렇게 저는 다시 ‘전법륜’을 들고 두 번째 암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 번 또 한 번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매일 법 암기는 필수 과제가 되었고, 제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첫 단계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발정념을 한 후 바로 법 암기를 시작합니다. 진상 자료를 출력할 때는 프린터 옆에 앉아 외우고, 그 외 시간에는 소파에서 가부좌를 하고 법을 외웁니다.

2. 법 암기를 통해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다

법 암기의 또 다른 이점은 끊임없이 법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제가 점차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안으로 찾게 되고, 자신의 생각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박해받은 근본 원인이 바로 질투심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질투심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법을 암기하고 법에 동화되면서 저는 질투심이 드러나는 다양한 형태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 남보다 낫다고 느끼는 마음, 마음속의 불균형, 불평, 원망 등이 모두 질투심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늘 ‘왜 자비심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법 암기 과정에서 자신이 늘 질투심과 원망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비심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질투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대법에 비추어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 후, 저는 질투심을 제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A 수련생과 함께 협력할 때 늘 질투심이 작용해 그 수련생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평했습니다.

이번에 현수막을 만드는 일도 꽤 일찍부터 그녀에게 맡기라고 통보했기에, 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저 받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녀의 기계가 고장 나서 작업을 못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수막을 걸어야 할 시간이 바로 코앞이라 저는 초조해졌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질투심이 또 올라왔고, 과거 그녀에 대한 불만들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투하지 말자, 수련생을 깔보지 말자.’ 그리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수련생도 기계가 고장 나기를 바랐던 건 아닐 거야. 프린터의 프린트 헤드 하나도 적지 않은 비용인데, 그녀도 분명 기계가 고장 없길 바랐을 거야.’ 저는 이 질투심을 배척했습니다. ‘이 질투심은 내가 아니며,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와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整體)이며, 사부님의 정법을 돕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존재들이다. 이 질투심은 우리 전체를 갈라놓으려는 것이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가 진심으로 자신을 수련하자, 그동안 고장 나서 현수막을 출력하지 못하던 프린터가 다시 잘 작동하기 시작했고, 작업도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앞서 현수막 제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의 질투심을 제거하도록 도와준 수련생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가끔 법을 외울 때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자꾸 외부 환경을 탓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린터 소리가 너무 커서 법 암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나를 방해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바로 제 마음이 청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청정하다면, 어떤 것도 제가 법을 외우는 데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가끔 프린터 노즐이 막히면 저도 모르게 불평하고 초조해집니다. 하지만 명혜망에서 어느 수련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마음을 수련한 후에 기계를 손보세요.”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제가 정말 잘못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기계 탓을 하며 불평했던 건 밖을 향한 것이 아닌가?’ 잘못은 기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의 초조한 마음과 결과를 빨리 얻으려는 등, 각종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으니 기계가 막히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안으로 찾아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자 고장이 잦던 제 프린터도 다시 원활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3. 수련생들을 이끌어 법을 외우게 하다

법 암기의 장점을 깨닫고, 저는 수련생들에게 법을 외우라고 권했습니다. 가족 수련생은 제가 가장 먼저 법 암기를 권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기억력이 좋아서 저는 그녀에게 법을 외우도록 격려했습니다. 아내는 수련을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미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웠고, 이제 두 번째 암기를 진행 중입니다. 이 과정 역시 저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아내에게 법을 외우라고 권했을 때, 그녀도 때때로 느슨해져서 법 암기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환경의 영향도 작용을 일으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단지 반복해서 말로 권하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먼저 법을 외우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출근하기 전 매일 아침, 꾸준히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고, 동시에 제가 법을 외우며 얻은 체험과 깨달음도 아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의 가지하에 아내도 마침내 작년 7월에 ‘전법륜’ 첫 번째 암기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법학습팀에서 자신이 법을 외운 체험을 다른 수련생들에게 나누었고, 그것을 들은 수련생들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중 일부 수련생들도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수련생)에게는 꽤 일찍부터 법을 외우라고 권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셨습니다. 겨우 시작했다 하더라도 곧 중단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빠짐없이 법 암기에 대해 상기시켜 드렸고, 만날 때마다 반드시 언급하는 방식으로 계속 독려해 드렸습니다. 때로는 제 자신의 정(情)이 과하게 작용하여 자비심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말투가 적절하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조언을 드렸습니다. 지금은 아버지께서도 ‘전법륜’을 한 차례 완전히 암기하셨고, 현재도 매일 꾸준히 법 암기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자신에게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끔 다른 수련생들에게 법을 외우라고 권장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효과적으로 암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제 아내는 이 부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수련생들과 함께 직접 법을 외우며,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은지, 어떤 기법이 도움이 되는지를 상세히 안내해주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저는 여전히 고생을 꺼리는 마음,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수련해 나가겠습니다.

4. 관념을 전환하여 정념으로 문제를 바라보다

법을 암기하며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에서 저는 수련의 길에서 저를 가로막는 장애 중 일부가 바로 자신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자주 수련생들의 부족한 점들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으로 수련생들의 말과 행동을 판단했습니다. 나중에야 이것이 밖을 향해 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자신을 손전등처럼 여기고, 다른 사람만 비추고 자신은 비추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상태를 “이건 손전등이 아니라 완전히 탐조등이다”라고 표현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관념을 내려놓고, 수련생에게 정념을 더해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련생에게 부족한 점이 보일 때, 저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수련생이 안으로 찾아 대법에 비추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게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생각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더 하지 않습니다. 진상자료를 만들고 나서도, 저는 그 자료를 바라보며 정념을 보냅니다. ‘사부님 가지해주세요. 모든 중생이 이 자료를 보고 진상을 깨닫고 소중히 여기며 구원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수련 중에 좌절을 겪으면, 늘 움츠러들고 갈등을 회피했습니다. 때로는 관을 잘 넘지 못하면 풀이 죽고, 자신이 못난 사람이라며 낙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나는 정말 수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법을 암기하고, 법공부를 하면서 저는 이런 부정적인 관념들을 점차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소극적이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관을 잘 넘기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왜 넘기지 못했는지 안으로 찾습니다. ‘내 주의식이 느슨해진 건 아닐까?’, ‘요즘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나?’, ‘어떤 집착심이 원인이었을까?’ 이렇게 원인을 찾고 나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잘 넘기지 못했지만, 교훈을 삼아서 다음에는 반드시 잘 넘기겠어.’ 지금은 고비를 넘길 때면 가끔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께 말씀드립니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가 반드시 이 관을 잘 넘기겠습니다!’

부끄럽게도, 이렇게 오랜 기간 수련을 해오면서도 저는 연공할 때만 결가부좌를 할 뿐, 법공부할 때는 늘 다리를 풀거나 많아야 반가부좌로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업력 전화의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수련생들이 법공부할 때도 결가부좌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이 부분에서 제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념을 바꿨습니다. ‘고생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처음에는 결가부좌로 법공부를 해도 겨우 30분 정도밖에 견디지 못했지만, 이제는 한 강 전체를 결가부좌로 법공부할 수 있을 만큼 돌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혼자 법공부할 때도 계속 결가부좌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법을 외우며 실질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제가 대법의 신기하고 위대한 힘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며칠 동안은 제 피부 위에 한 층의 은은한 황금빛 광채가 비치는 것을 보았고, 또한 요시, 타심통 같은 공능들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신기한 현상들은 제가 수련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기존의 법 암기와 통독에 더해, 법을 베껴 쓰는 방식도 매일 추가해 법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사부님의 설법이 참으로 명확하다는 것을 느끼고, 배우면 배울수록 이 대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만고에 다시 없을 귀중한 것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가끔은 정말로 사부님이 그립습니다. 사부님의 법상이 저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신 모습을 볼 때면, 저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보내시는 격려라고 느낍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사부님께서 중국으로 돌아오시는 그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4/4915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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