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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의료계에서 ‘진선인’을 실천하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문연(文衍)

[명혜망] 저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20여 년 동안, ‘진선인(真·善·忍)’은 항상 저의 삶과 일의 지침이었습니다. 이제 수련 중의 작은 일들을 적어 파룬따파가 사람의 도덕성을 높이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고덕대법(高德大法)임을 증명하고,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는 좋은 사람들임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1. 이익에 연연하지 않다

현재 중국의 의료 체계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 개인병원 의사들은 모두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벌고 있습니다. 임금은 개인의 실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달 실적이 좋으면 임금이 높고, 실적이 나쁘면 임금이 낮습니다. 개인병원 의사의 이직률은 매우 높은데, 이 병원에서 돈을 벌 수 없으면 떠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원장이 특정 의사를 잡아두기 위해 진료비가 높은 환자를 그 의사 명의로 전환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의사는 실적이 높아져 돈을 벌 수 있고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저는 A 병원에서 6년간 일했는데 원장이 가장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의사라고 했습니다. 비록 제 실적이 가장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래, 가장 안정적으로 일했기에 원장은 저를 중시했고, 진료비가 높은 환자를 저에게 배정했습니다. 이런 환자들이 제 손에 넘어올 때, 때로는 원장이 이미 진료 업무의 대부분을 처리하고 저에게 일부만 남겨두었지만, 환자의 진료비 전체가 제 명의로 계산되어 제 실적으로 집계됐습니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원장이 직원에게 주는 간접 복지라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평소 병원 업무에 무상으로 기여한 것도 적지 않았기에 그것으로 보상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이런 일이 많아지면서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믿는 ‘진선인’의 원칙에 부합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자에게 실질적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환자의 보수를 받은 것은 ‘진실함’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장이 대부분의 진료를 처리했는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의 노동 성과를 제가 얻은 것은 ‘선함’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명확히 알려주셨고, 기여하지 않고 얻은 것은 ‘덕’으로 상대방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대법제자임을 떠올렸고 ‘진선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높은 수입을 얻고 싶다면 내 노동으로 얻어야지, 다른 사람의 노동 성과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이런 일이 생기면 원장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원하는 보수를 벌고 싶다고 명확히 말씀드렸습니다. 제 행동에 대해 원장은 처음에는 매우 의아해했는데, 제가 이렇게 한 유일한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원장은 당시 아무 말도 않고 제 결정에 동의해줬습니다. 이후 연말 회의에서 원장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시며 제 행동을 인정하고 칭찬해주셨습니다.

2.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체득하다

승진 시험 때문에 저는 원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쉰 후, 집에서 가까운 B 병원을 찾았습니다. 제 직위가 상대적으로 높았기에 원장이 주는 기본급이 매우 높았습니다. 1주일간의 수습 기간이 지난 후, 원장은 저와 대화를 나누며 제 인품을 매우 인정하며 여기서 일할 수 있지만 기본급은 좀 낮출 수도 있다며 제 생각엔 그럴듯하지 않은 감봉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당시 이미 겨울이 되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이 병원이 집에서 가까워 상대적으로 편리하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새로운 근무 환경에 적응하려고 준비할 때 변고가 생겼습니다. 제가 이 병원에 온 후, 병원의 환자 수가 급감해서 월수입이 210만 위안에서 80~90만 위안으로 떨어졌고, 게다가 막 사직한 의사가 다시 복직했습니다. 환자가 적을 때 원장은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을 데리고 2층에서 마작을 했고, 저 혼자 1층에 남아 진료를 보았습니다. 당시 병원의 상황은 의사는 많고 환자는 적었습니다. 병원에는 간호사가 한 명뿐이어서 모든 의사의 업무를 도와야 했기에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새로 온 의사라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환자가 없을 때는 자발적으로 무상으로 다른 동료들을 도왔습니다.

한 달 넘게 일한 후 어느 날 원장이 갑자기 저를 불러 다시 한번 기본급을 낮추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처럼 또 그럴듯하지 않은 구실을 댔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사실 이미 퇴사한 의사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원래 저는 그의 공백을 메우는 거였는데, 거기다 병원 환자 수까지 감소하니 ‘승려는 많은데 죽이 모자라는’ 상황이 되어서 제가 남아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면접을 볼 때 저는 이미 병원의 환자 수와 의사 배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병원에 인력이 부족해 의사를 급히 찾던 원장은 병원 수익이 좋아 높은 연봉의 의사도 감당할 수 있으니 안심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의사가 돌아왔으니 저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원장은 비용을 줄이려 한 것입니다. 다만 제가 병원에서 계속 다른 사람들을 무상으로 돕고 노력한 것을 봤었기에 바로 해고하기는 미안해서 감봉할 구실을 찾아 저 스스로 떠나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할 때 원장도 사직한 의사가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고 인정했는데, 사실 이것은 그들 사이의 소통 문제였습니다. 한겨울이라 새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구직을 해야 했습니다. 원장의 실수로 인한 결과를 제가 감당해야 했지만, 첫 생각은 원장과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이 늘 慈悲(츠뻬이)하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전법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저는 평온하게 사직을 제의했고 원장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로 모두가 큰 압박을 받고 있으며, 병원의 비싼 임대료와 직원 급여, 여러 지출을 감당해야 하니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원장은 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매우 기뻐하며 감사해했습니다. 저는 맡은 일을 인수인계하고 홀가분하게 병원을 떠났습니다. 원장도 그달의 보수를 제때 주었고 조금도 깎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B 병원에 오기 전에 거의 1년 동안 수입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직할 때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이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상당히 곤란한 처지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진정한 선이란 무엇일까?’ 당시 제가 이해한 바로는, 설령 내가 어려울 때라도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해한 선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른 신념을 가진 대법제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B 병원을 떠난 지 1주일 만에 저는 새 직장을 찾았는데 보수도 높고 근무 환경도 예전보다 좋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진선인 법리에 따라 행동하자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3. 새로운 출발점, 새로운 시작

약 3년 전, 저는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에 왔습니다. 제가 막 왔을 때 이 병원은 개업한 지 1개월밖에 안 된 완전히 새 병원이었고 고정 환자층이 없었습니다. 병원은 원장 두 명이 같이 개업한 것으로, 평소에는 두 명의 원장이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두 원장 중 A는 문외한이라 아는 게 없었고, B는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일을 안 해서 수준이 인턴과 비슷했습니다. 평소 두 원장이 관리를 맡고, 병원의 진료 업무는 대부분 제가 책임졌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의 의료 체계는 공립병원이든 개인병원이든 수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버는 곳입니다. 우리 같은 개인병원에서는 의료가 이미 상업화됐습니다. 대다수 원장은 장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우리가 파는 것이 의료 기술과 서비스라는 것뿐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씨의 의사를 만날 지는 환자의 운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면 돈을 좀 덜 쓸 수 있겠지만, 마음씨가 나쁜 의사를 만나면 속을 수도 있고 큰돈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병원에 온 후로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진선인 법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환자를 대할 때는 전심전력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며, 절대 돈을 벌기 위해 환자를 속이지 않겠다.’ 이 병원 원장도 매우 선랑해 제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고품질 서비스로 환자의 입소문과 신뢰를 얻으려 했습니다.

일상적인 진료에서 저는 환자에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병세와 치료법, 주의사항, 진료비, 그리고 치료 후 도달할 수 있는 효과를 최대한 환자에게 명확히 알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로써 환자가 자신의 상태와 전체 치료 과정에 대해 명확하고 뚜렷한 인식을 갖게 하여, 환자가 더 안심하고 믿고 이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때로는 좀 까다로운 환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저는 최대한 대법 중에서 닦아낸 선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보통 이런 환자들은 치료가 끝난 후 우리를 매우 인정해주었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처음 왔을 때 요구사항이 많았고 말투도 좀 거칠어 접근하기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 아주머니는 좀 민감해서 제가 치료할 때 강한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녀의 치료가 끝난 후 원장이 말했습니다. “이번엔 골치 아픈 환자를 만나셨군요.” 처음에는 저도 이 아주머니를 좀 꺼렸고 핑계를 대며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제게 왔다는 것 자체가 인연이고, 저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니까 당연히 괴로운 것인데 환자의 태도까지 탓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진실함과 선함으로 그녀를 대하고 결과가 어떨지 보기로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두 번째로 진료받으러 왔을 때는 증상이 완화됐고, 저에 대한 신뢰감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치료에서 아주머니는 점점 더 협조적으로 됐습니다. 그녀는 치료를 마친 후 저에게 “다음에 아프면 또 선생님을 찾아올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병원에는 이런 환자가 그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상 업무에서 이해관계의 얽힘 속에서도 저는 항상 저 자신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려 노력했습니다. 때로 원장의 친척이나 친구가 와서 진료를 받을 때 원장이 아주 큰 폭의 할인을 해주면, 제가 같은 양의 일을 해도 수입이 적어지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환자에게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대했습니다. 가끔은 제가 큰 치료 건을 받아서 환자의 진료비가 매우 높았은데, 원래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B 원장과 반반씩 나누어 진료비를 분배했습니다. B도 병원에서 환자를 접대하면서 월급을 받고 수수료도 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막 왔을 때 B 원장의 수준은 인턴과 비슷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문제를 물어올 때면 저는 아는 것을 아낌없이 모두 알려주었고, 그녀의 많은 진료 방법도 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동료는 저에게 “당신이 아는 걸 절대 남에게 가르쳐 주지 마세요. 제자를 가르치면 스승은 굶어 죽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이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B 원장의 수준이 높아지면 병원 전체와 환자에게 모두 좋은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병원에 막 왔을 때는 간호사가 있었지만 이후 간호사가 그만두었고 저와 A, B 두 원장만 남았습니다. 전염병 사태 3년간 중공은 전염병이 조금만 돌아도 도시를 봉쇄했고 주민들의 삶은 매우 고달팠습니다. 원래 이 병원의 수익이 괜찮았는데, 중공의 이런 행태 때문에 병원의 수입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병원 수익이 줄자 원장은 더 이상 간호사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비용을 절약하려 했습니다. 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환자가 없을 때는 자원해서 일부 간호사 업무를 떠맡았습니다. 간호사가 떠난 지 2년이 됐지만, 저는 계속 묵묵히 이렇게 했는데 불평한 적도, 원장에게 이 부분의 임금을 요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원장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매우 감사해했습니다.

2022년, 제가 있는 도시는 전례 없이 엄격한 봉쇄를 몇 달간 겪었고, 모든 경제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어 저 역시 몇 달간 수입이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봉쇄가 풀리면 B 원장 부부는 차를 몰고 저희 집에 와서 1천 위안을 주며 몇 달 치 복지 보조금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감사의 뜻을 표하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사실 원장들도 매우 힘들었는데 몇 달간 수입이 없었을뿐더러 여전히 비싼 임대료를 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몇 달간의 봉쇄를 겪으면서 아마 1년을 무상으로 일한 것과 같았을 겁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일에서 타인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셨기에, 저는 그 1천 위안을 받지 않고 원장이 보내준 몇 가지 식품만 받았습니다.

같은 해 추석에 원장은 복지 차원에서 500위안의 축의금을 주었습니다. 저는 봉쇄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업 수입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원장의 경제적 부담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다시 한번 정중히 거절하고 월병 한 상자만 받았습니다. A 원장은 감탄하며 “우리는 정말 좋은 분을 만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걸어오면서, 일상 업무와 삶에서 진선인을 실천하는 것은 저에게 선의 힘이 전달되고 순환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원장은 저를 매우 신뢰해줍니다. 또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의 박해를 받았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깊이 동정해주었는데, 어쨌든 공정함은 사람들 마음속에 다 있습니다. 게다가 B는 중공의 악당 본질을 매우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서 평소에 저를 많이 보호해주었습니다. A도 제가 평소에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현재 우리 병원의 환자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고 우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은 대부분 단골이 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서비스를 매우 인정하면서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하며, 어떤 환자는 한 가족 모두가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3년간 우리는 매우 큰 환자층을 확보했고 이 지역에서 우리 병원의 평판은 매우 좋습니다.

맺음말

26년의 수련 과정을 돌아보니 마음속에서 한없는 감동이 일어납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해주신 파룬따파가 저에게 인간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와 어떻게 수련해서 자신을 제고하는지, 좋은 일을 하면 덕을 쌓게 되고 악행에는 정말로 응보가 있다는 것 등, 속인들이 모르는 많은 법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물욕이 가득한 말세에 직면해 여러 유혹 속에서도 바로 대법의 인도가 있었기에 저는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며 자신을 극복하고 바로잡을 수 있었고, 욕망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파도에 떠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탁류가 넘실대는 속세에서 오직 대법 사부님만이 제자들을 이끌어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게 하시고, 인류로 하여금 전통과 선량함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마지막 순수한 땅과 희망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중공이 진선인 신앙에 대해 자행한 잔혹한 박해는 그 자체가 극악무도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이 지극한 선과 극악무도한 악의 선명한 대비 속에서 양심 있는 모든 이들이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릴 수 있길 희망합니다. 모든 선량한 사람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아홉 글자의 진언을 기억해, 파룬따파의 빛 속에서 자신을 정화하고, 자신의 생명을 위해 영원한 봄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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