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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간 제과점에서 일하면서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들을 구하다

글/ 영국 파룬궁수련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2007년에 중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2년 6개월 전에 나는 광고를 보고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중국식 제과점에 취직했다. 팬데믹 동안 그곳에서 일하면서 진상을 알리고 자신을 수련할 완벽한 기회를 얻었다.

이기심 제거

2020년 초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더는 지역 관광명소에서 파룬궁 진상 알리기 부스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 내가 일하던 제과점도 임시로 문을 닫아야 했다. 나는 갑자기 시간 여유가 많아졌다. 나는 RTC 플랫폼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에 진상 전화를 걸었고, 플랫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빨리 적응하도록 도왔다. 하루하루 바빴지만 보람이 있었다.

5월 말 어느 날, 제과점 사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이 아무도 없는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도록 도와드릴게요.” 그는 매우 감동했고 내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수련자로서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의 상황을 이용할 수 없었다. “돈을 더 주실 필요는 없어요. 전에 주시던 만큼만 주세요. 이런 상황에서 사업이 얼마나 잘 될지 모르잖아요. 저는 사장님이 손해 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장님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하루에 100유로(약 13만 원)는 줄게요. 혼자서 일하니까 쉬는 시간 없이 오래 일하게 될 거예요.”

이렇게 6월 초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장사가 잘됐고 손님들이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장님은 영업시간을 여러 번 늘렸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하다가 나중에는 나흘 동안 일했다. 며칠 후 다시 주 5일로 조정했다. 그리고 영업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심지어 6일제로 2주간 일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 몇 번은 사장님이 근무시간을 늘린 것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근무시간을 또 늘리자 좀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의 근본 원인을 안으로 찾았다. 바로 원한심이었다. 나는 업무가 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느꼈다. 나는 일주일에 5~6일 일하다가 지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내 이기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사실 사장님이 시간을 조정할 때마다 나에게 설명해주고 괜찮은지 물었다. 내가 동의했으므로 약속을 지키고 일을 잘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제과점이 진상 플랫폼이 되다

다시 일하기로 했을 때 나는 바이러스 감염이 두렵지 않았고 사장님을 돕고 싶었다. 간단한 결정이었다.

며칠간 혼자 제과점에서 일하다가 절호의 기회를 보았다. 나는 혼자 있었고 한 번에 한 명의 손님만 받았다. 1대1로 진상을 알리기에 딱 좋은 환경 아닌가? 여러 사람이 가게에서 일할 때는 대법에 관해 손님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손님과 더 오래 대화하면 동료들이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얻기 힘든 귀중한 기회였다. 나는 영어와 중국어로 진상자료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영어를 말하는 손님이 오면 영어로 된 전단지를 줬고, 아시아인이면 먼저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했다. 중국에서 왔으면 먼저 대화를 나눈 뒤 전염병에 대한 소책자나 ‘밍후이 인터내셔널’을 주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받았고 고마워했다.

솔직히 나는 사장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에 손님들에게 전단지를 주는 것이 걱정됐다. 계산대를 직접 가리키는 카메라를 포함해 매장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장님은 눈치챘을 것이다. 이 우려는 심성관을 만나게 했다.

어느 날 푸젠성(중국 남부) 억양의 고객이 왔다. 계산할 때 나는 그에게 진상 소책자를 줬다. 그는 페이지를 넘기며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책자를 계산대에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중국공산당(중공)을 반대하는데 내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아!?”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묻자 그는 배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영국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그가 사장님께 불만을 제기할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그 일념을 제거했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곧 전단지와 소책자를 모든 손님에게 나눠줬다.

따지웬(大紀元) 신문을 알리다

현지 수련자들은 제과점 바로 앞에 있는 중국 신문 상자 위에 따지웬 특별판을 무료로 놓았다. 이는 훌륭한 자원이었다. 사람들이 우한 바이러스의 기원과 대법 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신문들을 가게로 가져오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나는 사람들에게 그 신문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따지웬을 소개하는 몇 가지 간단한 문장을 생각해냈고 다른 수련자에게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했다. 영어를 하는 손님들이 올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따지웬에 관해 이야기하고 구할 수 있는 곳을 알려줬다.

대부분 사람은 신문을 받고 만족했다. 신문을 손에 들고 제과점을 지나가면서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도 있었고 고맙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고객이 잘못된 신문을 가져가면 나는 그것을 다시 상자에 담고 따지웬 특별판을 보여줬다. 적어도 24명의 손님이 매일 신문을 가져갔다.

전단지가 다 떨어지고 중국인 손님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손님에게 진상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 빵을 고르고 결제하기까지 대부분 몇 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진상을 깊이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

어느 날 수다스러운 중국인 남자가 들어왔다. 계산할 때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릴까 생각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계산하고 떠났다. 자신에게 실망한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사부님, 도와주세요. 지혜를 주세요.’

사부님의 도움으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팬데믹 기간에는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죠”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고 진상을 알렸다. 중국인들에게는 공산당과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가게에 오는 모든 손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로 인해 하루가 끝날 무렵 내 입안은 바짝 말랐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말하는 것을 갑자기 멈췄다. 손님과 이야기하거나 진상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악은 내가 입을 열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바로잡고 사람들과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과점에서 혼자 일하는 5주간 나는 10여 명이 넘는 고객이 공산당과 공청단을 탈퇴하도록 도왔다.

제과점 사장에게 진상을 알리다

2021년 1월, 영국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다른 동료들은 두려워 다시 휴가를 냈다. 그들은 확고했고 사장님은 실망해서 화를 냈다. 나는 사장님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했다. 그는 어쨌든 매달 3000유로(약 400만 원) 이상의 임대료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제과점이 문을 닫아도 그는 여전히 월세를 내야 했다. 그래서 엄청난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사장님은 나에게 지난번처럼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는 안도하면서 예전처럼 하루에 100유로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다정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 장사가 잘 안됐어요. 매출이 거의 30%가 줄었어요. 계속 제과점을 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내가 제과점의 이익에 마음을 쓰는 것을 고마워했다. “절 도와주는 사람은 당신뿐이네요. 이 힘든 시기에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나는 다음 두 달간 사장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를 더 잘 알게 됐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진상을 알리고 대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어요. 제 반응은 ‘그게 어때서?’였어요. 그러나 파룬궁수련자인 당신이 이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절 도와줄 줄은 몰랐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돈을 아주 가볍게 여겨요.”

사장님이 칭찬할 때마다 나는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은 자신을 실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임을 상기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것은 모두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파룬따파는 제가 진선인(真·善·忍) 보편적 원칙을 따르고 선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장님은 내가 대법에 관해서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천성적으로 좋은 사람이기에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법에 대한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자신이 어떤 종교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파룬따파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했다. 나는 믿음 때문에 내가 중국에서 어떻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사장님께 편지를 썼다. 편지를 읽은 후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예전에 아버지가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셨는데 중국공산당이 우리 집을 약탈했어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이 편지를 여러 동료에게 나눠줬지만 사장님께는 편지를 줄 용기가 없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로 했다. 나는 중공이 얼마나 사악한지 사장님께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박해를 둘러싼 진상과 대법 수련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계산대에 대법 전단지를 두는 것에 대해 사장님의 기분이 어땠는지 한번 여쭤보았다. “일은 일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아요.” 나는 그의 우려를 이해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적어도 내가 고객에게 대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찬성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힘든 시기에 절 도왔어요”

어느 날 사장님은 입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제과점을 지키겠다고 말하며 빠른 쾌유를 빌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10년 넘게 암과 투병해 온 이 70대 사장에 관해 생각했다.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일을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다. 제과점을 돌보는 것은 그의 장사에 도움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대법에 대한 진상을 말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고 그를 밝은 미래로 이끄는 것이다.

나는 수련자가 작곡한 노래 ‘소원’과 사부님의 설법 링크를 사장님에게 보냈다. 나는 그에게 박해 이전에 대법이 중국에서 어떻게 널리 퍼졌는지 들어보라고 했다. 노래를 듣고 그는 좋다고 했다. 또한 그는 사부님의 설법 강의를 세 번 들은 후 사부님께서 말씀을 잘하신다고 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인연 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대법에 대한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 이 제과점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자주 생각했다.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알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직하고 착실하게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다. 속인은 ‘전법륜(轉法輪)’을 읽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행동에서 대법을 배울 수 있다.

사장님은 나중에 2명의 도우미를 고용했고 나는 그들을 교육하는 책임을 맡았다. 한번은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는 나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은 힘든 시간에 절 도왔어요. 나는 경험 많은 직원을 데리고 있고 싶지 않은데 그들이 이익에 너무 밝아서예요. 그들은 상황이 어려울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요. 나는 이제부터 당신이 이 가게를 관리해 줄 거라고 믿어요.”

나는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매니저가 있으면 많은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두 직원은 경험이 있고 일을 할 줄 알아요. 그들을 데리고 있으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실 수 있을 거예요.”

동료에 대한 원망을 제거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사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전 매니저가 다시 일하고 싶어 하네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나는 말했다. “사장님께서 옳다고 믿는 대로 하세요. 저는 항상 사장님의 결정을 존중해요.” 솔직히 나는 매니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매니저가 돌아오는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가게의 영업시간은 두 달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두 달 후 매니저는 사장님과의 불화로 그만뒀다. 우리는 다섯 명이 남았다. 두 명의 숙련된 직원, 두 명의 신입 사원, 그리고 나였다. 나는 매니저 역할을 맡으면서 깊숙이 숨겨진 많은 사람의 관념들이 표면으로 올라왔다. 그것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 특히 경험 많은 동료 2명과 일할 때 폭로됐다.

제과점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열심히 일했고 개인의 이익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가끔 갈등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돌아보며 해결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출신 노부인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항상 나에 대해 불평하고 내가 잘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잘난 체하며 “당신은 내가 죽을 만큼 화나게 했어”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하루에 여러 번 ‘죽을’ 정도로 그녀를 화나게 하는 날도 있었다. 그녀와 같이 근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 말레이시아 여성은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익을 보호했다. 내가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항상 전 매니저에게 그녀에 관해 말한다고 의심하면서 날 싫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 매니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군림하는 성격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경험이 많았기에 주변 사람들을 매우 조심했다. 그녀는 종종 “월급을 위해 참는 거지”라고 말했는데 내가 신입이었기에 주로 내 앞에서 그 말을 꺼냈다. 나는 그녀와 논쟁한 적은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고 그녀를 깊이 원망했다. 집착심을 찾아 제거하려 했지만 이따금 계속 생각났다.

내가 매니저가 되자 그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그녀는 모든 작은 일에서 내 의견과 허락을 구했다. 판매할 때도 얼마를 청구해야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녀에 대한 뭔가가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딱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당신과 저는 모두 이 가게의 직원이에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확인할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거칠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왜 그렇게 대했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강한 집착심과 원한심을 찾았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이전에 날 괴롭히고 도전적이었지. 이제 매니저가 된 날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네.’ 이 더러운 집착심을 발견했을 때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집착심을 원치 않아. 제거할 거야.’

나는 한번도 법에 근거해 우리 관계를 가늠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여성을 원망했다. 그렇다. 그녀가 날 괴롭혔을 수도 있지만 법에 의하면 이유 없는 일은 없다. 내가 전생에 그녀를 그렇게 대했기에 이번 생에 그녀가 날 나쁘게 대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오래전에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나는 고층차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이 문제를 속인처럼 대했다.

직원들은 일요일마다 다음 주에 주문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과 재료 목록을 사장에게 제출한다. 나는 일요일에 일하지 않았기에 말레이시아 여성이 목록 작성을 담당했다. 그녀는 종종 실수했고 사장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사장이 그녀에게 지적하자 그녀는 더욱 당황했다.

사장은 전화를 걸어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번 주말까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녀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나는 왜 그녀를 돕지 않았을까? 나는 재고 집계와 목록 작성법을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아직도 원한을 품고 그녀를 원망하는 건가?’ 나는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목록 하나를 작성하지 않으면 걱정할 것이 하나 줄어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목록을 만드는 것은 사실 내 일이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가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매주 도왔다.

나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하므로 말레이시아 여성은 내가 쉬는 날에는 현금잔고를 정리할 책임이 있었다. 사장은 그녀에게 몇 번 알려줬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주 실수했다. 사장은 나에게 다시 그녀에게 설명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배운 몇 가지 기술과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녀는 이제 실수를 훨씬 덜 한다.

나는 수련하면서 원한심이 줄어든 것을 느낀다. 나는 이제 그녀를 더 배려하고 있다.

매니저로서 자신을 닦다

말레이시아 여성 말고도 제과점에서 13년간 오래 일한 동료가 있다. 그녀는 종종 나에게 명령하고 나를 좌우지하려 한다.

매장에서 약 9m 떨어진 곳에 창고가 있다. 예전에는 가게에서 뭔가를 보충해야 할 때 주방의 남자 동료가 항상 우리를 위해 그것을 갖다줬다. 그러나 그가 부재중일 때는 우리 중 누구도 창고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재고 보충을 더 편리하게 하려면 모든 사람이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내 제안을 듣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이 오랜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창고에서 물건 찾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엔 정말 귀찮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집착심이 있었다. 사실, 이 오랜 직원이 창고 위치와 물건을 가져오는 방법을 알든 모르든 일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여자가 셋이면 연극 한 편을 공연한다(三個女人一台戲)’는 말이 있다. 제과점에서 5명의 여성이 일하면서 빈번하게 심성관이 왔다. 그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더 겸손해지고 인내심을 길러야 했다. 사장이 날 믿는다고 해서 다른 직원들 앞에서 뽐내거나 내세우려 해선 안 된다. 내가 진정으로 이것을 해낸다면 심성관을 넘기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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