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다른 수련생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찾기 어려운 문제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자기 관념으로 수련생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면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 자기 마음속에서 많은 수련생을 틀에 가둬 누구는 사람 마음이 많고, 누구는 두려움이 심하며, 누구는 오성이 좋고, 누구는 정진하며, 누구는 정말 좋고, 누구는 변하려 하지 않으며,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는 등등 정의하게 된다.
사실 사부님 외에 어떤 한 대법제자의 진실한 정황을 분명히 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본다 해도 표면 형식일 뿐이다. 한 생명의 배후에 얼마나 방대하고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는가? 그의 역사가 얼마나 심원하고 그의 생명이 얼마나 미시적인지, 그의 생명이 포괄하는 범위가 얼마나 크고 복잡하며, 표현되는 형식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할지,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의 관념으로 이 일체를 가늠하거나 그의 외적 표현을 가늠할 수 없다.
흔히 수구(修口)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주의 깊게 잘 파악할 수 있어 다른 수련생이 어떻다고 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늘 여러 수련생에 대해 갖가지 정의를 내리며 심지어 장기적으로 이런 생각을 고수한다. 자기의 일사일념을 닦아내지 못하면서, 또 관념과 집착을 강화해 자기 눈에 부족해 보이는 수련생을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수련생은 우러러본다. 이런 것은 모두 자신의 협애한 인식이다. 이런 협애한 인식은 ‘마음에 안 든다’는 마음을 일으켜 간격을 형성하는데, 이런 인식으로 인한 ‘숭배’는 정체에 손실을 준다. 이는 모두 자신의 사람 마음, 사람의 이치, 사람의 인식이 조성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제자다. 사부님께서는 매 한 대법제자의 수련 길을 안배하시며, 모든 대법제자는 다들 사부님의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시기에 따라 표현이 다를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또 일부 사람, 그는 높게 수련하지 못하는데, 그 자신이 휴대한 것과 그 자신의 인내력을 한데로 결합한 것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사람은 아주 낮은 층차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하고 철저히 개오(開悟)하는, 이런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1]
이런 사람이 보기에는 꼭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당신이 그를 우러러보지만, 어쩌면 당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더구나 한 생명의 경지가 높고 낮음을 이유로 사람 마음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주에는 각기 다른 층차가 있고 그 층차에 따른 생명이 그 층차의 우주를 번영시키고 있다.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로서 우리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잘 수련하고, 어디서든 대법의 표준으로 안으로 찾아야 한다. 누구를 상대하든 자비롭고 선하게 대해야 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만사만물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수련생을 거울로 삼아 차이점을 보아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눈에 수련을 잘한 것처럼 보이는 수련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관념으로 가늠하거나, 항상 마음속에 그가 좋다는 생각이 가득하거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도 대법의 각기 다른 층차에서 수련하고 있기에 그도 그렇게 표현될 뿐, 부러워하거나 높게 볼 것이 없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부족한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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