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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도와 ‘병업관’을 넘긴 약간의 체득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 수련생들 가운데 신체에 심한 병업가상이 나타난 수련생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게다가 오래 지속되었고 어떤 수련생은 구세력에 의해 육신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일부 이런 수련생을 접하면서 생긴 몇 가지 깊은 체득을 써내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관념을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언급한 ‘병업관(病業關)’에 따옴표를 넣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로부터 대법제자는 그것이 ‘병’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접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련생이 뼛속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병’이라는 관념을 바꾸지 않았고 심지어 발정념을 돕는 수련생도 이 점을 깨닫지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고비를 넘는 수련생의 신체 표면 증상을 언급할 때, 입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일련의 온갖 병명을 말하며 고비를 넘는 수련생도 수많은 병명을 말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고혈압, 당뇨병, 유방암, 위암, 오십견 등입니다. 그런 다음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발정념을 해 깨끗이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의 배후 요소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수련생이 병명을 말할 때 곧 그것을 인정한 것과 같고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발정념을 하는 것은 박해를 인정하면서 박해를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비를 넘는 수련생 가운데 사람의 이런 관념이 매우 심했고 신체적으로 괴롭기만 하면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속인의 수많은 병명을 연상했으며 괴로울수록 걱정돼 결국 속인의 치료 수단을 찾았습니다. 발정념을 돕는 수련생들도 처음에는 자신감이 충족했다가 결국에는 조급해져 원망하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양측도 안으로 찾는 것을 알지만 한참을 찾고도 병명에 대한 집착과 승인이라는 이 사소한 부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법리가 명석해야 ‘가상’을 타파할 수 있다

밍후이왕의 많은 교류 문장에서 우리는 많은 수련생이 ‘병업가상’이라는 이 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가상’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문제의 실질과 진상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수련생에게 고비를 넘을 때 명석한 두뇌를 유지해야 하고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똑똑히 인식해 해체해야 하며 이념적으로 진정하게 승인하지 않는 것을 해내도록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이 ‘병업가상’의 교란을 완전히 타파하려면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잘해야 하고 법리가 명석해야 근본적으로 난에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난에 처한 수련생을 접하면서 법리가 명석하지 못하고 법공부가 적어서 매우 적게 기억하고 있으며 대부분 ‘논어’마저 외우지 못해 난에 부딪혔을 때 머릿속에서 반영되어 나온 것은 법리가 아닌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나타난 ‘가상’을 ‘진상’으로 여기고 인정하며 느끼며, 안으로 찾을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감당하는 수련생이 비교적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난(難)’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많은 수련생이 난에 처한 수련생을 도와 고비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흔히 이런 체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도 난에 처한 수련생에 의해 이끌려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고 늘 수련생을 염려해 법공부와 연공할 때 계속 그 수련생을 떠올리고, 어떤 때는 발정념을 하면 매우 힘든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집착이 생겼고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신속하게 조정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에서 구세력에 이용당해 난에 처한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가중해 그 수련생을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련생을 해치게 됩니다. 이지적이고 명석한 상태를 유지하고 수련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틈을 타지 않고 수련생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난에 처한 수련생이든 도움을 주는 수련생이든 이 ‘병업가상’을 무겁게 봐서는 안 됩니다. 난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 대부분은 이 이른바 가상을 매우 무겁게 보고 내려놓지 못한 것이 비로소 걸어 지나오지 못한 진정한 원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거듭 제자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1]

하물며 이 난은 ‘가상’일 뿐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는 것이 핵심

사실 고비를 넘는 수련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는 환경입니다. 오직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해야 비로소 온몸을 법에 녹아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완전히 법에 녹아들었을 때, 모든 바르지 않은 요소가 전부 해체되고 생명도 법에서 승화를 얻게 됩니다. 제가 고비를 돌파할 때 깊은 체득이 있었습니다.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남은 시간은 전부 법공부를 하고 법을 들으며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며 연공 하는 것에 사용했습니다. 특히, 다량의 법공부와 법외우기를 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책을 다 한 번씩 보는 동시에 발정념의 시간과 횟수를 늘려야 합니다. 또한, 질을 보장해야 하는데 혼미해 손바닥이 넘어가서는 안 되고 졸릴 때 눈을 뜨고 발정념을 하며 정념 구결을 반복하면서 한동안 견지하면 곧 나아집니다.

마음이 매우 고요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전부 법일 때, 자신이 텅 빈 것을 발견하며 주변 일체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며 이른바 마난 가상이 일찍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교류에 관해

수련생 간의 교류도 수련생의 정념을 가지(加持)하고 수련생이 난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을 강화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류하러 가는 수련생이 반드시 법리가 명석하고 정념이 매우 충족해야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교류는 더욱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고 효과도 사람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때때로 수련생이 처한 환경과 심리적인 감당 능력을 고려해야 하고 일방적인 생각으로 강제해서 수련생 가족의 오해와 반감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것은 좋지 않으며 적절히 속인 상태와 예를 갖추어 방문하는 예의에 부합하면 수련생을 문안가기에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수련생 집에 수련하지 않는 가족도 반감이 들지 않으며 이 기회를 빌려 수련생 가족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습니다.

수련생의 가족이 비교적 민감하므로 병원에 가는 문제에 관해 교류하러 가는 수련생이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수련생 가족에게 우리 대법은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병원에 가는지 아닌지는 개인의 결정이라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간 적이 있어 심리적으로 부담이 큰 수련생에 관해, 수련생이 사상적인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감을 세울 수 있도록 더욱 법리에서 교류해야 합니다.

이상은 최근에 느낀 개인적인 약간의 체득으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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