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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마음을 다하여 진상을 알려 신의 길을 평온하게 걷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7년부터 대법을 수련해 오늘까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1999년 이전에 파룬따파는 중국 전 지역에 널리 알려져 수련생이 1억 명에 달했습니다. 1999년 이후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그간 저는 대법제자들의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불굴의 의지와 정념을 목격하고 사부님의 자비와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몸이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심장 한 부위에만 다섯 가지 병이 있었습니다. 심장병 외에도 류머티즘 관절염, 신장염, 메니에르증후군도 심했습니다. 1997년에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직장동료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제가 퇴원한 후 그 동료는 저에게 ‘전법륜’ 한 권을 선물했으며 그때부터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하자 모든 병이 사라져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지 않았으며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습니다. 친척이나 친구, 직장동료, 이웃을 막론하고 모두 신기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이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진상을 알리면서 파룬궁 수련을 견지해왔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일이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6일 만에 구치소에서 나오다

2015년 어느 날 점심, 저는 가게 안 사람들에게 션윈 CD를 배포하다가 신고당해 파출소로 연행됐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저는 침착했고 줄곧 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끌려간 방에 의자가 있었는데 철제 의자여서 앉지 않았습니다. 거의 20여 명의 경찰과 정법위, ‘610’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줄곧 사부님의 법을 외웠기에 정념이 생겼습니다. 당시 저는 심문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 기회에 진상을 잘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혜택을 본 것, 수련 중에서 어떻게 심성을 제고하고 좋은 사람이 됐는지와 가족들이 복을 받은 사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중 좀 흉악해 보이는 남자가 공산당이 수련하지 말라고 하는데 감히 수련한다고 고함쳤습니다. 저는 발정념으로 그 남자 배후의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한편 계속해서 “당신은 공산당이라고 했는데 공산당이 뭔지 알아요? 마귀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20여 명이 모두 약간 놀란 것 같았고 아무도 더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대법 진상을 알리고 나서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추세, ‘장자석(藏字石)’, 동서고금의 예언을 알렸습니다. 그날 사부님의 가지로 저의 지혜는 끊임없이 샘솟았습니다. 저는 30분 넘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모두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들이 간 후, 한 젊은 경찰이 저에게 “원래 우리는 당신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당신은 운이 안 좋았어요. 오늘 구 정법위, 공안국, ‘610’ 전부 우리 여기서 회의를 했는데 우리는 몇 번이나(당신을 풀어주자고) 요청했으나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 20여 명이 모두 회의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경찰은 저를 안쓰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고 경찰은 진상을 알고 나서 나쁜 일에 동조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에 경찰은 저를 데리고 우리 집에 가서 가택수색을 했는데 저를 집에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정말 잘 대처했습니다. 남편은 공예품 하나를 꺼내서 가택수색 하러 온 경찰에게 보여주면서 그 공예품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된 것은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 공예품은 저와 남편이 상가에 갔을 때 보다가 제 부주의로 그것을 좀 망가뜨렸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 돈을 갖고 다시 그 주인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고 그 공예품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 주인은 매우 감동해 이렇게 좋은 사람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그 가게 주인은 저에게 팔기를 거부했으나 제가 사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들여온 원가에 팔았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가택수색을 갔던 경찰들은 모두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 경찰은 저를 구치소로 데리고 갔으나 구치소에서는 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다시 파출소로 데리고 가서 계단이 있는 방에 가뒀습니다. 그날은 몹시 추웠는데 저를 지키던 두 경찰이 저에게 잘 대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춥다면서 함께 불 앞에 가 있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가서 불을 쬐는 것이 좀 불편해서 다시 돌아와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는 그 경찰이 “공산당은 정말 나빠! 저 할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다 가두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두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또 저를 구치소로 연행했습니다. 저는 구치소에 6일 동안 감금됐습니다. 구치소 안 ‘우두머리’는 저에게 이전에는 파룬궁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는데(그녀는 TV의 파룬궁에 대한 유언비어를 믿었었음) 구치소에서 몇 명의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듣고 대법제자들 몸에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좋다며 저를 잘 보살펴줬습니다.

그 며칠 동안 밖에 있는 수련생들은 저를 위해 부단히 발정념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변호사를 청해왔습니다. 저도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고 발정념으로 자신을 청리했습니다. 6일째 아침에 구치소에서 나가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구치소를 떠날 때 한 경찰(파출소에서 진상을 들었음)은 대문을 등지고 “당신들 파룬궁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그들은 저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고 유치장에서 9일간 감금시키려 했습니다. 저를 데리고 간 경찰은 아주 선량했고 진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는 길에서 그들은 저에게 “안심하세요, 할머니는 연세가 이렇게 많으니 우리가 유치장 측에 말해서 받지 말라고 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유치장에 도착해서 경찰만 내리고 저는 차에 앉아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감금하지 않는대요. 집으로 가실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대법의 법력은 끝이 없다는 것, 수련생들의 발정념 위력과 선량한 경찰들의 도움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중공 바이러스로 도시와 도로가 봉쇄됐으나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봉쇄할 수 없다

중공 바이러스가 발생한 후 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다그쳐야 하고 사람을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도시를 봉쇄하고 아파트 단지를 봉쇄 했으나 예전처럼 매일 나갔습니다.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인연 있는 사람이고 진상을 들으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길에 행인이 거의 없었지만 저는 매일 몇 명씩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없으면 저는 문을 연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뭘 하러 왔냐고 물으면 “신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전해주고 평안을 보내주라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파룬궁은 사람을 구하고 있으며 진선인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바이러스 중에서 평안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면 중공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나서 저는 진상 호신부와 책자들을 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하루는 한 음식점이 문을 연 것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안에 두 젊은이에게 인사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궁이란 말을 듣자마자 두 젊은이는 반감을 보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을 말하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예요. 봐요, 현재 사람들은 모두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서로 다투고 서로 속이고 속는데 파룬궁만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또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고 잘 대하고 살생하지 말며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치지요. 현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만이 이런 것들을 해낼 수 있어요.”

젊은이는 듣고 나서 “전에 TV를 봤는데 파룬궁은 ‘분신자살’하고 ‘살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파룬궁은 아주 좋은 것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요, TV에서 말하는 것은 유언비어에요. 파룬궁은 ‘진선인’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이 누구에게 나쁘겠어요?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삼퇴에 대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아마 ‘공산당선언’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공산당은 서양에서 온 유령이에요. 중국어로 말하면 마귀지요. 봐요, 공산당이 중국에 온 후부터 얼마나 많은 나쁜 일을 했고 얼마나 많은 운동을 벌여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어요? 만약 당신들이 그들의 조직에 가입했었다면 신께서 당신들을 보호해주실 수 없어요. 당신들이 마음으로 탈퇴하고 중국공산당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 신께서 당신들을 보호해주실 수 있어요.”

그중 한 젊은이가 공청단, 소선대 조직 탈퇴에 동의했고 다른 한 명은 중공 조직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진상 자료와 호신부를 그들에게 나눠줬는데 그들은 모두 받았습니다. 내가 나올 때 두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친척에게 진심으로 진상을 알리다

몇몇 먼 친척들이 우리 시에 살고 있지만, 왕래가 아주 적었습니다. 저는 딸을 통해 그들의 주소를 알아내 직접 방문했습니다.

그중 한 친척은 40세가 넘었는데 한 부서의 사당(邪黨) 서기였습니다. 그날 긴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아, 큰어머니, 오늘 우리 회사에서 회의했는데 당신들 파룬궁 자료를 받으면 신고하라고 했어요. 파룬궁 사람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도 신고해야 해요.”라고 말하면서 삼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네가 서기이기에 더더욱 진상을 알아야 해.”라고 말하면서 가기 전에 베낀 사부님의 시 ‘신이 나에게 진상을 알리라 하네.’를 보여줬습니다. “대지가 기울고 꺼질 때를 기다리지 말고 역병이 집에까지 찾아오게 하지 말며 나날이 나빠지는 세상기풍에 휩쓸리지 말라 구원받는 자 필히 양지(良知)가 있으리니 신은 세인을 잊지 않았다네 탄압 중의 요언 날조 듣지를 말게 대법제자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한 이는 신이라네”[1]. 그는 보고 나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또 그에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혜택을 본 상황을 알렸고 친척들이 진상을 알고 복을 받은 사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듣고 나서 삼퇴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심하라면서 그 일은 그와 나, 사부님만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오기 전에 진상 호신부와 자료를 그에게 줬습니다. 호신부란 말을 듣고 그는 “제 아내에게 주겠습니다. 아내는 야간에 출근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올 때 그가 차로 저를 집까지 데려다줬습니다.

또 60세가 넘은 한 친척은 퇴직하기 전에 직장의 사당 서기였습니다. 저는 그에게도 진상을 알렸었는데 그는 삼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줄곧 마음에 담고 있다가 다시 찾아가서 삼퇴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그의 딸은 가게를 차렸는데 한번은 그가 가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게로 갔습니다.

저는 진상 달력을 몇 개 갖고 갔는데 일부는 그의 몇몇 누나와 여동생(이미 진상을 알고 있음)들이 달라고 한 것이고 하나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달력을 보더니 “이 달력은 정말 좋아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요, 이렇게 아름다운 달력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어요. 집에 걸어놓으면 사실은 복을 받은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그 기회에 삼퇴를 권했는데 그는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사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나설 때마다 같은 장소에서 합장하면서 신의 보호를 빌어요.”라고 했다. 저는 “거봐요, 오성이 좋기에 대법 진상을 들을 수 있는 거예요. 중공 사당에서 탈퇴한 것은 잘한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정말 중시했습니다. 친척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전화번호와 주소를 찾아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가까운 친척이나 먼 친척을 가리지 않고 모임이나 식사 자리가 있으면 모두 참석해 진상 자료를 건네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만약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 누가 아프거나 입원하면 저는 꼭 가서 도와주거나 병문안을 갔는데 한 사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속으로 아직 진상을 듣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서 진상을 듣고 삼퇴한 친척들이 백 명이 넘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제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과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법제자를 도와준 세인들이 복을 받다

몇 년 전에 저는 한 채소 가게에 가서 과일을 샀습니다. 과일을 파는 두 젊은이는 저에게 거스름돈으로 1위안을 더 줬는데 저는 돌아가서 그들에게 돌려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잘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사람이 많았기에 저는 그들에게 진상 소책자를 주면서 잘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일부러 그 가게로 가서 그들이 진상 자료를 봤는지 물었고 그들은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 가입한 적이 있으면 빨리 탈퇴하세요!”라고 말했고 그 둘은 모두 삼퇴했으며 저에게 자료를 더 요구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그 가게를 지날 때마다 들어가서 문안했고 그들은 저에게 새로운 자료가 있으면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모두 갖다줬습니다.

한번은 제가 진상 지폐 몇 장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당신들이 물건을 팔다 보면 거스름돈을 줘야 하잖아요. 모았다가 저에게 주세요. 제가 바꿔드릴게요. 저는 진상 지폐를 만들려 해요. 저를 돕는 것이 가장 큰 선행을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승낙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깨끗하고 진상 내용이 없는 지폐, 오래된 돈(새 돈은 제작할 때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함)을 저에게 줬고 매번 갈 때마다 많이 바꿨습니다. 잔돈을 가져오면 저는 또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에게 보내 진상 지폐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 두 젊은이는 진상을 알고 대법을 지지하는 좋은 일을 했기에 장사는 갈수록 잘 됐습니다. 전에는 매장이 작았는데 지금은 아주 크게 확장했습니다. 그 두 젊은이도 좋은 일을 해서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양할 과일을 사러 가면 그들은 사부님께 공양한다는 것을 알고 가장 좋은 과일을 골라 저에게 줍니다.

그 과일가게 말고도 채소를 파는 곳이 몇 집 더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도 진상을 알고 삼퇴했으며 저를 도와 잔돈을 모았다가 바꿔줍니다. 저는 이것도 세인들이 대법 진상을 알고 정확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구원을 받은 세인들이 대법을 지지하는 일을 하고 대법제자의 선행을 지지하는 것에 기쁩니다.

법공부하고 마음을 수련해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다

오랫동안 저는 아침 연공을 견지해왔습니다. 새로운 연공 음악이 발표된 후 저는 매일 3시에 일어나서 연공을 합니다. 연공을 마치고 6시에 발정념을 한 다음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합니다. 남편이 일어난 후 저는 아침을 해서 함께 먹은 후 또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합니다.

가끔은 아침에 나가서 채소를 살 때 진상을 알리는데 보통은 점심밥을 먹고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나가기만 하면 저는 진상 자료를 갖고 가는데 상황에 따라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합니다. 오후 시간에는 거의 다 밖에 있다가 저녁 6시 전에 집으로 와서 발정념을 합니다. 저녁에 또 법공부를 하기에 저의 하루는 아주 충실합니다. 정진하는 중에서 집착과 교란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가 저를 가장 힘들게 합니다.

제가 가장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가장 괴로운 것이지만 매일 부딪혀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면 모두 남편이 저를 가슴 아프게 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가정의 따뜻함이 부족했었습니다. 게다가 가정환경이 좋지 못해 처음에는 사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것에 영향받지 않고 오히려 동정심을 갖고 그에게 더 많은 온정을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중공 사당의 ‘문화대혁명’ 때 결혼했습니다. 막 결혼했을 때 저는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이유는 제가 ‘계급 입장’이 확실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자 일자리를 잃었는데 저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속으로 제가 그렇게 희생을 많이 했으니 남편은 많이 아껴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결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는 모은 돈으로 껍질이 붙어있는 고기를 서너 근을 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아껴주셨기에 집안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음식을 할 줄 몰랐기에 껍질 채로 볶아놓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집에 와서 내가 껍질 채로 볶아놓은 것을 보고 껍질을 벗기지 않았다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욕도 모자라서 저에게 껍질을 골라내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울면서 껍질을 골라냈습니다.

그때부터 50여 년의 결혼 생활에서 남편은 저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돈과 재물을 너무 중시해 아이와 집을 잘 돌보지 않았고 말도 삐딱하게 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살아계실 동안에 딱 한 번 집에서 설을 보냈습니다. 섣달그믐날 저녁에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식사하셨는데 다음 날 일찍부터 남편이 고의로 냉장고에 무엇이 없어졌네, 무엇도 다 먹었네 라고 하면서 빗대어 욕을 하고 생트집을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친정에 다녀오기만 하면 남편은 저를 비꼬면서 다퉜습니다. 제 어머니는 고정 수입이 없었기에 줄곧 제 남동생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남동생도 몇 년 동안 직업이 없었습니다. 올케가 일하던 공장도 부도가 났습니다. 저는 월급이 600위안(한화 약 11만 원)이었는데 매달 100위안을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남편은 저를 따라다니면서 다퉜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힘들다는 것을 아시고는 제가 돈을 드리면 한사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넘어져서 허리를 다쳐 침대에 누워 지내셨습니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약을 먹고 돌아가셨는데 그것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았습니다.

저도 남편과 이혼하려고 여러 번 생각 했었으나 딸과 가정을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저에게 평생 한이 된다면서 이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혼할 생각을 접고 힘들게 버티며 남편과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했고 인생의 인연과 득실이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점차 담담하게 보고 참을 수 있었으나 속으로는 늘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으며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대법이 중공 사당의 박해를 받았지만 저는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제가 매일 나가니 남편은 이러쿵저러쿵하며 또 제가 나가서 면목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을 아프게 했기에 늘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하소연했습니다. 남편의 잦은 도발과 모욕을 당하면서 저는 ‘사람마음이 이렇게 무거운데 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끊임없는 법공부와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남편에 대한 원한을 제거해버렸습니다. 남편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일상생활에서 최대한으로 그를 보살펴줬습니다. 자녀들이 남편을 나무라면 자녀들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비춰보면서 발정념으로 원망을 제거했습니다. 원망이 올라올 때마다 최대한 참고 나서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웠지만 매일 조금씩 제거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 몇 개월 전, 저는 법공부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 대한 정과 원한이 단번에 담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남편 말을 하기만 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제 모든 세포가 모두 원망하고 미워했는데 그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느낌이 없었으며 오히려 남편의 좋은 점이 생각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저를 풍자하고 비꼬았지만, 대법 진상을 받아들이고 대법의 좋은 점을 인정했으며 드문드문 수련했으나 견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집에 찾아온 수련생에게도 친절하고 공손했으며 밥을 지어 대접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남편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남편은 여러 번 대법 중에서 혜택을 받았습니다. 엄중한 대상포진이 3일 연공하고 다 나았고 뇌동맥 경화가 한번 넘어지고 오히려 다 나았습니다. 남편은 당시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누가 그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예전의 그런 행동을 통해 제 집착심을 드러나게 했고 저를 자극했으며 저를 수련하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비록 길고 고통스러웠으나 분명 저에게 업력을 제거하고 심성을 제고하게 했으며 저와 남편의 인연과 원한을 풀어줬습니다.

한 수련생이 교류문장에서 쓴 것처럼 그녀의 남편이 바로 그녀가 수련하는 길의 디딤돌이고 그녀를 성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만 속인이 볼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디딤돌이기에 남편을 원망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종의 초연함을 느꼈습니다. 수련 중에서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은 비록 고통스러웠으나 집착을 제거한 후에는 더 넓은 세상이고 또 다른 경지입니다.

20여 년 수련의 길을 돌아보면 걸음마다 사부님의 지도와 가지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제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에는 모두 사부님의 대가와 감당이 얽혀있습니다. 제가 대법제자가 된 것은 더없는 행운이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선택해주시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보호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최후의 시간 동안에 저는 꼭 더 정진하고 처음처럼 수련해 사명을 다하고 사부님의 은혜에 어긋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제자가 절을 올려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3-신이 나에게 진상을 알리라 하네’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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