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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은 저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글/ 호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4세 때부터 어른들을 따라 대법 수련을 하며 어린이 제자라는 말을 들었던 주링허우(九零後)입니다.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서 학업 때문에 점차 수련을 느슨히 하다가 2년 반 전인 2018년 말부터 다시 착실하게 대법 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 몇 년간 다시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혜택을 얻은 일부 경험을 교류하려고 합니다.

마음속에 법이 있어 바른길을 가다

16세 때 홀로 호주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남자애 같았으므로 옷이나 화장품, 명품 가방 등 쇼핑을 즐기는 여학생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오히려 남학생들과 어울렸으므로 그들과 공통적인 화제도 많았습니다.

남학생 한두 명과 함께 영화 구경을 하고, 농구를 하거나 당구를 치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순진한 편이어서 그런 일들을 즐겼을 뿐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자 친구로 사귀자고 제의를 해올 때 대부분 거절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얼떨결에 승낙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홀로 생활하면서 누군가의 관심을 갈망했던 것 같았습니다. 결혼을 약속하지 않은 채 대개 열흘이나 보름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런 생활을 2년쯤 했습니다.

어떤 남학생은 애인으로 사귀자며 엉큼한 요구를 했는데 그들은 그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연공과 법 공부는 하지 않았어도 다행히 어려서부터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법에 대한 마음은 확고부동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뭔가가 저를 단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혼전 성관계는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남학생들의 그런 요구에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업력을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당시의 일을 말하자, 어머니는 감탄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초 너를 외국 유학 보낼 때 아버지는 어린 네가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져들까 봐 매우 걱정하셨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려서부터 대법을 배웠으므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또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가 있을 것으로 여겨 네가 절대 비뚤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습니다,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을 법으로 단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속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이미 타락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남편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하다

대학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을 사귄 지 얼마 안 돼 그의 집에 여러 종류의 보디클렌저와 샴푸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일하는 호텔에서 가져온 것인데, 손님이 반만 쓰고 두고 간 것을 가져온 것이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듣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호텔에서 화장지와 휴지통, 심지어 침대 시트까지 가져오는 것을 보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 대법을 배운 후 예전에 공장에서 가져갔던 수건을 자진해서 도로 가져왔다던 예가 떠올랐습니다. 그 단락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가다니?’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남편이 바로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호텔의 화장지는 품질이 좋고, 쓰레기봉투도 크기가 커서 많이 담을 수 있어서 가져온 것으로 말했습니다. “어떻게 남의 물건을 훔칠 수 있나요?”하고 묻자, 그는 오히려 정색하며 “훔친 것이 아니다. 호텔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면서 그곳의 물건을 좀 쓴 것뿐인데 뭐가 문제냐?”며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데, 그는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으며, 일부 사람들은 또 이미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수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가늠하는 표준마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1]

남편은 수련자가 아닌 일반인이라 자신의 이익에만 생각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본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면 덕을 잃는 것이고, 그런 생각과 행동은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온 일반사회의 표현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다시는 그런 물건들을 가져오지 말아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분 나빠하며 제 말에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조급하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게 된 일이니 그를 위해 책임져야 하며, 다시는 그의 나쁜 짓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도 묵과한다면 그를 해치는 것이고, 그는 계속 많은 업력을 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만약 당신이 호텔 사장이라면 직원들이 그렇게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도록 허락할 수 있나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통적인 선악의 각도에서 깨우쳐 주었고, 사부님의 말씀인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반드시 잃는다”는 법리를 알려주었으며, 또 “나쁜 일을 하면 덕을 잃고 업을 짓게 돼요. 사람의 모든 것은 뜻대로 안 되는데 병을 포함하여 모두 업력이 조성한 거예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러 차례 설득한 결과 그는 가져오지 말아야 할 물건들을 더는 가져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져왔던 침대 시트도 도로 가져갔습니다. 남편의 그런 선택을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안으로 찾아 남편과 화목하게 지내다

남편은 성격이 급해서 화를 잘 내는 편이었는데 결혼 후 그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지극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므로 억울한 경우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이 무섭게 대하며 화를 낼 때는 늘 서러워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지 후회하면서 ‘이혼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면서부터 다시 대법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처럼 어머니의 독촉으로 수련하게 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수련하고 싶다는 마음속의 바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부터 남편이 화를 내어도, 저는 수련자이므로 법의 요구에 대조하여 최대한 참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한번은 남편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다가 도중에 배가 고파 제가 차에서 내려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음료수는 보통 일반 콜라를 주문했었지만 마침 얼음 콜라가 있기에 그것으로 주문했습니다. 차에 돌아오자 남편은 자신이 싫어하는 음료수를 가져왔다며 “왜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음료수를 사 왔느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싫으면 다시 가서 바꿔 오겠다고 하자, 그럴 시간이 없다며 계속 화를 냈습니다.

제가 “당신이 이거 안 마시는 줄 몰랐어요. 물어보지 않고 사서 미안해요”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화를 내며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줄 모른다”고 욕을 하면서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사러 가지 말라. 마실 수도 없는 이런 것을 사 오다니, 차라리 휴지통에 버리는 게 낫겠다”라며 차창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제가 수련자가 아니었다면 당시 남편과 크게 다투었거나 화가 치밀어 울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전에도 얼음 콜라를 마셨으며,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싫으면 마시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닌가. 차 밖에 버리려 하다니? 그를 위해 달려가서 힘들게 사 온 것인데 노고를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탓만 하고, 또 다시는 음식물을 사지도 말라니’, 누군들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계속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것을 수련자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2]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확실히 남편을 위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먹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남편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은 확실히 저의 잘못입니다. 이 사건에서 저의 사심이 드러났으며 또한 저를 제고시키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처럼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논쟁도 하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사과했습니다. 남편도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비슷한 일들은 많았지만 가능한 한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수련을 잘할 때는 남편도 쉽게 화내지 않았고 집안 분위기도 화기애애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불가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중시한다.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에 다른 사람도 따라서 이로울 수 있는데,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신체를 조정(調整)해 주거나 병 치료 등등을 해 줄 수 있다.”[1]

탐내지도 가지지도 않고, 진흙에서 나왔지만 물들지 않다

남편은 택배회사에서 일합니다. 한번은 제가 소포를 부치려고 하자 남편이 자기에게 맡기라며 포장만 잘하라고 했습니다. 직접 우체국에 가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절차에 따라 소포를 부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보내는 소포는 어떤 땐 중량을 초과하고, 소포에 적정의 우표를 붙이지 않으며, 우표가 운송 중에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회사의 우표를 붙인 뒤 배송합니다. 그렇게 해야 남편은 배송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절차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땐 초과분의 우표를 붙이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배송할 물건에 그 우표를 붙여 사용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규정상 맞지 않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그는 모두 그렇게 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별로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표는 모두 자신이 스캔하는 것이므로 붙이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소포를 배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우푯값은 발송인의 계좌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지, 우리 개인의 소포를 위한 돈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행동은 일과 규정의 틈새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취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수련자로서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진선인의 법리로 옳고 그름을 가늠해야 한다. 편리함과 자신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하며, 그것이 옳다고 여기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진(真)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후부터 저의 소포는 직접 우체국에 가서 발송했습니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그래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또 한 번은 인터넷으로 질병을 퍼트리는 벌레퇴치 약 1개를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는데 판매처에서 실수로 2개를 배송했습니다. 받은 즉시 판매처에 연락한 뒤 1개를 반송해 주었습니다. 판매상은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우리 수련자에게는 그런 일은 당연합니다. 오늘날 길에 떨어진 금품을 보아도 탐내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해도 흔치는 않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므로 당연히 ‘진선인’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미끄러져 내려온 일반사회의 도덕적 기점으로 자신의 표준을 낮춰서는 안 됩니다.

구부러진 꼬리뼈

어릴 때 활동적이었던 저는 집에서 곤두박질치다가 꼬리뼈를 다쳤습니다. 당시는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므로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 몇 년간 지속해서 아팠고, 특히 앉아서 숙제를 마치고 일어설 때면 순간적으로 너무 아파 노인처럼 옆에 있는 것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야 했습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꼬리뼈는 손에 만져졌는데 배겨서 반듯이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임신 전 몇 년째 아프지 않았어도 ‘꼬리뼈가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엑스레이 촬영을 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꼬리뼈는 눈에 띄게 휘어져 있었는데 한쪽은 피부 쪽으로 삐져나왔고, 다른 한쪽은 길쭉하게 가로로 몸 안쪽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놀라워하며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거 많이 아파 보이네요!” 그는 동료 의사에게도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그런 모습은 생전 처음 본 것 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가 순산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운이 좋으면 태아의 머리가 나오면서 꼬리뼈를 곧게 훑으며 지나가겠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도 뼈는 매우 아플 것입니다. 운이 나쁘면 꼬리뼈가 다시 부러져 8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왕절개를 하면 피할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겠다며 대답했고, 산부인과 의사는 휴대폰으로 저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저장했습니다. 그는 대학교수였기 때문에 아마 저의 사진을 특이사례로 삼으려 한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대법 수련자’라는 것을 다시 상기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3]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 시작부터 우리에게 신체를 청리해주시고 좋지 않은 것들을 모두 떼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1] 저는 꼬리뼈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다음 진료 때 의사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기에, “자연분만을 선택하겠어요.”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출산하던 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고 저도 꼬리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산부인과 의사가 회진하다가 제가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은 지금 앉아 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다시 “당신의 꼬리뼈는 괜찮은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알아듣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을 잊고 있었어요.” 아이를 낳은 후에도 꼬리뼈는 이전과 똑같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말해서 꼬리뼈가 가로로 놓여 있어서 태아가 나오면서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꼬리뼈가 멀쩡했던 산모들조차 아이를 낳고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기적입니다. 이는 대법의 신기함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직접 겪은 평범한 몇 가지 경험이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만약 대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정의 갈등 속에서 다투고 싸우며, 돈과 색 속에서 자신을 잃었을 것이고, 또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운명의 불공평함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대법의 ‘진선인’을 수련하여 ‘진선인’에 동화하면서 삶의 평온함 속에서 마음의 행복을 얻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가: ‘홍음3 –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따파의해 – 창춘 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원문발표: 2021년 9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9/25/4318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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