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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 생명의 윤회

【명혜망 2007년 2월 17일】 생명은 윤회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건 적건 자신의 전생에 대해 알고 있는데 이는 수련문화가 보편적이었던 고대에는 지금보다 더욱 흔한 일이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일원이자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동파(蘇東坡)가 바로 그중 한 예이다.

소동파의 본명은 소식(蘇軾)이며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가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그는 북송(北宋) 시대 문호이자 서화가로 일찍이 한림학사를 역임했으며 관직이 예부상서(禮部尙書)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소동파는 알아도 그가 전생에 수도승이었음은 잘 모른다. 사실 그는 자신의 시문(詩文) 중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전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본시 수행인

삼세(三世)에 걸쳐 수련했으나

중간에 일념을 잃어

이 백 년의 견책을 받는구나.”

(我本修行人,三世積精煉. 中間一念失,受此百年譴 《남화사(南華寺)》)

“나는 전생에 이미 항주에 온 적이 있으니 도처의 모습이 옛날 거닐던 그대로구나.”

(前生我已到杭州,到處長如到舊遊)”(《和張子野見寄三絕句-過舊遊》)

원풍(元豐) 7년(1082년) 4월 소식이 균주(筠州)에 도착하기 전 운암(雲庵)화상은 자신과 소철(蘇轍 소식의 동생), 성수사(聖壽寺)의 총화상(聰和尚)이 함께 성을 나와 오계(五戒)화상을 맞이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아주 이상하게 여긴 운암화상이 소철을 찾아가 이 꿈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런데 소철이 막 말을 꺼내기도 전에 총화상이 왔다.

소철은 그에게 “방금 운암이 꿈 이야기를 했는데 당신도 왔으니 우리 함께 생각해봅시다.”라고 했다. 그러자 총화상은 “나는 어젯밤 우리 세 사람이 오계화상을 영접하는 꿈을 꾸었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소철이 박장대소하며 “세상에 정말 우리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었군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소동파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이미 봉신(奉新)에 도착했으며 곧 여러분과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몹시 기뻐하며 작은 길을 통해 성 밖 20리를 달려가 건산사(建山寺)에서 소동파를 기다렸다.

소동파가 도착한 후 그에게 세 사람이 같은 꿈을 꾼 이야기를 하자 소동파는 생각에 잠긴 후 “내가 8, 9세 때 일찍이 나의 전생이 승려였으며 섬우(陝右)사이에서 왕래했음을 보았다. 또 모친께서 나를 임신했을 때 일찍이 꿈에 한 승려가 와서 의탁할 것을 요청했는데 그 승려는 풍채가 뛰어났지만 한눈이 실명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운암이 깜짝 놀라며 “오계화상은 바로 섬우(陝右) 출신입니다. 한 눈을 실명하셨는데 만년에 고안(高安)에서 행각하시다 대우(大愚)에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했다.

모두들 그 시간을 따져보니 이미 50년이 지났다. 당시 소동파의 나이는 마침 49세였다. 시간, 장소 및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꿈을 꾼 것으로 보아 소동파는 오계화상이 환생한 것이 틀림 없었다.

소동파는 나중에 운암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계(戒)화상이 사람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꺼운 낯짝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으니 정말 가소롭구나! 하지만 기왕 불법(佛法)과 인연이 있으니 내 더욱 열심히 연마해 장차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이는 바로 더할 나위없는 영광이다.”

소동파가 평소 승복을 즐겨 입은 것도 아마 전생의 인연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송나라 철종(哲宗)은 일찍이 내시 진연(陳衍)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소동파의 조복(朝服 조회에 참석할 때 입는 관복) 아래에 입은 것이 대체 무슨 옷이냐?” 진연이 “승복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철종은 웃음을 터뜨렸다.

소동파가 항주(杭州)에 있을 때 일찍이 친구인 참료(參寥)와 함께 서호(西湖) 근처의 수성사(壽星寺)에 놀러간 적이 있다. 소동파는 사찰을 둘러본 후 참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이곳에 와본 적이 없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마치 전에 내가 이곳에 와본 것 같네 그려. 이곳에서 참당(懺堂)까지는 분명 아흔 두개의 계단이 있을 것일세.”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계단수를 세어보게 하자 정말 그의 말과 같았다. 소동파는 참료에게 “나는 전생에 산속의 승려였으며 일찍이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네.”라고 말했다. 그 후 소동파는 자주 이 사찰에 와서 머물며 쉬곤 했다.

대략 원우(元祐) 초년(1086년)의 일이다. 소동파가 일찍이 황정견(黃庭堅 북송의 저명한 시인이자 서예가)과 함께 한 노인을 찾아뵌 적이 있다. 노인은 그들을 보자마자 소동파의 전생이 바로 오계화상이며 황정견의 전생은 여자라고 말했다. 소동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정견은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에게 “자네가 부릉(涪陵)에 도착할 무렵이면 어떤 사람이 알려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정견은 ‘부릉은 쫓겨난 관원들이나 가는 곳인데 내가 왜 그곳을 간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과연 부릉으로 귀양을 갔고 꿈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그에게 여러 차례 전생의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전에 노인이 한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소동파의 전신인 오계화상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한눈을 실명했으며 또 명오(明悟)라 불리는 사형(師兄)이 있었다고 한다. 오계는 일념의 차이로 인해 홍련(紅蓮)이란 여인과 부적절한 일이 있었고 간음을 저질렀다. 이 일은 이미 공능을 지니고 있었던 명오에게 간파되었고 오계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가부좌를 한 채 육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명오는 숙명통으로 오계가 다음 생에 부처님과 승려를 비방할 가능성이 있으며 만약 그럴 경우 그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예견했다. 이에 그 역시 서둘러 육신을 버리고 오계를 쫓아 다른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다음 생에 오계는 소동파로 환생했고 명오는 그의 절친한 벗인 불인(佛印)화상으로 환생했다. 소동파는 애초 정말로 불법을 믿지 않았고 공명(功名)에 빠져 있었지만 불인은 줄곧 그의 옆을 떠나지 않으며 심혈을 기울여 그를 권고하고 깨우쳐주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과 또 불인화상의 끊임없는 점오에 힘입어 소동파도 끝내 깨닫게 되었고 인과와 윤회의 일을 깊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숭상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며 수련했다.

송 휘종(徽宗) 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1101년) 7월 28일 소동파가 세상을 떠날 때의 일이다. 그는 침상을 지키고 있던 세 아들에게 “나는 평생 그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으니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그리 상심하지 말거라.”라며 위로했다.

또 사람들에게 신의 세계는 정말 진실하게 존재하지만 자신은 이미 되돌아갈 힘이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했다. 그는 “보아하니 서방극락세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나는 지금 이미 올라갈 힘이 없구나.”라고 말했다.

사람의 생명은 윤회하는 것으로 이는 일찍이 수련계에서 실증된 것이다. 파룬궁 창시인 李洪志 선생님은 일찍이 윤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교에서 과거에 무슨 수라도(修羅道)니, 무슨 축생도(畜生道)니, 인도(人道), 천도(天道)니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이 무슨 도(道)일지라도 모두 삼계(三界) 이내 사람, 동물, 식물과 삼계 내 다른 공간의 생명들 간의 윤회이다. 사람의 세간에서의 선악이 조성한 이런 인과관계를 산생한 보응(報應) 혹은 복보(福報) 혹은 악보(惡報)이다. 바로 당신이 악한 짓을 많이 했다면 아마 축생도로 전생하거나 혹은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면 당신은 천도에서 태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하늘(天)은 삼계 이내의 부동한 층차의 하늘(天)이고 또 삼계 이내에 속하는 것이며 또 윤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혹은 사람 속에서 복을 누리고 관리가 되어 부자가 되는 이 모든 것은 좋은 일을 하여 얻은 것이다. 이것을 복보(福報)라고 부르며 또 선보(善報)라고도 부른다.”(《법륜불법(싱가포르법회설법)》)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2/25/82990p.html

문장발표 : 2007년 2월 17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2/17/14887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