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가(蕭歌)
[명혜망] 중화 전통문화에서는 겸손을 지극한 덕으로 여겼다. ‘시경(詩經)’에는 “저 사귐에 오만하지 않으니 온갖 복이 찾아오네”라고 적혀 있다. 노자(老子)는 “공을 이루나 그 공을 차지하지 않는다. 차지하지 않기에 공이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공을 세우고도 바라는 바가 없으며 사심이 섞이지 않는 것은 초연한 경지다. 역사 속에는 덕을 근본으로 삼아 끊임없이 정진하며 공을 세우고도 오만하지 않는 고상한 수양을 보여준 현자가 확실히 존재했다.
‘한서(漢書)’의 기록에 따르면 병길(丙吉)(?~기원전 55년)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서한(西漢) 시기 대신이다. 사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시(詩)’, ‘예(禮)’를 배워 대의에 모두 통달했다.” 한무제(漢武帝) 말년, 궁중에 태자를 무고한 원통한 사건이 발생해 태자와 관련된 사람이 모두 연좌돼 피해를 봤다. 태자의 손자는 태어난 지 몇 달밖에 안 됐지만 역시 연좌돼 감옥에 갇혔다. 병길은 이 사건 심리에 참여해 태자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을 속으로 알고 여러 차례 상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병길
병길은 황증손(皇曾孫)이 어리고 의지할 곳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 신중하고 충후한 여자를 보내 보호하고 양육하게 했으며 재차 감옥에 가서 살펴봤다.
누군가 그가 이 일로 화를 입을까 걱정해 거듭 그에게 권했다.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은 피하기에도 바쁜데, 당신은 어찌해 여러 차례 태자를 위해 변호하고 또 그의 손자를 돌보는가?” 병길이 말했다. “이것은 본래 원통한 사건인데, 하물며 황증손은 아직 갓난아기인데 그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인덕(仁德)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네.”
훗날 무제가 중병에 걸렸을 때 누군가 장안(長安) 감옥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말하자, 장안의 죄수들을 일률적으로 처형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사신이 밤을 새워 황증손이 있는 감옥에 도착했지만 병길은 사신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정색하며 말했다. “이 원통한 사건은 증거가 부족해 2년이 넘도록 결말을 짓지 못했고, 무고한 자는 더욱이 죽어선 안 되는데 하물며 갓난아기이겠는가?” 사신이 말했다. “당신은 어명을 어기고 따르지 않으니 너무 세상 물정에 어둡소.” 병길은 목숨을 걸고 사신을 막았다. 사신이 한무제에게 복명하자 무제는 “하늘이 시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하늘의 뜻이었다. 무제는 결국 병길을 추궁하지 않았고 아울러 천하에 대사면을 내렸다.
몇 년 후, 황증손 유순(劉詢)이 황제가 됐으니 곧 한선제(漢宣帝)다. 그러나 한선제가 즉위한 후 병길은 예전에 자신이 그를 보호해 준 공로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말하지 않아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선제도 이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뜻밖에도 수년 후 액정령(掖庭令, 궁녀를 관리하는 환관)이 상소문 한 통을 받았는데, 한 늙은 궁녀가 자신이 지금의 황제를 보호하고 양육한 공로가 있다고 상소한 것이다. 한선제는 이상하게 여겨 액정령에게 이 늙은 궁녀에게 연유를 물어보게 했다. 늙은 궁녀는 이 일을 병길이 안다고 말했다. 액정령은 늙은 궁녀를 데리고 병길을 찾아갔다. 병길은 확실히 이 궁녀를 알고 있었고 병길은 “내가 확실히 예전에 당신에게 황증손, 즉 지금의 황상을 돌보게 했지만 당신은 오히려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공로라고 할 것도 없소”라고 말했다. 이 늙은 궁녀가 아닌 다른 두 명의 궁녀야말로 황제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이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병길은 비로소 감옥에서 이 두 유모가 어떻게 공동으로 황증손을 부양했는지 하나하나 모두 털어놓았다.
이에 이르러 한선제는 비로소 병길이야말로 큰 재난에서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감동해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를 매우 존경해 병길을 박양후(博陽侯)로 봉했다. 만약 이 같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병길이 예전에 목숨을 걸고 군주를 구한 이 일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돌처럼 남이 모르게 묻혔을 것이다.
병길은 큰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했으며, 도덕적 수양을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고, 항상 자신을 수양하며 밖에서 추구하지 않았다.
병길은 본래 감옥의 법을 다루는 하급 관리였으나 나중에 ‘시경’과 ‘예경(禮經)’의 대의를 통달했다. 그가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관대함을 숭상하고 예의와 양보를 좋아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관리 중 만약 뇌물을 받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자가 있으면 병길은 곧 그를 장기 휴가를 보내고 끝내 추궁하고 조사해 처벌하지 않았다.
한번은 병길이 외출했다가 마침 여러 사람이 난투극을 벌여 사상자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병길은 지나갈 때 오히려 묻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가다가 소를 쫓고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소는 헐떡이며 혀를 내밀고 있었다. 병길은 수레를 멈추고 수행원을 보내 소를 쫓는 사람에게 ‘소가 몇 리를 걸었는지’ 물어보게 했다.
수행원들은 승상이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은 묻지 않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는다고 여겼다. 이에 대해 병길이 말했다. “민중이 난투극을 벌여 서로 살상하는 것은 마땅히 장안현(長安縣) 현령(縣令)과 경조윤(京兆尹, 장안 일대를 다스리던 지방장관 직함)이 경계하고 추궁해야 하며, 연말에 다시 승상이 그들의 통치 실적의 우열을 심사해 황상에게 아뢰어 상벌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승상은 도로에서 현령과 경조윤의 직책 범위 안에 있는 일을 친히 묻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한창 봄철인데 소가 멀리 걷지도 않았는데도 더위로 헐떡이는 것은 바로 절기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행여 국가에 어떤 피해를 줄까 두렵다. 승상은 음양의 조화를 관장하니 이것은 분수에 맞는 일이다.” 수행원들은 그제야 자신들에 비해 병길이야말로 ‘큰 틀(대체)을 알고, 삼가고 조심할 줄 안다[識大體,有敬畏]’는 이 이치를 명백히 알고 있음을 보게 됐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29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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