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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했을 때 ‘당’과 ‘민’

중공과 중국인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보자

글/ 청산

[밍후이왕] 중국대륙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인접한 두 현에 젊은 두 현장이 있었다. 한 현의 현장은 이 지역에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력 물력을 동원해 홍수 방역 공사를 했다. 다른 현의 현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 년 후 홍수가 발생했다. 홍수 방역 공사를 한 현은 둑이 튼튼해서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사를 하지 않은 이웃 현은 홍수 재해가 심각해 현장은 현 사람들과 함께 홍수와 싸웠다. 백성은 피해가 참혹했지만, 마침내 홍수를 이겨내었고, ‘업적에 감동하여’ 이 현장은 곧 시장으로 부임했다. 홍수 방지 공사를 한 현장이 이 현으로 이동한 후 그는 다음 한차례 홍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는 현실에서 일어난 진실한 이야기다. 중공은 나라 이름을 인민공화국이라고 하고 화폐를 인민폐라고 하며, 신문을 ‘인민일보’라고 하고 정부를 인민정부라고 하지만, 인민은 단지 하나의 개념뿐이고 사실은 당의 나라고 당의 지폐고 당의 신문이고 인민은 단지 구호뿐이다.

700만 명의 ‘전쟁급’ 군대 이동

1998년 ‘세계 홍수재해’에서 그 당시 수력 전문가들은 홍수 자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홍수 재해는 의외로 ‘고 수위와 심각한 재해’를 불러왔다. 2개월간의 위기에서 대홍수 피해 인구는 4억 명에 달했고 사망과 실종 부녀, 아동, 노인은 1만1000명에 달했으며 직접적으로 가져온 경제 손실은 3000억이 넘었다.

사실 미리 대비하고 순차적으로 축홍구(蓄洪區, 홍수를 임시 저장해 두기 위한 구역)로 분류(分流)하면 홍수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대다수 선진국은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런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나 재해 상황부터 마지막까지 장쩌민은 ‘사람이 있으면 뚝도 있어야 한다’ ‘엄중사수’를 요구했다. 홍수가 발생할 때마다 지방에서 여러 번 징장(荊江)을 축홍구로 분류하여 활용하자고 요구했다. 주민은 3번이나 모두 안전지대로 철수하는 일이 있었지만, 물길을 분류하자는 방안도 장쩌민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외신은 장쩌민이 왜 징강에서 물길을 분류하자는 전문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쩌민 그 사람’의 책에서 진상을 폭로했다. 장쩌민은 어떤 사람이 말한 ‘용의 맥을 보호하자’의 ‘천기’를 믿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징장 분홍구(分洪區, 넘쳐 나는 홍수를 흘러 들도록 해 둔 지역)에서 물길을 분류하면 둑이 저절로 무너져 자신의 ‘용의 맥’을 끊는다고 믿었다.

1998년 7월 장강(長江)의 구강(九江)구간의 둑이 무너졌다. 그날 밤에 장쩌민은 즉시 군대를 지휘했고, 명령을 받은 후 2시간 이내에 반드시 명령을 집행해야 하고 전선으로 신속히 가야 한다고 했다.

이 홍수로 ‘홍수 긴급 구조’ 행동에서 장쩌민은 전국 범위에서 몇십 개 집단군대를 소집했고 30만 관병이었다. 114명 장군과 5000여 명 사단급 간부다. 이 홍수에 관병은 700만 명이 출동했고 민병과 예비군은 500만 명이 조직됐으며 병사 수는 중공의 건국 이전 화이하이(淮海), 랴오선(遼沈), 핑진(平津) 3대 전역 해방군 인원수의 총수였다.

재해 지역의 억만이 넘는 백성의 생명과 재산은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를 파견하는 흥정거리에 불과했다. 몇십만 장병의 생명은 장쩌민의 눈에 놀잇감이다. 중공의 선전기계 아래 ‘백 년에 만난 특대 홍수’의 구실 아래 이렇게 참혹한 인재는 단지 한차례 하늘의 재해인 것 같고 장쩌민 죄업을 완전히 덮어 감췄다.

재해 구조 황금시간 72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다

2008년 5월 12일 원촨(汶川) 대지진에서 42시간 후 원촨의 몇 개 재해가 심각한 진에 구원하러 간 병사는 빈손이고 1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굴해야 할 사람은 몇십만 명에 달했다.

지진 후 72시간이 지진 재해 구조 황금 마지막 제한 시간인데 재해가 심각한 지역에 구조하러 들어간 병사는 1만 명도 안 되었다. 국제관례에 따르면 한 사람을 지진 폐허에서 구조하려면 3명이 시멘트 바닥을 들어야 한다. 10만 명이 재해를 입었는데 최소 30만 명이 구조 부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엄청난 차이점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1998년 장강 둑이 터진 2시간 이내에 군대가 반드시 전선으로 가야 하는 상황과 비하면 정말로 천지 차다.

군대를 움직일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인가? 2008년 말 중공 참모장 천빙더(陳炳德)는 당의 매체에서 게시했다. 지진 후 3일 동안 군대의 모든 행동은 ‘군위 최고 지도자’ 장쩌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08년 장쩌민은 이미 국가주석이 아닌데 군대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재해가 긴급한 것을 무시하고 전선에 있는 이재민에게 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생명을 무시하는 공산 정권은 비로소 이렇게 극단적인 비극을 만들고 민의, 민생을 잡초로 보고 위기에 처할 때 권력을 지배하는 것을 자신의 실력을 펼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한 전염병에서 ‘적십자회 창고’

우한(武漢) 전염병 폭발 당시 해외 물자지원이 끊임없이 우한 적십자회로 몰려왔다. 그러나 대량 물적 자원은 적십자회 창고에 쌓아놓았다. 매일 바이러스에 직면한 일선 의료진은 침대 시트로 마스크를 만들어 사용했고 비옷을 방역복으로 응급조치했다.

해외 주요 기사에 상급자에게 마스크를 증정하는 장면이 게시됐다. 2월 1일 물자 요구에 거절당한 의료진에 의하면 한 남자 기사가 우한 적십자회 임시 창고에서 3M마스크 한 박스를 차 트렁크에 싣고 있어서 주변 사람이 물어보니 기사는 마스크를 상급자에게 준다고 했다고 한다. 이 차 번호는 ‘어A0260W’이라 찍혔다. 나중에 우한시 정부청사 공무 전용차라는 것이 밝혀졌다.

2008년 쓰촨(四川) 지진은 9만 명이 생명을 잃은 후 사람들은 구조자금 행방, 적십자회에 모금한 자금 등의 행방을 물었으나 지금까지 명확한 대답이 없다. 우한 전염병 때 또 같은 일이 발생했다. 중공이 존재하는 한 이런 일체는 변하지 않는다.

인심의 각성

최근 한 달 동안 중국대륙 여러 지역에서 홍수 재해가 발생했고 재해가 심각한 지방의 민중은 손해가 참혹하다. 그러나 중공 정부는 사치스럽게 다른 나라인 인도에 7억5000만 달러를 주었다. 77개 나라에 수백억 달러의 채무 상환을 중단시키면서도 정작 국내는 돈이 없어 재해 구조를 하지 못한다.

중공 적십자재단은 6월 12일 인터넷에서 모금했고 모금 목표는 60만 위안이다. 그러나 모금 활동한 지 120일 만에 2000위안을 모았다. 7월 6일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댓글을 남겼다. “사람들이 모두 각성했다.”

사람 마음이 살아났다. 2018년 베이징 정부는 전시에서 ‘7.21’ 특대 자연재해 구조 모금활동을 했다. 베이징시 민정국은 모금 방식과 계좌번호를 공개한 후 2시간 내 7만여 개 웨이보(微博)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우리가 애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7.21 폭풍우가 지난 후 아무도 공덕을 칭송하거나 허리 굽혀 감사 하지도 않는다. 원촨 지진 때 수억 위안 모금도 탐오 부패로 어디로 사라졌다. 7.23 고속철도 추돌사고가 1년도 되지 않아 낙마 관료는 잇따라 임명됐다. 백성이 어찌 기부할 수 있는가? 마지막에 부패 관료의 지갑만 불려줄 뿐이다.

유명한 경제학자 예일대학(Yale University) 천즈우(陳志武)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했다. “중국의 돈은 미국도 사용할 수 있고 아프리카도 사용할 수 있고 북조선도 사용할 수 있고 정부도 사용할 수 있고 관료도 사용할 수 있고 재벌 2세도 사용할 수 있고 내연녀도 사용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백성은 사용할 수 없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중공과 중국인민을 분간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점차 ‘중공’과 ‘중국인민’을 분간하고 중공 매체에서 미국이 중공과 중국인민의 관계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한마디 말이 있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 가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 한 사람 혹은 한 조직이 도대체 좋은지 나쁜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밝혀지는 날이 있다.

1949년 후 중공에 미혹된 백성은 공산주의 ‘인간 천국’을 만들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필연적이고, 숭고한 이상을 위해 생명을 희생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세기 50년대 중공은 공공연하게 공산 깃발을 내걸고 백성의 생명을 ‘대가’로 삼을 수 있었고,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에서, 대기근 기간 일부 마귀적 발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는 한 외국 정치가와 이 문제를 변론한 적이 있다. 만약 핵전쟁을 하면 사람은 모두 죽는다. 간단히 말하면 절반의 사람이 죽으면 아직 절반이 있다. 제국주의와 무승부고 전 세계는 사회주의화 된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또 20억 명 인구가 있을 것이다”(1957년 11월 18일 마오쩌둥이 모스크바에서 말하고 선즈화(沈志華)가 ‘중국인민공화국국사’ 3권 761페이지에 기재)

중공은 백성의 생명을 땅강아지와 개미로 보고 몇십 년 동안 여태 변함이 없다. 중공은 ‘미중간 언제든 전쟁이 있다’는 말로 국내 국민에게 협박하고 세뇌했다. 2005년 7월 14일, 중공 장군 주청후(朱成虎)는 말했다. “미국이 만약 대만해협 충돌에 개입하면 중공은 시안(西安) 동쪽의 모든 도시를 희생해도 핵무기를 사용하겠다.”

나쁜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은 오히려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사람이 하고 있고 하늘이 보고 있다.”

2020년은 평범하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올해 세계는 중공이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됐고, 중공이 중국인민을 인질로 하고 세계를 해치고 마가 인류로 변하는 악몽은 결국 끝날 것이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1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1/4102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