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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을 버리고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

글/ 우한(武漢) 대법제자 류후이 (刘慧)(가명)

【밍후이왕 2009년 11월 14일】 나는 어릴 때부터 신화이야기를 보기 즐겼고 커서도 동심을 개변하지 못해 (『나타가 바다를 소란하게 하다』,『9색 사슴』)등 동화책을 특별히 즐겨봤다. 95년 대학 때 룸메이트가『전법륜』을 책상위에 놓았는데 나는 표면의 산뜻하고 아름다운 도안을 보고 곧 책을 들고 한숨에 다 보았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이 매우 도리가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또 아침연공을 하면 일찍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보다 며칠 먼저 법을 얻은 룸메이트 보고 내일 아침에 연공하러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법을 얻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늦잠 자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나의 룸메이트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결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둘은 오늘 그가 가서 연공하고 내일은 내가 가서하고 했는데 보도원은 너희들은 어찌하여 서로 교대로 오는가? 고 했다. 우리는 듣고 매우 쑥스러웠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졸업 후 나는 호적지에 가서 직장에 다녔다. 수련을 더욱 게으르게 했고 연공도 매우 적게 했으며 법공부도 얼마하지 않았다. 당지 수련생들과 별로 내왕을 하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정체에서 멀어졌다. 99년 “7.20” 강씨 집단이 대법을 박해할 때 나는 법 공부를 잘하지 않아 비록 대법이 바르다는 것을 알았고 매체의 요언을 믿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난 앞에서 친정(親情)의 교란으로 인해 나는 망망하였고 어떻게 수련해 나갈지 몰랐다.

사부님의 경문『심자명』,『원만을 향해 나가자 』등이 발표되어서야 비로소 북경에 가서 상방하려고 했다. 2000년 나는 북경에서 현수막을 펼쳐들었는데 경찰에 의해 당지 구치소로 되돌려 보내졌고 또 세뇌반으로 보내졌으며 이후 불법적인 노동수용을 당하였다. 가족들도 따라서 매우 많은 것을 감당하게 되었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나를 출근하지 못하게 했고 남편과 이혼했으며 모친은 불면증에 걸리는 현실에 부딪쳤다.

법 공부를 통해, 바로 자신이 법 공부를 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중에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낡은 세력의 박해를 부정하는 법리에 대해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 허다한 고생을 하게 되었으며,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이 아니라 낡은 세력이 안배한 길을 줄곧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상을 분명히 한 후, 나는 속으로 법 공부를 잘하며 낡은 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주위에 펼쳐 세인을 더욱 잘 구도하겠다고 결심했다.

1, 정정당당하게 출근하다

2003년 말 나는 학교에 가서 교장을 찾았다. 교장은 질식할 듯이 당신은 이미 면직되었다고 말하고는 곧 나가버렸다. 나는 내가 면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교장이 완전히 거절하는 태도를 보이자 잠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내가 어떻게 할지 몰라 할 때, 지역사회 사무실에서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는 “듣건대 당신이 학교에 찾아 갔고 교장은 당신을 면직시켰다고 말했다는데 우리는 교장에게는 당신을 면직시킬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이 출근하려면 반드시 보증서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나의 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는 것이지 사람이 좌우지할 수 없으며 나는 꼭 정정당당하게 출근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또 학교에 가니 교장의 태도는 변하여 “금방 지역사회사무실에서 왔었는데 나도 당신에 대해 감히 결정하지 못한다. 내가 당신을 (근무하도록) 결정한다면 이 관직을 버려야한다. 그러니 당신이 지역사무실에 찾아가서 보증서를 쓰지 않고도 출근할 수 있다면 나도 이견이 없다.” 고 말했다.

나는 또 지역사회사무실로 갔으며 거기에도 “6.10” 사무실이 있었다. 책임자는 내가 간 것을 보고 “당신은 태도가 바뀌었는가?”고 물었다. 나는 “내가 나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무엇을 개변한단 말인가.”고 말했다. 나의 말을 듣고 그는 우악스럽게 “당신은 이런 태도로 이후에 나의 사무실에 들어오지도 말라.”고 말하고는 나갔다. 나는 화도 나지 않고 분하지도 않았으며 속으로 “당신이 오지 말라면 오지 못하는가? 그럴 수 없다. 다음에 나는 또 올 것이다.” 고 생각했다.

후에 나는 또 여러 번 갔지만 늘 이런 방법은 안 되겠다고 생각되어 마지막에 나는 “당신이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출근 못한다고 하는데 법적 근거가 있는가? 말만하지 말고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는 “있다.”고 말했다. 나는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보여주지 않고 비밀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안다면 비밀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당신은 교장을 찾아가라 그가 당신이 출근하는 것을 동의하면 우리도 의견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감히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또 교장을 찾아갔다. 그는 나더러 교육국에 찾아가라고 했다. 나는 교육국 “6.10”을 찾아갔다. 이 과정은 진상을 하고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상한 심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오만하고 성질도 좋지 않았다. 그들이 태도가 어떠하든지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나는 사악이 강박으로 나에게 안배한 직업상에서의 박해를 부정하여 드디어 학교로 돌아갔다.

이 결과를 속인이 볼 때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2000년 내가 납치되어 세뇌반에 갔다가 세뇌반으로부터 뛰쳐나온 후, 가족이 일 년간 소극적인 감당을 해서야 비로소 학교에서 출근하라고 통지를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불법적인 노동수용을 당하여 주동적으로 사악의 안배를 타파하였는데 3-4개월 만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부모님은 그들이 내가 출근하는 것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이 일은 그들에게 대법의 초상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

2, 모친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타파

내가 노동수용을 당하여서부터 나의 모친은 심리상 매우 큰 타격을 받아 불면증으로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의 온 몸은 붓고 안질이 빛을 잃고 반응이 무디고 걸음이 느렸고 제일 엄중한 것은 시시각각 공포 속에서 생활하여 늘 부정적인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내가 또 박해받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는 사당이 그에게 조성한 박해를 강박적으로 대법에 덮어 씌웠다. 그리고 이지가 밝지 않아 내가 연공하여 초래한 것이라고 했으며 사악도 그의 바르지 않은 사상을 이용해 그의 몸을 박해했다. 저녁에 그는 대량의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여 신경병원에서 준 약을 먹고서야 비로소 2-3시간의 잠을 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약량은 갈수록 많아졌다. 약을 먹은 후, 부작용도 컸으며 대변은 딱딱하게 굳어서 매번 긴 시간을 앉아 있어야 배변할 수 있었다. 낡은 세력은 정말 그의 명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 스스로도 늘 몇 달 살지 못한다고 말하며 모두 내가 상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늘 그와 말하기 싫었으며 그가 접수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방치했지만 모친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면 또 조급했다. 후에 한 동수가 우리 집에 왔는데 모친은 동수의 손을 잡고 일러바쳤다. 동수는 인내하며 선심으로 그와 소통했다. 이상한 것은 동수가 그와 소통한 후 모친의 마음은 매우 좋아졌다. 동수는 나와서 말하기를 “당신의 모친은 근본 병이 없다. 낡은 세력이 그를 박해하고 있다.”고 했다. 동수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순간에 알게 되었다. 맞다 모친은 근본 병이 없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의학서적상의 “신경쇠약”으로 여겼었다. 나는 이것을 사람의 사람에 대한 박해로 간주한 것이다.

나는 모친 배후의 사악을 정념으로 엄숙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자비한 마음으로 모친과 소통하여 그의 사상을 바른 길로 인도했다. 사악이 그의 사상을 이용하여 꾀를 부려도 나는 계속 명석한 두뇌로 절대 화를 내지 않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간 견지했다. 내가 사악의 수법을 똑똑히 보았고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것을 알았으므로 몇 년 후 모친의 “병상”은 철저히 나았으며 정상적으로 잠을 자면서 약물을 철저히 금했다.

3,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혼인의 미혹에서 벗어나오다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혼인을 만회하려고 하여 결국 남편은 재혼했다. 부모들은 그가 재혼한 것을 알고 나더러 재가하라고 재촉했다. 나 자신도 재가하면 그들의 마음이 좀 안정될 것이고 모친의 병도 빨리 나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동안 나의 색욕심이 매우 심하게 드러났는데 거리에서 남성만 보면 모두 좋았다. 처음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속인을 찾으려했다. 그리하여 모친께서 사람에게 부탁하여 미혼 직장인을 찾아 나더러 만나보라고 했다. 나는 그와 여러 번 만나 내가 박해를 받은 경력만 이야기했다. 그도 그리 개의치 않아 하며 매우 만족해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후에 내가 나가서 대법의 일을 하고 진상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며 또 일단 결혼하면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야하는 것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내게 관심을 갖고 있는 동수가 찾아왔다. 그는 법리상에서 나와 함께 분석했다. 모친은 평상시와 달리 이 동수에게 좋지 않은 기색으로 눈을 부릅뜨고 보면서 우리의 담화를 엿들었으며 그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수가 간 후, 나는 모친에게 내 친구이고 우리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눈길로 봤는가? 고 물으니 그는 마음이 켕기어 말하지 못했다. 나는 동수가 오면 더는 우리를 따라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이 일을 통하여 사악은 본래 나를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모친을 조종하여 그렇게 표현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속인과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혼인을 이용하여 모친을 안심하게 하자는 집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 시기 지나 또 응당 수련하는 동수를 찾아 결혼하자고 생각했다. 내가 이 생각을 하자 하루는 한 동수가 나를 만나 당신의 모친이 나와 당신을 도와 이혼한 동수를 찾아 결혼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나더러 당신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친이 먼저 그들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의 사상을 반성했다. 사부님께서는 낡은 세력의 일체 안배를 전반 부정하라고 말씀하셨다. 불법 노동수용을 당하고 남편과 이혼함으로써 모친께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오직 다시 재가만이 그를 유쾌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낡은 세력의 배치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 박해를 받으면 모친은 응당 의기소침해져야 하는가? 아니다. 이 일체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이 바르지 못한 근원을 찾았고 또 밍후이왕에서 한편의 문장을 보았는데 한 노년 동수가 남편이 사망한 후, 역시 동수를 찾아 가정을 이루려 했다. 문장은 그가 어떻게 법에서 이 일체 집착을 버렸는가를 분석했다. 이 문장은 나에게 매우 큰 계발을 주었으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사람은 각자가 명이 다르므로 나 자신의 사람마음이 모친을 이렇게 되게 했으며 나는 응당 철저히 정, 색, 욕의 마음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상이 안정되니 모친도 변했다. 그들은 다시 나를 결혼하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며 모친께서는 또 농담으로 ” 네가 늙으면 누가 너를 돌보겠는가. 네 일을 우리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의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모친도 갈수록 명랑해졌다.

4, 진상을 하고 사람을 구하다

학교 지도자는 나를 도서실에 배치했다. 도서실은 학생들에게 개방하지 않았고 교사들도 책 빌리러 오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나는 일체는 모두 배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침 우선 도서실을 청소한 다음 앉아서 법 공부를 했다. 금방 시작에 어떤 학생들은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 책을 볼 수 있는가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수업이 끝나면 갈수록 많은 학생들이 와서 책을 봤으며 나중에는 체육시간 자유활동시간일 때도 학생들이 왔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했다. 하루에 적을 때는 한명 많을 때는 몇 십 명 되었다. 진상하는 과정에 여러 번 신고되었는데 모모 교사는 학생들에게 파룬궁을 선전한다고 했다. 나도 마음을 움직였지만 매번 다 법에서 정념으로 찾았다. 후에 교사들도 잇달아 책을 빌리러 왔으므로 나도 이지적으로 교사들에게 진상을 했다.

2006년 학교에서 진상을 하다가 한 가장의 신고로 “6.10”인원, 경찰, 교육국, 사회지역 등에서 6-7명이 학교에 왔다. 그들은 입을 열자마자 나의 성명, 연령을 묻고 경찰더러 기록하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이 묻는 문제를 하나도 대답하지 않겠다. 당신들 이것은 범인을 신문하는 순서인데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6.10” 책임자는 “당신들은 “참”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참말을 하라. 당신은 왜 학생들에게 책을 보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나는 그의 물음을 피하고 직접 역대 운동의 진상을 말하고 파룬궁에 대하여 역시 같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당신이 그래 누명을 벗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공산당이 주는 밥을 먹으면서 그래 그것을 반대하는가?”고 말했다. 나는 나의 노동소득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세뇌반에서 나를 박해했던 사람은 “당신이 이런 태도로 또 세뇌반, 노동수용소에 가겠는가?” 하고 말했었다. 나는 차분하게 “좋은 사람은 좋은 응보가 있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해롭다.” 고 대답했다. 그는 화가 치밀어 “내 생각 같아서 너를 한대 치고 싶다.” 고 말했다. 이렇게 근 두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그들의 어떤 문제든지 배합하지 않았다. 후에 그중 한 책임자는 나더러 나가라고 했고 나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사후 나는 자신을 반성했다. 그간 법 공부를 할 때 졸고, 발정념을 잘하지 못했으며 타성이 비교적 강한데다 한 학생에게 진상을 잘하지 못하고 그에게 책을 주어 보게 했는데 그리 이지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가장이 신고한 것이다. 이후에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고 깨달았다.

5, 당지 서민에게 당지 사악을 폭로하다

학교에서는 줄곧 나를 본부에 배치하지 않기에 나는 원직을 회복하려는 기회를 빌려 몇 년간 각층 각 부문을 찾았는데 학교 지도자에서부터 당지 “6.10”까지 찾았다. 나는 또 여러 부문의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6.10”의 조사와 소란을 당했다. 그리하여 나는 박해받은 경과를 써내어 밍후이왕에 발표하고 당지 진상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배포한 이튿날 내가 출근할 때 경찰차 한 대가 집문 앞 큰길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나가니 차를 돌려 도망쳤지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후에 나는 또 몇 차례 폭로했으며 두 번째 폭로할 때 당지의 진상자료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나는 (결정을) 유예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번에 나는 당지 “6.10” 두목이 한 말을 그대로 폭로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으며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기를 늘 나 한 사람만이 폭로하고 다른 동수들의 어떤 박해경력은 이미 밍후이왕에 발표했기에 그들은 당지의 전단지로 만드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니 내가 이렇게 하면 전형이 되지 않겠는가? 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생각을 동수에게 말했다. 뜻밖에 그녀도 그렇게 빈번하게는 응당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나도 본래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당신이 나의 마음을 가중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고 물어보자 그는 법리상에서 보면 사람의 마음이 맞는다고 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버리기로 결정했다. 집착을 놓으니 몸이 가벼워졌다. 이번 전단지가 배포된 이튿날 아침 내가 거주한 구역의 한 사람이 나보고 당신들의 사부가 어제 또 당신을 표창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듣고 웃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나를 고무 격려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함에 좀 성적이 있긴 했으나 원직 회복의 일은 줄곧 돌파하지 못했다. 나는 일부 집착이 법을 실증하는 것에 가리어 쉽게 깨닫지 못했다.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자신이 결과를 구하는 마음, 원직을 회복하려는 집착이 비교적 강하고, 인간의 득실을 놓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마음속에 법을 실증하자는 마음뿐이면 효과가 더욱 좋았을 것이다.

6. 곳곳에 핀 꽃 중의 한 송이 꽃

한번은 동수를 찾아갔는데 나를 모르는 동수가 나를 컴퓨터 고수로 여기고 나 또래의 연령은 응당 컴퓨터에 매우 정통하리라 생각한다. 기실 나도 다만 인터넷에 접속하고 간단한 프린트를 할 뿐 좀 복잡한 것은 모른다. 이전에 나는 컴퓨터를 매우 배척했다. 그것은 외계인이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법리에 분명하지 못한 표현이다. 후에 동수가 나더러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자료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해서야 비로소 배우게 되었다. 정말 접속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밍후이에 접속하여 매일 그렇게 많은 교류문장을 보게 되어서야 인터넷에 일찍 접속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고 그렇게 좋은 교류문장을 지나쳤었다. 지금 나는 이미 습관이 되어 매일 퇴근하여 처음 하는 일이 바로 당일 밍후이 문장을 다운로드하는 것이고 밥을 먹고 한 번씩 본다. 기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수련에 제고가 매우 크다.

지금 나는 또 경상(鏡像, mirror site-자신의 홈 페이지를 찾는 사용자들에게 필요한 다른 사이트의 주소를 연결시켜 줌), 시디 굽기, CD 겉면 붙이기, 조판 등 기술을 배워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진행하여 안전성도 높다. 나는 또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면 기술이 있는 동수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

이 몇 년 동안 놀람은 있었지만 위험이 없는 속에서(有惊无险)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자비한 가호와 자신이 대법에 대한 정심(靜心), 동수들의 지지, 정체원용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근 일 년 간 나는 비교적 게을러 이전처럼 마음을 안정하고 법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발정념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으며 때문에 정념이 강하지 못하여 삼퇴 효과도 그리 좋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두려운 마음이 드러나고 안일을 구하는 마음이 중하여 동수들의 말대로라면 말은 잘하지만 행동은 잘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일수록 정진하라고 이야기하셨다. 금후 나는 더욱 노력하여 사부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 일을 잘하며 부단히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에 동화하며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하여 자신의 서약을 지키고 사부님의 자비한 구도에 어긋나지 않겠다.

부당한 점을 동수들이 자비하게 시정하기 바란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11월11일

문장분류: 정법수련대륙인터넷법회글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4/212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