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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풍파 속에서 진상하다

글/ 중국 강서(江西)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8일】나는 1995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이다. 법을 얻기 전에 건강이 매우 나빴다. 아버지는 나의 병 치료를 위하여 이 병원에서 주임을 찾고 저 병원에서 의사를 찾았으나 병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위장병, 척추병 등 각종 병이 있었다. 나중에는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스스로 뒤척이지 못하였다. 매일 남편의 도움으로 몸을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법을 얻은 후 대법의 신기함은 신체를 매우 빨리 낫게 하였다. 모든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힘이 나서 길을 걸어도 몸이 가벼웠다. 남편은 줄곧 대법의 신기함을 말하면서 친척, 친구가 집에 놀러오기만 하면 파룬궁이 좋다고 말하였다. 건강이 나쁜 사람만 있으면 “파룬궁을 연마하오!”라고 말하였다.

1995년, 우리 지역에 연공장은 아직 매우 적었다. 우리는 매일 공원에 나가서 연공하였다. 대법의 홍보는 매우 빨랐다. 얼마 되지 않아 전 시의 연공장이 매우 많아졌다. 나와 동수들은 일상적으로 강서성의 기타 지구에 가서 홍법하였다. 아득히 먼 산간지역, 험악한 산길도 홍법의 발길을 막지 못하였다. 때로는 나와 동수 둘이서 새로운 지방의 길옆에 파룬따파를 간략하게 소개한 깃발을 걸고 연공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와서 연공을 배웠다.

1. 박해 속에서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다

1999년 ‘7.20’부터 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하였다. 불법으로 대법 제자를 체포하고 전력으로 모든 선전기구를 이용하여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이 대법을 비방했다. 우리는 단체 법공부와 연공환경을 잃었다. 그때는 막막하였다. 어떻게 해야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을 되찾고 수련환경을 되돌려 올 수 있는지를 몰랐다.

나는 동수들과 《정진요지2》〈나의 약간의 소감〉을 학습하고 서로 토론하였다.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들에게 파룬궁은 정법이고 ‘쩐, 싼, 런은 우주대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북경으로 상방하러 갔다. 나는 네 번이나 불법체포 되었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수감자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해 주었다. 진상을 알게 된 후 감방의 단순 용의자들은 다시는 대법제자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간 후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좀 더 일찍 파룬궁이 있는 것을 알았으면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지정된 간수가 대법제자의 몸을 수색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전법륜》과 경문을 모두 가지고 들어왔다. 또 우리가 법공부 할 때에는 악경이 발견하지 못하게 망까지 보아 주었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대법책을 감춰 주었다.

2001년 9명의 동수가 한 방에 감금 되였다. 토론을 통하여 악경들이 무조건 대법제자를 석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 함께 “파룬따파는 좋다! 쩐, 싼, 런은 좋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 파룬따파의 결백을 돌려 달라! 파룬따파 수련 환경을 돌려 달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악경들에게 잔인하게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하였다. 아울러 우리 9명을 갈라놓고 두 악경이 한 대법제자를 ‘전화’시켰다. 우리는 각각 단독으로 경찰에게 대법수련의 아름다움과 박해가 위법임을 이야기하였다. 경찰들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우리를 함께 가두었다.

세뇌반에 있을 때 나는 아직 무엇이 ‘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발정념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저 경찰과 직원을 보면 끊임없이 그들에게 대법의 좋음을 알려 주었다. 세뇌반의 악경은 호흡이 가빠지고 무척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말을 잘하니 여기에 있게 할 수 없다. 빨리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으라”고 말하였다.

2001년 나는 네 번째로 납치되었다. 그 당시 사당이 발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할 때 악경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 나를 납치하였다. 나는 가부좌하고 앉아서 그들과 맞섰는데 4명의 남자는 이상하게도 이 작은 여자를 들지 못하였다. 악경들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화를 내면서 온 힘을 다해 나를 계단 입구에서 밀어 나는 굴러 떨어졌다. 나의 11살 아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울었다. 나는 가부좌 한 채 굴러 내려갔는데 가부좌 한 다리가 그대로였다(2001년의 나의 상태임). 계단 입구에서부터 경찰차가 있는 곳까지 거리는 20미터밖에 안 되었는데 네 명의 악경은 네 번이나 맥 빠지게 들어서야 겨우 나를 차에 실었다. 나를 붙잡는데 악경들은 2시간 이상 고생하였다.

남편은 악경을 찾아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녀가 연공하여 좋은 사람으로 되고 범죄자도 아닌데 당신들은 왜 그녀를 이렇게 대하는가? 무엇 때문에 때리는가? 당신들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때리는가?” 라고 질문하자 경찰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내가 불법수감 되어 있는 동안 악경들은 교도원과 동수의 정황을 알려고 질문 하였다. 나는 견정한 정념으로 절대 신불을 팔지 않으며 동수도 팔지 않으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불법으로 구치소에 반 년 넘게 갇혀 있었다.

2. 산간지역의 고향집에 돌아가서 진상을 알리다

10년간 진상을 알리어 세인을 매우 많이 구도했다. 감회가 제일 깊은 것은 고향에 돌아가 진상을 이야기 한 경험이다.

나의 고향집은 이남 모현의 산간지역이다. 그곳에는 대법동수가 적어서 진상을 전파하는 것은 성시와 비교할 수 없다. 나는 고향 친구들과 농민들이 걱정되었다. 그들이 진상을 명백히 알아 구도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자주 기회를 잡아서 고향으로 갔다. 갈 때마다 아주 많은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고향에서 잘 모르는 사람은 한집 한집씩 찾아가서 자료를 나누어주고 익숙한 사람의 집에 가서는 대면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2008년 고향에 갔을 때 기회를 잡아 마을 사람들과 접촉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우연히 알려주기를 먼 친척집 딸이 시집가는데 나보고 축하주 마시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가면 축의금을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곧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축하주 마시러 가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결혼식 축하연에서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 탈당, 탈단, 탈대 하여 평안을 보증하자”는 진상을 이야기 하였다. 그 결과 축하연에서 20여명에게 권하여 모두 삼퇴를 시켰다.

원래 결혼 축하연이 끝난 후 가려고 하였다. 외사촌 형이 내일 가라고 하면서 말려서 나는 승낙하였다. 저녁에 결혼식을 도운 사람들과, 시간이 없어서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축하하러 몰려온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또 일부 사람들에게 권하여 삼퇴를 시켰다. 나머지 진상호신부와 소책자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도 아직 부족하였다. 외사촌형의 아들이 “다음에 올 때 꼭 호신부를 가지고 오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권하여 삼퇴한 조카는 내가 성시에 돌아간 후 그를 삼퇴시킨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전문인에게 부탁하여 그를 삼퇴시켰는지 물어 보고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

2009년 초 나는 고향에 가서 설을 쇠었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 진상을 이야기하였다. 마을에서 등불 용춤을 추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보았다. 나는 잘 아는 마을사람을 보면 “오늘 집에서 기다리세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당신 집에 가서 이야기 할게요.”라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에 진상을 이야기 하였기에 나보고 진상 CD, 소책자, 호신부를 달라고 하였다.

나는 한집 한집씩 걸어 다녔다. 인사를 한 집은 거의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거의 가는 집마다 능히 삼퇴시켰다. 전에 진상을 들었지만 그다지 명백하지 못한 사람도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고향에 가서 30여명을 삼퇴시키고 그들에게 진상호신부도 주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도 삼퇴를 권유하여 평안을 보증하도록 하겠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똑똑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주어 보게 하면 그들은 곧 명백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내가 삼퇴를 권할 때 사용한 이름은 모두 본인이 스스로 지은 것이다. 내가 가명을 지어주면 그들은 오히려 태연하게 “무슨 가명을 쓰겠어요. 본명을 쓰세요. 중국이 이렇게 큰데 사당이 어떻게 누구를 찾겠어요?”라고 말했다.

한번은 마을의 한 노(老)당원의 집에 가서 삼퇴를 권유하였다. 처음에는 노당원의 사촌남동생이 나보고 그를 찾아가지 말라고 하면서 “그는 당신을 팔아먹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모두 중생이기에 분별심이 없어야 하며 마땅히 똑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갔다. 그 노당원은 나에게 물었다. “마을에 나타난 파룬궁 자료는 당신이 놓은 건가?” 나는 “당신이 내가 놓는 것을 보았나요?” 라고 물었다. 그는 “당신이 전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놓은 사람이라고 말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돌아온 것은 바로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누가 자료를 놓든지 당신들이 구도되기를 희망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삼퇴하기를 바라면서 오랫동안 말하였다. 그도 공산당이 좋지 않다고는 말하였지만 삼퇴를 하지 않았다. 내가 떠날 때 그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왔다. 나는 그가 삼퇴하지 않아 아쉬웠다. 또다시 그에게 “큰오빠가 진정으로 삼퇴하기를 희망해요. 절대로 사당을 대신하여 희생하지 말아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결국 나의 진실한 마음을 느끼고 말하였다. “그럼 자네가 나를 삼퇴시켜 주오.”

나는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통하여 심히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절박하게 대법제자들의 구도를 기대하고 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다그쳐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중생을 많이 구도하여야 한다.

3. 중생을 널리 구도함에 ‘민감일’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농촌에는 인구가 많으나 마을은 분산되어 있다. 또 비교적 소통되지 않는 지방이어서 대법제자들이 가서 진상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구할 것이 필요하다. 나와 동수는 늘 자전거를 타고 비교적 먼 편벽한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한다. 잘 지은 집을 발견하면 그 집의 경제조건이 좋아 VCD 플레이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CD를 놓고, 초라하고 낡은 집에는 소책자와 주보 등을 놓아 진상을 보기 편리하게 하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 주일에 한 두 마을에 배포하는데 매번 가지고 간 자료를 다 배포하여 지금까지 되가져 온 적이 없다. 어떤 때는 한 마을이 끝나면 다른 마을에 가서 배포한다. 나갈 때 먼저 발정념을 하여 가는 곳마다 그 공간장의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고 그 어떠한 생명도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지음을 허용치 못하게 한다.

사당은 이른바 ‘민감일’에는 자주 국민에 대하여 엄밀한 감시를 강화한다. 신의 길로 나아가는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악한 구세력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고 ‘민감일’에 진상을 이야기하면 위험하다는 관념을 타파하여야 하며 매일 중생구도에 나서야 한다.

나는 이전에 비록 ‘민감일’에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지만 조금은 무서운 마음이 있었다. 이 바르지 못한 관념을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배제하고 없앨 수 있었다. 2009년 ‘10.1’ 이 날은 사당의 중생에 대한 박해가 더 심해지는 날이기에 우리는 마땅히 빨리 가서 더욱 많은 생명을 구도해야 한다고 여겼다. 동수는 나와 생각이 같았다. 10월1일 저녁 우리 둘은 같이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모두 100여부의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서 우리는 자료를 배포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세 가지 일을 할 때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힘껏 노력하여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한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대법의 위덕 중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정진하는 동수와 비교해 보면 아직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금후 더욱 법공부를 잘하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며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겠다.

합당하지 않은 곳은 동수들의 자비롭게 시정하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8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8/2116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