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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하다

글/ 하북 대법제자 하련

[명혜망 2008년 12월 2일] 나 자신이 바르게 했기 때문에 직장상사, 동료들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또 나를 존경했다. 한 번은 직장상사가 술을 마시곤 얼근히 취한 채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하련을 좀 따라 배우란 말이야, 손해를 보고, 남에게 양보하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잖아, 쩐 하오!(정말 훌륭해!) 쩐 ㅡ쩐, 싼, 런!” 말이 떨어지자 온 방안 사람들이 와~하고 웃었다. (평소 상급자는 이런 말을 공개 장소에서 감히 하지 못하는 말이다.) 나를 보면서 모두 웃었다. 그는 또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들 왜 웃어, 이건 나의 취중진담이야” 여러 사람 모두 배를 안고 웃었다.

사악이 박해한 이 여러 해 동안, 주변 사람들은 줄곧 온 힘을 다해 나를 보호해 주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는 아직도 선념을 간직하고 있는 생명이 쩐, 싼, 런에 대한 인정과 갈망이라는 것을, 그 가운데서 나도 대법의 위엄의 일면을 감수할 수 있었다.

ㅡㅡ본문작자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
동수들 안녕 하십니까 !

나는 북방의 어느 소도시에 살고 있는 대법제자이다. 1998년에 법을 얻어 오늘까지 수련한지 10년이 되었다. 10년이라, 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걸어 온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니 하고 싶은 체험담은 실로 너무나 많고 많다.

십 년 전,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미칠 듯 기뻤던 일이 떠오른다. 수련의 길에 오르자 용맹 정진 하였다. 그 때 나는 기갈을 만난 듯 법공부를 해 씬씽 제고가 매우 빨라 전반 사람을 환골탈태 한 듯 했다. “7.20” 때에 와서는 발걸음이 늦어졌고, 수련은 많이 어려워 졌다. 그 사이에 넘어지기도 하였고 심지어 넘어져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기도 하였다. 후에 사부님 인도로 법리가 점차 분명해지면서 법에서 수련해 낸 정념에 의거해 자신의 법 실증의 길을 열어 놓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 나의 조그마한 휘황을 이룩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이번 기회를 빌어 정법수련 중 비교적 깊었던 일부 체험을 써 내어 동수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공동 제고하여 최후의 수련의 길에서 더욱 잘 하기 바란다.

1, 생사를 내려놓음에 관해

99년 “7,20”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막 시작 하였을 때, 한 시기 나는 줄곧 곤혹스러웠다.

“4.25” 와 ” 7,20″ 때, 법을 수호하러 두 번 북경에 가 앵앵거리는 경찰차와 총을 지닌 무장 경찰을 마주하고 사부님 <<홍음>>< 무존>의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

를 외우면서 두려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설령 무장 경찰이 정말로 총을 쏜다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었고,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목숨을 잃는 걸 생명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 때의 씬씽은 이미 능히 속인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데 생명마저 포함하여서였다. 그랬었는데 왜 자신의 환경으로 돌아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사악의 미친듯한 박해, 각 방면에서의 압력이 함께 들이 닥칠 때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속인이 이해하지 못할 까봐, 속인이 대법을 나쁘다고 할까봐, 붙잡힐까봐, 치욕을 달할까봐, 혹형을 당할까봐. 언제 이렇게 많은 두려움을 깨끗이 버릴지 몰랐고, 또 나 자신이 원만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다.

후에 수련을 함에 따라 서서히 생사를 내려놓는 것에 대한 사부님 말씀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이미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었다. 사실, 생사 두 글자 중 그 때 내가 내려놓은 것은 다만 뒤의 글자뿐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우주의 진리를 알게 된 한 생명으로서 “사”를 내려놓기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생”을 내려놓는 것이야 말로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생”이 있기에 사람 마음이 있게 되고,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자면 대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없이는, 관을 넘는 가운데 확실한 단련이 없이는 해 내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것을 해 내려면 오직 열심히 법공부를 해야만 한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를 외우니 매 글자마다 모두 새로운 체험이 있었고, 마치 금방 본 것 같아, 자신의 차이를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정법수련을 하면서,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사람 마음을 버리면서, 지금에 이르기 까지, 줄곧 내려놓은 것도 역시 이 “생”이었다.

후에 법공부를 하면서 또 알게 되었는데 이 곤혹 속에는 또 다른 하나의 대법수련 방식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는, 어느 한 층차에서 표준이 되었을 때 사부님께서 수련이 잘 된 그 부분을 갈라놓고, 수련이 안 된 사람의 일면은 또 각종각양의 나쁜 마음을 반영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착심을 버리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은 사실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수련의 상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2, 바르게 하다

수련 과정에서 또 하나의 아주 깊은 체험이란 바로 대법제자가 속인의 환경 속에서 바르게 하면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대법의 올바름을 느끼게 되고 사악이 날조한 거짓은 스스로 폭로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대법 수련인이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이를테면 가사 일을 잘 하지 않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직장, 사회에서 표현이 나쁘거나), 중생을 구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생을 훼멸하는 작용을 한다. 속인은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그들은 대법제자의 표현만을 본다. 대법제자가 잘 하는가 못 하는가는 직접적으로 대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며, 그들의 대법에 대한 일념에 영향 준다.

예전에 나는 문예 사업자로 소도시에서는 집집마다 알고 있는 “명인”이었던지라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이 방면에서 나는 줄곧 나자신에 대한 요구를 엄격히 하였고 사부님 가르침을 깊이 새겼으며,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고”(<<정진요지>>, 성자>), 시시각각 바르게 하도록 자신을 일깨워 사부님과 대법에 먹칠을 하지 않았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몸에서 모두 쩐, 싼, 런을 감수하게 하고 ,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게 하여 그로부터 대법에 하나의 정면적인 인식을 갖게 하였다. 따라서 이 역시 나와 인연 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수련이전에는 외모를 가꾸는데 속인의 유행을 따랐다. 손톱과 머리를 물들이고, 짙은 화장을 하고 성감을 추구 하였다. 씬씽이 승화됨에 따라 이런 변이적인 관념도 귀정 되었다. 나는 깨달았다. 옷맵시는 마땅히 마음의 경계와 안팎이 같아야 하며 이 역시 “진”의 한 방면이다. 한 수련인으로서 마음의 경계가 깨끗할수록 고상하며, 옷맵시도 간단하고 소박하며, 우아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니 어떤 농촌 동수들은 외모ㅡ 머리, 의상에 너무도 주의하지 않아 상하 모두 더럽고도 정결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이된 현대인은 대다수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이러한 형상으로 진상을 한다면 효과에 영향이 미치지 않겠는가? 사실 옷은 얼마나 좋은 옷을 입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고 깨끗한가를 본다. 최소한, 속인을 향해 진상을 말할 때 남들이 파룬궁은 왜 저 모양으로 옷을 입고 다니는가 하는 말을 하지 말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외, 또 대법제자의 집(특히 여 동수)은 반드시 깨끗이 정리돼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오히려 대법제자의 풍모를 체현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규정되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대법제자와 관련된 일체 일은 모두 반드시 제일 바른 상태여야 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나 모두 표면처럼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무엇이나 모두 중생구도와 영향이 있고 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구역에는 청소부가 없어서 아주 지저분했다. 처음에 너무 더러우면 내가 조금씩 청소를 했다. 한 번은 퇴근하여 차를 밀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원의 쓰레기를 보고 속으로 원망 했다. 지금의 속인은 너무도 자사적이다, 자기집 문 앞마저 쓸지 않는구나. 그러다 갑자기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어디에서든 모두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 정원이 대법제자인 내가 살고 있으면서 이렇게 더럽다니 천상의 신불들의 웃음거리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깨달았으니 해야지하곤 이튿날 정원을 깨끗이 쓸었다. 그 때부터 이 정원의 청소는 내가 하게 되었다. 겨울에 눈이 와도 내가 쓸었다, 이를 위해서 나는 빗자루와 눈을 치우는 삽 등, 청소 공구를 사들였고, 지금껏 6년 동안을 하루같이 오직 내가 있기만 하면 내가 사는 이곳 정원은 깨끗한 상태이다. 말하기는 쉬워도, 사실 이렇게 큰 정원을 매 구석부터 대문 밖까지 청소하자면 적어도 한 시간 반이 걸린다. 매번 다 쓸고 나면 힘들다 못해 손목, 팔이 이튿날까지 그냥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좋은 사람이 이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법제자가 세간에서 법을 원용하고 있으며, 이런 방식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내가 바로 정원의 눈을 쓸고 있는데 북쪽 아파트 2층 베란다의 창문이 열리면서 6,70대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는 감동과 탄복의 기색이 역력한 채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네, 좋은 사람…… 자네 그 하련이 아닌가 ? ” 나는 쓸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할아버지”

우리 아파트에는 교사 몇 사람이 살고 있어서 늘 가장들이 애들을 데리고 보충 수업을 받으러 오곤 한다. 나는 객실에서 그들 여럿이 층계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아유, 당신들 이 복도는 정말 깨끗하네요, 어떻게 돼서 이렇게 깨끗해 졌죠?! ” 아래층의 교사가 말하였다. “정말, 당신들은 모를 거예요, 모두 하련 언니가 한 일이예요, 우리 집보다 더 깨끗하게 했잖아요,”

부근에 살고 있는 한 동수가 한 번은 길에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대법제자가 잘하는 건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자료를 배포하기 보다도 더 효과적이예요, 그 날 한 무리나 되는 사람들이 길가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야, 우리 그 큰 정원을, 하련이가 늘 청소 한다니까’ 다른 사람이 이어 말했어요, ‘이 정원에 좀 더 많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대략 05년일 것이다. 한 번은 직장에서 단체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때 빌린 차가 작아서 자리가 모자라 중간에 등받이가 없는 작은 나무의자를 놓았다. 나는 차에 일찍 올랐는지라 창문 곁의 좌석에 앉았고 좀 늦게 오른 사람들은 쪽의자에 앉았는데 그 중에는 경비실의 장 할아버지도 있었다. 차 위에서 떠들고 있던 처녀 총각들은 누구도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었다. 나는 옮겨가서 “할아버지, 우리 바꿔 앉아요.” 하고 말하였다. 4백리 길을 쪽의자에 앉아 시달린다는 것은 수련 전 같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좌석에 꼼짝 않고 앉아 있으라고 하면 도리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마음은 쪽 의자에 앉은 것보다 더 불편할 것이다.

돌아 올 때 나는 일부러 일찍 와서 차에 올라 장 할아버지에게 문 가까이에 있는 자리를 알선해 드리고 나는 또 등받이 없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았다. 왕복 8백리 길이 요동쳤지만 나는 힘든 줄 몰랐다. 이런 행동은 나에겐 아주 정상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40대 여인이 하루동일 돌아 다녔고 게다가 왕복 8백리를 차안에서 흔들렸으면서도 몸이 가뿐했다고 하니 말이다. 대법은 원래 초상적인 것이다.

나 자신이 바르게 했기 때문에 직장상사, 동료들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또 나를 존경했다. 한 번은 직장상사가 술을 마시곤 얼근히 취한 채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하련을 좀 따라 배우란 말이야, 손해를 보고, 남에게 양보하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쩐 하오!(정말 훌륭해!) 쩐 ㅡ쩐, 싼, 런!” 말이 떨어지자 온 방안 사람들이 와~하고 웃었다. (평소에 이런 말을 공개 장소에서 상급자들이 감히 하지 못했다.) 나를 보면서 모두 웃었다. 그는 또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들 왜 웃어, 이건 나의 취중진담이야” 여러 사람은 배를 안고 웃었다.

사악이 박해하는 여러 해 동안, 주변 사람들은 줄곧 온 힘을 다해 나를 보호해 주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는 아직도 선념을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쩐, 싼, 런에 대한 인정과 갈망이라는 것을, 그 가운데서 나도 대법의 위엄적인 일면을 감수할 수 있었다.

나는 매 번, 가득한 업력과 낮은 씬씽으로 도태에 임박했던 생명이 대법 속에 정화되어, 자비가 빛을 뿌리는, 사부님을 따라 중생을 구도하는 정념정각의 생명으로 정련된 것을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다. 속으로 “인간의 일에 속 태울 대로 태우고 하늘의 고생에 마음을 쓸 대로 쓰네 “(<<홍음>><높은 곳은 춥기 마련>>)를 외우면서 사부님에 대해, 새로운 우주를 개척하고 있는 원용불멸의 대법에 대해 무상의 감격과 존경이 솟아나곤 한다(사람의 언어는 너무나 한계가 있다. 실은 표현할만한 언어를 전혀 찾아낼 수 없다.

말하고 싶은 체험은 아직도 많지만 지면의 제한으로 여기에서 그치려 한다. 써낸 글은 다만 나자신의 수련 과정의 일부 체험일 뿐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명혜망 제 5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2월 2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2/2/1908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