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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니 위험과 재난 속에서 놀라긴 했지만 위험은 없었다.

글 / 허베이성(河北省)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22일】

1. 사부님과 대법이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나는 61살 난 여자 제자로 전문대학을 나왔으며 어느 한 회사에서 부직(副職)을 맡다가 2000년 퇴직하였다. 1997년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신체가 허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13살부터 눈이 심하게 부셨으며 머리가 아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잇달아 바로 엄중한 뇌신경 쇠약증, 심장병, 류마티스성 관절염, 경추(頸椎) 및 요추 디스크 등이었다. 여러 해 동안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으며 심지어 침뜸치료까지 받았다. 그러나 요추 디스크로 재차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나중에는 또 기공치료를 했는데 전후로 두 가지 서로 다른 기공을 배웠지만 모두 병이 치유되지 않아 약을 떠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병마에 시달리던 끝에 13살 때는 자살하려는 생각을 품고 독약을 마신 적도 있으나 어머님의 간호 하에 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질병은 나의 성격을 급하게 만들었고 정신이 통제되지 않았으며 늘 남편에게 화를 냈다. 가끔 또 울면서 난리를 치기도 하였는데 아들과 딸에 대해서도 인내심이 없었다. 늘 지나치게 엄숙하여 가정 분위기 또한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

1997년 6월 무렵 여동생이 『전법륜』 한 권을 빌려왔는데 동생이 보고나서 나도 빌려서 단번에 읽었다. 이 책을 본 후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이것이 바로 한 부의 천서(天書)이자 바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8월 어느 날 한 노수련생의 인도하에 나는 마침내 연공장을 찾았고 매일 저녁 7~9시에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듣게 되었다. 노수련생은 모두 방석에 앉아서 법을 듣고 있었는데 어떤 이는 또 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나는 요추 디스크로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낮은 곳에 앉으면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바닥에 꿇어 앉았고 한 손으로 바닥을 잡고 또 몸을 비스듬히 한 채로 양쪽으로 바꿔 가면서 설법을 들었다. 아마도 연분이었을 텐데 바로 이렇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내 마음은 탁 틔여지며 인생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차츰차츰 조급하고 원망하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질책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고 승부욕이 강한 명리심 또한 차츰차츰 옅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일마다 자신을 찾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해도 몸이 아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었고 정신도 또렷해졌다. 뇌신경 쇠약증, 눈부심, 류마티스, 요추 디스크 등이 모두 나아졌다. 그리고 또 일부 다른 병증세도 일년 사이에 말끔히 사라졌다. 예를 들어, 만성 인후염, 유선(乳腺)증식 및 염증, 비뇨기계 감염, 손발바닥이 마르고 뜨거운 것, 변비 등의 증세가 전부 없어졌다. 무료로 배운 공으로 약 한알 먹지 않고 의료비 한푼 내지 않았는데, 대법은 나의 심령을 정화시켰고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갈수록 젊어진다고 하였다. 이후부터 나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사부님과 대법이 내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했으며 나로 하여금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더욱더 단호하게 믿게끔 하였다. 나는 저녁에 법을 공부했고 아침에 일어나 연공했으며 낮에는 출근하고 퇴근해서는 집안일을 하였다.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맡았는데 내가 주관한 공회(工會)의 사업이 허베이성 선진직장에 뽑혔으며 98년 말에는 “전국모범직공의 집”으로 선발되었다. 나 자신도 시(市) 노동모범으로 당선되었다. 가정에도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였다. 위생환경이 갈수록 좋아졌고 가정이 눈에 띄게 화합하였다. 대법은 나를 개변시켰고 가정환경을 개변시켰으며 일도 개변시켰다. 나는 내심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사부님의 고심한 구도[苦度]에 대한 감격의 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2.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니 위험과 재난 속에서도 줄곧 놀라움은 있었으나 위험은 없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시 공안국(公安局)은 회의를 열어 회사마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조사하여 기록하였다. 우리 회사 보위과의 동료는 나를 찾아와 상부에서 회의한 소식을 알려주었다(당시 회사 책임자가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위에서 트집을 찾으려고 하므로 우리 회사의 대법 수련생들을 모두 폭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가장 똑똑히 알고 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나 혼자 파룬궁을 연마하니 나를 적어서 보고하면 당신의 임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는 놀라서 말했다. “당신을 보고하면 안 됩니다. 상부에서 번거롭게 해요.” 나는 “누가 당신을 찾으면 당신은 그더러 직접 나를 찾으라고 말하세요. 내가 직접 그를 상대하겠습니다.”고 하였다. 바로 이렇게 나는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아울러 나를 파룬궁의 골간(骨幹)이자 중요 인물로 여기게 만들었다.

99년 10월 어느 날 밤,나는 ‘610’ 먀오XX의 사무실에 불려갔다. 그는 내게 검토서를 썼는가 물었고 나는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왜 검토서를 쓰지 않는가?”했고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검토서를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당신은 파룬궁을 연마하였는데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물었고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국가에서 허락한 것입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이미 7년이 되었고 국가에서는 또 파룬궁에게 변연과학진보상, 인기공파, 가장 환영받는 기공사 등 여러 개의 큰 상을 주었습니다. 중앙 지도자의 가족도 파룬궁을 배우는데 이것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습니까?”고 말했다.

그는 “당신은 나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밖에 나가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중앙에서는 이미 파룬궁 연마를 금지하였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어차피 상사가 나를 찾으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검토서를 쓰지 않았으면 일단 이렇게 합시다(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경과만 썼기 때문이다). 이틀 후 전 시(市)에서 파룬궁을 비판하는 대회를 여니까 비판원고를 쓰고 대회에서 선두로 발언하세요!”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공하는데 왜 나를 찾습니까?” 그는 “당신은 당원간부이니 당신이 써야 하고 당신이 비판해야 합니다. 당신은 바로 중요 인물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돌아가서 잘 쓰면 됩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사람 마음이 너무 무거운데다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정부의 탄압과 텔레비전의 하늘과 땅을 뒤엎는 모함선전에, 나는 그당시 압력을 아주 크게 느꼈고 조금 망연해졌다.

다음 날 오전, 나는 사무실에세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내가 배운 대법은 도대체 정법(正法)인가 아니면 X교인가? 4.25 만인(萬人) 청원은 합법적인 것인가 아니면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것인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고 내심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선생님은 내가 존경하고 가장 신뢰하는 분이며 대법은 사람들에게 선을 향하도록 가르치고 眞善忍을 수련하는 것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4.25 만인 청원은 헌법규정에 부합되는 것이다. 단지 중앙 TV방송국이 밤낮 무슨 외국세력이니 나쁜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는 등등 왜곡된 유언비어가 나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 이에 나는 선택을 했다. 비판대회에는 단호하게 가지 않으며 나는 심신에 이익을 얻었기에 절대로 마음을 어기고 사부님을 더럽히고 대법을 비방할 수 없다. 더욱이 ‘610’이 나를 이용하여 대법제자의 정체적인 안정을 파괴하도록 할 수는 없다.

결심은 굳혔지만 사람의 교활한 일면도 올라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비판 대회는 휴가를 내서 참가하지 않으면 되지만 비판 원고를 쓰지 않으면 고비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펜을 들고 비판원고를 쓰려고 하였다. 무엇을 쓸까? 첫째는 X교임을 승인하지 않고 둘째 사부님을 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셋째는 청원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다. 수련과정을 쓸까? 총결을 쓸까? 나는 두서없이 16절지에 글을 한편 써서 점심에 집에 가져갔다. 남편의 협조를 얻기 위한 것인데 나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첫째는 비판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며 둘째는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고 허리를 다쳤다고 휴가를 맡으려고 하니 당신이 대신 휴가를 맡아주세요. 이리하여 남편은 나를 대신하여 비판원고를 올리고 휴가를 맡았다. 휴가를 맡은 그날 밤 먀오XX는 또 우리 회사 상사를 찾아 회의를 열어 발언할 사람이 확실하게 결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의에서 회사 상사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 “시 지도자의 태도가 아주 엄숙하니 당신은 반드시 대회에 참석하여 발언하시오. 결석하면 안 되고 허리를 다쳐도 가야 합니다. 차로 모셔가고 모셔갈테니 꼭 나오세요.” 나는 전화에서 또 아주 엄숙하게 대답했다. “나는 절대로 가지 않겠습니다. 나를 처벌한다고 해도 가지 않겠습니다.” 이 일념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호하셨고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으며 그만 두었다. 3일간 휴식하고 나는 또 출근하였는데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2000년 12월 26일 오전, 시에서는 이른바 파룬궁 인원에게 판결을 선고하고 처리하는 대회를 열었고 블랙 리스트에 오른 우리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대회에 참가하였다. 회의 후에 회사에서는 나더러 오후에 시(市) 위원회에 가서 좌담회에 참석하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어찌된 일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또 머리가 아프다고 휴가를 내고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결과 회의에 나 혼자 결석하여 바오(鲍)XX 등 사람을 파견하여 차를 몰고 특별히 우리 집을 찾아왔다. “회의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시위원회 이(李) 부서기(정법위원회 서기를 겸임하였다)가 직접 회의를 주재한다고 하니 결석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오늘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부 위험을 벗어날 수 있고 이후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손해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손해를 보든 편의를 보든지 막론하고 혹은 번거롭든 지를 막론하고 내게 휴가를 달라고 해주세요. 나는 머리가 아프니 휴식해야 합니다.” 직원이 말했다. “만약 그가 휴가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당신이 나를 대신해서 휴가를 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일이고 그가 휴가를 주지 않으면 그의 일입니다. 만약 휴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다시 나를 찾아오세요.” 바로 이렇게 이튿날 나는 또 정상적으로 출근하였다. 나중에 들으니 회의에 참석한 몇 명 대법제자들이 모두 핍박에 의해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표시하거나 혹은 구두로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했다고 한다.

2001년 1월 신고에 의해 한 노년 제자가 청관(城關)분국에서 불법적인 심문을 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악경이 말했다. “사람을 말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을 하였고, 그 결과 정말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이튿날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이 노년제자는 내 이름을 말하고는 그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제자는 집에 돌아간 후 자신이 이름을 밝힌 동수가 똑같이 불법 납치와 심문을 당할까봐 즉시 아들을 보내 나에게 통지해 주었고 정황을 설명하면서 내게 잘 준비하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차분하게 그에게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나는 아무 일 없을 것이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의 남편(수련하지 않음)도 생각없이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이모(나를 가리킴)는 아무 일 없을 것이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튿날 노년제자는 또 그녀의 남편을 우리 집에 보내 내가 붙잡혔는지 여부를 알아오게 하였다. 나는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머니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저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고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

2001년 5월 12일 오후 우리 세 명의 동수들은 함께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배포한 후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캐고 집에 돌아갔다. 한 사람이 내가 파룬궁 수련생들을 조직하여 산에서 회의를 열고 내일 베이징에 간다고 신고하였다. 집에 돌아간지 얼마 안 되어, 시위원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 남편에게 저녁 6시에 시위원회에 가서 시위원회 부서기와 담화하라고 통지하였다. 남편은 가기 전에 나에게, 분명히 당신이 연공하는 문제 때문일테니 준비를 잘 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가자마자 ‘610’이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다. 며느리가 마당에 있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집안의 창문으로 네 명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신속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방법을 생각하려고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할까? 처음에는 조금 긴장하였고 마음속으로 오늘 저들이 나를 구치소에 납치해 가려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안 된다! 나는 주불(主佛)의 제자이다! 사부님께서는 “마음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만가지 움직임을 제지시킬 수 있다.”(『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대법을 거의 4년동안 배웠으면 헛되이 배우지 말아야 한다. 나는 법 속에서 닦아낸 지혜로 그들을 마주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쏴’ 하고 삽시에 머리는 아주 청성(淸醒)해졌고 온몸이 홀가분하여 모든 ‘두려움’과 ‘긴장’이 없어졌다.

이때 아들은 벌써 ‘610’ 네 사람을 객실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나는 찬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씻었고 씻고 나서 문을 열고 나가 대범하게 그들 맞은 편에 앉았다. 한바탕 정과 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법은 나에게 지혜를 주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처음 나의 집에 왔고 내가 먼저 당신들을 알아야 하니 어느 회사에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가를 매 사람마다 돌아가면서 물었다. 그들은 서로 소개를 했는데 청관진 정부의 왕(王) 서기, 공안국 정보과의 장(張) 과장. ‘610’사무실의 조(曹) 주임, 그리고……공안국의 장(張)XX가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 어머니와 할 말이 있으니 당신은 자리를 피해요.” 나는 “얘야! 움직이지 말고 그 곳에 앉고 피하지 말아라. 네 애미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또한 면목 없는 일을 한 적이 없다. 더욱이 너에게 잘못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너는 이곳에 있어라.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면서 만약 그들이 도리를 말하지 않고 위법(違法)을 자행하면 내가 무엇을 써서 네게 줄테니 이후에 네가 그들을 찾아서 처리하여라.”

공안국 장XX이 이어서 말했다. “오늘 당신을 찾은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당신더러 파룬궁에 대한 인식을 말하게 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의 문제에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반문하였다. 당신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모두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오늘은 토요일이고 전국 노동자들의 휴일인데 당신들은 휴식하지 않고 퇴근후에 또 야근까지 하여 우리 집에 와서 현장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당신들이 이 문제를 똑똑히 말한 후 다시 담화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들은 멍해졌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족히 10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공안국 장XX가 화제를 바꾸더니 파룬궁의 인식을 묻지 않고 다른 질문을 하였다. “이 며칠동안 어떤 활동을 하였습니까?”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산에 올라간 일이 신고된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이 이틀동안 산에 올라가서 산나물을 채취하고 괴화나무 꽃을 땄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캐는 것이 무슨 활동을 한 것에 속하고 무슨 법률에 저촉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또 거리에 나가서 누구랑 몇 마디 한 것이 무슨 활동을 하거나 혹은 어떤 착오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의심이 나면 산에 올라간 사람들을 찾아가 조사하고 알아보도록 하시오. 당에서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증거를 중요하게 말하고 조사연구를 중히 여기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조사한 후 내게 무슨 문제가 있음이 증명되면 다시 나를 찾아오시오. 만약 문제를 찾지 못하면 당신들은 더 이상 함부로 내 가정생활을 교란하지 마시오. 지금은 또 문화대혁명이 아니니 당신들은 아무 말이나 듣고 일체를 공격하고 일체를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안국 장XX은 더 이상 이 이틀동안의 활동을 묻지 않고 다시 말을 돌렸다. “당신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압니까?” 나는 마음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큰 거리 작은 골목에 적지 않은 전단지가 뿌려져 있고 적지 않은 스티커 표어가 붙어 있는데 한번 조사하려는 의도였다. 하여 나는 말했다. “나는 직장에서 퇴직한 지 몇달밖에 되지 않고 원래 회사조건이 좋지 않아 사무실에 컴퓨터가 없습니다. 지금은 아직 잘 모르고 이후에 배울 생각입니다.” 장XX이 또 화제를 돌렸다. “우리가 당신의 침실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까?” 내가 말했다 “안 됩니다.”그는 “왜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것은 내가 규율과 법을 지키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의 침실을 뒤지려고 합니까? 다시 말하여 일을 하려면 일의 절차에 따라 사무를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법을 집행하려면 법률절차에 따라 사무를 보아야 합니다. 서류(역주 : 수색영장을 말한다)를 꺼내보시오.”

그들은 “오늘은 서류를 갖추지 못했으니 당신이 우리의 일에 협조해 주세요.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무슨 임무를 수행하든 맹목적으로 집행하면 안 됩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며,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재삼 나에게 협조하라고 하였지만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단호하게 협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대법을 배우고 좋은 일만 하였으며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쁜 일을 했다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하고 누가 법을 어겼하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들 몇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상의하더니 남편이 돌아온 후 다시 말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여 나는 이 기회를 잡고 말했다. “당신들에게 내가 왜 파룬궁을 배웠는지를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높은 경지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고 둘째는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이 없습니다. 내가 배운 후 회사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나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진서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우리보다 아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이때 남편이 담화하고 돌아왔다. 내가 먼저 한마디 하였다. “그들이 아랫층 며느리 방을 수색하려고 하기에 내가 못하게 하였어요.” 남편이 말했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니 보여주지 않으면 돌아가서 보고하기 어려워요.” 나는 말했다. “절대 안됩니다. 누가 잘못을 저지르고 법을 어기고 싶으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편(국장급 간부)이 두려운 마음이 있어 그들을 응수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누가 보고싶다면 내가 책임을 지게 하겠소!” 그 결과 네 명 중 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고 오직 ‘610’의 조XX가 일어나서 침실을 한바퀴 돈 후 아무것도 뒤지지 않고 나왔다.

남편은 시위원회 부서기 리XX와 담화한 요지를 전달했는데 시상임위원회가 나를 “세뇌반”에 보내 학습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이미 그들 몇 분과 말하였습니다. 내가 대법을 배운 후 각종 환경 속에서 모두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내가 어디로 전향해야 합니까? 나는 필요 없습니다.” 방법이 없자 할 수 없이 나의 가족과 ‘610’ 사람을 두 조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시켰다. 남편은 아랫사람은 상사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여 거기에 압력을 받아 토론할 때 책상을 두드리고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향학교에 가시오. 당신은 오늘 가기 좋아도 가야하고 가기 싫어도 가야 하오. 당신은 당원간부인데 시위원회 서기의 말마저 듣지 않는단 말이오. 상임위원회의 의견마저 따르지 않는구먼!” 아들도 조금 무서워하면서 말했다. “엄마, 보아하니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며칠만 가 있어요. 이서기가 그러는데 며칠만 가 계시면 책임지고 모셔온다고 했잖아요.”

오로지 수련하는 사람만이 마음속으로 명백히 아는데 이것은 모두 속임수였다. 당신을 ‘전향하게 하여’ 당신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사악의 목적이다. 하여 나는 냉정하고 엄숙하면서 또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부자는 무엇이 ‘전향학교’인지 알아요? 그것은 진정으로 교육받는 곳이 아니예요. 그곳은 우리 시 제3의 감옥이에요! 전문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곳으로 그 곳은 불구덩이란 말이오! 당신 두 부자지간에 나를 불구덩이로 밀어넣으려고 하는데 나는 뛰어들지 않아요! 나는 절대 가지 않아요! 리서기뿐만 아니라 바로 장XX이 가라고 하여도 가지 않아!”이렇게 말하자 남편과 아들도 명백해졌다.

남편이 말했다. “가기 싫으면 여기 있지 말고 집을 나가시오!” 나는 대문을 나섰고 친척집에 갔다. 남편은 ‘610’요원에게 “이 일을 나는 할 수 없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가지 않고 사람도 핍박에 의해 나갔으니 당신들은 돌아가시오!”라고 하였다. 저녁 9시 45분 ‘610’ 사람들이 부랴부랴 나갔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3시간 45분 간 머물렀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대법이 가장 바르고 “진선인”을 닦는 것은 잘못이 없다. 나 또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길을 걷고 싶지 않다.) 하여 나는 10시에 집에 돌아왔다.

이어서 ‘610’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에 전화를 걸어 소란을 피웠다. 아울러 남편더러 매일 ‘610’에 가서 나의 정황을 보고하라고 하였다. 이날 밤 나는 자지 못했다. 법을 외우고 정공을 연마하고(당시 발정념을 하지 않았음)법에 입각하여 다음 일보의 전략을 생각했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서 행할 것이고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사악의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사악에게 이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610’이 나를 찾았다면 나는 마땅히 대법을 실증하고 마땅히 진상을 알려야 한다. 하여 나는 그날 밤 ‘610’에게 공개 편지를 쓰고 이튿날 정리하여 끝냈다. ‘610’이 무리하게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집을 수색하고 강제로 나를 ‘전향학교’에 보내려고 한 것을 모두 폭로해 냈다. 또한 내가 법을 배우고 이익을 얻은 것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실들을 모두 써냈다. 나중에 ‘610’사무실에서 읽은 후 이서기에게 보내 읽게 하라고 주를 달았다. 이 편지를 나는 남편에게 보였고 또 회사 상사에게 보였다. 남편은 “이 편지는 ‘610’의 입맛에 맞지 않아요.”라고 하였다. 회사 상사는 말했다. “편지를 잘 썼습니다. 모두 실제 상황이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회사 상사의 명백한 일면과 선심(善心)이 나온 것을 보고 더 한층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또한 태도를 표명했다. 즉 영원히 ‘610’에게 보증서를 쓰지 않을 것이며 그가 이해하고 지지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였다. 공개편지를 ‘610’에 보낸 후 넷째 날 답신이 왔는데 그녀에게 이런 것을 쓰게 한 적이 없다….였다. 그러나 이 일은 또 이렇게 끝났다.

3. 신심(信心)을 단호히 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다

내게는 기개가 드높은 이야기가 없고 일부 동수들처럼 번화한 시장, 차 안, 음식점, 회의장, 수업시간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정정당당하게 대법의 진상을 말한 적이 없다. 정진하는 동수들과 비기고, 대법의 요구에 따른다면, 나는 자신이 중생을 위하여 너무나 적게 하여 늘 부끄럽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마음수련을 통해, 나는 전혀 물러나지 않았고 더욱이 포기하지 않았으며, 내심으로부터 스스로 여러분들과 같이 세인들이 진상을 이해하도록 대량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실천 속의 단련을 거쳐 진상을 알리는 일을 갈수록 더 잘할 수 있다고 단호히 믿게 되었다.

나는 감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 기회를 찾아 진상자료 혹은 그(그녀)들에게 축복카드나 혹은 호신부를 주었고 슈퍼, 주차장, 큰 거리 작은 골목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거나 표어를 붙였다. 나는 매번 몇 십 명 백여 명에게 진상을 알리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씩 진상을 알리고 후에 2,3명에서 3,4명, 7,8명에게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생소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여 먼저 친척, 가족, 잘 아는 사람들에게 알렸다. 모든 친척 친구, 톈진(天津)이든 베이징(北京)이나 어떤 도시든 변두리 농촌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찾아가 방문하였다. 약 200여 명에게 말했다.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또 속인 식의 방법으로 자신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였다. 예를 들어 나는 2000년 퇴직한 후 노인대학 활동에 참가하였고 댄스반에 참가하였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세 차례 활동에 참가하였으며 매번 2시간 씩이었다. 후에 나는 또 노래반에 참가하였고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번 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주마다 모두 스스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5차례 있었고 토요일, 일요일은 다시 자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단련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 속에서 발정념을 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며 진상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고가는 길에 발정념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본분이고 사명이다. 노인대학에서 나는 몇몇 동수를 만났고 우리는 협조하여 단결하였으며 마음이 일체가 되어 평소에 각종 장소에서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림에 주의하였다.

2002년 설 축제에서 예능팀의 4명이 삼구반(三句半 역주: 7글자씩 세번 반복하고 끝에 3글자로 마무리하는 형식의 문예작품을 말한다. 즉 7-7-7-3 으로 연속되는 형식을 지닌다.)을 연출하여 대법을 모함하는 프로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정념을 내보냈다. 그 일이 있은지 반년 후 삼구반을 연출하던 중 마지막 후반구를 하던(가장 사악하게 말했다) 여배우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던 중에 앞뒤로 지나가던 두 대의 차에 부딪혀그자리에서 죽었다. 이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지면서 이치를 명백히 아는 사람들은 모두 대법을 모함하여 받은 보응임을 알게 되었다. 노인대학의 한 프리랜서 작가가 전에 무용협회회장에게 성(省)의 선진적인 사적(事迹)을 정리해 주기로 했다. 원고 작성이 끝난 후 우리 동수 두 명이 보게되었다. 나와 링(玲) 언니가 함께 보고 나서 파룬궁을 배척하는 일부 말들을 명확히 지적해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녀는 삭제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진상을 알고나서 또한 법을 얻었다. 노인대학을 오가는 길에 진(鎭) 정부, 공안청사, 시위원회, 시정부와 텔레비전 방송국 등 여러 곳을 지나다닐 때 우리는 모두 정법구결을 묵념하여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는 바 좀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가 수업이 없는 기간에 앙가(秧歌 역주: 중국 북방의 민간 가무를 의미한다) 활동이나 요고(腰鼓)를 치는 활동에 참가할 때 우리는 모두 북소리에 맞춰 발정념한다. 매번 노년회, 봄 운동회, 가을 운동회, 스승의 날, 구정 등 개막식 혹은 대회 경축에 참가할 때 우리는 모두 무대 아래에서 발정념을 한다.

몇 년 동안 대회에서 시위원회 5조의 지도자들은 연설할 때 종래로 대법을 모함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울러 많은 협회의 회장, 협회임원 및 각 반 교사들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또 법을 얻었다. 예를 들어, 원래 댄스반의 3명 교사들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두 명은 이미 법을 얻었다.

제1차 대륙대법제자 서면심득교류대회 교류원고

문장완성 : 2004년 10월 12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22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25일 11:31:50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0/22/871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