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린성 메이허커우시 파룬궁수련자 가이융광(蓋永光)은 2024년 7월 허난 파출소와 톄베이 파출소에 납치돼 구치소에서 박해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됐고 몇 달 뒤 소식이 끊겼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부당하게 1년 10개월간 갇혀 있던 가이융광은 비밀리에 7년 9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고 그는 이미 지린성 지린 감옥 9감구로 끌려갔다.
가이융광은 68세로 메이허커우시 훙메이진에 거주한다. 2024년 7월 19일 가이융광과 아내 왕슈쥐안(王秀娟), 수련하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는 집에 들이닥친 메이허커우 허난 파출소와 톄베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대법서적, 컴퓨터 등 물품과 현금까지 모조리 강탈했다. 이후 왕슈쥐안과 아들 며느리는 차례로 귀가했고 가이융광은 메이허커우시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가이융광은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구타당했다. 그는 정념으로 단식하며 박해에 저항했고 어떤 박해성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으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가이융광은 매우 참혹하게 박해당했고 한밤중에 다른 감방 사람들은 종종 그가 고문당하며 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감옥 측이 멋대로 은폐했기 때문에 그가 어떤 비인간적인 고문을 겪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가이융광은 박해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돼 휠체어를 타야 했다. 몇 달 후 가족은 더 이상 가이융광의 소식과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최근 가족이 자유를 잃은 지 1년 10개월이 지나서야 가족과 친구들은 가이융광이 이미 지린성 지린 감옥 9감구에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는 비밀리에 7년 9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벌금 3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그는 부당한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감옥에서 가이융광은 시종일관 정념으로 박해에 저항하며 협조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가이융광은 박해로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 벽이나 사람을 부축해야만 천천히 이동할 수 있다.
일찍이 노동수용소에서 참혹한 박해 겪으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신앙 굳게 지켜
1. 퉁화시와 창춘시 노동수용소에서 참혹하게 박해당해
중국공산당(중공)이 1999년 7월부터 파룬따파 신앙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가이융광과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자는 공민의 기본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청원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진실한 상황을 알렸다가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형사 구류됐고 훙메이진 공안분국과 톄베이 구류소에서 온갖 고문을 받았다.
2000년 3월 말 가이융광은 파룬따파를 모함하는 이른바 ‘백만 서명’ 행사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납치됐다. 2000년 4월 27일 가이융광은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지린성 퉁화시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2001년 4월 27일 가이융광이 퉁화시 노동수용소에 막 도착했을 때 대대장 악질경찰 쑨젠푸(孫建富)는 형사범 푸스보(付世波)와 웨이린(魏林)에게 지시해 가이융광을 불러오게 하고 그에게 파룬궁을 계속 연마할 것인지 물었다. 가이융광이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하자 폭도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가이융광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죄수 푸스보는 심지어 한 발로 가이융광의 머리를 짓밟았다. 가이융광은 구타당해 콧구멍에서 피가 나고 얼굴이 부어올랐다. 2001년 6월 24일 저녁 7시 30분경 쑨젠푸는 형사범들에게 지시해 가이융광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독하게 구타하게 했다.
퉁화시 노동수용소에서 2001년 10월 11일 저녁 가이융광은 다시 한번 노동수용소 소장 장핑(張平, 사법국 부국장)에게 기만과 강압 등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가 장핑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 호소할 곳이 없게 되자 가이융광은 소장 등에게 단식 항의를 선언했다. 장핑은 가이융광에게 크게 욕을 퍼부으며 악독하게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고 공격했다. 가이융광이 그의 사악한 행위를 저지하자 장핑은 오히려 다른 감옥경찰들에게 명령해 가이융광을 함께 심하게 구타하게 했다. 장핑은 “죽도록 때려라!”라고 소리쳤다.
당시 기숙사에 있던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이 가이융광이 많은 감옥경찰에게 독하게 구타당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잇달아 5명의 파룬궁수련자가 그들의 법을 집행하며 법을 어기는 행위를 선의로 제지하며 무고한 박해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가 모두 심하게 구타당했고 어떤 이는 대변을 실금할 정도로 맞았다. 이 무리의 폭도들은 가이융광 등을 40여 분 동안 고문한 후 가이융광 등 3명을 독방에 가두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2001년 10월 12일 아침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그해 10월 말까지 여전히 5명의 파룬궁수련자가 계속 단식했다.
2002년경 가이융광은 창춘시 차오양거우 노동수용소에 불법적으로 수감됐다. 창춘 차오양거우 노동수용소는 지린성 남성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는 기지로 당시 불법적으로 감금된 남성 파룬궁수련자는 약 700여 명이었다.
2002년 초 차오양거우 노동수용소의 전 1대대 감옥경찰 리쥔(李軍)은 새로 구성된 3대대로 전보됐다. 그는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형사범 왕더차오(王德超)에게 지시해 가이융광을 여러 차례 심하게 구타하게 해 가이융광이 모욕을 견디지 못하게 했다. 리쥔은 부대 안에서 미친 듯이 “나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두렵지 않다……”라고 소리쳤다. 박해를 받은 가이융광은 장애가 생겨 말하기가 어려워졌고 발음이 불분명해졌다.
2002년 4월 5일 청명절 차오양거우 노동수용소는 처음으로 이른바 ‘백일 공략전’을 벌였고 천리후이(陳立會)는 부하 감옥경찰들을 지휘해 3대대에 불법적으로 수감된 4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에게 한 사람씩 ‘고비를 넘기게’ 하며 강제로 전향시켰다. 밤이 되자 수용소 내 각 대대 대장, 감옥경찰 및 죄수들은 확고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독수를 쓰기 시작했는데 전기봉, 경찰봉, 쇠몽둥이, 경찰 밧줄, 삼각벨트, 곡괭이 자루를 휘두르고 주먹질과 날아차기를 해 위층과 아래층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융광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다.
2. 강제로 집을 떠나 유랑하던 중 납치당해
2008년 4월 23일 저녁 메이허커우시 정법위원회는 각 지방 파출소 경찰에게 지시해 메이허커우시의 파룬궁수련자 10여 명을 납치했다. 다음 날인 2008년 4월 24일 오후 3시가 넘어서 훙메이진 공안분국장 사오좡(邵壯), 둥성제 파출소 소장 마번성(馬本生), 경찰 왕서우런(王守仁), 팡라오류(方老六), 펑(豊) 씨 등 10여 명은 가이융광, 왕슈쥐안 부부가 집에 없고 실내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불법적으로 가택에 침입해 노트북, 프린터 등 1만 위안 이상의 개인 재산을 강탈했는데 그중 현금 약 500위안이 있었고 빈 봉투까지 빼앗아 갔다. 가이융광, 왕슈쥐안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제로 집을 떠나 유랑해야 했다.
반년 후 2008년 10월 13일 오전 가이융광은 삼륜 오토바이를 몰고 훙메이진 구역의 도로를 주행하다가 불법적으로 붙잡혔다. 경찰은 “퉁화 지역의 통일적인 행동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이융광은 건강 상태로 인해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당해 당일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68세인 가이융광은 1년 넘게 불법적으로 감금된 후 7년 9개월의 무거운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지린성 지린 감옥 9감구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
관련 정보:
지린성 지린 감옥 주소: 지린성 지린시 촨잉구 쥔민루 100호
노선: 지린시 기차역에서 8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후 앞으로 약 2.5km 직진
또는 지린시 기차역 서문으로 나와 8번 버스를 타고 펑자툰 정류장에서 하차, 21번 버스로 환승해 지린 감옥에서 하차
우편번호: 132012
사서함: 지린시 315 사서함
감옥 업무 전화: 0432-6993822, 0432-69938262
원문발표: 2026년 5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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