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식인 부부가 20년간 겪은 참혹한 박해

[명혜망](종합보도) 산둥성 지난시 창칭구 파룬궁수련자 류루핑(劉如平·65), 장청란(張承蘭·62) 부부가 2025년 9월 29일 아침에 납치돼 류루핑은 창칭구 구치소(지난 제3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장청란은 지난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2026년 3월 13일 이들은 창칭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이후 류루핑은 3년 반 형, 장청란은 3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으며 두 사람은 도합 1만 8천 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이는 이미 류루핑이 세 번째로 불법 판결을 받은 것이고 장청란이 두 번째로 불법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강제노동 박해도 겪은 바 있다.

류루핑은 1982년 7월 산둥 농업대학 농업경제과 농업경제관리 전공을 졸업하고 지난시 창칭구 계획위원회에서 근무했으며 1993년 10월 전국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이후 지난시 창칭구 당교 법률연구실 주임 겸 순톈 변호사 사무소 전임 변호사로 일했다. 아내 장청란은 지난시 창칭구 경제 및 정보화국 엔지니어다.

刘如平  张承兰
류루핑과 장청란

중공의 파룬궁 근절 정책이 지속되다

2025년 9월 29일 이른 아침 지난시 정법위와 공안 시스템은 창칭구 공안분국(정보대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의 주도하에 지난시 여러 구의 공안(정보대대) 및 그 산하 파출소를 동원해 아침 6~8시 사이에 사전에 준비한 ‘명단’에 따라 시 전체 범위에서 일제히 체포 행동을 실시해 40여 명의 지난시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했다. 일부 수련자는 짧게 감금된 후 풀려났지만[그중 일부는 강제로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처분을 받음], 적어도 18명의 수련자가 불법적으로 체포 승인돼 지금까지 구치소에 감금돼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대규모 체포는 장기적으로 기획된 결과다. 지난 공안은 이 사건을 이른바 ‘대형 사건, 중요 사건’으로 격상시키려 시도하며 억지로 ‘조직적 범행’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특별히 ‘9·29 전담팀’을 구성했고 모든 파출소는 이 전담팀의 통일된 지시하에 행동했으며 불법 심문 내용조차 전담팀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작전은 창칭 공안분국이 주도했고 각 수련자 거주지 파출소가 구체적인 가택수색과 납치를 책임졌다. 파출소는 장기간의 불법 감시를 통해 수련자들의 행방을 파악한 후 통일적으로 배치해 체포를 실행했다.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은 류루핑과 장청란을 1~2년 동안 미행했으나 끝내 이른바 ‘실질적 증거’를 찾지 못하자 그들이 다른 파룬궁수련자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고 법공부 팀에 참가한 행위를 억지로 ‘범죄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책을 읽고 법공부하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선인(眞·善·忍)’ 기준에 따라 어떻게 도덕성이 높고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인지 교류하는 것이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품을 것이다. 선악이 이토록 전도된 사회가 과연 아직 인간 세상인가, 아니면 이미 마귀가 통치하는 지옥으로 전락했는가?

판결문은 그들의 거주지에서 수십 장의 전단, 다량의 USB 드라이브, TF 카드 등 물품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식통은 이것이 완전히 경찰이 날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들 집에는 애초에 전단이 없었고 오직 주간지 몇 권과 휴대폰 안전에 주의하라는 소책자만 있었을 뿐인데 경찰은 이를 페이지별로 센 후 모두 ‘전단 페이지 수’로 계산했다. 이러한 모함 수법은 처음이 아니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후부터 비일비재했다.

이 모든 것은 중공의 폭정이 파룬궁 박해 문제에 있어서 전혀 법률을 따지지 않음을 다시 한번 설명해 준다. 확고한 수련자에 대해 장기간 감시망을 구축하고 미행하며 감시한다. 마음대로 데이터를 위조하고 죄명을 얽어맬 수 있다. 이른바 ‘법률’은 그들이 불법(佛法)과 시민을 박해하는 도구이자 무기에 불과하다.

부부가 동시에 판결을 받은 것은 가정의 경제적 수입원이 완전히 차단돼 생활이 절망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중공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이 과거에 제정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 내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근절 정책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체계적인 파멸의 음모다. 파룬궁수련자에게 살길을 주지 않는 동시에 가족을 선동하고 이간질해 그들에게 반감과 심지어 증오를 품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존 공간을 끊임없이 압축하고 마침내 전체 집단을 소멸하려는 것이다.

대법에 들어와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좋은 사람이 되다

이들은 전형적인 지식인 가정이다. 부부 두 사람은 모두 번듯하고 수입이 안정된 직업이 있고 아들은 똑똑하고 철이 들었으며 형제자매 간에는 화목하고 융화돼 온 가족이 즐겁게 지냈다. 만약 이 사악한 박해가 없었다면 본래 부러움을 사는 행복하고 평안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류루핑은 1997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전에 앓고 있던 위장염, 신경쇠약, 인후염 등 질병이 치료 없이 나았고 심신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수련 후 그의 도덕 경지는 끊임없이 승화됐고 법률 교육, 변호사 업무, 혹은 일상생활을 막론하고 그는 모두 엄격하게 ‘진선인’을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진실을 말하고 착실하게 일하며 남을 선하게 대하고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았다. 그의 품행은 동료, 피고인 및 이웃들의 폭넓은 찬사를 받았고 그의 법률 교육 역시 수강생들에게 깊이 인정받았다.

수련 후 남편의 심신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보고 장청란도 2005년 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본래 현모양처의 전통 미덕을 갖추고 있었는데 수련 후 더욱 평온하고 선량해져 대법제자의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직장 동료, 친척, 동창, 친구 혹은 이웃을 막론하고 모두 그녀를 매우 인정하고 존중했다.

한번은 장청란이 은행 예금취급소에 돈을 찾으러 갔는데 본래 1900위안을 찾아야 했으나 집에 돌아와 며칠 후 은행에서 100위안을 더 준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즉시 예금취급소로 돌아가 초과된 100위안을 그대로 반환했다. 이 행동은 전체 예금취급소 직원들을 감동하게 했고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대법의 진상을 진정하게 이해하게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오늘날 도덕이 타락한 사회에서 이처럼 성실과 신용, 선념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은 실로 얻기 어려운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부부가 여러 차례 불법 강제노동, 판결 박해를 겪다

그러나 중공이 27년간 지속한 박해 속에서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기 위해 류루핑과 장청란은 여러 차례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본래 행복했던 가정은 매번 찢겨져 거의 산산조각이 났다. 이번에 불법적으로 3년 반 형을 선고받은 것을 더해 류루핑은 중공의 소굴에서 누적해 꼬박 15년을 보냈다.

2005년 10월 17일 저녁 류루핑은 ‘파룬따파 공고’를 붙여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지난시 창칭구 공안분국 둥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으며 불법적으로 7일간 형사 구류된 후 다시 지난시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같은 해 11월 25일 그는 지난 변호사 명의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강제 전향을 즉각 중단하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12월 7일 그는 직장에 유인당한 후 비밀리에 납치됐으며 12월 15일에 불법적으로 1년 3개월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이후 또 강제로 2개월 12일의 강제노동이 연장됐다.

2008년 8월 12일 오후 공안은 ‘평안 올림픽’을 구실로 다시 류루핑과 아내 장청란을 납치했다. 류루핑은 세뇌반으로 끌려갔고 장청란은 불법적으로 1년 반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2009년 7월 1일 류루핑은 다시 파출소 경찰에게 지난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로 납치돼 강제 세뇌를 당했고 이어서 창칭 제3구치소로 이감돼 45일간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서 그는 밤낮으로 손발이 묶여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채로 있었다. 경찰은 또 그에게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과 전기 충격을 가해 입 부위가 까맣게 타게 했고 입술이 부어올라 밖으로 뒤집어지게 했다.

2010년 1월 22일 창칭구 법원은 그에게 7년형을 불법적으로 무겁게 선고했다.

2017년 9월 15일 장청란이 도심 공원에서 대법서적과 진상 자료를 한 노년 수련자에게 건네줄 때 뒤따르던 창칭구 610 우두머리가 휴대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19일 아침 8시 30분경 창칭구 신청 파출소 경찰이 그녀의 직장에서 그녀를 납치했고 부부의 거주지를 불법 가택수색해 대량의 개인 물품을 빼앗아 갔다. 저녁 6시경 류루핑이 퇴근해 집에 돌아오다가 복도 입구에서 일찌감치 매복하고 있던 경찰 두 명에게 가로막혔다. 경찰은 그의 집에 가서 ‘대화’하자고 요구했고 류루핑은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며 복도에서 대화하자고 표했다. 그 후 그는 강제로 신청 파출소로 납치됐고 창칭구에 있는 지난 제3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이번 납치의 핑계는 뜻밖에도 류루핑이 전 직장인 창칭구 당교 및 창칭구 정법위, 조직부, 청원국 등 부서에 ‘복직 신청서’를 제출할 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2018년 1월 30일 창칭구 법원은 류루핑과 장청란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두 명의 변호사가 그들을 위해 논리 정연하게 무죄 변론을 했으며 검찰원의 기소가 사실이 불분명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며 ‘사이비 종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라는 규정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는 류루핑과 장청란의 행위가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으며 마땅히 무죄 석방돼야 한다고 명확히 표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법을 어기고 재판해 류루핑은 4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았고 장청란은 3년 반 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2025년 본래 이미 이산의 고통을 겪은 이 가정은 또 한 번 강제로 혈육이 헤어져야 했다.

‘법제 교육센터’에서 당한 폭력적인 세뇌 박해

과거 류루핑을 감금했던 세뇌반은 대외적으로는 ‘지난시 법제 교육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파룬궁수련자를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소굴이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강제로 수련자에게 흑백을 전도하는 선전 영상을 시청하게 했고 이른바 ‘소감문’을 쓰도록 강요했으며 ‘전향비’를 갈취했다. 하루에 최고 100위안에 달했고 한 번에 최소 3천 위안을 거뒀다.

더욱 황당한 것은 파룬궁수련자의 운명이 뜻밖에도 한마디 말과 몇 장의 종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바로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썼는지 여부와 파룬궁과 사부님을 욕했는지 여부다. 욕하면 즉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욕하지 않으면 감금 기한이 연장되며 심지어 강제노동 처분을 받는다. 어떠한 문명 사회에서든 형법은 사람의 행위만 조정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사상이나 신분을 징벌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법치의 기본 공감대다. 그러나 중공 통치하에서는 단지 ‘파룬궁수련자’라는 신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세뇌를 당하고 죄를 뒤집어쓴다. 이는 헌법 원칙과 형법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더욱이 현대 법치 문명에 대한 공공연한 거부이며 중공 자체가 법률 실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세뇌반에서 불법 직원들은 끊임없이 류루핑을 기만하며 “전향하면 무사해져 집에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전향’은 단지 한마디 말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공로를 세우는 행동’을 해야 했다.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중공에 충성을 표명하고 심지어 다른 수련자의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경찰은 심지어 그가 기꺼이 첩자가 되어 수련자의 상황을 보고한다면 그들이 “당장 사람을 잡으러 가지 않겠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류루핑은 즉시 경계했다. 이는 분명 그에게 특무(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사부님을 배신하고 수련자를 모함하는 이런 비열한 짓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었다.

더욱 심한 것은 류루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뇌반 경찰이 뜻밖에도 고의로 비보를 숨기고 그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하게 했으며 오히려 야근까지 해가며 계속 그에게 압력을 가하고 강제 세뇌를 했다는 것이다.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노동수용소 박해 – 광란의 전기 충격 등 고문

파룬궁 박해로 악명 높은 왕춘 노동수용소(산둥성 제2노동수용소)에서 류루핑은 시종 중점 엄격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전후로 3개 대대로 끌려갔다. 경찰은 그에게 전방위적인 폐쇄를 실시해 편지를 압수하고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하며 책이나 신문을 보지 못하게 하고 가족 면회를 불허했다.

노동수용소에 들어간 둘째 날 류루핑은 곧장 ‘행정 기소장’을 작성해 지난시 노동교양관리위원회의 불법 강제노동을 고소했다. 하지만 그가 등기 우편을 감옥경찰에게 넘겨준 뒤로 감감무소식이었고 지난시 중급법원은 지금까지 어떤 답변도 주지 않았다. 정법위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장은 법원이 아예 보지도 않고 일률적으로 ‘원심 유지’ 도장을 찍으며 심지어 형식적인 답변조차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 변호사 양짜이신(楊在新)이 가족의 위탁을 받아 대리 변호사를 맡았으나 노동수용소는 변호사 접견을 거절했고 스중구 법원은 파룬궁 사건에 대해 접수도, 답변도, 입건도 하지 않았다. 양 변호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신원 불명의 인원들에게 구타당하고 납치됐다. 중국에서 파룬궁수련자를 위해 정의로운 발언을 하는 변호사 역시 박해를 피하기 어렵다.

경찰 뤄광융(羅光榮)은 배신자들을 두 조로 나누어 류루핑을 번갈아 세뇌하게 했고 매일 밤 2시까지 괴롭혔다. 목적은 바로 그의 체력과 의지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류루핑이 항의했다. “매일 2시에야 잠을 자게 하다니 너무 인정머리가 없지 않습니까!” 뤄광융은 뜻밖에도 비웃으며 “나는 본래 인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철야, 벌서기, 세뇌, 화장실 사용 제한 등 수레바퀴 전술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경찰은 “보증서를 쓰면 샤워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류루핑은 샤워를 하고 싶어 보증서를 썼지만 그날 밤 깊이 후회했고 즉시 무효임을 엄정 성명했다. 그 후로 그는 월간 결산, 분기 결산 작성을 거부했고 경찰에게 그 어떤 것도 쓰거나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경찰은 화가 나서 그를 복도 서쪽 끝의 폐쇄 구역으로 벌을 세웠고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작은 의자에 앉아 벽을 바라보게 했다. 이 고문은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눈을 감거나 입을 움직이거나 손짓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골반과 요추가 모두 변형된다.

추운 겨울철에 그는 복도의 창문을 마주하고 매일 18시간 동안 벽을 보았고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두꺼운 털바지, 울 스웨터 두 벌, 패딩, 솜코트, 솜신발을 신고 있었음에도 발은 여전히 차가워 마비됐다. 하루하루, 1시간 1시간을 버텼으며 심지어 설날조차 봐주지 않았다. 화장실 사용이 엄격히 제한됐고 샤워도, 빨래도 불허됐다.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탓에 그의 엉덩이 여러 곳이 해지고 짓물러 피와 살이 바지에 들러붙었고 아파서 잠을 잘 수도,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것은 마치 칼날 위에 앉은 것 같았다.

경찰은 복도를 지나갈 때 손가락이나 주먹으로 그의 이마나 정수리를 세게 두드리며 조롱과 욕설을 동반하기도 했다.

2006년 3월 그는 엄격 관리반, 즉 소굴 중의 소굴에 갇혀 조폭 성향의 노동수용소 수감자들에게 감시를 받았고 그들은 교대로 당직을 서며 극단적이고 야만적으로 그를 감시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작은 의자에 앉아 벽을 보는 벌을 받았고 점심에는 쉬지 못하게 했으며 밤 12시에야 잠을 자게 했다. 매일 20시간 가까이 고정된 자세를 유지해야 했고 조금도 움직여서는 안 됐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감시자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했고 허리가 조금이라도 굽어지면 감시자는 무릎으로 그의 등허리를 세게 쳤다.

그 후 그는 초과 노역을 강요당해 종종 밤 12시까지 일했다. 노동 이외의 시간에도 여전히 작은 의자에 앉아 엄격 관리를 받아야 했다. 만약 꾸벅꾸벅 졸거나 말을 하면 감시자들에게 구타당했다.

매일 물을 두 컵만 마시게 했고 하루에 화장실을 다섯 번만 가게 했으며 시간이 되지 않으면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노동수용소는 이런 깡패 수단으로 사람의 기본적인 생리적 요구를 박탈해 신앙을 포기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엄격 관리반을 떠난 후 그는 또 7대대로 끌려가 잠을 자지 못하고 밤낮으로 ‘매 조련’(수면 박탈)을 당했다. 그가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기를 거부하자 경찰은 벌을 세웠다. 지도원 리궁밍(李公明)은 감시자를 사주해 그의 오른 발 엄지발톱을 차서 망가뜨려 피가 멎지 않게 했고 노동수용소를 나갈 때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또 그를 바닥에 눌러 앉히고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쳐 멍이 들고 부어올라 몇 달 동안 낫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그의 두 손을 뒤로해 나무 의자 다리에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바지를 벗겨 삼각팬티만 남게 했다. 몇몇 경찰이 그의 두 발을 밟고 무릎 관절을 짓누르며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누르고는 고압 전기봉으로 그의 왼쪽 허벅지 안쪽과 뒤쪽, 오른쪽 허벅지 안쪽 및 입 부위를 전기 충격하고 교대로 발바닥을 전기 충격했다. 다른 경찰 한 명은 그가 쇼크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물을 부었다. 전기 충격을 받는 과정에서 류루핑은 “법정건곤 사악전멸(法正乾坤 邪惡全滅)!”이라고 외쳤다. 경찰은 그가 소리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그의 입 부위를 전기 충격했다.

전기 충격은 2~3시간 동안 지속돼 전기봉의 전기가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그 후 그는 머리가 씌워진 채 교육동 지하실 철창 독방으로 끌려가 7일간 감금됐다. 독방은 어둡고 축축하며 더럽기 짝이 없었고 파리와 모기가 득실거렸다. 경찰은 강제로 그의 상의를 모두 벗기고 삼각팬티만 입게 해 그가 얼어 죽고 모기에 물리며 모욕을 당하게 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높이 매달아 수갑을 채웠고 밤에는 침대에 수갑을 채웠으며 이불은 없었다.

전기 충격 박해 후 그는 오른발 엄지발가락에서 계속 피가 났고 두 다리와 두 발이 몇 달 동안 부어올라 반년 넘게 절룩거렸다. 왼쪽 허벅지 안쪽과 뒤쪽에는 호두만 한 물집이 생겼다. 입술은 전기에 타서 까맣게 되고 붓고 갈라져 피가 끊임없이 밖으로 흘렀으며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수 없었고 코보다 더 높이 부어올라 찐빵처럼 부풀어 올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앞니가 흔들리고 시려서 몇 달 동안 물건을 씹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찐빵조차 먹을 수 없었다. 그가 당일 입었던 새 조끼는 전기 충격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천 조각이 됐다.

불법 독방 감금 기간에 그는 7일간 단식하며 박해에 항의했다. 독방을 나온 후 또 6대대로 끌려가 폐쇄 격리돼 반달 동안 엄격 관리를 받았다.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그는 또 8대대 엄격 관리반으로 옮겨져 밤 12시에 자고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매일 10여 시간 동안 노역을 했으며 일요일과 휴일에도 쉬기 어려웠고 심지어 샤워하거나 빨래할 시간조차 없었다. 감시자들은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심지어 가죽 허리띠로 마구 때리는 등 인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사람을 때렸다.

류루핑이 감금된 기간에 그의 아내와 아이가 여러 차례 면회를 갔으나 매번 경찰에게 거절당했다. 그가 수용소를 나올 때 정완신(鄭萬新)은 그제야 압수했던 개봉하지 않은 편지 여섯 통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노동수용소가 파룬궁수련자의 면회권과 통신권을 박탈하는 불법 행위는 비일비재하다.

강제노동 기간에 창칭구 인사국은 불법적으로 그의 급여 지급을 중단했다. 직장에 돌아온 후 더는 그에게 강의를 맡기지 않았고 고급 강사 직무에 임용하지 않았으며 행정 정과급에서 과원으로 강등시켰다. 창칭구 사법국은 또 변호사 사무소에 압력을 가해 류루핑을 고용하지 못하게 하고 변호사 수속을 해주지 않았다.

장청란이 노동수용소에서 당한 참혹하고 비인도적인 고문

중공의 강제노동 체계는 예로부터 ‘천하의 까마귀는 모두 검다’는 말과 같다. 남자 수용소든 여자 수용소든, 혹은 감옥이든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수단은 거의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장청란이 산둥성 제1여자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박해는 다음과 같다.

• 플라스틱 작은 의자에 장기간 앉아 있거나 군인 자세로 서 있기를 강요당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 감시자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장기간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 엉덩이에 멍이 들고 심지어 짓물렀으며 두 발은 자줏빛으로 반들반들하게 부어올랐다.

• 장기간 좁은 방에 혼자 감금되고 장기간 발언이 금지됐다. 좁은 방은 커튼이 굳게 닫혀 있었고 감시자 두 명이 동시에 감시하며 매 순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같은 반의 노동수용소 수감자들은 심지어 장기간 ‘장청란’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장기간 말을 하지 못하게 통제됐고 한번은 단지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감시자에게 작은 의자에서 끌어 올려져 연달아 여러 차례 뺨을 맞았다. 그녀는 또 장기간 이발, 세면, 손톱 깎기가 불허됐다.

• 장시간 화장실 사용을 금지당했다. 한번은 그녀가 도저히 참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누었는데 감시자는 갈아입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뺨을 때리고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누르며 머리카락과 얼굴로 바닥의 소변을 닦도록 강요했다.

• 겨울에 솜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보내온 솜옷은 한곳에 모아두고 그녀가 가져다 쓰지 못하게 했으며 감시자도 가져다주기를 거부했다. 겨우내 그녀는 어두운 작은 방에 갇혀 몸이 얼어 한 덩어리로 웅크린 채 온몸을 떨며 통증을 느꼈다. 감시자는 때로 고의로 창문을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게 해 실내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렸고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에 열 발가락이 모두 심하게 부어올랐다.

• 파룬궁을 비방하는 유언비어를 강제로 시청하게 하고 사상 보고서를 쓰도록 강요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고 초과 노동을 강요했다.

•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친족 면회를 거부했다. 장청란이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는 기간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걱정하며 장기간 두려움에 떨다가 세상을 떠났다. 고향 사람들이 노동수용소에 가서 그녀가 상을 치르러 집에 갈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무정하게 거절당했고 노동수용소는 심지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조차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이 여러 차례 면회를 갔으나 역시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고 그녀는 집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경찰은 또 장청란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무처 주임을 불러들여 학교를 통해 아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공갈하고 괴롭혀 장청란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하려 기도했다.

불법 강제노동 기간에 현지 610사무실은 그녀의 직장에 지시해 그녀의 모든 급여 지급을 중단하게 했다. 강제노동 기간이 만료된 후 그녀의 급여는 최하위 사무원 등급으로 강등됐다. 10여 년 동안 남편은 박해를 받아 수입이 전혀 없었고 온 가족이 오직 장청란의 쥐꼬리만 한 월급에 의지해 생활을 유지했다. 그녀는 아이의 대학원, 박사 과정을 뒷바라지해야 했고 또 감옥에 있는 남편을 면회해야 했기에 가정 경제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현지 610 직원들은 여전히 매년 여러 차례 그녀의 직장에 찾아와 괴롭히고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장기간의 감옥 박해

류루핑의 7년 중형은 산둥성 감옥에서 보낸 것이다. 그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기간 독방이나 1급 엄격 관리에 갇혀 문밖을 나서지 못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며 가족과 주고받는 편지를 압수당하는 등 각종 기본적인 인신 권리를 전면 박탈당했다. 그는 여전히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기를 강요당했는데 한 번 앉으면 곧 몇 달이었다. 감옥경찰은 심지어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에게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엄격 관리 기간에 수감자 셰타오(謝弢)는 경찰의 사주하에 파룬궁수련자의 옷장을 뒤져 경문을 찾았다. 류루핑이 엄하게 제지하자 셰타오는 화가 나서 수감자 몇 명을 불러 그를 경찰 회의실로 끌고 갔다. 셰타오, 마덩저우(馬登舟) 등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했으며 셰타오는 더욱이 그를 소파에 세게 밀쳐 넘어뜨려 소파 바닥이 부서지게 해 류루핑이 허리를 다쳐 쪼그리고 앉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박해 사실을 덮기 위해 감옥은 즉시 수개월 동안 가족 면회를 중단시켰다.

2012년 5월 류루핑은 단식하며 박해에 항의했고 법공부와 연공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20여 일 동안 계속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다. 제11감구 감구장 리웨이(李偉)는 화가 나서 “너는 죽고 싶으냐, 살고 싶으냐”라고 위협했다. 제20조에서 그는 형사범 자오웨쿠이(趙月奎)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해 귀와 광대뼈가 그 자리에서 부어올랐고 두통과 현기증이 났다. 그 후 꼬박 21일 동안 그는 매일 여섯 번씩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매번 음식물을 주입할 때 경찰은 구속복으로 그의 발, 다리, 허리, 가슴, 팔을 모두 나무 의자에 묶었다. 의사가 관을 꽂는 것은 지극히 잔인했는데 항상 관을 위장 밑바닥까지 꽂은 다음 다시 위아래로 반복해서 저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 고문의 ‘효과가 뚜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감옥 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때로는 2층 복도에서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동시에 묶어놓고 음식물을 주입했다.

매번 가족 면회 때 감옥경찰이 전 과정을 도청했기 때문에 그가 감옥에서 당한 심각한 박해를 가족은 당시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박해 속에서 파룬궁수련자의 비범한 풍모가 더욱 두드러지다

류루핑이 노동수용소에서 전기 충격 박해를 당한 후 6대대로 옮겨졌을 때 일반 노동수용소 수감자들은 그의 입 부위가 까맣게 타고 두 다리를 절룩거리는 참상을 보고 모두 몹시 놀랐고 많은 사람이 의분을 느끼며 그를 대신해 불평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류루핑은 오히려 자비롭게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파룬궁수련자는 맞고도 맞서 때리지 않고 욕을 먹고도 대꾸하지 않으며 더욱이 누구에게도 보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은 천리이니 그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악행을 선택한 것은 바로 스스로 파멸하는 가련한 최후를 선택한 것입니다.”

8대대 경찰 정완신은 여러 차례 그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끝까지 외고집을 부릴 모양이군.” 류루핑은 평온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진리를 견지하고 진리를 신앙하는 것입니다. 저는 외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광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명하고 휘황찬란한 길입니다. 박해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진정으로 끝까지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것은 깨닫지 못하는 바로 당신들입니다.”

한번은 정완신이 류루핑을 대대 사무실로 불러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적이다!” 류루핑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신들은 나를 적으로 여길 수 있지만 나는 당신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파룬궁수련자에게는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친구로 여기지만 단지 일부 친구를 구해주지 못해 유감일 뿐입니다.” 정완신이 또 물었다. “당신은 우리를 원망하는가?” 류루핑이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전기봉으로 우리를 박해한 그 사람들을 포함해 나는 모두 원망하지 않습니다. 파룬궁수련자에게는 원망할 사람이 없고 오직 구해주지 못해 유감인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목적은 모두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이해하든, 믿든 안 믿든 사실은 이렇습니다. 파룬궁수련자는 오직 사람을 구하는 일만 할 뿐 시종 이타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다년간 악당 직원들의 괴롭힘과 매번 불법적인 심문을 대면할 때 류루핑은 절대 협조하지 않았으나 시종일관 기회를 잡아 자비롭게 진상을 알리고 상대방을 구원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는 악해지지 못하곤 했다. 매번 헤어질 때마다 그는 당부했다. “반드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 자신을 위해 좋은 미래를 선택하십시오.”

장청란도 노동수용소에서 마찬가지로 박해에 협조하지 않았으나 시종 자비로써 모든 경찰을 선하게 대했다. 그녀는 감옥에 갇힌 남편에게 현모양처의 당부와 격려를 담은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한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꼭 자신을 잘 돌보고 항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해 자신에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모든 것은 곧 지나갈 것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모든 것이 다가올 것입니다. 순결한 사람은 응당 난초처럼 담백함을 견디고 매화처럼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쉽게 얻을 수 있는 안일과 유혹 앞에서도 연꽃처럼 순수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의 인품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어디에 있든 당신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고 당신은 영원히 내 마음속의 좋은 남편입니다.”

맺음말

중공은 권력을 탈취한 이래 피바람을 일으키며 주기적으로 각종 정치 운동을 발동해 중국의 절반 이상 가정을 박해했고 8천만 명의 무고한 시민을 비정상적으로 사망하게 했는데, 이 숫자는 두 차례 세계 대전의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것은 또 전통적인 유불도(儒釋道) 문화와 귀중한 역사 문물을 체계적으로 훼손했고 지금 또 ‘진선인’을 신앙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해 시비와 선악을 뒤바꿔 거짓, 악, 투쟁(假·惡·鬪)이 중화대지에 횡행하게 했다. 이 박해에서 모든 중국인은 모두 피해자다.

중공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고 사악과 어울리지 않으며 도덕과 양심을 굳게 지키는 것만이 자신의 생명에 진정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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