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린 바이청시 파룬궁수련자 멍판쿠이(孟凡奎)가 6년형을 불법 선고받아 지린성 쓰핑시(스링쯔) 감옥에서 참혹하고 비인도적인 고문을 당해 신체와 정신이 심각한 손상을 입고 2025년 10월 3일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5세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구타당한 등과 다리 부위의 흉터가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산성 물질로 부식된 것 같았다. 이에 앞서 멍판쿠이의 부모와 여동생 멍판잉(孟凡穎)도 잇따라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멍판쿠이, 멍판잉 남매와 그들의 어머니 쑨구이즈(孫桂芝), 아버지 멍칭야오(孟慶堯)는 모두 1999년 7월 파룬궁이 박해받기 이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마음을 닦아 선을 향해 심신이 모두 혜택을 받았다. 멍판쿠이는 1996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당시 아직 청년이었고 28세에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수련을 견지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모든 중국 대륙 파룬궁수련자들이 심각한 박해를 받았고 멍판쿠이 일가도 박해를 받았다. 특히 멍판쿠이가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릴 때 오히려 납치당했고 불법 판결을 받아 구금 기간에 여러 가지 잔인한 혹형 박해를 당했다. 여동생 멍판잉도 불법 노동수용소에 갇혔다.
멍판쿠이 6년 원통한 옥살이 고문 당해
2001년 11월경 멍판쿠이는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다가 납치돼 지린성 주타이 인마허 감옥에 구금돼 박해받았고 1년도 안 돼 돌아왔다.
2007년 5월 28일 아침 8시가 넘어 멍판쿠이는 바이청 사범대학 정문 맞은편에서 바이청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과 자오푸취안(趙富全) 등 악인 무리에게 강제로 납치됐다. 당시 구경하던 사람들의 서술에 따르면 멍판쿠이가 당시 걸어가고 있었는데 사복 입은 악인 몇 명에게 납치당했고 그들은 멍판쿠이의 팔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힘껏 그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멍판쿠이는 6년형을 불법 선고받아 지린성 쓰핑시(스링쯔) 감옥에 구금돼 박해받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멍판쿠이는 감옥에서 비인간적인 박해를 두 달여 당했다. 감옥경찰이 죄수들을 사주해 나무 막대기, 가죽 채찍, 삼각 벨트, 쇠막대 등으로 멍판쿠이를 구타해 살이 갈라지고 피가 터졌으며 멍판쿠이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옷핀으로 찌르고 이쑤시개를 손가락에 꽂아 멍판쿠이가 몇 번이나 기절해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다.
형사 죄수가 돌아와서도 자기가 사람을 해치는 수단이 있다고 과시하며 말했다. “멍판쿠이는 정말 잘 견딘다(참는다는 의미). 살이 터져도 신음소리 하나 안 냈는데 이쑤시개를 손가락에 꽂아서야 그가 소리를 질렀다.”

2009년 9월 초 관리 죄수 루옌펑(陸晏峰), 왕궈샹(王國祥), 왕옌솽(王延雙)이 전선으로 채찍을 만들어 멍판쿠이의 등을 때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터졌는데 1년여가 지나도 그의 등에는 여전히 상처가 있었다. 당시 감옥구역 책임자는 인서우둥(尹首東)이었고 부책임자는 저우지자(周繼佳), 개조 간사 리보(李波), 감옥경찰 하오위린(郝玉林)이었다.

2013년 초 몇 개월 동안 경찰 왕허쉰(王赫勛)은 앞뒤로 두 번 파룬궁수련자 스궈량(石國良), 멍판쿠이에게 폭행을 가했다. 이전에 파룬궁수련자 스궈량은 쓰핑 스링 감옥에서 이미 심근염, 흉수로 박해받아 정상적으로 걸어도 숨이 가빴고 감옥 의사도 개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스궈량이 이런 신체 조건인데도 쓰핑 스링 감옥 경찰은 여전히 그에게 강제 노동에 참가하도록 강요했고 스궈량은 전혀 일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그가 일하는 것이 적극적이지 않고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핑계를 찾아 3월 10일 오전에 경찰 왕허쉰이 그를 구타하고 죄수 위융푸(於永福), 장창웨이(將長偉)를 사주해 그를 구타해 스궈량이 서 있지 못하고 땅에 쓰러질 때까지 때렸다. 오후 4-5시경 스궈량이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했다.
2015년 멍판쿠이는 장쩌민 고소로 인해 7일간 불법 구류됐다.
몇 차례의 구금 박해로 멍판쿠이의 신체는 심각한 손상과 정신적 자극을 받았고 몇 년 동안 그는 다섯 번이나 가족에 의해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며 심장, 간, 폐, 신장 등이 모두 쇠약해지고 온몸이 부어 2025년 10월 3일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부모와 여동생 잇따라 원통하게 세상 떠나
멍판쿠이의 여동생 멍판잉은 바이청시 건설은행에서 일했다. 오빠의 인도로 1996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2007년 1월 11일 오전 멍판잉이 바오진(保鎭)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해 바이청시 국보대대 대장 위저(於哲), 부대장 자오푸취안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멍판잉 집에서 컴퓨터 한 대와 《전법륜》 책 한 권을 수색해 갔다.
멍판잉은 2년간 불법 노동수용소에 갇혔고 2007년 1월 24일 아침 9시에 불법적으로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2년 후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후 멍판잉은 직장에서 공직을 박탈당해 생활 수단이 없어졌고 심신이 극도의 상해를 받았다. 남편과 아이의 심신도 정도가 다른 상해와 타격을 받았고 올케와 노인의 도움으로 딸이 학업을 마쳤다. 그녀의 부모와 오빠도 파룬궁 수련으로 인해 장기간 괴롭힘, 납치 박해를 받았고 멍판잉은 심신에 거대한 압력을 받아 2018년 갑작스런 뇌출혈로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46세였다.
멍판쿠이의 아버지 멍칭야오는 철도 직원이었다. 가족의 영향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며 가족들이 파룬궁 수련 후 심신이 모두 큰 혜택을 받는 것을 진실하게 보고 대법 책을 들고 보며 수련했다. 자녀가 원통한 옥살이를 당해 노인에게는 타격이 너무 컸고 매일 우울하고 자녀를 그리워하며 생활했으며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데 왜 불법적으로 감옥과 노동수용소에 갇혀 박해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은 심신이 극도의 상해를 받아 돌발성 뇌출혈로 2014년 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71세였다.
멍판쿠이의 어머니 쑨구이즈는 교사였고 역시 아들과 같은 해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두 자녀가 파룬궁을 수련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때문에 불법적으로 원통한 옥살이로 박해받는 것은 한 어머니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였고 이어서 남편과 딸의 사망으로 노인의 감당 능력은 극한에 달해 2021년 10월 갑자기 발병해 세상을 떠났다. 당시 78세였다.
명혜망이 폭로한 박해 사례에 근거한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지린성 9개 지역의 파룬궁수련자들은 여전히 각종 정도가 다른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박해받은 인원수는 1031명에 달한다. 그중 박해로 사망하거나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 14명, 불법 판결 78명, 납치 396명, 괴롭힘 287명, 불법 가택수색 216명, 강제 세뇌 11명, 유리걸식 7명, 실종 4명, 각종 경제적 박해 18명, 박해 금액은 15만 7850여 위안이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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