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사존께서는 저를 자신만을 위하던 사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대법이 만들어 낸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주셨습니다.
1. 대법을 얻고 기사회생하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위중한 환자였고 온몸에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막막한 가운데 1997년 10월 친척이 제게 ‘전법륜(轉法輪)’과 ‘파룬따파 대원만법(法輪大法 大圓滿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병상에 누워 지내며 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전법륜’을 펼쳤는데 사부님의 사진을 보자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고 목차를 몇 페이지 보자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자 머리가 몹시 아팠고 결국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녁 무렵 다시 책을 들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몹시 아팠고 가슴까지 괴로워 마치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읽을 수 없어 또다시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저는 남편에게 책을 친척에게 돌려주라며 저는 이 책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우리집 문 앞까지 갔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대법 서적을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그래서 남편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한 번 더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저는 책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책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부체들이 제가 책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었고 사부님께서 부체를 청리해 주신 뒤에야 제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날마다 책을 읽고 동작에 따라 연공했습니다. 저는 배운 것이 많지 않았는데 남편은 제 병이 낫기를 바라며 저와 함께 연공했습니다. 당시에는 이것이 부처를 수련하고 도를 닦는 법인지도 몰랐고 수련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으며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았고 연공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 기적처럼 제 병이 나았고 부체도 없어졌습니다.
당시 딸은 아주 어렸고 자주 감기에 걸려 아팠습니다. 저와 남편이 책을 읽으며 연공을 배울 때 딸도 곁에서 저희를 따라 동작을 흉내 냈는데 사부님께서는 딸의 병도 낫게 해주셨습니다. 남편의 편두통과 관절염도 모두 나았고 남편도 법을 얻었습니다.
대법은 제가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며 “사부님! 저는 언제쯤 저 연공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우리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시집간 여성이 친정에 돌아오도록 안배하셨는데 마침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그 여성은 우리 부부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고 저를 자신이 사는 마을로 데려갔습니다. 그 마을에는 연공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보도원은 제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과 대법 서적, 연공 테이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진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연공한 뒤 특히 책을 읽은 후 저는 병이란 원래 생생세세 좋지 않은 일을 해서 생긴 것이고 이번 생의 고난도 모두 전생의 행위로 인해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전에 겪은 불행은 모두 좋지 않은 일을 해서 빚어진 것이다. 나는 책에서 말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누구에게나 잘하며 선하게 대해야겠다.’ 저는 책의 요구에 따라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자신의 언행을 단속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이후 저는 이 법이 이렇게 좋은데 마을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우리집으로 오도록 안배하셨고 그들은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집은 연공장이 됐습니다. 위중한 환자가 우리집에 와서 한동안 연공한 뒤 병이 나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싸움을 일삼던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연공한 뒤에는 담배와 술을 끊고 싸움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가정이 불화하던 사람도 법공부를 한 뒤 부부가 화목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이 사람들에게 덕을 중시하고 마음을 닦아 선을 향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진정으로 사회와 국가에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는 것입니다.
2. 결혼 초 시댁에서 업을 짓고 깊은 원한을 맺다
그 일은 제가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 시댁에서는 돈을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댁 형편이 매우 어려웠기에 어머니도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결혼할 때 돈을 적게 쓰고 친정에서 조금 도와주면 몇 년 지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으셨고 시댁에서는 양식업으로 조금씩 돈을 벌었습니다. 아들 넷 중 셋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막내아들 한 명만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집들의 형편이 매우 어려웠고, 남편의 두 형이 결혼할 때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기에 집에 정말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시댁 형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의 외삼촌이 보증을 서면서 저희에게 빚을 부담시키지 않을 것이고 결혼에도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난 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서 결혼할 때 생긴 빚을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남편은 압박을 견디지 못해 울기까지 했고 온종일 한숨만 쉬었습니다. 이후에는 둘째 동서가 우리 결혼식 때 낸 축의금을 저에게 직접 돌려달라고 하면서 시어머니가 받으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분함을 참을 수 없어 끝내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리집 마당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따지며 남편에게 친정에서 농사를 도와 수확해 준 콩을 팔아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결혼할 때 진 빚이니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심하게 다투는 바람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콩을 내다 팔았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 식칼을 들고 뛰쳐나갔지만 남편이 저를 끌어안아 막았습니다. 저는 홧김에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침 대학에 다니던 남동생이 집에 와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남편의 처지를 좀 더 이해하라며 저를 타일렀고 빚을 떠안으면 앞으로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남동생은 저를 시댁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빚의 절반을 떠안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댁에 대한 증오를 줄곧 마음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해에는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을 쓰지 않아 모두 직접 호미로 김을 매야 했습니다. 저희도 채소를 조금 심었는데 밭에 잡초가 너무 무성해 도저히 일손이 모자랐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남편에게 자기 밭에 가서 일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저희가 심은 채소밭도 미처 돌보지 못하고 있고 시동생은 집에 있으면서도 일을 하지 않으니 시동생에게 가서 일을 하라고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동생이 찾아오더니 저를 보자마자 욕을 하고 때렸습니다. 저는 화가 나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친정 식구들은 모두 밭일하러 나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을 풀 곳이 없던 저는 복수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쇠로 된 1자 정도 길이의 사각 송곳을 찾아 오후 내내 갈아 끝을 뾰족하게 만들며 시동생에게 복수하려 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오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오빠가 사륜차를 몰아 어머니와 함께 저를 시댁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려 하셨지만 뜻밖에도 시동생은 “때렸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소리치며 어머니에게까지 욕을 했습니다. 오빠와 시동생은 서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 틈을 타 시동생의 뒤에서 송곳으로 있는 힘껏 찔렀습니다. 결국 시동생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뒤로 시동생은 줄곧 몸이 좋지 않았고 저희 두 사람의 원한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저는 시댁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후 딸이 태어나 이름을 지을 때도 시댁 족보에 따른 항렬자를 쓰지 않았고 그 집안의 가풍을 제가 바꿔놓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제 앞에서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제가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대로 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저에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당신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가 얼마나 악랄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저는 그 마을을 떠나 친정이 있는 마을로 이사해 살면서 더는 시댁 사람들과 아무런 왕래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댁 사람들을 뼛속 깊이 미워했습니다. 질투심과 증오심이 제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고 온종일 머릿속에는 시댁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몸은 형편없이 망가졌습니다. 이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뇌혈관 기형에 혈관 벽까지 노화돼 있었고 의사도 수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병이 급하니 아무 의사나 찾아다니듯 여기저기서 신령을 모신다는 사람들을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집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을 많이 모셔놓았고 줄곧 그런 좋지 않은 것들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몸과 심장, 머리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었고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3. 대법을 얻고 법리를 깨달아 시댁과의 원한을 선하게 풀다
대법을 얻은 후 제 세계관에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났고 사물을 보고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도 180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시댁과의 갈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대법을 공부하면서 그것은 제가 생생세세 좋지 않은 일을 하며 빚진 업이고 제가 시댁에 빚진 것이므로 이 모든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깨달았으면 실천해야 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잘해드리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시어머니를 대했습니다.
1) ‘앞으로는 제가 어머니를 모실게요’
저와 시어머니는 서로 다른 마을에 살았지만 시어머니의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은 제가 마련해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받는 노인 복지 혜택을 모두 시동생에게 주었습니다. 시동생은 몸도 아팠고 빚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시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시어머니는 울면서 돈이 하나도 없어 쓸 돈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밭도 모두 시동생이 차지했다며 시동생과 따져서 돈을 좀 받아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그러지 마세요. 앞으로는 제가 어머님을 모실게요. 시동생도 몸이 아프니 저희가 도와줄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식량과 석탄, 생활용품을 사드리기 시작했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빠짐없이 마련해 드렸습니다. 또 정기적으로 과일과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드렸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준비해 드렸습니다. 때로는 시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어 드시기 편하게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시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시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오고 싶다며 방 하나를 마련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전에 저희는 이미 시어머니에게 “연세도 있으시니 저희와 함께 사세요! 저희와 함께 사시면 제가 방 하나를 마련해 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어머니는 싫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먼저 우리집에서 살겠다고 하셨기에 저는 아무 말 없이 돈을 들여 방 하나를 정리해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신 후에는 저희가 밖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시어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친척, 친구들에게 자신이 우리집에 노후를 보내러 온 것이 아니라 저희의 수련을 방해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밖에 나가 수련생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구하러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저희가 다시 박해받을까 걱정해서 그러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정(情)이라는 형식으로 저희를 교란하고 저희의 효심을 이용해 발을 묶어두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대법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목숨도 없었을 거예요.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머님을 우리집으로 모셔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할 수 있고 지난 몇 년간 이렇게 어머님께 효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법의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대법은 제게 좋은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한 생명이 되라고 가르쳤고 저는 그렇게 해냈습니다.”
제가 조금씩 정성껏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대법의 진상을 조금씩 알려드리는 한편, 사부님의 설법과 ‘9평 공산당’ 및 신전문화(神傳文化)에 관한 내용을 들려드리는 과정에서 시어머니는 변했습니다. 이후 친척과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면 시어머니도 그들에게 “이 대법은 정말 좋아요. 여러분도 모두 연마하세요!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라고 하셨습니다.
2) 억울함을 마주하며
이 과정은 또한 제게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을 법으로 바로잡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모두 시동생을 많이 도왔습니다. 돈을 내어 시동생이 농사지을 땅을 도급받게 해주고 종자와 비료도 사주었습니다. 이후에는 시동생에게 제게 빚진 돈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모두 중공 악당의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고 딸의 학비도 대야 했기에 우리집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이후 자료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납치돼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시어머니는 시동생을 위해 돈을 꾸었는데(민간 고리대금) 남편에게 서명하게 했습니다. 목적은 훗날 그 돈을 저희가 갚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댁 식구들은 모두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저 혼자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줄곧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보살폈고 매달 감옥에서 박해받는 남편을 면회하러 가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늘 보호해 주시고 대법 법리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저는 정말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남편은 출옥한 뒤에야 이 일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당시 시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은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시어머니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는 저희 부부 사이까지 이간질했습니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저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둘째 동서는, 남편이 본인이 감옥에 있을 동안 제가 시댁 식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둘째 동서는 제가 남편이 집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잘했고 특히 시어머니를 돌보는 면에서 더욱 잘했다고 남편에게 말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는 줄곧 남편 앞에서 제 험담을 하며 저와 남편 사이를 이간질했고 마음속의 불만을 풀어왔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저는 너무 억울해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혼자 이 가정을 떠받치면서 한편으로는 감옥에 있는 남편을 걱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어머니를 돌보며 집안의 여러 관계를 조율해야 했습니다. 돈도 적지 않게 썼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는데 결국 돌아온 결과가 이것이었습니다. 그 기간 저는 줄곧 사람의 층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수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그들에게 빚진 것을 이런 방식으로 갚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시고 작은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돈을 갚지 못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더구나 시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준 그 집에도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이 있다. 나는 중생을 생각해야 하고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작은 일조차 내려놓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우리집 땅과 어머님 땅을 팔아 빚을 갚아요. 돈이 부족하면 제가 더 보탤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대법만이 시어머니에 대한 제 원망을 풀어주고 제가 시어머니 대신 빚을 갚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시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었겠으며 또 어떻게 시어머니를 대신해 빚을 갚고 그분을 배려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부님과 대법은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제 행위를 바로잡아 주셨고 사부님께서 제 안의 원망하는 물질을 제거해 주셨기에 저는 우주의 특성에 동화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생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3) 둘째 동서가 변하다
저는 대법 속에서 수련하며 이타적인 경지를 닦아냈고 끊임없이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지난 몇 년간 줄곧 혼자 살고 싶어 하면서도 제가 예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돌봐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자신의 땅과 노인 복지 혜택, 돈은 모두 딸에게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큰동서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둘째 동서는 시어머니의 땅에 농사를 짓고 싶어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들 집에서 한 달씩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연세가 많아지자 큰아주버니가 두 달씩 각 집에서 지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계실 때 저는 아침이면 과일과 우유, 간식, 과자, 물을 시어머니 앞에 놓아드렸고 오후에는 다시 새것으로 바꿔드렸습니다. 과일은 모두 껍질을 벗겨드렸고 망고도 한입 크기로 잘라 드실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둘째 아주버니 집에서 지낼 차례가 됐을 때는 생활방식이 서로 달랐기에 둘째 동서가 저처럼 시어머니를 돌봐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둘째 동서의 잘못을 따지며 흠을 잡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둘째 동서와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둘째 동서도 이 일로 몹시 억울해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시어머니를 찾아뵈면서 어디에서 차이가 생겼는지 알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는 둘째 동서도 저처럼 자신을 돌봐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둘째 동서에게 제가 어떻게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갔을 때 둘째 동서는 자신도 저와 똑같이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수련인인 내가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해냈더니 주변 환경도 변하고 있구나.’
4) 자비를 선택하다
시어머니가 우리집에서 지낼 차례가 됐을 때 제게 이제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지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혼자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온돌방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제가 우리집으로 모셔 와 돌봐주기를 바라지만 돈은 제게 줄 수 없으며, 돈은 모두 외손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 돈도 바라지 않고 땅도 바라지 않으며 복지 혜택도 바라지 않아요. 어머님이 남으시면 제가 모실 것이고 가시겠다면 붙잡지 않을게요.” 시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셨고 제가 진심으로 자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억지로 하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고 소란을 피우며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시어머니와 맞서고 다투며 싸우고 싶게 하는 생각이 일어났고 어떤 물질이 제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물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그것을 없애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를 자비롭게 대하고 시어머니께 잘해드리겠습니다. 그 물질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투고 싸우고 싶게 하던 그 물질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시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방긋방긋 웃으셨습니다. 그 며칠 동안 시어머니는 매우 잘 지내셨고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저와 시어머니 사이의 원한을 풀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 속에서 대법 법리의 가르침으로 저는 자비를 선택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께 잘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5) 인내력과 감당하는 힘을 닦다
이후 시어머니는 때때로 제게 자신에게 잘해달라며 효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또 내 무엇을 닦으라는 것일까?’ 그래서 안으로 찾았습니다. 제게는 남이 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과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명예욕이므로 닦아 없애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인내력과 감당하는 힘, 고생을 견디는 능력과 의지력도 닦아내야 했습니다. 진정으로 진선인의 표준에 도달해 사심이 없고 자아가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이 부분을 수련하려고 마음먹자 곧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밭이 하나 있었는데 줄곧 둘째 아주버니와 둘째 동서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갑자기 그 밭을 돌려받아 저희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여러 해 동안 둘째 아주버니가 농사를 지었으니 그냥 주시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듣지 않고 기어이 저희더러 밭을 돌려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저는 그 밭을 돌려달라고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면 가족의 화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제가 ‘못된 짓을 한다’라며 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심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잘해드렸는데 어떻게 마음만 바뀌면 바로 이렇게 돌변할 수 있지? 이것은 수련인의 선량함을 이용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물질이 올라오는 듯했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를 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 시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은 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다투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이 답답하고 괴로웠으며 온갖 사람의 마음이 다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못된 짓’, ‘못된 짓’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드렸는데 나에게 이렇게 하시다니? 나는 대법의 진선인에 따라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면서 걱정하고 돌봐드렸는데 결국 이렇게 구박하고 마지막에는 내게 ‘못된 짓을 한다’라는 말만 남기시는구나.’ 저는 마치 마가 들린 것처럼 머릿속에 그 말만 가득했고 평소 시어머니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밤 12시에 발정념(發正念)을 마친 후 문득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이 표출되게 했을까?’ 저는 진선인을 한 번 또 한 번 외웠습니다. 계속 외우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인(忍)도 해내지 못했다. 인은 포용이며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고 모든 불공정한 대우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시어머니에게 빚진 것을 이런 방식으로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가? 결국 빚을 갚고 싶지 않고 제고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크게 화까지 냈으니, 인도 해내지 못했고 선(善)은 더욱 없었다. 나는 정말 사심이 없었는가? 진심으로 시어머니를 위해 생각한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모욕과 불공정한 대우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억울하거나 마음이 불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것들을 표출했는가? 이것 역시 진정한 내가 아니다! 가짜 나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반드시 닦아 없애야 한다.’ 그때 저는 마치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시면서 법리로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처럼 느껴졌고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아! 아직 시어머니 방의 온돌에도 불을 때 드리지 않았고 물도 끓여드리지 않았으며 과일도 씻어드리지 않았구나.’ 저는 서둘러 시어머니 방의 온돌에 불을 때고 물을 끓인 뒤 과일도 깨끗이 씻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마음이 맑아지고 온몸이 투명해지는 듯했으며 바람은 잔잔하고 구름은 가벼운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온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과 위력입니다.
6) 시어머니 “누구나 천당에 가고 싶지”
저는 진정으로 시어머니께 잘해드리는 것은 사부님의 설법과 ‘9평’ 등을 많이 들려드려 시어머니의 선량한 본성을 일깨우는 것이며, 동시에 시어머니의 좋지 않은 사상과 공간장 및 외래 교란을 청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제게 방송에서 말하는 진실함과 관용, 선량함도 실천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진선인이라는 우주의 특성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시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어요.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생명은 모두 고층 공간에서 생겨났으며 나쁘게 변하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시면 다시 돌아갈 수 있고 천당에 갈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 신(新)우주로 구해주실 수 있습니다. 저희처럼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과위가 있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중생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그런 귀신이나 동물, 온갖 난잡한 것들을 믿으면서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시어머니는 “누구나 천당에 가고 싶지”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모두 웃었습니다.
7) 쟁투심과 불평을 닦아 없애다
어느 날 아침 저는 밥을 준비한 뒤 시어머니께 식사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게 “네가 파룬궁을 연마해서 마음씨가 좋아졌으니,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 잘하고 잘 돌봐줘라. 그래야 내가 아들에게 너한테 좀 더 잘하라고 할 수 있지”라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 제 쟁투심과 불평이 또다시 올라왔습니다. 여러 해 동안 시어머니는 줄곧 남편에게 제 험담을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남편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저희 부부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실제로 집안일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고 무엇이든 제가 처리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자인 저는 정말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시어머니 댁에 다녀올 때마다 저를 대하는 태도도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 시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자 마음이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번번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 우리 생활과 부부 관계에 얼마나 큰 고난을 더했는가. 내가 대법을 수련하고 대법 법리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이러는 것이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단 하루도 우리집에 머물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평온하게 생활하도록 해드릴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까지 정성껏 돌봐드릴 수 있었겠는가?’ 제가 마음속으로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을 때 갑자기 흠칫 놀라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또 그것을 따라가고 있지? 만약 내가 전생에 시어머니에게 빚진 것이라면 갚으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내가 심성을 높여야 하는 거야. 시어머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내 업력(業力) 때문에 생긴 일이며 이것은 나를 도와 제고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드시 자신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 마음은 평온해졌습니다.
4. 대법이 나와 시동생 사이의 원한을 풀어주다
그해 제가 시동생의 몸을 다치게 한 일로 시동생은 저와 원한을 맺게 됐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 역시 몹시 자책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동생을 도왔지만 그는 줄곧 저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진상을 알려주어도 그는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박해받는 동안에도 저는 예전과 다름없이 시어머니를 돌보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목욕을 도와드리고 머리를 감겨드렸으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과 발톱도 깎아드렸습니다. 먹을 것과 쓸 것, 땔감과 쌀, 기름과 소금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가 책임졌고 시동생도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2년 동안 해마다 설이 되면 저는 시동생 부부도 시어머니 댁으로 불러 함께 명절을 보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모두 제가 샀고 시동생 몫도 따로 마련해주었습니다.
그해 저는 시동생에게 설에 쓸 물건을 가져다주면서 난방용 석탄을 사라고 1천 위안도 주었습니다. 식사하던 중 시동생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형수처럼 하지 못해? 형수가 앞에서 하면 당신은 뒤에서 따라 하면 되잖아. 형수가 무엇을 하면 당신도 그대로 하고 형수가 어머니 머리를 감겨드리는데 당신은 왜 못해?” 시동생의 아내도 정말 변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그녀도 저와 함께 했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시동생 집에 가셨는데 시동생은 시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자기 아내에게 머리를 감겨드리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됐다. 네 형수가 오면 감겨줄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시동생과 그의 아내는 기어이 시어머니를 앉혀놓고 머리를 감겨드렸습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 시어머니는 기뻐하시며 시동생의 아내도 머리를 감겨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시동생을 만날 때마다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알려주었으며 늘 자신에게 아직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 안으로 찾았습니다. 어느 날 시동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형수는 늘 공산당이 나쁘다고 하면서 공산당 돈은 또 쓰잖아요?” 알고 보니 그의 마음속 매듭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공산당에 어디서 돈이 생기겠어요? 공산당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공장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공산당 관리들이 쓰는 돈은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에요! 지금은 탐욕스럽지 않은 관리가 없을 정도이고 독분유와 폐식용유 같은 일까지 벌어졌는데 공산당이 이 사회를 얼마나 부패하게 했어요? 국민이 낸 세금은 공산당이 가져가고 그중 대부분은 공산당 관리들이 횡령하고 차지해요. 그러고는 그중 조금을 국민에게 돌려주면서 국민더러 공산당에 감지덕지하라고 하잖아요.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는 것인지 생각해 봐요. 공산당을 먹여 살리는 것은 바로 국민이에요. 감사를 해야 한다면 공산당이 국민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진심으로 시동생을 구하고 싶었기에 그에게 많은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이후 시동생도 공산당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가 예전에 주었던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목에서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저 믿어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믿어요. 이번에는 정말 대법을 믿게 됐어요.”
이후 시동생은 제게 말했습니다. “형수님,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형수님이 싫었어요. 형수님이 말을 걸어도 대꾸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전 일은 모두 지나간 일로 해요! 그때는 우리도 어렸고 철이 없었잖아요. 앞으로 우리 남매처럼 잘 지내요.” 저는 사부님께서 저와 시동생 사이에 여러 해 동안 쌓였던 원한을 풀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5. 내가 이익심을 내려놓자 외삼촌이 말씀하시다 “그러면 나도 탈퇴시켜 줘!”
예전에 외삼촌에게 아무리 진상을 알려도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남편은 돈을 들여 외삼촌 집에 NTD TV 위성방송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그해 저는 외삼촌의 몇 경(垧, 약 1만㎡) 되는 땅을 도급받아 농사를 지었는데 마침 그해부터 토지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해 한 경당 1천 위안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토지 면적을 신고하라고 하자 외삼촌은 자신이 가서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을에 남편이 외삼촌 집으로 보조금을 받으러 갔을 때 2경이 넘는 땅이 신고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땅은 외삼촌이 개간한 땅이었는데 그는 마을에 개간지 비용을 내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외삼촌은 영수증을 꺼내 보이며 “전부 여기 있다. 받은 돈은 이것뿐이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돈을 받지 않고 화가 난 채 집으로 돌아와 제게 이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외삼촌도 중생이다. 나는 이익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외삼촌을 구하기 위해 저는 외삼촌 집으로 갔습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모두 집에 계셨습니다. 외삼촌은 영수증을 꺼내 보이며 “받아온 돈은 이것뿐이야. 개간지는 신고하지 않았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외삼촌, 저는 수련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저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잘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진선인을 실천해야 합니다. 외삼촌이 받은 만큼만 제게 주시면 돼요. 외삼촌이 그 돈을 탐낸 것도 아니니 괜찮아요.” 저는 다시 외삼촌에게 권유했습니다. “외삼촌, 삼퇴하세요. 탈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어요!” 외삼촌은 흔쾌히 “그러면 나도 탈퇴시켜 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구원받았습니다. 외삼촌이 구원받게 돼 정말 기뻤습니다. 제가 이익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고심해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중생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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