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톈진 통신원) 톈진 지(薊)현 파룬궁수련자 쑨수화(孫淑華)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의 괴롭힘을 당했고, 두 차례 부당한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박해를 받아(첫 번째 3년 6개월형, 두 번째 1년 6개월형)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2026년 1월 출옥한 후 혈압이 200이 넘게 지속되다가 7월 6일 고혈압성 뇌출혈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였다.
그녀의 언니 쑨수전(孫淑貞)은 지현 인류(洇溜)진 우리즈좡(五里莊)촌에 살았는데, 마찬가지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불법적인 선고를 받았다. 2009년에 3년형, 2017년에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아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고, 2023년 5월 2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2세였다.
대법 수련 후 심신이 혜택을 입다
쑨수화는 1966년 11월 20일에 태어났으며 톈진시 지현 허우자잉(侯家營)진 푸좡쯔(付莊子)촌에 살았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가 있어 걸을 때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1998년 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그녀는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며 심성을 닦고 무슨 일에 부딪히면 남을 먼저 배려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안질, 심열, 부인과 질환, 경추증식증, 요통 등 고질병이 전부 사라졌고, 마음이 즐거워졌으며 가정도 더욱 화목해졌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는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괴롭힘, 납치, 불법 구류, 강제노동을 당했고, 노동수용소에서 잔혹한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했다. 그녀의 연로한 부모도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걷지 못하는 몸으로 불법적인 강제노동을 당해
2009년 4월 13일, 쑨수화는 싼쯔(桑梓) 시장에서 싼쯔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오후에 지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은 그녀를 집으로 끌고 가 가택수색을 했다. 그날 밤 10시, 그녀는 지현 구류소로 이송돼 40여 일간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그 과정에서 파출소와 지현 국보 경찰은 그녀에게 여러 차례 자백을 강요하고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으며, “변호사를 선임해도 소용없어. 아무 소용없다고”라며 위협했다.
구류소에서 경찰은 그녀의 지팡이를 빼앗아 갔다. 그녀는 걸을 수 없어 매일 평상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두 다리가 무릎 아래로 차갑고 저리고 부어오르며 완전히 감각을 잃어, 손으로 물건을 잡지 않으면 서 있을 수도 없게 됐다. 그녀가 구류소 소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상대방은 책임을 질까 두려워 다음 날 아침 일찍 1년 2개월의 불법적인 강제노동 처분서를 보내왔다. 구류소를 떠날 때 그녀의 다리는 이미 정상적으로 걸음을 내디딜 수 없었다.
노동수용소에서 엄격한 관리와 혹형에 시달려
톈진 여자노동수용소에 도착한 후, 쑨수화는 1대대에 단독 감금됐다. 노동수용소는 마약사범 양원화(楊文花)와 두 명의 방교(幇敎, 세뇌를 돕는 협력자) 요원을 배치해 그녀에게 강제 세뇌를 진행했고, 대법 사부님을 비방하는 내용을 틀어주며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 작성, 감옥 규정 암기, 사상 보고서 및 월간 결산서 작성을 강요했다.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그녀는 시종일관 3서 작성을 거부했다.
대장은 바오자(包夾, 파룬궁수련자를 감시하는 죄수)에게 박해를 가중하도록 사주했다. “제대로 해, 잘하면 감형해 줄게.” 이에 바오자, 방교, 반장 웨이후이(魏輝)가 연합해 압력을 가했다.
양원화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이 있어. 하나는 실컷 서 있게 하는 거고, 또 하나는 실컷 앉아 있게 하는 거야”라고 위협했다.
그녀는 매일 아침 5시경부터 벽을 마주하고 직각으로 서 있는 벌을 서다가 아침 식사를 했고, 3분 만에 밥을 다 먹은 뒤 다시 점심때까지 서 있었으며, 3분 만에 다 먹고 다시 저녁때까지 서 있었고, 3분 만에 다 먹은 뒤 감방의 모든 인원이 샤워를 마칠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20분의 샤워 시간이 주어졌고, 그 후 밤 12시까지 계속 벌을 서고 나서야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런 기합은 한 달 넘게 지속됐다. 그 후에는 또 사람을 괴롭히는 각종 기합이 이어졌다. 이마를 벽에 붙이기, 코끝을 벽에 붙이기, 배를 벽에 붙이기, 발끝을 벽 밑단에 바짝 붙이기 등을 매일 17~18시간씩 강요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또 그녀에게 ‘실컷 앉아있게’ 강요했다. 다리가 세 개인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를 곧게 펴며,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시선은 정면을 주시하게 했다.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거나, 말을 하거나, 사람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구타했다. 매일 17~18시간씩 앉아있게 했고, 때로는 물을 주지 않거나 식사를 아주 조금만 주었다. 그녀가 ‘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악도들은 그녀를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대장은 또한 가족의 정을 이용해 압력을 가했는데, 가족이 면회를 올 때마다 남편에게 어린 자녀를 데려오도록 강요했다. 아이들은 눈물바다가 됐고 차멀미로 구토했으며, 남편이 그 불만을 그녀에게 터뜨리게 했다.
노동수용소는 또 그녀에게 조화 꿰기, 보석상자 풀칠하기 등의 노동을 강요했다. 물품 구매를 허락하지 않았고 매일 독방에 갇혀 엄격한 관리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1년같이 보냈다. 2010년 6월 15일에 불법 강제노동이 끝났을 때는 만 1년 2개월이 됐으나, 노동수용소는 이틀을 더 감금했다.
온 가족이 공포 속에 나날을 보내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남편은 여러 차례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의 언니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부모는 두 딸이 박해받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신 이상이 생겨 얼마 후 역시 세상을 떠났다.
쑨수화가 집에 돌아온 지 1년쯤 지났을 때, 톈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싼쯔 파출소, 허우자잉 파출소의 7~8명 경찰이 그녀의 집으로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했고, 한 여경이 그녀에게 명혜망에 원고를 보냈는지 캐물었다. 경찰은 방 두 칸을 뒤지며 ‘컴퓨터’를 찾았고,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끌고 가겠다고 강요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고, 시어머니는 온몸을 떨며 눈물만 흘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여경은 “명혜망에서 또 네 이름이 보이면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위협했다. 다음 날, 허우자잉 파출소에서 또 경찰 두 명이 와서 괴롭혔다. 그 후 허우자잉향 정부 직원 남녀 3명이 다시 찾아왔다.
2014년, 또 경찰 4명이 집에 와서 괴롭혔는데,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고 소속 기관도 밝히지 않은 채 방 두 칸을 수색했다. 시어머니는 놀라서 온몸을 떨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온 가족은 언제 또 누군가 와서 괴롭힐지 몰라 대문조차 감히 열지 못한 채 매일 조마조마하며 지냈다.
부당하게 1년 반 선고받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
2024년 7월 19일, 쑨수화는 또다시 납치돼 불법적으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벌금 1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장기간의 박해로 그녀는 심신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2026년 1월 출옥한 후, 그녀의 혈압은 계속 200 이상을 유지하다가 7월 6일 고혈압성 뇌출혈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24년 톈진 파룬궁수련자 박해 통계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톈진 지역에서 최소 85명(연인원)의 파룬궁수련자가 ‘진선인’을 신앙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고, 그중 4명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최소 16명이 불법적으로 선고받았고, 44명(연인원)이 납치됐으며, 21명(연인원)이 괴롭힘을 당했다. 중공이 진상을 봉쇄하고 가족의 면회를 금지하며 암암리에 박해하는 등의 원인으로 아직 폭로되지 않은 대량의 사실들이 남아 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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