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득법한 대법제자입니다. 득법 전에는 몸이 좋지 않아 류머티즘, 심장병, 부인과 질환, 복통, 신경쇠약, 불면증 등을 앓았습니다. 출산 후에는 몸이 더욱 허약해져 온몸에 기운이 없었고 일을 조금만 해도 가서 누워야 했습니다. 병을 없애고 건강해지기 위해 다른 기공을 배운 적도 있지만 건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대법과 인연을 맺다
하루는 동북에 있는 큰언니를 보러 갔는데 조카딸이 제가 며칠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그들이 연공할 때 저는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한 채 제가 배웠던 어떤 기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앉아 있는데 눈앞에서 어떤 물건이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보여 아주 신기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들은 “이모는 정말 인연이 깊으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대법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을에서 득법한 10여 명이 모두 우리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다 나았고 배만 조금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한번은 불법적으로 붙잡혀 검은 소굴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한 사오(邪悟)한 사람이 저에게 찐빵을 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먹기 싫어 화를 내며 “내가 안 먹으면 어쩔 건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수련인이니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장과 소통했습니다. “위장이 있는 건 밥을 담기 위해서니까 뭘 먹든 너는 다 소화할 수 있어. 이런 작은 찐빵은 말할 것도 없고 돌멩이라도 소화할 수 있을 거야.” 저는 그 찐빵을 먹었고 그때부터 복통이 사라졌으며 찬 밥이든 더운 밥이든 무엇이든 잘 먹게 됐습니다.
남편이 박해를 저지하다
1999년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수련생들은 자주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2006년 한 수련생이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고 나중에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불법 가택수색을 해 대법 진상 자료, 호신부(護身符), 대법서적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끌려가기 전 옷을 갈아입는 틈을 타 남편에게 몰래 제가 납치됐다고 알리는 쪽지를 남겼습니다. 경찰은 저를 구치소에 가뒀습니다. 그곳에서 매번 인원을 점검할 때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고 죄수복도 입지 않았습니다. 감옥경찰은 “오늘 검열이 나오니 입어. 그러면 라면 몇 봉지랑 소시지 몇 개 줄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먹고 안 입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남편이 석방을 요구하러 가자 그들은 남편이 저를 설득해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파룬궁 수련해서 병이 다 나았는데 내가 왜 간섭해야 합니까? 당신들에게 이런 아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졌는데 남편은 장화를 신고 가느라 다리가 다 까져서 종아리까지 피가 흘렀습니다. 저를 구하러 와주고 경찰 앞에서 그런 정의로운 말을 해준 남편에게 저는 무척 감동했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한 청년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사복 경찰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와서 저를 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제 인적 사항을 물을 때 저는 대답하지 않고 오직 진상만 알렸습니다. 그들이 강제로 제 사진을 찍으려 하자 저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경찰이 고개를 내밀어 저를 바라봤고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모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세요! 좋은 사람이 되면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겁니다. 공산당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꿉니다. 헌법에 엄연히 신앙 자유가 규정돼 있고 우리가 정말로 좋은 공법을 만났는데 당신들은 갖은 방법으로 우리 수련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저는 또 “수련인을 박해해서 당신들의 복을 잃지 마십시오”라고 권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결국 제 인적 사항을 알아내 가족에게 연락했습니다. 잠시 후 남편과 어린 손녀가 함께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남편은 당당하게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짓은 다 장쩌민(江澤民)이 한 짓인데 당신들은 왜 아직도 이런 일을 하고 있어?! 아내가 나가서 이 일 하는 건 다 내가 지지한 거야!” 경찰은 화가 나서 “빨리 가. 원래 전향을 돕게 하려고 불렀더니 또 이 수작이군”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손녀가 “할머니!” 하고 부르자 저는 “가서 아저씨한테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드려”라고 말했습니다. 손녀는 경찰 앞으로 달려가 “아저씨, 우리 할머니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알겠다고 했습니다.
본래 경찰은 저를 보름 동안 구류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부님의 보호와 가족의 지지하에 그들은 저를 구류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경찰은 제가 가지고 있던 진상 자료와 ‘9평 공산당’ CD를 남겨뒀습니다. 저는 “잘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나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 고발을 당했습니다. 특수 경찰차 몇 대가 와서 저를 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은 여전히 저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와서 불법 가택수색을 했습니다. 그들이 대법서적을 가져가려는 것을 보고 저는 급해서 울며 발을 구르고 외쳤습니다. “내 책 가져가지 마세요!” 남편은 엄한 목소리로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뭐 하는 거야! 어렵게 파룬궁 수련해서 병이 다 나은 사람을 왜 건드려!” 이렇게 경찰들의 사악한 기세는 크게 꺾였고 상징적으로 낱장 경문 몇 장만 가지고 떠났습니다.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다
몇 년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버스 정류장에 가서 진상을 알린 후 길을 건넜습니다. 막 건너갔을 때 완전 무장한 경찰 두 명이 제 뒤로 다가와 제가 파룬궁을 선전한다는 신고를 받았다며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당시 무섭지 않았고 가는 길에 줄곧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대법제자 한 명을 보호하면 공덕이 끝이 없고 대법제자 한 명을 박해하면 죄악이 하늘을 찌릅니다.” 저는 그들이 스스로 헤아려보기를 바랐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책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저에게 “이 진상 자료들은 어디서 났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대법제자를 한 명 더 잡아가면 당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집이 어딘지, 이름이 뭔지 등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은 대법제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게 되자 “당신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면서 진실도 말하지 않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진선인을 수련했기 때문에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만약 제가 이름을 말해서 당신이 제 이름을 기록하고 다시 저를 박해한다면 그것은 제가 당신을 해친 셈이 되고 당신에게는 미래가 없게 됩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당신의 사부님은 어디에 있어?”라고 물어 저는 “제 사부님은 제 마음속에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한 직원(610 사무실 소속)이 와서 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왜 파룬궁을 수련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수련하기 전에는 몸 여기저기에 병이 많아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일은 거리에 한 중의사가 와서 진료를 정말 잘한다기에 남편과 함께 갔던 일입니다. 그가 진맥을 하고 저에게 한약 한 봉지를 지어줬는데 40위안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풀뿌리와 황토 한 봉지였습니다. 제 심정이 어땠을지 아시나요? 제 남편이 한 달에 38위안을 벌었는데 제가 40위안을 주고 무엇을 사 온 건가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건 관여하지 않으면서 왜 굳이 우리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걸 관여하려 합니까?” 저는 그에게 많은 진상을 알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와 계단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그는 매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수련생이 이미 그에게 제가 납치됐다고 알렸고 남편은 대법 자료를 보호하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했고 저는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만났던 경찰들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총구를 1cm 높이는 것이 바로 당신들의 길이며 당신들이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하지 마십시오.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대법제자 한 명을 보호하면 공덕이 끝이 없고 대법제자 한 명을 박해하면 죄악이 하늘을 찌릅니다. 부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하십시오.”
정에 대한 집착을 닦아버리다
남편은 비록 수련하지 않았지만 제 수련을 매우 지지해 줬습니다. 박해 초기에는 저와 함께 여러 번 큰 현수막을 걸러 가기도 했고 자주 저와 함께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다녔습니다.
2024년 1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저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고 하늘이 무너지듯 통곡하며 스스로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수련하지 않지만 저에게 계속 일깨워줬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대법제자시잖아요.” 저는 며느리에게 “나도 알아. 꼭 잘 해낼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연공을 마치면 남편이 이미 밥을 다 지어 놓았고 저는 밥을 먹은 후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6시에 정념을 발하고 나가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점심때 집에 오면 밥을 먹었고 1년 내내 휴일이 없어도 그는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늦게 돌아오면 화를 냈는데 그것은 제 안전을 걱정해서였습니다.
남편을 안장한 다음 날 제가 ‘전법륜(轉法輪)’을 펴자마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라는 구절이 보였습니다. 저는 소리 내어 통곡하며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가 압니다.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묘소에 다녀와서 패딩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는데 며느리의 옷 아래에서 제가 잃어버린 지 10여 년 된 빗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마음을 잘 추스르라고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분명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가 생전에 보서(寶書) ‘전법륜’을 몇 번 읽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에 7일간 머물며 생각했습니다. ‘이러면 안 돼.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어야 하고 반드시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해.’ 하지만 막상 나가니 누구를 보든 눈물이 났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으며 그저 울고만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배제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이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을 가지(加持)해 주십시오.” 사부님께서는 제가 정을 닦아버리려는 마음이 매우 확고한 것을 보시고 법을 제 뇌리에 넣어주셨습니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정진요지-뿌리를 파내다) 저는 순간 좋지 않은 물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을 보면 미소를 지었으며 중생들은 저에게 정말 선량하다고 말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7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10/51210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10/51210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