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인사회의 모든 것은 수련인의 시험장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8년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대법 수련은 정말 신기해서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할 때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했다. 아래에 내 작은 수련 체득을 적어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길 바란다.

1. 수련 전후의 변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시어머니가 유난히 잔소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가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발을 구르고 쌍욕을 퍼부으셨다. 한번 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10년 전 일까지 들춰내며 욕을 했고 욕을 먹던 사람이 놀라 도망가도 분을 풀지 못하셨다. 처음 몇 년 동안 시어머니는 나에게 비교적 예의를 갖췄고 나도 시어머니를 건드리지 않았기에, 시어머니는 주로 시아버지나 다른 사람들을 욕하셨다. 시아버지는 자주 화가 나서 그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우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가시곤 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와도 갈등이 생겼다. 어느 날 내가 밖에서 돌아오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마당에 개 오줌을 버리는 것과 마주쳤고 그것이 내 손목에 쏟아졌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왜 여기다 개 오줌을 버리세요? 다행히 저니까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머님을 욕했을 거예요.” 시어머니는 곧바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셨다. 마치 누가 자기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정오부터 밤까지 계속 난리를 치셨다.

시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시어머니는 고자질하며 전부 내 잘못이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내가 시어머니를 괴롭혔다며 원망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남편은 큰 소리로 사납게 소리쳤다. “당신이 무슨 낯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당신이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당신을 욕하겠어?” 시부모님은 옆에서 몰래 즐거워하셨다. 당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고, 약을 먹고 겨우 조금 나아졌던 간, 허리, 신장의 병증이 다시 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너무 서러워 날이 밝을 때까지 울었다.

이런 일은 거의 매일 발생했다. 시어머니는 남을 욕해놓고도 약자인 척하며 하늘에 대고 울부짖고 죽네 사네 난리를 치셨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자기를 괴롭힌다며 이웃 사람들을 구경하러 오게 만드셨다. 나를 질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나를 위해 말했다. “차라리 이사를 나가든가 이혼을 해요.” 이혼이라니, 아이가 너무 어렸고 게다가 우리 세대 사람들은 비교적 전통적이어서 이혼하면 사람들에게 멸시받았고 그것은 큰 불효였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니면 우리 나가서 집을 짓고 살든가, 내 친정으로 가서 농촌 호적을 도시 호적으로 바꾸는 건 어때요?” 하지만 남편은 외아들이라 부모를 떠날 수 없다며 모두 반대했다. 나는 그저 참고 견디며 속으로 한없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친정에 가서 부모님께 하소연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마저 마음 아파 눈물 흘리실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20여 세였지만 1년 내내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느라 얼굴이 누렇게 뜨고 깡말라갔으며 몸은 갈수록 나빠졌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내 팔자는 어찌 이리도 기구할까!’

마침내 고생 끝에 낙이 왔다. 1998년 나는 기쁘게 파룬따파를 얻었다. 연공 동작을 채 다 배우기도 전에 내 몸에 있던 모든 난치성 병통 증상이 전부 사라졌고, 소변으로 대량의 검은 물질이 배출됐다. 정공을 하며 가부좌를 틀 때면 무릎에서 발가락까지 검푸른 덩어리들이 보였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신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시간을 아껴 법공부와 연공을 했고, 병 없는 가벼운 몸이 돼 온몸에 다 쓰지 못할 힘이 넘쳐났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내 이런 고난이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 지은 업력으로 빚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았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게 했으며 내가 자진해서 많은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맡았다. 시어머니에게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새 옷을 사드렸다. 시어머니가 잘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대신 했고 더 이상 큰 소리로 말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다. 시어머니가 욕을 하시면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쪽으로 피했다. 참기 힘들 때는 속으로 사부님의 법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를 묵념했다.

시어머니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나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점차 시어머니가 욕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이웃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시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늘 욕을 달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가끔은 여전히 욕을 하셨지만 시어머니 목소리만 들릴 뿐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들 말했다. “이 파룬궁은 정말 대단하네.” 어떤 사람은 “○○씨, 댁 며느리한테도 파룬궁을 배우라고 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친척과 친구들은 내가 대법을 배우고 건강해진 것을 보고 잇달아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내가 친정에 갔을 때 친척과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손을 이끌며 위아래로 유심히 훑어보았다. “너 지금 어떻게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했니? 젊어지고 예뻐졌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는 말했다. “파룬궁을 연공해서 병이 다 나았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근방에 소문난 약골이었는데, 지금은 병이 다 나았을 뿐만 아니라 친정에 와서 일까지 거들어주니 그들은 믿기 힘들어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뛰어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단속해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공감했다.

그 당시 나는 법공부를 많이 했고 사람 마음이 적었으며 두려워하는 마음도 적어서 세 가지 일을 순조롭게 했고 수련생과의 협력도 호흡이 잘 맞았다. 종종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건넨 직후 경찰이 우리 곁을 지나가거나, 경찰이 막 지나가 얼마 가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 뒤에서 다시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우리는 진상 자료를 예쁜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다가 받길 원하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진상을 아는 사람(가족 포함)은 오히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구원 받은 세인들은 우리에게 감사를 전했다.

2. 텔레비전에 대한 집착심을 수련해 버리다

최근 2년 동안 나는 점차 사극에 빠져 매일 한 편씩 연달아 보았는데 어느새 1~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보지 않으면 줄거리가 마음에 걸려 안절부절못했고, 보고 나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뻑뻑해져 또 후회하곤 했다. 아침 연공 시간에는 일어나지 못해 알람이 울리면 끄고 다시 잤다. 낮에 틈을 내어 연공하고 법공부를 할 때면 졸음이 와서 형식적으로 했다.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좋지 않았는데 사실은 수련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후회하고 낙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시력이 흐려지고 눈에서 누런 점액질이 많이 흘러나와 자주 휴지로 닦아야 했다. 아침에 깨면 위아래 눈꺼풀이 누런 분비물에 달라붙어 뜰 수 없었다. 매일 늘 머리가 몽롱하고 계속 잠을 자고 싶었지만 막상 잠은 오지 않았으며, 얼굴은 초췌해지고 흰머리만 갈수록 늘어났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중생이 대법에 대한 정념을 일으키게 할 수 있겠는가. 나 자신조차도 자신이 없어졌다. 매일 텔레비전을 끊으려 했지만 텔레비전 방송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 옆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즐겼다’. 그동안 몇 번 끊어보기도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유혹을 이기지 못했는데, 이것은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파멸시키려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발정념 시간을 늘리고 법공부를 많이 했다.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시고 제자를 교란하고 박해하는 모든 흑수(黑手), 난귀(爛鬼)를 제거하도록 도와주시길 청했다.

설을 갓 쇠고 나서 남편은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갔다. 그러자 나는 전처럼 한가하지 않게 됐고 매일 평소보다 일찍 가게 문을 닫아야 했으며,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시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며 텃밭도 가꿔야 했고 아침 연공도 해야 했다.

첫날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 뒤 나는 습관처럼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는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켜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간식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화면에는 ‘네트워크 끊김’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아! 내가 평소 너무 의존심이 강해서 텔레비전을 조작할 줄도 몰랐기에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안 됐다(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만두고 간식이나 먹자며 큰 봉지의 간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못 보는 괴로움을 달랬고 아주 억지로 잠을 잤다.

이튿날, 또 어제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 뒤 억지로 방에 들어갔지만 마음은 첫날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사흘째, 나흘째에는 리모컨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앉아서 과일만 조금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 텔레비전 중독을 끊도록 도와주시는 것이구나.’ 나는 즉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서둘러 법공부를 하러 갔다.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느라 얼마나 많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던가! 사부님께 얼마나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던가! 며칠 뒤 집안일을 마치고 나는 텔레비전이나 소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법공부를 했다.

지금 나는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눈도 더 이상 뻑뻑하거나 아프지 않고 시력도 한결 편안해졌다. 오랫동안 물이 새던 수도꼭지도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물이 새지 않게 됐다. 속인에게 진상을 들려주려던 기기가 카드 여러 장을 바꿔 끼워도 몇 마디만 나오다 멈춰버려 오랫동안 수리하러 가지 못했다. 그날 막 수리하러 가려던 참에 무심코 켜보니 놀랍게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3.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다시 수련해 제거하다

시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는 시어머니를 자신들의 집에 번갈아 모시려 했다(아마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부하신 것 같다). 시아버지의 돈과 통장을 모두 작은시누이가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일로 평소 성실하고 온화하던 남편은 이례적으로 시누이들에게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 번 했다. “나는 아들인데 아버지는 왜 돈을 아들에게 주지 않으셨을까?” 시아버지의 모든 장례 비용은 남편이 휴대폰으로 한 번에 결제했고 다른 모든 비용도 우리가 전부 냈는데, 현지에서 가장 좋은 풍습 기준에 따라 치렀기에 비용 액수도 적지 않았다. 시누이들은 미안했는지 작은시누이가 계산을 해 세 가족이 나누어 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가장 큰 몫을 냈고 시누이들은 절반도 안 되게 조금 냈다.

시누이들이 돌아갈 때 오히려 우리에게 시위하듯 말했다. “우리가 엄마 모셔간다!” 나는 내가 수련인이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우리 자식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말했다. “형님들이 먼저 어머님을 모시고 가서 한동안 같이 지내며 기분 전환을 시켜 드리세요. 어머님이 돌아오고 싶어 하시면 언제든 오셔도 돼요. 이곳은 영원히 어머님 집이니까요.”

시어머니는 큰시누이 집에서 열흘 남짓 지냈고 작은시누이 집에서는 하룻밤만 지냈는데 시누이들은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낮에도 잔소리하고 밤에도 잔소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시어머니가 잠들 때까지 그 잔소리를 들어주셨다. 큰시누이, 작은시누이 두 집의 자녀들은 모두 불만이 있었다. 손주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자녀들은 출근해야 하는데 온 가족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영향을 주었기에 시누이들은 다시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내 딸이 결혼할 때 시어머니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돈 한 푼 보태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두 시누이 집 딸들이 시집갈 때는 큰 세뱃돈 봉투를 주셨고 명절마다 그 두 집에 선물을 보내셨다.

나는 가끔 남편에게 반농담으로 말했다. “당신 정말 어머니가 낳은 아들 맞아요?”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오셨으면 그만이었다. 시어머니는 건강도 괜찮은 편이라 우리가 식사만 챙겨드리면 됐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작은 확성기처럼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시어머니가 소란을 피우면 남편은 텔레비전 소리를 좀 더 크게 틀어놓고 텔레비전을 들으며 자거나, 아니면 저녁을 일찍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시어머니가 문을 닫고 주무실 때야 들어오곤 했다.

어느 날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려 깜짝 놀라 뛰어 나갔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머무는 방의 모든 문을 자기 팔뚝만큼 굵은 나무 막대기 10여 개로 버텨 놓고, 그 아래에 7~8장의 벽돌을 바짝 대어 고정하고 계셨다. 그 소리는 바로 벽돌로 나무 막대기를 두드려 방문을 고정하는 소리였다. 4개의 문에 수십 개의 나무 막대기, 수십 장의 벽돌을 밤이면 버텨 놓고 낮이면 다시 빼내셨다. 침실 안에는 채소에 물을 주는 큰 물통 6개를 놓아두어야 했고, 문과 창문은 비닐로 꽁꽁 막아두셨다.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니 문이 자주 망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고 늘 남편을 불러 문을 고치게 하셨다.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문을 받치지 말라고 큰 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이것이 그만 벌집을 쑤신 격이 됐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자기 일에 참견하지 말라며 욕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다가가서 이제 곧 설이니 집안에 안 좋다며 더 이상 욕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시어머니는 나까지 엮어서 함께 욕하셨고, 차마 귀로 듣기 힘든 상스런 욕을 퍼부으셨다. 나는 순간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시어머니와 맞붙었다. 물건을 쾅쾅 소리가 나게 내던지며 시어머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섭게 쏘아붙였고, 시어머니는 겁에 질려 방으로 숨어버리셨다. 비록 분풀이를 해 무척 후련했지만 나중에는 무척 후회했다. ‘이렇게 여러 해를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왜 참지 못했을까?’

나는 자신을 꼼꼼히 찾아보았다. 여러 해 동안 왜 시어머니를 참을 수 있었을까? 첫째는 가정의 화목에 지장을 줄까 봐 두려웠고, 남들이 며느리가 불효막심하다고 수군거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둘째는 참지 못하고 업을 지어 층차가 떨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참음은 모두 속인의 억울함에서 비롯된 참음이고 눈물을 머금고 참은 것이며 우려하는 마음에서 참은 것이지, 근본적으로 자비로운 수련인의 참음이 아니었다.

남편은 외지로 돈을 벌러 가기 전에 나에게 당부했다. “밥상 좀 잘 차려드리고 말과 행동도 조심해. 혹시라도 어머니 화나게 하면 당신 혼자서 감당 못 할 거야.” 이 일로 나는 시간을 아껴 써야 했고 일찍 가게 문을 닫은 뒤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텃밭을 가꿨다. 매일 씻고 나면 대략 밤 10시가 넘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챙길 새도 없이 그냥 나갔다. 오후에 시어머니는 내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셨고 나는 화가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 내가 막 마당에 들어설 때 이웃 사람이 “당신 시어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오후 내내 당신 욕을 했으니 조심해”라고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바꿔 오늘 참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말씀드렸다. “어머님, 오늘 진지 못 드셨어요? 제가 지금 바로 끓일게요.” 그 말을 듣고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사실 시어머니는 억지를 부리며 생떼를 쓰신 것이다. 시어머니는 원래 아침을 안 드시고 가끔 미음 같은 것을 좀 드실 뿐, 아침 10시쯤에야 일어나서 방안의 막대기들을 치우고 나면 대략 정오 12시가 되어 점심과 아침을 한 끼로 드셨는데, 이는 고의로 트집을 잡아 욕을 하신 것이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내가 몇 달째 고기반찬을 안 해준다고 욕하셨지만, 남편이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간 지는 아직 한 달도 안 된 때였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평소처럼 밥상을 차려다 드렸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나는 시어머니 방에 들어가지 않고, 밥상을 나를 때도 한 발은 방 안에 한 발은 문밖에 둔 채 물건만 책상에 올려놓고 바로 나왔다. 이런 일이 너무 많았고 거의 매일 사람 마음을 갈고닦게 만들었다.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28년을 수련하면서 28년 동안 원망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점차 깨끗이 제거하고 담담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 시어머니를 봐도 그렇게 밉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무척 불쌍하게 여겨지며, 시어머니야말로 오로지 나를 성취시키고 내 수련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이 글을 거의 다 써갈 무렵,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바람이 새던 스쿠터 타이어에 바람이 가득 채워졌고 더 이상 새지 않았다. 그동안 계속 고압 공기 주입기로 바람을 넣어도 절반밖에 차지 않고 그마저도 샜는데 지금은 정상이 됐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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