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2세입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저는 고달픈 운명의 여인이었는데 이른바 ‘부농’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70년에 저는 고등학교에 합격했지만 대대(마을 기관)에서 공부하러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에서 대대에 찾아와 대대 인원 할당과는 무관하다고 말해도 대대장은 끝내 동의하지 않았고, 당시 저는 너무나 상심했습니다.
1. 비참한 운명 속에서 대법을 얻은 기쁨
당시 중국공산당(중공)의 ‘계급투쟁’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 오빠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정혼한 상대방 집안에서 파혼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저를 ‘교환 혼인’(제가 그 집 며느리로 가고 그 집 딸을 우리집 며느리로 데려오는 것)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제가 거절하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저를 설득하라며 “세상에 어느 딸이 에미 말을 안 듣느냐?”라고 핍박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불쌍히 여겨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줄곧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잤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내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놀라서 어머니를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어머니를 껴안고 울며 소리치다가 어머니 목에 거친 천 띠가 단단히 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띠를 풀며 울면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무슨 일이든 제게 말씀하세요. 이러시면 저는 어떻게 살라고요!” 제가 띠를 푼 후 어머니도 울었고, 어머니는 제가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다며 띠를 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살아만 계세요. 어떤 고생도 제가 모두 감당할게요!” 그렇게 저는 지금의 남편에게 시집갔습니다.
시댁은 시부모님과 삼 형제, 작은 시누이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습니다. (큰 시누이는 한 달 전 저희 오빠에게 시집갔습니다.) 시어머니는 몸에 병이 있어서 저는 매일 밭에 나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밥을 짓고 온 가족의 옷을 세탁하는 등 매우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만 도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밭일이 아무리 바빠도 그는 절대 거들지 않았습니다. 집안 생활비나 아이들 학비 등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줄곧 밖에서 막노동하며 먹고 마시고 도박을 했으며, 가정을 돌볼 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밖에서 계속 빚을 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그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했는데도 그는 툭하면 저를 때렸습니다.
저는 연이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두 아이만은 꼭 공부를 마치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저는 집에서 구멍가게를 열었고, 마을에서 양어장을 임대할 때 저도 임대했으며, 남의 집 농경지까지 빌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1994년 아들은 우리 지급시에서 가장 좋은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3년 후 베이징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경제가 어려워 추천 입학이 보장된 허페이 과학기술대학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 갈 때 챙겨간 생활비조차 얼마 되지 않아서 밥 먹을 돈마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애가 탔지만 남편은 여전히 무관심했습니다. 일을 너무 고되게 한 데다 (저는 두 눈이 먼 어머니를 장기간 돌보기도 했습니다) 43~4세 무렵이 되자 저는 온몸이 병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십여 년간 만성 설사를 앓았고, 두 무릎부터 허리까지 매일 아침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려웠으며, 동전만 한 헐은 종기가 3~4개씩 돋아 피부를 긁어 진물이 흘러도 아픈 줄을 몰랐고, 위하수로 밥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여러 질병의 괴롭힘으로 저는 35kg 남짓으로 말랐고, 생활의 압박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쉴 여유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1997년 2월 초하루, 저는 읍내 개인 의원의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는데 이전에도 그곳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제가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는 것을 보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워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저도 의사지만 제 몸의 병을 약으로 고치지 못했는데 파룬궁을 연공하고 나서야 나았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공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아주 기뻐서 “연공하는 책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있어요. 이것은 법(法)이며 파룬궁을 수련하려면 법공부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이 말을 듣자 저는 꿈에서 깨어난 듯 뛸 듯이 기뻤습니다.
몇 년 전 관상을 보는 사람이 제게 “당신은 아직 더 책을 읽어야 하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책을 읽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요! 이제 제가 정말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비할 데 없이 감격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읽을 책은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우주 대법이며 하늘의 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행복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수련한 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아 제 몸에 아주 큰 변화가 나타나 온몸의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마침내 병 없이 몸이 가벼운 즐거움을 체험했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올해 어찌 된 일이에요, 예전보다 훨씬 젊어졌네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자랑스럽게 그들에게 “제가 지금 파룬궁을 연공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 몸의 변화를 통해 파룬따파의 기적을 목격하고 앞다투어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는데 우리 마을에서만 30여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공장을 하나 구성해 매일 저녁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매년 초하루와 보름에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농사일이 많아 저녁밥을 먹을 틈도 없으면 밥그릇을 들고 연공장으로 달려올 정도로 누구 하나 한 번이라도 빠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파룬따파의 불광(佛光) 속에 목욕했습니다. 집안을 돌보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던 제 남편조차 다른 사람들이 연공장에 가는 것을 보면 제게 “어서 연공하러 가, 내가 집안일 할 테니”라며 재촉했습니다.
2. 박해 속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따파를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정월, 우리 지역의 많은 대법제자가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진상을 몰라서 악행에 가담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중공 거짓말의 피해자이며, 그들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가련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몇몇 수련생은 한밤중에 진상 자료와 CD를 마을 사람들의 문고리에 걸어두었습니다.
며칠 뒤 새벽 5시경, 우리 조의 회계가 촌 서기 집에 볼일이 있어 갔는데 마침 서기가 진상 CD를 보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파룬따파가 전 세계로 널리 전해진 진상이었고 회계도 함께 시청했습니다. 나중에 회계가 제게 기쁘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정말 좋은 것을 보았소!” 제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CD를 보았소. 파출소에서 당신네 사람들을 가뒀길래 우리도 시 정부와 진 정부에 당신들을 박해하지 말라고 편지를 썼소, 당신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니까! 다만 감히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소.”
한번은 우리 몇몇 수련생이 약속하고 박해에 가담한 한 간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 간부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당신들 안 잡혔다고 아직도 감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요?” 우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는데 정부가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매우 선량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시비가 엇갈리는 큰 문제 앞에서 선을 행한다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나중에 듣기로 이 간부는 세뇌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대법제자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지혜롭게 막았다고 하여, 우리는 한 생명이 각성한 것으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촌 서기가 우리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누군가 남의 집 담벼락에 파룬궁 표어를 쓰는 아주머니를 보았다고 잡아가야 한다고 합디다. 그래서 제가 아주머니는 글씨를 쓸 줄 모른다고 말하며 ‘보증’까지 섰으니 앞으로 좀 조심하세요.”
2002년 음력 11월 초하루, 마을 연대장이 우리집 유채 밭으로 저를 부르러 와서는 누군가 저를 찾는다며 자신을 따라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안 갈 겁니다”라고 하자 연대장은 “빨리 나와 함께 갑시다, 그들이 서기까지 귀찮게 하겠다고 합디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따라갔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사흘 전 파출소에 제가 쓴 진상 편지가 도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들은 아십니까? 진의 목화 수매소 직원이 농촌에 목화를 거두러 와서 큰 소리로 ‘모래를 섞거나 물만 타지 않으면 다 사겠소’라고 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이 속여서 큰 조면기가 망가졌습니다. 저는 수련인으로서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에, 주운 목화를 모두 바짝 말려서 팔았고 수매원들은 다투어 제 목화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사회에 어떻게 당신들 같은 좋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들 당신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처럼 좋다면 집집마다 문을 잠글 필요가 없겠소’라고 말했습니다.” 편지 끝에 저는 제 이름과 주소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경찰차를 몰고 우리집에 저를 잡으러 왔다가 제가 친정에 갔다는 말을 듣고 경찰차를 몰아 친정까지 저를 찾으러 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친정 오빠가 건물을 짓고 있어서 많은 마을 사람들이 파출소에서 저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파출소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 우리 마을 딸은 뭣하러 찾는 거요? 우리 이 딸은 정말 제일 좋은 사람이고 효심도 지극해서 두 눈이 먼 장님 어머니도 그 애 집에 있소!” 그래서 오늘 진 파출소 경찰이 다시 경찰차를 몰고 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연대장과 함께 경찰차 옆에 도착하자 경찰이 표독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촌 당서기가 당신들을 어떻게 보증하는지 두고 봅시다!” 왜냐하면 매번 악질 경찰이 우리 마을에 와서 박해하려 할 때마다 촌 당서기가 그들을 막아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촌 당서기는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오, 모두 노인들이니 그들을 잡지 마시오. 내가 보증하겠소!”
제가 경찰차에 오르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편지에 당신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썼으면 됐지, 왜 자꾸 파룬궁을 끌어들이는 거요?” 저는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파룬궁이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 주었고 우리가 각종 집착심을 제거하여 내면에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도덕이 타락하는 이 사회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고, 여러 환경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남을 배려하며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그들은 저를 세뇌반으로 납치해 51일간 불법으로 가두었습니다. 섣달 17일, 남편이 집에서 장작을 패다가 부주의로 나무 파편이 눈에 튀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섣달 21일, 사촌 동생이 자기 집 지으려고 준비한 돈에서 1,500위안을 꺼내 세뇌반에 내고서야 저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사촌 동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누나, 포기하지 말고 집에서 연공해!”
3. 교통사고의 위기 속에서 사부님께 구원을 청해 대법을 실증하다
2004년 섣달그믐날 오후, 저는 딸과 함께 친정에 가서 설을 쇘습니다.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우리집 구멍가게에 외상값을 결제하러 사람이 왔다고 했습니다. 조카가 오토바이로 저와 딸을 집으로 데려다주는데, 양로원의 다리 옆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양로원 쪽 다리 입구로 회전하다가 조카의 오토바이에 그만 부딪혀 쓰러졌습니다. 노인은 땅에 누워 인사불성이 되었고 오토바이도 넘어졌습니다.
당시 제 머리는 마치 어떤 힘에 눌려 땅에 쓸리는 것 같았고, 왼쪽 눈가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파였으며 얼굴 전체의 껍질이 다 까졌습니다. 당시 저는 ‘나에겐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저는 다급한 김에 토시를 벗어 얼굴을 닦았는데 토시가 다 피에 젖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조카는 땅에 무릎을 꿇고 노인을 붙잡은 채 다급하게 울부짖었습니다. “할아버지, 빨리 깨어나세요!” 저는 토시를 던져버리고 다가가 덥석 노인의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부님, 제발 이 노인을 구해주십시오!” 두 번 외치자 노인이 눈을 뜨더니 “내가 어쩌다 여기 있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자의 난관을 해소해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마음속으로 비할 데 없이 감사드렸습니다.
딸은 계속 120번(구급차)에 전화를 걸었고, 지나가던 많은 사람이 제게 “당신이 저 사람보다 심하게 다쳤으니 어서 병원에 가보시오!”라고 권했습니다. 마침 이때 이웃집 조카가 친척 집에 가다가 이곳을 지나치게 되었고, 그는 저를 자신의 차에 태워 마을 의무실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의사가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소?!”라고 묻자 저는 의사에게 “끓인 물로 한번 씻어만 주세요. 알코올은 안 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럼 난 못 하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웃 조카에게 저를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외상값을 치르러 왔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상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께 번거로움을 끼쳐드렸습니다. 사부님께 죄송합니다.” 이웃집 수련생이 저를 걱정해서 왔기에 저는 수련생에게 사둔 마스크를 네 조각으로 잘라 눈가의 구멍 난 곳에 붙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후 저는 끓여서 식힌 물로 얼굴 가득한 상처 자국을 자주 닦아주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그저 얼굴 가득 진물이 흐르기만 했습니다. 제 얼굴은 사흘간 부어 있다가 부기가 빠졌습니다.
정월 초여드레에 한 조카가 결혼해서 저는 피로연을 도우러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매우 놀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 파룬궁을 연공하더니 정말 신기하네, 그렇게 심하게 다치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안 썼는데 며칠 만에 다 낫고 펄펄 뛰잖아!”
제자는 사부님께서 매번 제자를 위해 업을 소멸해 주시고 난관을 해소해주셨으며, 나아가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어 마을 사람들이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중공 악당이 대법을 공격하는 거짓말을 간파하게 하고 대법에 대한 정념을 세우게 하심으로써, 중공 악당이 주입한 거짓말 세뇌에서 벗어나 스스로 좋은 미래를 선택하게 해주신 것에 비할 데 없이 감사드립니다. 위대한 사존께서 중생을 자비롭게 제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20여 년간 정법 수련의 나날 속에서 제 건강한 신체는 위대한 사존께서 제자를 위해 청리(淸理)하시고 끊임없이 정화해 주셨으며, 제자를 위해 업을 소멸하고 감당해 주신 덕분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제 선량함과 강인함 또한 대법 수련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법제자의 선량함은 모든 중생을 향한 것이며, 일찍이 저를 해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포함해 저는 그들에게도 자비를 남겨주었는데 이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입니다. 대법은 모든 악연을 선해(善解)할 수 있으니 저는 중생들이 모두 진상을 똑똑히 알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8/50866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8/50866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