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귀진(歸眞)
[명혜망] 나는 올해 76세로 어릴 때부터 학교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어서 득법은 했지만 대법의 법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다는 것만 알고 매일 혹한이든 폭염이든 비바람이 쳐도 큰 장터에 나가 사람을 구했다. 일을 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 사람 구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다 보니 두 번의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도 사람 구하는 것을 잊지 않다
2024년 4월 21일, 그날 수련생이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60리 밖의 농촌 장터로 가는 길이었다. 삼거리에서 우리는 승용차에 치어 넘어졌고 나는 심하게 쓰러졌다. 그 순간 숨이 전혀 올라오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또렷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저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저와 수련생은 아직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잘못했다는 것만 알았지 어디서 잘못했는지는 몰랐다. 다만 본능적으로 잘못이 없었다면 이렇게 큰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순간 숨이 한 번 내쉬어졌다. 나는 다시 서둘러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는 몸부림치며 간신히 일어났다.
운전자는 멀리서 차를 세운 뒤 걸어왔다. 그때 수련생은 오토바이에 깔린 채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운전자가 다가와 사납게 책임부터 떠넘겼다. “제 잘못이 없어요, 당신들 책임이에요.” 이때 구경하러 온 사람 하나가 나타나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누구 잘못인지는 나중에 따지고, 먼저 오토바이를 치우고 사람부터 일으켜 세웁시다.” 운전자는 더 옳다 싶었는지 우리한테 차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차를 보러 가버렸다.
운전자가 차를 살피고 돌아오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차는 괜찮아요?” 그가 “괜찮아요”라고 하기에 나는 말했다. “그럼 어서 사람 일으켜 세우는 것 좀 도와줘요, 나는 힘이 없어서요.” 수련생이 마침내 일어났다. 살펴보니 다행히 수련생도 별 이상이 없었다. 나는 운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나는 올해 76세인데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어도 우리 둘 다 다치지 않았어요. 이건 우리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좋은 인연을 맺어요. 당신이 경찰이라도 목숨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가 목숨을 지켜준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방금 입당했어요. 우리 할머니가 여러 번 탈퇴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안 했거든요. 제가 어떻게 탈퇴할 수 있겠어요!”
나는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역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아요? 지금도 멈출 기미가 없잖아요. 당신은 공산사령(共産邪靈)의 선전을 믿고 있는 거예요. 무신론은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이에요. 우리 생명은 신이 준 것이고 이 육신만 부모님이 준 것이에요. 중국은 5000년 역사가 있는데 자기네가 영원히 세상을 지배한다고 한 왕조가 있었나요?! 왕조는 바뀌게 돼 있어요. 지금 대법 사부님께서 중생을 아끼시지 않았다면 중공은 벌써 없어졌을 거예요. 당신이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하늘이 중공을 없앨 때 당신도 그 일부가 되어 함께 가는 거예요. 역병에서 죽은 사람들 대부분이 중공 당원인 거 보지 않았어요? 입당할 때 이미 이마에 짐승의 표가 찍히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거니까 언젠가 그들과 함께 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듣고 그가 말했다. “아줌마, 저 탈퇴시켜 주세요.” 나는 말했다. “정말 영리한 젊은이네요.” 그러고는 바로 땅에 떨어진 가방을 집어 들어 안에 있던 대법 진상 정기간행물 몇 권을 꺼내 그 청년에게 주면서 집에 가서 잘 읽어보라고 했다. 청년은 받아 들고 펼쳐보기 시작했다. 나는 청년에게 집에 꼭 잘 읽어서 진상을 알면 복을 받는다고 당부했다.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우리가 무사한 것은 정말 우리 사부님 덕분이에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 청년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기억할게요. 지각하겠는데 이만 갈게요.”
이때 오토바이 들어 올리는 것을 도와줬던 구경꾼도 걸어왔는데 파룬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 믿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안 믿는 것은 TV의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이에요. ‘천안문 분신자살’ 때 불길이 그렇게 거셌는데 불에 탄 사람 머리카락은 남아 있고 두 다리 사이에 있던 기름통 페트병도 타지 않았잖아요. 믿어지나요? 기관지 수술을 했다는 소녀가 어떻게 노래를 할 수 있었겠어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엔 ‘하늘도 땅도 당의 은혜보다 크지 않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당보다 가깝지 않다’고 했잖아요. 하늘도 믿지 말고 땅도 믿지 말라고 했어요. 부모가 없으면 사람이 어디서 왔겠어요? 하늘과 땅이 없으면 무얼 먹고 마시겠어요? 얼마나 사악한가요! 이 사악한 당은 하늘도 반대하고 땅도 반대하고 인류에도 반대하는데 신께서 이걸 내버려 두시겠어요? 하늘이 중공을 없애는 날이 눈앞에 왔는데 탈퇴하지 않으면 중공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잘 될 수 있겠어요? 사람의 영혼은 신이 준 것이고 육신은 부모님이 준 것이에요.” 결국 그 아주머니는 진상을 이해하고 사악한 당의 단체 조직에서 탈퇴하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내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나는 대법 간행물 몇 권과 사부님이 인류에게 주신 설법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도 드리면서 집에 가서 잘 읽어 더 많이 이해하라고 했다.
그들이 다 가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살펴봤다. 넘어질 때 바지 두 벌이 찢어졌고 무릎, 정강이, 종아리에도 피가 나고 있었다. 왼쪽 갈비뼈가 손바닥만 하게 푹 꺼져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방금 전까지는 괜찮은 사람처럼 진상을 얘기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아프지?’ 나는 곧 생각을 바꿨다. ‘나는 수련인이니 괜찮아.’ 그러고 다시 사부님께 보호해 주시길 청했다.
다시 수련생을 보니 오토바이를 밀면서 집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나는 “집에 가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장터 가요!”라고 했다. “장터는 남쪽이에요.” 그런데 수련생이 “어디가 남쪽이에요?”라고 물었다. 보니 수련생이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었다. 내 모습을 보니 찢어진 바지 사이로 흰 내복이 드러났고 그 안으로 피가 흐르는 상처가 보였다. 이래서야 어떻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겠나 싶어 우리는 다시 사부님께 빌었다. 순간 수련생의 정신이 돌아왔고 나도 온몸의 통증이 사라졌다. 우리는 오토바이에 올라타 30여 리를 더 달려 장터에 도착했다. 그날 나는 26명을 설득해 탈퇴시켰고 수련생은 16명을 탈퇴시켰으며 책가방 가득 챙겨온 진상 간행물도 다 나눠줬다. 정말 사부님의 격려였다. 이전에 컨디션이 좋을 때도 이렇게 많이 탈퇴시킨 적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정말 힘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첫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공법을 세 번 연공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옷이 흠뻑 젖었다. 오후에는 그대로 법공부 팀 법공부에 참가했다. 사흘 밤을 거의 못 잔 채로 조금만 움직이거나 숨을 들이쉬면 갈비뼈가 아팠고 종아리는 돌처럼 딱딱하게 부어올랐으며 정강이도 번들번들하게 부어 누르면 움푹 파였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든 상관없이 법공부, 연공, 진상 알리기를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5일째가 되자 통증이 조금 줄었다. 그날 마침 의사로 일하는 외손녀가 휴가를 맞아 집에 왔다. 나는 갈비뼈 부분을 봐달라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갈비뼈가 완전히 꺼져 있는데 버틸 수 있겠어요?” 나는 “버틸 수 있어! 대법은 초범(超凡)적인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 딸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딸이 밖에 나가 사람 구하는 것을 못 하게 할까 봐서였다. 10일이 지나자 다리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고 갈비뼈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재채기를 하거나 숨을 크게 들이쉴 때면 여전히 꽤 아팠다.
그렇게 버티며 28일째가 됐을 때, 나는 ‘이상하다, 나는 사고 원인만 생각했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후에는 심성 향상에 더욱 엄격하게 요구해서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일할 때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인식했다. 이타적이고 사심 없는 경지에 꼭 이르러야 하고 나를 나쁘게 대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나를 험담하는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내 업을 소멸시켜 주고 내 심성을 높여 주는 것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갑자기 재채기가 몇 번 나왔다. 갈비뼈가 아프지 않았다! 기뻐서 얼른 침대에 누워 확인해 봤더니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이것이 내 수련의 큰 누락이었으며 구세력이 그 빈틈을 타 목숨을 빼앗으려 한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 생각했다. 이 몇 년간 혹한이든 폭염이든, 눈보라가 치든 비가 오든 매일 나가 진상을 알렸는데 왜 심성에는 이렇게 큰 누락이 있었을까? 나는 사부님께 다짐했다. ‘앞으로는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심성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수련은 정말 엄숙한 것
말은 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상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강한 의지와 착실히 수련하겠다는 확고한 기초가 없으면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어렵다. 나는 이전에 심성 수련을 최우선에 두지 않고 일하는 것을 최우선에 뒀었다. 매일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수련이라고 스스로 여겼던 것이다. 정말이지 석 자나 되는 얼음이 하루 추위에 얼지는 않는다더니 오랫동안 굳어진 관념은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으니 구세력이 나를 놔두지 않았다.
첫 번째 교통사고가 난 지 꼭 100일 만에 수련생이 나를 큰 장터에 데려갔다. 고가도로 길가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는데 우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칠 때 승용차 문이 갑자기 안에서 열리면서 우리를 튕겨냈다. 나는 머리가 도로 난간 사이로 들어가고 허리 전체가 난간에 끼어버렸다. 그때도 숨이 막혔다. 수련생도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우리를 살려달라고 빌었고 마침내 숨이 크게 한 번 터져 나왔다.
이때 승용차에서 남자 두 명이 내렸다. 좀 나이가 있는 쪽이 말했다. “거기 누워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두 사람이 손을 써서 나를 난간 사이에서 끌어내고 수련생을 땅에서 일으켜 세웠다. 수련생은 너무 아파서 걷질 못했다. 그들은 책임을 피하려고 차를 멀리 이동시켰다. 나는 “여기 CCTV 있어요, 전부 당신들 잘못이에요”라고 했다. 그제야 그들도 좀 불안해하더니 “병원 가야지요”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기에 말했다.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에요. ‘진선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돈을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고는 삼퇴의 의미를 얘기해 줬다. 그들은 기꺼이 삼퇴를 하고 기뻐하며 계속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우리가 떠나려는데 수련생이 혼자서 차에 오르지 못했다. 그들 두 사람이 수련생을 오토바이에 부축해 올려줬다. 하지만 나는 수련생에게 나를 태워달라고 할 수 없어서 그들한테 차로 장터까지 바래다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수련생은 장터에서 자료를 다 나눠줬는데 수련생은 18명을 탈퇴시키고 나는 21명을 탈퇴시켰다. 그때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걸음을 뗄 수가 없었고 걸을 때마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왔다. 수련생도 두 다리를 못 움직이겠다고 했다. 그렇게 수련생이 나를 20리 밖 장터에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점심을 굶은 채로 다시 동공 연공을 했지만 포륜(抱輪)은 하지 못했다. 오후에 수련생들이 법공부를 하러 왔을 때 나는 고통을 꾹 참으며 문을 열어주면서도 수련생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비웃을까 봐 그랬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잘못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구하려면 이렇게 큰 고생을 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이 마음이 바르지 않자마자 구세력이 빌미를 잡고 죽을 때까지 박해를 가한 것이었다.
이튿날 나는 수련생 집에 가서 호신부(護身符)를 좀 가져왔다. 오는 내내 아프고 무거워서 온몸의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4층 집에 돌아오자마자 재채기가 연달아 몇 번 터지면서 순식간에 통증에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사부님, 어서 저를 죽여 주세요.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겠어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사상업(思想業)이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튿날 우리는 40리 밖의 큰 장터에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를 당해 파출소에 끌려갔다. 경찰은 내가 13년 전 박해를 받아 4년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을 구실로 삼아 2000위안을 내면 검찰원 소환장을 발부해 언제든 부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지역 구치소로 이송했다. 건강검진에서 나는 앞가슴과 등에 9곳의 골절, 두개골 골절, 발가락 뼈 세 곳 골절로 총 13곳이 골절된 것이 발견됐다. 이 검진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많은 곳이 골절된 줄도 몰랐을 것이다. 구치소에 넘기려 했으나 받아주지 않자 그들은 나를 다시 데려와 거주지 감시를 선고하고 이튿날 우리집 복도와 내 방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압박감을 느꼈고 정념이 하나도 없어졌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 같았다. 조용한 곳을 찾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해서 내 나쁜 생각들을 바로잡고 싶었다. 내가 그 자리를 피하자 사악한 경찰은 더욱 끊임없이 가족을 괴롭혔다. 계단 입구에 더 큰 CCTV를 설치하고 인터넷 수배령까지 내려 거의 80세 가까운 할머니를 핍박해 집을 잃고 떠돌게 만들었다. 설날에도 갈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여러 번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나는 사악한 자들의 연좌제가 그들에게 미칠까 봐 돌아갈 수 없었다. 수련인은 이기적이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일할 때 먼저 남을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셨으니까.
이번 박해를 통해 나는 사악의 독성을 더 분명히 보게 됐고 수련의 엄숙함과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됐으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셨는지 더 잘 알게 됐다. 이 두 번의 교통사고에서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우리는 분명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70여 세의 나이에 그렇게 많은 곳이 골절됐는데 약 한 번 먹지 않고 주사 한 번 맞지 않았으며 지금은 완전히 회복됐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사부님을 100% 믿어야만 고비를 넘기고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이 유리걸식(流離乞食)의 처지가 구세력의 길을 걸어간 것이지 사부님이 안배하신 것이 아님을 안다. 이 자리에서 사부님께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는 반드시 심성에 공을 들이고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으며 남의 장점을 많이 보고 이타적이고 사심 없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사부님을 따라 나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의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26/5061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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