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내 어린 시절은 집안 형편이 매우 가난했다. 진짜 장난감을 가져본 기억이 없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을 단 한 푼이라도 가져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는 매 맞은 것과 춥고 고생스러웠던 것뿐이며, 그리워할 만한 달콤한 추억이라고는 전혀 없다.
대략 내가 4~5살 때, 형과 누나는 이미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낮에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면 나 혼자만 집에 남겨졌다. 4~5살 아이가 하루 종일 아무도 없이 쥐가 돌아다니는 집 안에서 혼자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일 대문 입구 양쪽 돌 위에 앉아 지나다니는 행인을 바라봤다.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겨울은 정말 처참했다. 내 어린 손발이 항상 발효된 찐빵처럼 퉁퉁 얼어붙어 아프고 가려웠다. 다행히 우리집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강아지의 따뜻하고 털 없는 배가 내 손을 녹이는 곳이 됐다. 가련한 강아지는 어린 주인의 손이 아무리 얼음장처럼 차가워도 절대 피하지 않고, 항상 충실하게 그 작은 온기로 주인의 냉기를 녹여줬다. 할머니는 내가 매일 집 앞에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늘 내가 집을 잘 지키는 자물쇠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지킬 것이 뭐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또 어디를 갈 수 있겠는가?
몇 년 후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반 친구들이 어릴 때 유치원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유치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나는 정말 부러웠다. 그때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오는 것일까? 이렇게 힘든 곳에 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나중에 누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또 생각했다. ‘아, 사람은 죽기도 하는구나? 그렇다면 어차피 언젠가 죽을 텐데 왜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이 태어나고 죽으며 고생하고 고통받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이 모든 것이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며 장차 나는 반드시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깊은 원한
세상을 놀라게 한 그 대지진 이후, 외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됐다. 외삼촌이 멀리 다른 성(省)의 외딴 지역에서 일하고 있어 1년에 한 번 집에 오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진 이후 외할머니와 작은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집도 없어졌으니, 외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자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 내 짐작이고, 그때 어렸던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다만 매주 일요일마다 외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손자(내 외사촌)를 데리러 가서 시내에 데리고 가 하루 종일 먹고 놀다 오신 것만 기억난다. 아, 나는 너무 부러워서 생각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시내에 데려가 주시는 날이 언제쯤 오려나? 단 한 번만이라도 좋은데.’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우리집에 사시던 그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외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외손자는 외가댁의 개라서 밥 먹고 나면 그냥 가버려.” 나는 그 말을 듣고 승복할 수 없어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모든 외손자가 다 그런 사람인지 아세요? 나한테 조금만 잘해줬다면 나는 틀림없이 보답했을 텐데.’
나중에 우리집 단독주택이 철거돼 우리는 모두 아파트를 배정받았는데, 외할아버지 집과 우리집은 앞뒤로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서로 챙기기 편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첫 월급을 받자 어머니가 내게 당부하셨다. “먼저 외할아버지한테 맛있는 것 좀 사다 드려라.” 나는 외할아버지가 평소 해산물을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생각나, 외할아버지께 드릴 큰 게를 한 마리 샀다. 왜 한 마리만 샀을까? 당시 내 월급이 30위안 남짓이었는데 그 게 한 마리가 1근 1냥 남짓이어서 기본적으로 내 한 달 월급을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큰 게를 외할아버지께 가져가서, 내 첫 달 월급으로 사 온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외할아버지도 당시 꽤 기뻐하셨는데, 다음 날 앞으로는 더 이상 사 오지 말라고 하셨다. 게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었다. 그때 게를 파는 사람이 게가 신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일부러 게의 두 집게발을 잡아당겨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에이, 안 사는 게 더 나았겠네. 어차피 내 적은 돈으로는 사실 살 수도 없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그 뒤로도 자주 다른 맛있는 것들을 사서 외할아버지께 드렸는데,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기뻐하시기 때문이었다.
그 후 외삼촌이 같은 도시로 전근을 오게 됐고, 외숙모의 회사에서 직원들의 자금을 모아 건물을 지었는데, 그들은 독립된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집을 한 채 분양받았다. 이렇게 건물이 완공되면 외할아버지가 그들과 함께 이사 갈 수 있고, 게다가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아들이 나중에 결혼할 때 쓸 수 있을 테니, 외할아버지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남게 됐다. 그때 나는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었지만, 직장에서 집을 배정받지 못해 여전히 부모님과 같은 동의 작은 아파트에 끼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의 집을 사는 것에 대해 상의하셨고, 시세대로 주겠다고 하셨으며 외삼촌도 동의했다.
사실 당시 나는 외할아버지의 집을 사고 싶지 않았다. 우선 방이 하나밖에 없는 외할아버지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게다가 그 집을 사려면 외숙모 회사의 집이 완공된 후 그들이 이사를 가야 비워지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나는 친척 간에 금전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져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친척 사이에 처리하기 곤란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집을 산 뒤 나중에 자신이 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가족을 지극히 보살폈으니, 그들이 자신과 충돌할 리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돈을 주셨으니 먼저 명의 이전부터 하세요.” 아버지는 여전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고집하셨다. 나도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하시게 뒀다. 아버지는 당시 시세에 맞춰 외삼촌에게 수천 위안을 집값으로 주셨다.
그런데 외숙모 회사에서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계속 직원들에게 처음에 정한 집값이 부족하다며 추가 납입을 요구했다. 결국 내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외삼촌이 돈이 없어서(내 짐작으로는 정말로 돈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다들 넉넉하지 않았고 처음에 낸 수만 위안이 이미 그의 한계였을 것이다.) 우리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집값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특히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당시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었고 그 집도 확실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집값을 조금씩 올려줘 1만 위안까지 늘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느 날 내가 외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외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아버지한테 서둘러 집 명의부터 이전하라고 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지만 친척이다 보니 입을 떼기가 늘 뻘쭘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먼저 말씀하셨으니 이참에 이 일을 먼저 처리해버리면 더 이상 엉뚱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외할아버지의 뜻을 아버지에게 전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말씀하셨다. “뭘 그렇게 서두르냐?” 나는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 명의 이전을 안 하면, 그쪽 집이 완공됐을 때 집값이 또 올라 너무 싸게 팔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돈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했다. 아버지는 “그럴 리 없다. 당초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그들이 나한테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지”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외할아버지 가족에게 잘해준 것은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는 어디 하나 좋은 구석이 없지만 유독 친정 식구들에게만 특별히 잘한다고 자주 불평하시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삼촌이 이미 아버지에게 돈을 더 요구했고 그 자체가 명백히 과거의 잘해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아버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명의 이전을 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시니 방법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내가 걱정하던 대로였다. 외삼촌 집의 건물이 완공된 후 외할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이사를 가셨다. 이치대로라면 이때 외할아버지의 그 집 소유권을 우리에게 명의 이전해줘야 했다. 그런데 이때 집값이 또 많이 올랐고, 과연 외삼촌이 또 집값을 더 올려달라고 왔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결국 화를 내시며 더 이상 돈을 주려 하지 않으셨다. 그때 우리집에도 기본적으로 여유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외삼촌이 최후통첩을 했다. 명의를 이전하려면 5천이든 6천이든(구체적인 금액은 잊어버렸음) 더 내놓으라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집을 팔아버리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내게 이 일을 말씀하시자 나는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의 무능함도 원망스럽고 외삼촌의 무정하고 의리 없음도 분했다. 나는 한을 품고 말했다. “팔고 싶으면 팔라고 하세요. 나는 한 푼도 더 내지 않을 거예요.” 일이 원래 여기까지 왔는데, 뜻밖에도 아버지의 어느 친구가 아버지에게 특별히 터무니없는 꾀를 냈다. 외할아버지 집의 자물쇠를 바꿔버리라고 한 것인데, 아버지는 정말로 그렇게 하셨다.
나는 당시 이 상황을 전혀 몰랐는데, 어머니가 막 이 일을 내게 알려주려 할 때 외할아버지가 이미 들이닥치셨다. 방 안에서도 외할아버지가 복도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개(아버지 이름), 내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네가 내 재산을 나누러 온 것이냐?!” 아버지는 너무 놀라 얼른 몸을 숨기셨다. 외할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찾으셨는데, 누군가 집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셨을 때(나는 당시 심한 허리 염좌로 집에서 누워 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눈빛은 다소 회피하는 듯했다. 내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셨거나, 아마 다소 죄책감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심한 허리 염좌로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데도, 외할아버지는 외손자를 한 번 살펴보겠다는 말씀조차 없으시다가,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물쇠를 바꿨다고 들이닥치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얼마 소란을 피우지 않고 가버리셨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내 마음속에서 그들에 대한 원망이 한순간에 극에 달했다! 과거의 그 오래된 자질구레한 일들도 모두 다시 끓어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무정하며 의리 없을 수 있지? 당초 당신들이 어려웠을 때 우리집이 그렇게 도와줬는데도 한 번도 따지지 않았잖아. 내가 마음속으로 주말마다 외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놀러 나가는 것을 그렇게 부러워했어도, 나는 단 한 번도 나를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어. 그리고 나는 일을 시작한 후 첫 달 월급으로 외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사드릴 생각부터 했고, 외삼촌 당신은 다른 성에서 그 오랜 세월 일하면서 설날에 집에 왔을 때 내 기억엔 한 번도 내게 장난감 하나 사준 적이 없었지. 지금 이 낡고 작은 집 한 채 때문에 이토록 신의를 지키지 않다니. 만약 진짜 재산이라고 따진다면 우리 어머니 몫이 절반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법적으로 말해서 우리집이 노인을 이렇게 오래 부양했으니, 외할아버지의 재산에 어머니 몫이 있어야 마땅하잖아.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에게서 한 푼도 나눌 생각을 전혀 안 했고 당시 시세대로 집값을 냈어. 아버지가 당신들을 믿었기 때문에 당장 명의 이전 수속을 밟지 않은 것인데, 당신들은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자 딴소리를 하니 정말 뻔뻔하네!’ 아버지에 대한 깊은 원망도 있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밖에서는 다들 아버지가 성실하고 후덕하다고 하는데 집에 오면 우리 모자(母子)에게 늘 눈을 부라리고 수시로 손찌검을 하며, 큰일을 만날 때마다 분별력을 잃으면서 독단적으로 내 권고는 듣지도 않지. 외부 사람의 그렇게 어리석은 조언은 곧이곧대로 듣고 즉시 실행하더니, 일을 망쳐놓고는 감히 책임지지도 못하고, 외할아버지가 찾아오시자 겁에 질려 숨어버리다니. 나라면 이미 체면을 구긴 이상 상대가 누구든 제대로 따지고 들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왜 직접 그들과 얼굴을 붉히지 않았을까? 난 어머니가 괴로워하실 것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소란을 피우면 어머니가 중간에 끼여 가장 힘드실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았다. 모두 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데 어머니가 어떻게 하겠는가? 이 중공 악당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사회에서 어머니는 이른바 출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농촌으로의 하방(下放)을 선택해야 했고, 결국 억울하게 빈농 출신에 가족 대부분이 대대 간부인 내 아버지에게 시집오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이런 가정에서 겪는 몸과 마음이 지친 고통과 슬픔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내 행동으로 어머니가 어떤 상처라도 받을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또 눈에 모래 한 알도 들어가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줄곧 악당 우두머리가 선전한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는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원수를 반드시 갚는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누가 나를 괴롭히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큰 모욕을 당하고도 한가득 쌓인 분노를 발산할 수 없고, 혹은 발산해서는 안 되니, 이것은 정말 나를 극도로 답답하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이 집을 팔고 외사촌 남동생을 데리고 우리집에 돈을 갚으러 왔다. 당연히 이런 자리에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외삼촌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예전의 그 돈은 내가 빌린 것으로 치고, 지금 원금과 이자를 합쳐 다 돌려주겠으니 세어봐.” 그러면서 1만 1천 위안을 꺼내 침대 위에 놓았다. 어머니가 “안 세어봐도 되지”라고 하시자 외삼촌은 “그래도 확실히 세어보는 게 좋지”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불러 세게 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허, 당신 무슨 뜻이야! 당신이 최고 이자를 주면 이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해? 아직도 스스로 꽤 의리 있다고 느끼는 건가? 당신은 이 집에 누나 몫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당신은 우리가 다 바보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당신은 어머니가 지금까지 당신들 같은 가장 가까운 가족을 각별히 걱정하셨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당신들을 특별히 돌봐야 한다고 하셔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당신들을 도운 것이라는 걸 알기나 해? 당신의 지금 행동이 어머니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알아? 뭐 당신이 빌린 것으로 친다고, 당신이 이럴 줄 알았다면 누가 당신에게 돈을 빌려줬겠어? 이 ‘확실히 세어보라’는 뜻이 단칼에 관계를 끊자는 건가? 좋아, 끊으려면 끊자, 이런 친척 따위 안 끊고 뭘 기다려?’ 그래서 나는 돈을 한 번 세어봤다. 뜻밖에도 막 다 세자 외사촌 남동생이 한마디 했다. “형, 돈 액수 맞아?” 아, 이 말은 내 막 상처 입은 마음에 또 칼을 꽂은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이 외사촌은 어릴 때부터 어리숙해서 내가 늘 잘 챙겨줬는데, 그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익을 위해서는 가족도 모른 척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정말 그의 따귀를 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윗세대 어른들의 일이니 우리 아랫사람들은 최대한 이 일에 끼어들지 말고 갈등을 그들 사이에서 축소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 녀석이 내게 이런 수를 쓰다니. 그래서 차갑게 대답했다. “맞아.” 하지만 이 원한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속으로 말했다. ‘기다려라, 장차 기회가 오면 내가 반드시 제대로 갚아주지!’
고덕대법이 사람 마음을 교화하다
그해 봄, 나는 치료할 수 없는 심한 허리 염좌의 고통 때문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설법 비디오 학습반에 들어갔고, 대법 사부님께서 얕은 데서 깊은 데로 설법하시는 고덕대법은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나는 당시 충격받은 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우주에는 법이 존재했구나! 알고 보니 내 영혼 깊은 곳에 숨겨둔, 생명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길이 정말로 존재했구나! 알고 보니 진선인(眞·善·忍)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준칙이었구나! 사람이 진선인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을 높이면 계속해서 자신의 생명 층차를 끌어올릴 수 있고, 나아가 과거 종교에서 말하던 부처와 도(道)로 수련 성취하는 것, 즉 각자(覺者)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구나. 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 모든 게 다 진짜란 말인가?’
곧 나는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허리 염좌로 닭 한 마리 묶을 힘도 없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강도의 중노동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가졌던 위장도 치유됐다. 매일 위장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뜻밖에 생수나 찬물을 마음대로 마셔도 더 이상 설사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과거에 온갖 방법을 다 쓰고 각종 치료 수단을 취해도 해결하지 못한, 나를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하게 만든 고질병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신기했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의 얼굴조차 뵌 적이 없고, 사부님께 치료비 단 한 푼도 드릴 수 없었다. 그저 매일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겉보기엔 체조 같은 몇 가지 연공 동작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이렇게 아주 쉽게 나를 그토록 오랜 세월 괴롭히던 고통을 풀어버리다니?! 게다가 그 이후 근 30년 동안 나는 약 한 알도 다시 먹은 적이 없고, 의료보험 카드로 약값을 단 한 푼도 쓴 적이 없다. 이것은 나 자신조차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물론 뵙지는 못했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손을 휘두르시는 사이에 내 고질병을 없애주셨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신 것은, 내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며, 나아가 수련 원만할 수 있는 사람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임을 나는 법(法)을 통해 명백히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제자로서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 법리에 따라 행해야 하며 다른 선택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는 지금 중국공산당(중공) 통치하의 물욕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이것이 정말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내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임을 확신한 이상, 나는 반드시 주저 없이 실천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선 나는 이전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아야 했는데, 이는 내게 사실 아주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중공 악당이 내게 어릴 때부터 주입한 그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는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교(邪敎) 교리가 정말 너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사실 앞의 말도 속이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건드리지 않아도 그것은 똑같이 당신을 해친다. 성인 공자가 이미 돌아가신 지 2천여 년이 됐는데 어떻게 그것을 해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똑같이 비판하고 완전히 짓밟았다. 대법이 완전히 사람에게 선을 향하도록 가르쳐 그것에 어떤 위협도 없는데도 그것이 여전히 탄압하려는 것과 같다.) 이 교리는 이미 사람의 혈맥에 녹아들어 완고한 관념을 형성했다. 이것은 대법에서 갈등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배려하라고 한 진선인 법리와 완전히 배치된다.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이 나쁜 것을 제거해야 했다.
우선, 나는 설날에 외삼촌에게 세배하는 것을 회복했다(그 돈을 돌려준 일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의 집에 가지 않았었다. 예전의 나는 원한을 평생 기억하고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에 나는 그저 억지로 기계적으로 했을 뿐이다. 대법은 수련인에게 적이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강제해 그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했다. ‘그들도 당시 큰 집으로 바꿀 때 확실히 돈이 부족했잖아! 지금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사회에서 그들은 또 무신론 교육을 받아 신앙도 없는데 어쩔 수 있겠어? 내가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역시 돈과 재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에게 가족 간의 정이 없어지고 생명의 건강이 없어진다면 비록 엄청난 재산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끊임없이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일깨워주자 나는 내 마음이 점차 평화로워짐을 발견했고, 그 직후 시련도 찾아왔다.
어느 날, 외사촌 남동생이 갑자기 우리집에 달려와서는 내게 돈을 빌려 차를 사겠다고 했고, 게다가 한꺼번에 빌리고 조금씩 갚겠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자 첫 일념에 뜻밖에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이 여전히 일종의 경멸과 그를 비웃는 심리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와, 넌 참 뻔뻔하게 이런 말을 꺼내는구나! 특히 돈 문제로 내게 부탁하러 오다니.’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여전히 원한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대법이 요구하는 누구에게나 자비로워야 한다는 이치를 해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즉각 의식했다. 그래서 그 선하지 않은 생각을 배척해 버리고 바로 그에게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한 번 따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좋지 않은 마음을 정말 다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주입돼 아주 완고한 것을 형성했기 때문이며, 진정으로 태연히 내려놓으려면 시련을 거쳐야 했다. 과연, 그 후 외사촌 남동생은 뜻밖에도 자신의 생활과 직장에서 만난 각종 문제조차 끊임없이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고, 게다가 질문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으며 심지어 시간을 가리지도 않아, 단번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그에 대한 반감을 또 끌어냈다. 나는 자주 그를 비꼬고 조롱하며 말했다. “이건 다 중학교 수준의 지식인데 너같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이런 것도 이해 못해?” 하지만 내가 그를 조롱할수록 그는 자꾸 와서 물었고, 내 태도를 전혀 따지지 않았다. 이는 내가 왜 이렇게 짜증을 내는지 냉정하게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설마 단지 그가 내 시간을 많이 빼앗았기 때문일까? 내 기억에 어릴 때 그는 이랬다. 아주 간단한 문제도 끝없이 물었고, 만약 그에게 충분한 시간만 주면 10만 개의 질문이라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그렇게 어리숙하게 자꾸 질문하는 것을 아주 귀엽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깊이 파고들어보니 여전히 집값을 돌려줄 때 그가 한 그 말이 내 마음을 상하게 했고, 마음속에 여전히 꽁하게 맺혀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법은 일찍이 적이었던 사람조차 자비롭게 대할 것을 요구하는데, 내가 어찌 내 친척에게 이렇게 선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그들도 당시에 돈이 부족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친척을 찾아 요구하지 않으면 또 누구를 찾겠는가? 이런 각도에 서서 생각하자 점차 그들의 당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도 평화로워져 이후 외사촌이 또 돈을 빌릴 때 나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빌려줬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던 원망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당연히 우선 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는 것을 배웠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아버지는 월급날이 될 때마다 감히 먼저 집에 오지 못하시고 반드시 월급을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가져다드려야 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을 남기고 마지막에 10위안을 주시면 그것이 우리 일가족의 한 달 생활비였다. 10위안으로 다섯 식구가 어떻게 생활하겠는가? 그래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출근하시고 밤에는 또 일자리를 구해 가계에 보태셨는데, 설령 그렇다 해도 집안은 여전히 가난에 쪼들렸다. 아버지가 몹시 고생스럽고 피곤하며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노력해 일해도 가정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없었으니 당연히 짜증이 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우리가 화풀이 대상이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번은 내가 작은아버지께 세배를 갔는데, 작은아버지는 나와 어릴 적 이런 일들을 얘기하다가 이렇게 물으셨다. “네 아버지에게 원망을 품은 적 없니?” 나는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분명 응어리가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정말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한바탕 맞았으니 당연히 마음속에 불만이 많았겠죠. 지금 저는 대법을 수련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를 명백히 알았고, 사랑과 미움, 정과 원한의 인과 윤회를 꿰뚫어 보았어요. 그래서 지금 저는 아버지에 대해 원망이 없고 오직 아버지를 잘 보살펴 노년을 편안히 보내시게 하고 싶을 뿐이며, 아버지도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저희를 칭찬하세요”라고 답했고, 작은아버지는 웃으셨다.
파룬따파 법리는 바로 이처럼 수련인이 갈등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더 높은 차원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남의 장점을 많이 보고 남의 단점을 적게 보도록 요구한다. 은연중에 만물을 소리 없이 적시듯 사람 마음속의 원한을 해소하고, 이기적인 사람 하나하나를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진정으로 사람을 선으로 이끄는 이 거대한 에너지를 결코 얕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상처받은 마음 하나하나를 적시고, 그 악념에 잠재된 살기와 거대한 사회 위기를 해소시킨다! 인류 도덕의 전반적인 향상을 이끄니,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초석이다. 동시에 사람의 신체를 건강하게 해 국가에 거대한 의료 지출을 절약해줬다. 이것은 정말 국가와 국민에게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는, 만고(萬古)에 만나기 힘든 고덕대법이다! 만약 당초 악당과 어릿광대 장쩌민(江澤民)이 탄압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중국은 얼마나 따뜻하고 조화로우며 또 풍요롭고 번영하는 사회였겠는가! 슬픈 것은 현 정권이 여전히 무지하게 박해를 지속하고 심지어 탄압을 해외로 수출하며, 남의 일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가장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온 사회가 하늘의 노여움과 사람의 원망, 곳곳의 이재민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철저한 붕괴에 직면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본인과 수많은 앞잡이도 반드시 장쩌민의 전철을 밟아 무간지옥의 문으로 달려갈 것이다.
정도(正道)로 회귀하다
중공 악당 통치하의 중국에서, 우리집이 겪은 이런 일은 매일 상연되며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대량으로 발생하는, 겉보기에 가장 평범해 언급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이 작은 일들을 결코 얕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에 거대한 사회 위기가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영화 및 텔레비전 작품이든 현실 생활이든 표현되는 것은 바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가족 간의 정이나 어떤 마지노선도 없이 지혜와 악랄함으로 다투고, 심지어 너는 죽고 나는 사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은 살기와 음기가 심해 각종 악성 사건이 빈발하고 사회 위기가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중공 악당이 선전하는 무신론, 진화론, 투쟁 철학이야말로 이 모든 만악의 근원임을 보지 못한다. 악당의 약육강식 정글 법칙과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고 사람과 투쟁하니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는 투쟁 철학을 세상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로 잘못 여겨, 화하(華夏) 예의지방(禮義之邦)의 천고의 모범을 완전히 상실했으니 이대로 가면 극도로 위험하다! 오늘날 끊임없이 출현하는 각종 이변과 대역병 및 각종 천재지변과 인재를 보라, 이것이 설마 하늘이 현 정권과 세상 사람에게 내리는 경고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모든 위기의 해독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는 악당 문화를 버리고 고덕대법을 맞이해야 한다! 전통 문화를 선양하는 션윈(神韻)을 맞이해 도덕을 끌어올리고 사람 마음을 바르게 잡아 인성으로 회귀하며, 오래된 화하 신전(神傳) 문화의 휘황함을 다시 빚어내는 것만이 현 사회와 세상 사람의 유일한 출구다! 바로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주제가가 노래하듯 ‘창생이 정도(正道)로 돌아오니 강산이 다시 맑고 밝아지네!’인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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