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수련 과정에서 법을 가장 크게 여기고, 오랜 원한을 내려놓으며 심성을 제고해 가족을 구한 일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1. 어린 시절 겪은 일로 원망이 쌓였으나 다행히 대법을 얻어 응어리를 풀다
저는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아버지와 8년을 살았는데, 아버지는 아이 넷 달린 여자와 재혼해 데릴사위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제 나이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계모가 데려온 아이 넷 중 둘은 저보다 크고 둘은 저보다 어렸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계모 성격이 포악하고 사람들과 자주 싸우며 욕설을 일삼는다고 해서, 언니와 저는 아버지를 따라 계모 집으로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억하건대 어느 날, 아버지는 집안의 돈 될 만한 물건을 몽땅 챙겨 떠나버렸습니다. 남은 건 금 간 솥 하나와 밥그릇, 젓가락 두 벌, 그리고 한 달이나 먹을까 싶은 수수 가루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언니와 제가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어 얼마 안 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고, 우리 힘으로 꿋꿋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계모가 여동생 둘을 더 낳았고, 아버지는 계모가 낳은 자식까지 포함해 여섯 아이를 키우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언니와 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연을 끊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비정하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인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아버지는 친어머니가 남겨둔 저축까지 몽땅 가져가 계모의 빚을 갚아주면서 우리에게는 돈 한 푼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언니와 저는 우리 손으로 봄에는 닭을 쳐서 달걀을 소금으로 바꾸고, 여름에는 나물을 캐 돼지를 먹여 돈을 마련해 식량을 샀으며, 가을에는 풀을 베어 말린 뒤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웃들의 따뜻한 도움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언니는 타지에서 중학교에 다녔는데 돈이 없어 중퇴하려다가 학교 지원으로 겨우 학업을 마쳤습니다. 집에는 저 혼자였는데 물 긷기, 나무하기, 빨래, 밥 짓기, 돼지 여물 주기, 닭 치기를 도맡았습니다. 매일 등교할 때 바구니를 끼고 갔다가 하교하면 나물을 캐서 집으로 돌아와 돼지를 먹였습니다.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손가락이 변형돼 마디가 굵어지고 잘 구부러지지도 않았으며,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몹시 쑤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솟구쳤고, 이 깊은 원한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고생투성이였습니다. 철없던 우리는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고 출세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 왕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기가 생겨 아버지 도움 없이도 우리가 얼마나 훌륭하게 컸는지 보여주겠다며 그 모진 세월을 버텼습니다.
어른이 되어 우리도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묵은 원한 때문인지 가정이나 생활, 직장은 괜찮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온갖 병을 달고 살며 용하다는 의사와 약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적으로 피폐했고 사는 게 고달팠습니다.
1996년 8월, 저는 기쁘게도 대법을 얻었습니다. 처음 전법륜(轉法輪)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읽는데 따뜻한 전류가 온몸을 통과했고, 어떤 강력한 힘이 저를 끌어당기는 듯했으며 몸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많은 현상이 제 몸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저를 알고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고 확고하게 수련해 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꾸준한 법공부를 통해 사람이 된 이치를 진정으로 깨달았고, 인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전생의 인연으로 맺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난날 겪은 일에 대해 더는 원망하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불광(佛光) 속에 푹 잠겨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법공부를 계속하면서 대법은 서서히 제 오랜 원한을 녹여주었고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문제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일생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세속 관념에 얽매여 아들이 없는 집안은 대가족 내에서도 무시당하고, 어르신들에게 ‘대가 끊겼다’는 욕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어쩌면 계모의 기세가 너무 등등해 아버지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저와 언니를 부양할 엄두를 못 냈거나 능력이 안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계모는 6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농촌에서 평생 고생하셨으니 딸로서 짐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와 남편은 자주 시골로 아버지를 찾아뵙고 경제적, 물질적으로 큰 도움을 드렸으며, 기회를 봐서 대법 진상을 알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중공(중국공산당) 조직 탈퇴에 동의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실수로 집에 불이 나 몽땅 타버린 적이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면사무소를 찾아가 집터 허가를 받도록 도왔고, 집을 지어 아버지는 새집에서 정상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제가 업무로 바빠 고향에 자주 가지 못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아버지는 제가 집을 내놓으라고 할까 봐 겁이 나서 집을 팔아치우고는 그 돈을 저의 두 이복 여동생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정작 본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간이집을 짓고 사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이니 딸로서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두 여동생을 도시로 데려와 공부시켰고 우리집에서 먹고 자게 했습니다. 졸업 후 그들은 직장을 잡았고 차츰 각자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두 동생은 몰래 아버지의 호적을 시내로 옮기고 가산을 전부 처분한 뒤, 아버지를 도시로 모셔와 편안한 말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언니와 저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2. 어려움 속에서도 원한을 품지 않다
도시에 온 아버지는 저와 언니의 생활 형편이 두 동생보다 훨씬 넉넉한 것을 보고 질투심이 생겨, 두 동생이 빨리 부자가 되기를 바랐고 심지어 우리를 뛰어넘으라고 부추겼습니다. 이런 일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련인은 돈과 재물을 담담히 보기에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불안해서 그러는 것이니까요.
자매들은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중공의 잔혹한 박해 앞에서 그들은 사악한 선전만 믿고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게 잘못이며, 정부 명령을 안 듣고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루될까 봐 두려워하며 점차 저를 멀리했습니다. 특히 형부는 파출소로 발령받은 후로는 언니와 저를 접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뵙고 동생 부부에게 진상을 알리면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제게 제발 그만 수련하라고,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데 왜 맞서냐고 타박했습니다. 언니 집에 가면 형부는 눈을 부라리며 수화기를 들고 신고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들 눈에 저는 하등 인간이었고 저와 엮이면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중공의 공포 통치하에 있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고, 이것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악한 당에 깊이 중독된 그들이 지극히 가련했고, 대법을 오해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물러서지 않고 여전히 확고하게 수련했고, 언젠가는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알게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이유로 저는 납치돼 현지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언니는 86세 되신 아버지를 모시고 세 번이나 구치소로 찾아와 사악을 도와 저를 ‘전향’시키려 했고, 수련을 포기하라며 저더러 이기적이고 무정하다고 원망했습니다. 조카며느리(파출소 호적 담당)는 가족이 저에게 넣어달라고 부탁한 옷을 중간에서 가로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겨울이었는데 저는 얇은 옷 한 벌로 한 달 넘게 버텼습니다.
형부는 오히려 고소해하며 위선적으로 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린 다 은퇴해서 힘 쓸 데가 없네. 자네가 5만 위안을 내놓으면 내 아들(조카) 시켜서 공검법(공안·검찰·법원) 친구들에게 부탁해 처제를 좀 빼내 보지.” 남편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에 앞뒤 안 가리고 5만 위안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형부는 이리저리 둘러대며 거짓말만 늘어놓았고,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언제 재판을 받는지, 언제 감옥으로 이송되는지조차 몰랐고 심지어 판결문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억울하게 판결받자 자매들은 제가 자기들의 충고를 안 듣고 고집을 피우다 사서 고생한다며, 스스로 자신과 가정을 망쳤다고 했습니다. 형부는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다 형을 선고받았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제 남편에게 “먹을 거 먹고 놀 거 놀게, 누구 하나 없다고 세상 안 멈춰”라고 했습니다. 또 이번 일로 처제가 손해 본 게 막대하다며 직접 손실만 12만 위안(4년 치 급여)이고 간접 손실은 더 많을 거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악담까지 퍼부었습니다.
출소할 때가 다 되자 언니 가족은 겁이 났습니다. 제가 돌아와서 그 5만 위안의 행방을 따질까 봐 무서웠던 겁니다. 그들은 부랴부랴 아버지에게 “5만 위안은 아버지가 썼다고 하세요. 안 그러면 제 아들과 며느리가 다 실직해요”라고 입을 맞췄고,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2019년 11월 감옥을 나온 날, 저는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90세 노인이 된 아버지를 찾아뵙고 무사함을 알렸습니다. 저를 본 아버지는 상상과 너무 달라 놀라셨습니다. 아버지는 두 줄기 굵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이 아비가 미안하다. 어릴 때 고생만 시키고, 커서는 몸도 안 좋았는데 대법을 연마해서 건강해졌더니 감옥까지 갔구나.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니? 4년 동안 고생 많았다. 네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아비가 돈 한 푼 못 모아줘서 미안하다! 자매들 중에 네가 고생은 제일 많이 하고 고생도 가장 많이 했구나. 다 이 못난 아비 탓이다. 용서해다오!” 저는 차분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빚진 거 없어요. 제가 잘하지 못해서 사악에게 억울한 판결을 받은 겁니다. 아버지가 저를 성취시켜 주신 거니 감사합니다. 비록 물질적인 것은 많이 잃었지만 대법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5만 위안을 썼다고 거짓말하게 된 전말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잖아요. 모든 일에는 인연 관계가 있어요. 아마 전생에 제가 형부에게 빚진 게 있었나 봐요. 현생에서 갚은 셈 치죠 뭐.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들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언니 가족이 찔리는 게 있으니 저를 보기가 두려워 자꾸 피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에게 제 행방을 묻다가 제가 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하니 그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3. 자신을 잘 닦아 미혹 속의 자매를 구하다
아버지는 시내로 오신 뒤 연세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 동생네 차고에서 지내셨습니다. 2020년부터 저는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연로한 아버지를 돌봤습니다. 언니는 일흔이 넘었고 동생들은 장사하느라 바빴기에 제가 아버지 빨래, 식사, 청소, 목욕, 손발톱 깎기를 도맡았고 틈틈이 대법 진상을 알려드렸습니다. 가끔 아버지는 제게 “너한테 참 미안하구나. 어릴 때 널 돌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잘해주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잖아요. 사부님께서는 지난 잘못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하셨어요. 가족에게도, 중생에게도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요.”
저의 선행은 은연중에 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몇 년이 지나자 저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몇 년을 하루같이 변함없이 아버지를 모시는 것을 보고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동생들은 인내심과 선한 마음이 부족해 아버지와 자주 심하게 부딪쳤고, 심지어 험한 꼴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불러 중재를 요청했고, 그때마다 저는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동생들은 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물었습니다. “둘째 언니, 언니는 어떻게 화도 안 내고 웃으면서 아버지의 비위를 다 맞출 수 있어?” 제가 말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니까 그렇지. 대법의 홍대(洪大)한 자비와 사부님의 가지(加持) 덕분에 내게 충분한 선한 마음이 생겨서, 진심으로 이치에 맞게 말하니 아버지가 쉽게 받아들이시는 거야.” 저는 여러 번 그들의 싸움을 말렸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아버지를 화나게 해서 사단이 났습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가니 막내 동생이 저를 꽉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언니, 태어나서 언니가 오길 이렇게 기다린 건 처음이야. 아버지가 자살하겠다고 난리인데 아무도 못 말리겠어!” 저는 늙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순한 양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사고 쳤다!” 저는 사부님께서 아버지 배후의 좋지 않은 요소를 해체해주셔서 아버지가 평온해졌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또 아버지를 건드렸어요? 평소에 남을 잘 배려하시는 분이 왜 엉뚱한 짓을 하세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자살은 죄라고요.” 아버지는 우물쭈물했습니다. “내가 깜빡했다. 내가 잘못했어!” 제부들이 이 상황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저는 더 긴말 없이 상황을 진정시켰습니다. 가족들은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치웠습니다.
잠시 후 큰동생이 말했습니다. “방금 생각했는데 대법 수련은 정말 대단해. 큰 선심과 사랑으로 더러운 것도 안 가리고 이치에 맞게 말하다니, 우린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해! 언니, 우리한테도 보서(寶書)라는 ‘전법륜(轉法輪)’ 한 권 구해줘. 언니가 변한 걸 보니 우리도 좀 착해지고 싶어!” 제가 말했습니다. “좋지. 사부님께서는 대법을 널리 전하시며 우주의 모든 중생이 대법을 알고, 보고, 제도받기를 바라시거든.” 저는 그들을 삼퇴시키고 대법 서적과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그들도 불광 속에 잠기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소원이었습니다.
그 후 언니와 형부가 병이 나서 계단을 못 내려오게 됐습니다. 생필품 구매부터 월급 찾는 일까지 사람 손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지난날의 불쾌함을 내려놓고 즉시 그들 곁으로 가서 생필품을 사다 주고 빨래, 이발, 방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감동했고 마음속으로 무척 미안해하며 저를 볼 면목이 없어 했습니다. 제가 박해받고 돌아와 월급이 적다며 돈을 보태주려고까지 했지만 저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차츰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조금씩 알려주자 서서히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형부는 예전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이지 못했다며 저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왜 언니 부부에게 이렇게 잘하는지 사부님 말씀을 한번 들어보세요.”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더니 두 사람은 입을 모았습니다. “중공이 선전하는 것하고는 딴판이네.” 진상을 알게 된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설법을 열심히 듣겠다고 했습니다. 형부가 중병으로 입원했을 때 저는 병문안을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고비가 닥쳐도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형부는 그대로 따랐고 지금은 위기를 넘기고 퇴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인데 안 구할 수 있겠습니까? 다 구해야 합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다그쳐 제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동시에 되도록 많은 사람을 구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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