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와 세뇌반에서의 정념정행, 환경은 마음을 따라 변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8년 여름, 저는 질병으로 인해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연공(煉功)을 통해 저를 수년간 괴롭혀 온 내외혼합치질, 위장병, 무좀, 허리와 다리 통증 등 여러 가지 고질병이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병 없이 몸이 가벼운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고, 병원과 완전히 작별했습니다. 그동안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은 적도, 수액을 맞은 적도 없으며, ‘가정의학’ 잡지도 더는 구독하지 않게 됐고, 전염병이나 날것, 차가운 음식 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전법륜(轉法輪)》 이 보서(寶書)는 저와 함께 꼬박 28년의 세월을 걸어왔고,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은 제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1. 관건적인 순간에 대법을 생각하고 사부님께 청하니 고난이 저절로 사라지다

2001년 1월,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현지 ‘610(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들에게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가 강제 ‘전향’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교육 구제’라고 미화했습니다. 세뇌반의 높은 담장 안에서 우리는 강제로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고, 매일 장시간 달리기를 했으며,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과 서적을 강제로 봐야 했습니다. 그들은 전향률을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혹한에 얼리거나 폭염에 노출시키고, 구타하고, 장시간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배불리 먹이지 않았고, 때로는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생 방에 고성능 스피커를 틀어 놓았습니다.(모두 대법을 모함하는 조작된 선전 내용이었음) 또한 수련생 가족을 협박하거나 회유해 세뇌반에 협조하게 함으로써 수련생을 ‘전향’시키려 했습니다.

세뇌반의 고압적인 박해에 직면했을 때, 저는 사부님의 법을 떠올렸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당신들 오늘날의 표현은 위대한 것이며 당신들의 이 일체 선(善)한 표현은 바로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정진요지2-이성) 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표현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입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선행입니다.

세뇌반에서는 매일 TV로 대법을 모함하고 증오를 선동하는 조작 선전 프로그램을 보게 했는데, 모두 ‘살인’, ‘자살’, ‘분신 자살’과 같은 공포스러운 화면들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사상 보고서’를 쓰게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전혀 믿지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주로 글로 진상을 알리는 방식을 택했고, 매일 그들이 나눠준 종이와 펜으로 거짓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써서 제 사상 보고서로 제출했습니다. 글 속에는 사부님의 《홍음》에 실린 시구나 사부님의 《정진요지》 경문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이 악인 배후의 사악한 생명을 해체하고 제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뇌반에는 거짓말에 깊이 중독된 한 중년 남자 경찰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법제자를 적대시하며 평소에 진상을 전혀 듣지 않았고 매우 흉포했습니다. 어느 날 그 남자 경찰이 저를 독방에 가둔 문을 열고 들어와 일부러 분신이나 살인 같은 말을 꺼내며 저와 논쟁을 일으켜 기회를 틈타 저를 해치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선의가 없음을 알고 마음속으로 급히 사부님께 제자에게 지혜를 주실 것을 청했습니다. 그런 후 저는 벽에 붙어 있던, 새까맣게 타서 입안에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 얼굴’ 그림(이 그림 아래에는 분신자 천궈라고 적혀 있음)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분신은 돌발 사건이고, 전체 과정이 1분이면 끝납니다. 분신자 천궈는 겨우 18세였는데 1분 안에 입안의 치아가 전부 타 없어질 수 있나요?”

그는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놀란 눈빛으로 저를 한 번 보더니 잠시 멍하니 있다가 생각에 잠긴 듯 벽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선량해서 18세 꽃다운 소녀 천궈가 이렇게 비참하게 타버린 참상을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참 꼼꼼히도 봤네”라고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떨군 채 나가버렸습니다.

또 한번은 세뇌반에서 수련생 한 사람당 대법을 비방하는 소책자 한 권씩을 나눠주며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아예 보지도 않았지만 저는 보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책에 표시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기관지 절개’라는 글 아래에 가로줄을 긋고 옆에 ‘그래도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적었습니다. ‘610’ 우두머리가 유리창 너머로 제가 매우 진지하게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제가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긴장했지만(그가 저를 때린 적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사존께서 ‘정진요지2-건의’에서 말씀하신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악이지 대법제자가 아니다.” 그러자 곧 마음이 안정됐습니다.

그가 제 앞에 다가와 책에 그어놓은 줄들과 물음표가 달린 의문 표시들을 보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는 제가 오히려 그들을 ‘전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제 손에서 소책자를 낚아채며 악에 받쳐 말했습니다. “당신은 확대경으로 공산당의 흠을 들춰내고 있군….”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다시는 우리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서적이나 유언비어성 TV 프로그램을 보게 하지 않았습니다.

2. 구치소의 위법 행위를 두 차례 고발해 기한 초과 구금을 부정하다

한 달 후, 세뇌반은 다른 사람들의 ‘전향’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전향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완고하다’고 여긴 수련생 4명을 구치소로 옮겨 구금했는데, 그중 한 명이 저였습니다.

당시 구치소 감방 안에는 재소자들이 공부하도록 비치된 법률 서적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인의 법률을 이용해 제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인의 법률 조항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범죄 용의자가 구치소에 구금되는 기간에는 시간 제한이 있으며, 무기한으로 구금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이미 불법적으로 5개월 넘게 구금돼 있었고, 이는 기한 초과 구금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치소에서 소감을 쓰라고 나눠준 종이와 펜을 이용해 3장 분량의 고발장(진상 편지)을 작성해 구치소 주재 검찰실에 제출했습니다. 편지에는 구치소가 대법 수련생을 기한 초과 구금한 위법 행위를 고발하는 내용과 함께 대법 진상을 적었습니다. 주재 검찰실 직원은 이를 읽고 난 뒤 난감한 표정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소의 머리를 누르고 억지로 물을 먹이는 시기입니다….” 제가 고발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세뇌반에서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다시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곳곳에 붙어 있던 사부님과 대법을 욕설로 모독하는 표어들, 강렬한 땡볕에서 ‘훈련’을 강요당하는 수련생들, TV에서 끊임없이 방송되던 대법을 날조·비방하는 프로그램들…. 세뇌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사존과 우주 대법을 모욕하는 표어들을 마주하며, 그 안에 갇혀 있던 대법제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념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다시 세뇌반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반드시 모든 죄악의 표어를 찢어버리고, 각종 변형된 체벌 활동을 전면 부정하며 더는 달리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은 수련이지 체육 단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세뇌반에서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연공할 것이다.’

며칠 후, 구치소의 작은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습니다. 이달 모일에 베이징 공안부, 성(省) 공안청, 시(市) 공안국, 현(縣) 공안국 지도자들이 구치소를 시찰 지도하러 올 예정이니, 모든 재소자는 구치소에서 인쇄한 ‘재소자 식단 기준’을 전부 암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재소자가 한 달에 고기를 얼마나 먹는지, 달걀을 몇 개 먹는지, 매일 어떤 음식을 먹는지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사실 모두 꾸며낸 내용으로, 평소 재소자들은 돼지나 개보다 못한 음식을 먹음) 또한 누구든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며, 지도자의 질문에만 답할 수 있고, 지도자에게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구치소에서 사람을 때려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낭자해지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위협적인 말을 들었지만 저는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을 때리는 가죽 허리띠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이제 말할 기회가 왔다’고 기뻐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시찰하는 날이 되자 구치소 안은 창문이 반짝반짝하게 닦였고, 감방 안의 이불도 더욱 각지게 개어졌으며, 재소자들의 자리 배치도 의도적으로 조정되어 저는 가장 안쪽으로 배치됐습니다. 아침 식사 후 모든 재소자는 큰 침상 위에 한 줄로 가지런히 앉아 ‘지도자’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9시경, 요란한 구두 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지더니 감방 문이 열렸고, 겨드랑이에 작은 검은 가죽 가방을 낀 ‘지도자들’이 구치소 소장의 수행 하에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선두에 선 지도자가 문 앞에서부터 재소자들에게 한 명씩 질문을 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무슨 일로 들어왔습니까? 언제 들어왔습니까? 얼마나 됐습니까? 사건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습니까? 구치소 식사는 어떻습니까?….” 감방 안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팽팽했고 누구도 감히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됐는데, 뜻밖에도 선두에 섰던 ‘지도자’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질문을 중단하고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지도자들이 문 앞에 다다른 것을 보고 저는 다급하게 얼른 큰 소리로 “저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제 외침을 들은 지도자들은 걸음을 멈춘 동시에 돌아섰습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제 얼굴에 집중됐고, 소장은 두려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미리 준비해 둔 말을 단숨에 쏟아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범죄 용의자가 아니며 이곳에 수감돼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저는 이미 5개월 넘게 구금돼 있습니다. 이는 이미 기한을 초과한 구금에 해당하며 기한 초과 구금은 불법입니다. 제가 정말 죄가 있다면 법에 따라 판결해주십시오. 죄가 없다면 저를 내보내주셔야 합니다. 지도자들께서 공정하게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저는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강조하지 않았고, 다만 이곳에서 내보내달라는 점만 밝혔습니다. 그들은 제 말을 듣고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누구도 한마디 하지 않았고, 문 앞에 잠시 머물다가 모두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이 말을 마치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했고 마음이 유난히 가벼웠습니다. 그 후 누구도 저를 찾아와 문제 삼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후 어느 날 오전, 갑자기 저와 A 수련생에게 짐을 정리하라고 했고, 우리는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정치보위과 경찰에 의해 구치소에서 다시 세뇌반으로 이송됐습니다.

3. 사악한 표어를 제거하고, 변형된 체벌 박해를 부정하며, 연공 환경을 열다

세뇌반에 들어서니 높은 담장 안 마당에서 수련생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책임자는 우리 둘도 대열에 서서 달리기에 참가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자리 뛰기”라고 외쳤고, 저는 대열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휘관은 제가 뛰지 않는 것을 보고 저를 뜨거운 땡볕 아래 서 있게 했습니다. A 언니가 제가 벌을 받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서서 저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그 모습을 보고 하나둘씩 멈춰 서며 저희와 함께 나란히 섰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관례대로 모두를 마당에 집합시켰고, 그들은 또다시 대열을 지어 달리기를 시키려 했습니다. 지휘관이 “제자리 뛰기”라고 외치자, A 언니와 저는 대열에서 벗어났으며 수련생들도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더는 세뇌반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지휘관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한 명씩 밀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단 한 사람도 그의 지휘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법제자의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반년 넘게 지속되던 변칙 체벌 훈련을 끝냈습니다.

이틀 뒤 아침 식사 시간에 저는 A 언니와 일부러 뒤에 남았습니다. 세뇌반 관계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 우리는 재빨리 건물 안으로 돌아가 가장 빠른 속도로 세뇌반 안에 붙어 있던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모든 표어를 찢었습니다. 식사 후 먼저 돌아온 수련생이 바닥에 찢겨진 표어를 보고, 신속하고 지혜롭게 그것들을 모아 건축 폐기물 속에 묻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세뇌반의 교대 인원이 도착했고, 그중 한 사람이 벽에 붙어 있던 표어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 국보 정치보위과 경찰을 불러 이 일을 추궁하려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교류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한뜻을 모아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캐묻든 모두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뇌반의 한 직원이 국보 정치보위과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A와 그녀가 세뇌반으로 돌아온 뒤부터 수련생들이 복종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표어를 찢은 사람이 바로 우리 둘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들은 곧 A 언니와 저를 분리해 교대로 심문했습니다. A 언니는 1층에서 세뇌반 직원의 심문을 받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평온했고 입을 굳게 닫아 어떠한 박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명의 젊은 경찰에게 2층으로 끌려갔습니다. 한 경찰은 종이와 펜을 꺼내 조서를 작성할 준비를 했고, 다른 경찰은 제 이름을 고함치듯 부르며 “표어는 누가 찢었어? A와 당신이 찢은 거 아냐?”라고 연거푸 물었습니다. 저는 계속 가만히 서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마음속으로는 다소 불안했습니다) 그는 분노에 차 팔을 휘둘러 제 뺨을 몇 차례 세게 때린 뒤 다시 저를 심문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묻고 때리기를 반복했고, 거의 정오가 됐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두려움이 조금 있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제가 매를 맞은 것은 그 순간 사람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며, 사람 마음이 불러온 박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결코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수련생들은 제가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날 정오부터 단체로 단식하며 항의하고 박해에 반대했습니다. 세뇌반은 우리에게 강제로 야만스럽게 음식물 주입을 했고, A 언니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다가 앞니 하나가 비틀려 빠져 입안이 온통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그들은 방법이 없자 의료진을 불러 코에 관을 꽂아 강제로 삽입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수법으로 바꾸든 단 한 명의 수련생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표어를 찢은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그들은 우리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모두를 한곳에 모아 큰 방 안에 가뒀습니다. 우리의 수련 환경도 이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낮에는 모두 방 안에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웠으며(그 안에는 작은 책자 《전법륜》 한 권이 있었음), 아침에는 함께 연공하고 저녁에는 교류를 했습니다.

사존의 정념 가지(加持)와 자비로운 보호 아래, 우리는 세뇌반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할 수 있는 환경을 성공적으로 열었습니다. 더는 밤에 몰래 일어나 연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이전에는 몰래 연공하다가 붙잡혀 심하게 구타당하는 수련생이 자주 있었음)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수련 과정에서 아직도 많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충분히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간을 다그쳐 모든 사람 마음을 닦아 버리고, 사람에서 걸어 나와 정법 노정을 따라잡아 맡겨진 중임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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