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토론토 천국악단 단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우리 천국악단이 걸어온 지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초기 뉴욕 천국악단의 설립부터 이후 캐나다 천국악단의 창단, 그리고 현재 전 세계 곳곳에 천국악단이 세워지기까지, 저와 악단 수련생들은 이 길 위의 희로애락과 수련 승화의 과정을 함께 목격하고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니 저 또한 악단이라는 환경 속에서, 처음에는 사람 마음을 품고 항목에 참여하다가 점차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고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는 법을 한 걸음씩 배워왔습니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 저는 그저 ‘남들을 따라가는’ 마음으로 정법 항목에 참여했을 뿐, 정법 중 천국악단이 지닌 깊은 내포를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는 법공부와 연주 활동, 수련생들과의 협력을 통해 저는 악단이 단순히 사람을 구하는 항목일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사람 마음을 비춰보고 심성을 연마하는 수련 환경임을 점차 체득하게 됐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 역시 일반 단원에서 소조 업무를 책임지는 파트 협조인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과정은 수련에 대한 저의 이해를 끊임없이 깊어지게 했습니다. 그동안 악단에서 보고 듣고 직접 겪은 수련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신체, 가정, 환경 등 겹겹의 난관을 극복하며 수년 동안 불철주야 견지해 온 감동적인 사례도 있고, 각종 교란으로 인해 도중에 악단 항목을 놓아버린 뼈아픈 교훈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 이미 교류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전개하지 않고, 최근 1년간 겉보기에 ‘구체적인 업무’ 속에서 제 심성을 제고했던 한 단락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천국악단 설립이 20년 가까이 되면서 초기에 가입했던 일부 수련생들이 다른 정법 항목을 맡거나 체력 저하 등의 이유로 잇따라 악단을 떠났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각 파트에는 보편적으로 인원의 노령화와 신입 부족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젊은 역량을 보충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신수련생이 악단 상황을 알아보러 오면 서로 다른 파트에서 ‘경쟁적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출발점은 모두 악단을 위해서였지만 통일되고 체계적인 조율이 부족하다 보니, 실제로는 먼저 접촉하는 쪽에서 먼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특정 파트의 인원이 다른 파트보다 눈에 띄게 많아지거나 심지어 두세 배나 더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여 전체적인 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파트 협조인 회의에서도 일부 수련생이 이런 우려를 제기했으나, 실행 가능한 방안이 부족한 데다 다들 각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다 보니 결국 여전히 ‘선착순’ 방식을 따르게 됐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장기간 존재해 왔지만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호른 파트는 인원이 늘 많지 않았지만 멤버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연습과 퍼레이드 때 인원 변화가 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악단 참여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겼고 각자의 조건적 제약을 극복하며 견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점도 점차 드러났습니다. 기초가 다르고 연령 차이가 크다 보니 연주 능력에 뚜렷한 격차가 생겼습니다. 특히 일부 연장자 수련생들은 전문적인 지도가 부족해 초기에 형성된 연주 습관을 고치기 어려웠고, 매일 연습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어 음정과 음량 조절에 확실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파트 협조인으로서 저는 한편으로 수련생들의 헌신과 노고를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파트의 전체적인 수준이 향상되기를 바랐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당연히 젊은 수련생이 호른 파트에 들어오기를 희망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체력이 좋으며, 인터넷 등을 통해 전문적인 학습 자원을 접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는 새로 온 젊은 수련생들을 직접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파트에 신입 대원이 속속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제 파트에는 변화가 없자, 제 내면에는 점차 무력감이 생겨났습니다.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내심 은연중에 조급함과 상실감을 느꼈고, 심지어 약간 소극적으로 ‘전체 협조인 수련생도 특별히 개입하지 않는데 나 혼자 조급해해 봐야 소용없다. 우리 파트 인원이 많지는 않아도 유지는 되니 이대로 가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이미 방임하고 소극적인 마음을 품은 것이었으나 당시에는 뚜렷이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던 중 사부님의 설법을 읽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대법의 일은 마땅히 가장 신성해야 하므로 자신의 관념을 갖지 않을수록, 자신의 요소를 갖지 않을수록 일을 하려면 더욱 잘되고 성공하기가 쉽다.”(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저는 비로소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겉으로는 파트를 위해 조급해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비교하고 부러워하며 심지어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전의 경험과 결합해 저는 점차 깨달았습니다. 음악적 기초가 없는 수련생이 호른을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긴 적응기가 필요하며, 확고한 수련의 마음이 없다면 도중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설령 ‘쟁취’를 통해 신규 수련생을 영입한다 해도 정말로 남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인원수에 과도하게 마음을 쏟는단 말입니까? 진정으로 적합하고 인연 있는 수련생이라면 자연히 사부님의 안배 아래 우리 파트로 올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매 제자를 보살피고 계시는데, 악단에 참여할 능력과 소원이 있는 수련생을 사부님께서 어찌 그런 기회를 놓치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심성 변화가 있은 후 일이 조용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여름, 우리 조 S 수련생의 열정적인 추천으로 두 수련생이 호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비록 그중 한 명인 남성 수련생은 학습의 난이도를 알고 다른 파트를 선택했지만, 다른 한 명인 젊은 여성 수련생은 남아서 계속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겨울이 된 후 P 수련생이 또 한 명의 젊은 남성 수련생을 소개했는데, 그 역시 호른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비록 현재 그들이 최종적으로 남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제 마음은 더 이상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든든함과 평온함이 더해졌습니다. 저는 ‘추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생각을 바르게 갖는 것임을 체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으로서 당신은 당당하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도록 하라. 무엇이든 모두 그 속에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되돌아보니 우리 파트에서 처음에 악보조차 읽지 못하고 음정조차 구분하지 못하던 수련생들이, 바로 장기간의 견지 속에서 조금씩 오늘에 이르러 전체 연주에 협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속인이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변화가 바로 수련 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발라지면 모든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악단은 어떤 항목들처럼 하루 종일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 시간 수련생들은 각자 연습하다가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에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퍼레이드에 참가합니다. 바로 함께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많은 집착이 즉각 폭로되지는 않지만, 종종 구체적인 일 속에서 돌연 나타나 우리의 심성을 시험하곤 합니다.
새로 호른을 배우러 온 그 여학생은 열의가 매우 높았습니다. 조원들은 아끼는 마음에서 앞다투어 그녀에게 연습용 호른 두 대를 빌려주었습니다. 처음에 다들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호른이 배우기 그리 어렵지 않으며 입 모양의 변화만 잘 파악하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본의 아니게 그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동안 학습한 후 진전이 뚜렷하지 않자 그녀는 악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원래 가서 음정이나 좀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이미 호른 두 대의 베어링 부분을 전부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순간 제 내면은 요동쳤습니다. 한편으로는 악기가 아까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한 원망심이 즉각 올라와 그녀가 너무나 제멋대로이고 철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정밀한 악기를 아무런 전문적 지도 없이 무단으로 분해하다니, 게다가 내가 30분 넘게 운전해서 오게 해놓고 악기가 ‘망가진’ 꼴을 보여주다니 말입니다.
여러 차례 ‘연구’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어 결국 전문 수리점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또 주저했습니다. 비록 겉으로 저는 여전히 ‘참고’ 있었지만, 그것은 화를 품은 참음이었습니다. 비록 과하게 질책하지는 않았으나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말투는 분명 경직되었고, 그 수련생의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이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저는 심지어 그녀를 추천한 S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다행히 S는 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수련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마세요.” 그 순간 저는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련을 겨냥한 한 차례의 고비가 아니겠습니까?
법리에 대조해 보니 저는 전혀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루빨리 악단 정법 항목에 가입하려는 그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 스스로 더듬어가며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악기를 아끼는 마음’, ‘번거롭다는 생각’,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등의 사람 마음에 끌려다녔던 것입니다. 진지하게 안으로 찾고 반복해서 반성한 후 제 마음가짐이 뚜렷하게 변했음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그 여학생은 수리 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가게를 찾았다고 말해주었는데, 수리를 했어도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제 마음속에는 이전의 원망이 없었고 그저 차분하게 그녀와 함께 해결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이어 저는 조의 다른 수련생에게 연락해 연습용 작은 호른 한 대를 그녀에게 빌려주었고, 동시에 그녀도 전문 선생님과 체계적인 학습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새로 전문 호른을 구매했으며 다시는 함부로 분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기뻐했으며, 수련 중에서 서로 성장하는 이 과정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경수심전(境隨心轉, 경지는 마음을 따라 변한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상은 마음으로 인해 생긴다)’의 내포를 다시 한번 깊이 체득하게 해주었습니다. 소위 ‘번거로움’이란 사실 모두 수련 중의 고비입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는 일이 계속해서 집착심을 자극하지만, 마음을 바로 돌리면 환경도 그에 따라 호전됩니다. 저는 마음 닦음이 착실하고 마음이 평온한 수련생들과 저 사이의 격차를 분명히 보았으며, 천국악단이라는 환경 속에서 함께 수련하고 함께 제고하는 기회와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이상은 그저 부족한 의견을 먼저 내놓아 좋은 의견을 끌어내는 것에 불과하며, 천국악단에서 심성을 수련한 저의 작은 체득을 나누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의 악단 수련 경험은 더욱 풍부하며 배울 점과 교류할 점이 더 많을 것입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천국악단 창단 20주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15/50636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2/15/50636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