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C 플랫폼은 우선 수련인의 플랫폼이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RTC 플랫폼은 대법제자가 중국에 진상을 알리는 항목이다. 이것은 많은 해외 대법제자가 알고 있고, 중공 악당도 다 알고 있다. 한동안 RTC 플랫폼의 분위기가 정상적이지 않았는데, 우선 당문화(黨文化)의 사상과 언행이 극히 심각했다. 협조인을 바꾼 후에도 개인 수련과 진상 알리기 측면에서 여전히 제고할 공간이 크며, 사람을 바꿨다고 해서 자신의 수련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항목 내 일부 수련자가 반영하기를, RTC 플랫폼의 어떤 조(組)는 듣기 좋은 말과 축복하는 말만 하라고 강조하고, 독한 맹세는 불길하다고 말하며 중생에게 탈퇴를 권한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사부님 설법과 큰 차이가 있지만, 본래 이것은 플랫폼에서 수련을 이야기하는 대법제자가 제고해야 할 점이다. 진수자(眞修者)는 사람을 구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이 쉽지 않으며, 작심삼일 식으로 대충 해서 완성될 수 없음을 다 안다. 진상 알리기가 급소를 찌르지 못하면 정말로 중국인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중공의 세뇌 내용을 씻어버리고, 중공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며, 진심으로 중공과 단절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알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구하는 이 긴요한 시점에 RTC 플랫폼(탈당센터 포함)은 또다시 격렬한 갈등을 일으켜 각국 수백 명의 대법제자에게 파급시켰다. 중공을 기쁘게 하는 이런 일은 누가 부추긴 것인가? 누가 늘 예리하게 수련인 속에서 심성 제고에 쓰이는 매번의 갈등을 포착해, 옆에서 부채질하고 갈등을 격화시키며, 그러고는 ‘사태가 커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구경꾼 심리)’ 식으로 옆에서 남몰래 득의양양해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훈계하시기를 갈등 앞에서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갈등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는 우리 수련자들(노수련자 포함)은 ‘명(名)’을 특별히 중요시하거나, ‘권(權)’을 특별히 중요시하거나,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옳음’을 특별히 중요시한다. 더 많은 사람이 사건 속에서 시비(是非)를 논하며 자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지 않는다. ‘이 갈등이 왜 나에게 닥쳤는가? 나의 어떤 측면을 제고해야 함을 반영하는가?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고 잘못 생각했는가? 사부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것은 나”라고 가르치셨는가?’

RTC는 우선 수련인의 플랫폼이다. 모두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하려 그곳에 간 것이니, 그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을 갈고닦고 자신의 진상 알리기 능력을 제고해야만 착실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문제에 부딪히면 당문화의 악(惡)과 투쟁(鬪), 현대 관념 중의 ‘정글의 법칙(약육강식)’을 꺼내는데, 그렇다면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자신의 결말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감히 사람 구하는 것을 논하고 무슨 ‘공(功)’과 ‘명(名)’을 구하겠는가?

설령 어떻게 착실히 수련하는지 모른다 해도, 좋은 사람이 되려면 중국 문화대혁명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 이롭고,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라고 했다. 수련의 이치는 속세와 반대다. 수련인이 모두 진수(眞修)하고 실수(實修)할 때, ‘시장(설 자리)’이 없는 도발자는 결국 두 가지 길밖에 남지 않는다. 대법에 동화되거나 아니면 멀리 도망치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의 주력은 중국에 있다. 오늘날 4억 5800만 명이 삼퇴를 성명했는데, 주로 묵묵히 중국에 있으면서 진상을 알리는 대법제자들이 해낸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해외 RTC 플랫폼 삼퇴팀의 몇백 명에 의지해 해낼 수 있겠는가? 분명히 해낼 수 없고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한 마음을 품고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 경지를 높여야만 서로 존중하고 분담해 협력할 수 있으며, 분수를 잊고 자아 팽창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해외 탈당센터는 전 세계 탈당 대국의 일부일 뿐 전 세계 탈당 운동을 대표할 수 없으며, 더욱이 탈당 운동의 공로를 독차지할 수 없다. 대법제자는 정치하지 않지만 우리는 중공의 사악함과 흉악함을 명백히 알려야만 중공에 옭아매인 세상 사람들이 ‘마귀의 입에서 벗어나게(魔口脫險)’ 할 수 있다. 이것은 천상(天象)에 협력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해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그 속에 참여할 수 있음은 우리가 대법제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영광이다. 하늘의 공을 탐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특권, 영웅, 공업(功業)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갈등 앞에서 오성(悟性)이 올라오지 못하고 개인의 눈앞의 이치만 고집하며, 출발점과 목적이 모두 자신이 맞고 남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이런 패턴이 초래한 교훈은 이미 너무 많고, 그르친 정사(正事)도 너무 많다. 이번에는 우리 더 많은 수련자가 법에서 제고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 중 두 단락의 법을 복습하며, 각자 자신을 대조해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자.

“心性(씬씽)이란 무엇인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 사람의 心性(씬씽)이 여러 방면에서 모두 제고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는데, 이는 공력(功力)이 제고되는 관건적인 원인 중 하나다.”

“이 우주 중에는 또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이 아주 큰 고통을 감당했기 때문에 당신 자신의 업력도 전화를 가져오게 된다. 당신이 대가를 치렀기 때문인데, 얼마만큼 크게 감당했으면 얼마만큼 크게 전화해 모두 德(더)로 변한다. 연공인(煉功人)은 바로 이 德(더)를 가지려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업력도 제거했으니 양득(兩得)이 아닌가. 만약 그가 당신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디에 가서 心性(씬씽)을 제고하겠는가? 너도 좋고 나도 좋아, 모두 화기애애하게 거기 앉아 있어도 공이 자라는, 그런 일이 어디 있는가? 바로 그가 당신에게 이런 모순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런 心性(씬씽)을 제고할 기회가 생겼으며, 당신은 그 가운데서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었는데, 당신의 이 心性(씬씽)이 곧 제고되어 올라오지 않았는가? 삼득(三得)이다. 당신은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어찌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으로 정말 그에게 톡톡히 감사드려야 하는데, 확실히 이렇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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