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 일을 하며 안으로 찾다

글/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반년 동안 수련과 항목에서 모두 병목 현상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전 1년은 우리 팀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당시 느낌은 모두의 마음이 한곳을 향해 있었고, 채팅방에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항목을 위해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을 얹듯 힘을 보탰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강도는 마치 다섯 손가락을 꽉 쥐고 내리치는 주먹의 힘처럼 매우 컸습니다. 작년 5월, 우리는 전통문화를 기초로 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권유 소재를 출시했고, 교육팀 수련생과 협력해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는데 이후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당시 팀 수련생들은 우리가 협력해 걸어온 과정을 언급하며 다들 이 환경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실망하게 한 것은 5월 교육 전후로 팀 내에 일부 갈등이 발생해 협력의 호흡이 예전만 못했고, 심지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갈등이 발생한 후 어떤 수련생은 소극적으로 변했고,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두 달 동안 채팅방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팀의 모든 수련생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한 사람의 힘만 빠져도 손실이 컸습니다. 이후 저는 수련생들 사이의 협력에 생긴 균열을 메우려 무척 노력했지만, 수련생의 반응이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원망심, 수련생을 무시하는 마음 등이 다 튀어나왔고, 속으로 ‘수련생들이 어쩌면 그렇게 좋았던 우리 환경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라며 질책했습니다.

표면상 저는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었고, 수련생 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다 항목을 잘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줄곧 밖을 보고 밖으로 추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 생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루는 수련생과 법공부를 하다가 다음 구절을 읽었습니다. “방금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비록 나의 사상이 그에 대해 말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분명히 알고 있지만 별 관심이 없다.”(각지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처음에는 이 단락이 구세력에 대해 말씀하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수련생과 교류한 후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과 갈등이 있을 때 입으로는 남이 틀렸다고 말하더라도, 사실 명백한 일면은 자신이 우주의 이치와 어긋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찾기’를 늘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하니 자신의 많은 문제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지만 별 관심이 없는’ 척 한 것입니다.

1. 자신의 편협함을 의식하다

돌이켜보면, 왜 수련생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늘 어긋나는 일이 생길까요? 수련생이 지적하기를, 제게는 한 가지 관념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제가 말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더라도 ‘출발점이 좋으면’ 으레 더 많은 포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늘 다른 사람의 문제가 큰 문제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게으른 표현입니다. 하물며 제가 수련생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실 고스란히 저에게 되돌려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에서 A 수련생의 인식은 저와 달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저와 깨달음이 다르기만 하면 A는 제게 ‘법으로 가늠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이 일에 대해 소통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수련생이 바로 저의 거울이었습니다. 저 역시 상대방이 반드시 제가 동의하는 구체적인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려 했으니, 이는 무의식중에 제 인식을 높게 놓은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모니불은 후세 사람들이 자기 인식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지 못하게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수련생이 저의 편협한 인식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사실 통제욕이 너무 강해 무의식중에 남의 길을 배치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사고방식이 너무 극단적이고 절대적이며 여지를 남길 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는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입니다.

이 일념을 내려놓았을 때 저는 발견했습니다. 모든 수련생은 사실 각자의 방식으로 안으로 찾으며 돌파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방식이 제 기대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우주는 그렇게 크고 법은 그렇게 큰데, 제 좁은 소견으로 어떻게 우주와 생명의 번영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2. 속인 관념을 깊이 파다

다른 한편으로, 제가 겉으로는 친한 수련생에게 할 말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게도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지 못해 협력상 많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깊이 파보면 마음 깊은 곳에 의존심과 자신감 부족이 있어, 수련생이 갈등 때문에 떠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제 수련이 아직 착실하지 못하다고 여겨, 수련생이 없으면 항목을 잘해낼 수 없다고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일념 때문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기점을 바르게 잡지 못하고 인정을 보호하느라 법을 수호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우리가 법 위에 있어야만 길을 바르게 걷고 오래 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관념 하나를 바꿔야 했는데, 수련생 사이의 많은 갈등은 제가 문제를 지적한 것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제가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 즉 말투와 선한 마음(善心)에 도리를 더하지 못했거나, 적절한 장소와 때를 찾지 못했거나, 혹은 너무 공을 서둘러 한 번에 끝내려 하면서 수련생에게 생각할 시간과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깊이 파보았습니다. 나는 왜 말투와 선한 마음에 도리를 더하지 못했는가? 제게 사심(私心)이 한 겹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미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너와 소통했는데 너는 왜 아직도 변하지 않느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 제 관념 속의 기준에 도달했으니 스스로 충분히 잘했다고 여겼고, 만약 순조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으레 다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한 탓이라 여겨 소통할 때 많은 원망 섞인 물질을 내보냈습니다.

자문해보건대, 비록 지나친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고 평등한 자세로 수련생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상대방도 제 공간장이 순수하지 않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럼 왜 자신을 낮추지 못했을까요? 저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명예욕을 찾았고, 제가 ‘자신을 너무 낮추면 무시당하고 내 말을 수련생이 더 듣지 않을 것’이라는 일념을 품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지를 선점하고 ‘권위’를 지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속인의 수단이자 우주가 괴멸(壞滅)하는 시기의 기준이며, 진정으로 신뢰를 쌓고 간격을 없애며 팀을 응집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원융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법뿐입니다.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고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이 말후(末後)의 멸(滅)에서 벗어나는 출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늘 자신을 일깨웁니다. 수련생과 소통할 때 진실하고 겸손해야 하며, 수련생이 저와 아무리 이견이 많더라도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저는 또 자문했습니다. ‘왜 수련생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늘 그렇게 급하게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는가?’ 할 일이 많고 압력이 클 때, 저는 은연중에 수련생과의 소통이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겨 즉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이 지적해주었습니다. “공을 서두르는 것 역시 당문화입니다.” 서두르는 원인을 더 깊이 파보니 결과를 추구하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즉 임무를 많이 완수하고 실적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국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남을 변화시키려는 집착은 강렬한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여러 번 일깨워준 덕분에 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소통할 때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전달한 것만으로 족하며, 나머지는 순리에 맡겨 상대방에게 완충하고 소화할 여지를 줘야 합니다. 이것 역시 선(善)의 체현입니다.

3. 수련생에 대한 정(情)의 집착을 찾다

여기까지 안으로 찾았지만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오랫동안 채팅방에서 발언하지 않던 B 수련생에게 물었습니다. “언제쯤 채팅방에서 말씀하실 건가요?” B는 대략 “채팅방에 정(情)의 물질이 좀 줄어들고 다들 좀 이성적일 때 다시 말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무시했습니다. 수련생이 밖으로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당시 수련생이 보낸 이 메시지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문했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기 싫어하는 게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내 집착이 건드려지는 게 싫은 건가?’ 그래서 억지로 수련생이 보낸 말을 반복해서 읽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이 찔린다는 건 제대로 찾았다는 뜻이다’라고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그 순간 정말 뿌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수련생에 대한 정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제가 수련생 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전체 협력을 위해서이고 사람을 구하는 힘을 더 크게 내기 위해서였지만, 저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사실 제가 반년 전 모두가 허물없이 지내던 융합된 관계에 매우 집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두의 사이가 좋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사심(私心)이고 사념(私念)입니다. 정이 아주 무거웠기에 수련생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쉽게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데 빠졌고, 다른 사람의 포용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말할 때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분별력이 부족해 결국 많은 일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했습니다.

지금 비록 군자의 사귐이 물과 같다는 경지를 완전히 해내지는 못하지만, 잡담을 줄이고 수련생과 가급적 채팅방에서 소통하며, 말할 때도 최대한 사람을 겨냥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아무리 친한 수련생이라도 존중을 유지하려 합니다.

4. 서서히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우리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변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팀 내 수련생의 성장 환경, 성격, 법에 대한 인식이 모두 매우 다르고 때로는 메우기 어려운 골짜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협조 업무를 맡았기에 모든 수련생과 더 많이 소통하게 되므로, 더 많이 포용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수련생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본 부분을 또 다른 수련생과 소통하며 서로 간의 이해를 촉진해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B 수련생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많은 말이 A 수련생에게도 적용된다고 느껴, A와 이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거의 같은 시간에, 오랫동안 채팅방에서 말하지 않던 B가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알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알겠다고 한 후부터 채팅방에서 발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수련생과 팀 내에서 예전에 발생한 갈등을 언급하자, B는 “양쪽 기슭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 가벼운 배 이미 첩첩산중을 지나고 있구나(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라는 구절을 보내왔습니다. A도 제게 “정말 내려놓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전 일이 계속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가 사실 제 자신이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일찍 내려놓았다면 많은 일이 진작 스쳐 지나가는 구름과 연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팀 내에서 우리의 협력과 사람을 구하는 데 영향 주는 모든 요소는 다 구세력의 배치입니다. 따라서 갈등을 만났을 때 우리가 정말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설령 수련생에게 어떤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많이 용서하고 이해하며 동시에 정념(正念)으로 수련생을 가지(加持)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때문에 수련생을 불신하고 선입견을 품는다면 구세력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사존(師尊)의 가지와 보살핌에 더없이 감사드리고, 팀 내 수련생들이 저를 포용하고 지지해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의 교류에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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