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얻고, 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기까지의 마음의 여정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7·20’ 이전부터 이미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왔으며, 올해 74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류 글을 쓰게 됐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버스에서 진상을 알리자 승객들이 모두 대법이 신기하다고 칭찬하다

2025년 9월 어느 날, 집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네 봉지 수확해 차를 타고 현(縣) 소재지로 가져갔습니다. 한 봉지는 현 구치소에서 진상을 알고 악을 징벌하고 선을 드높인 경찰에게 줬고, 한 봉지는 제가 대법 수련하는 것을 줄곧 지지해준 아들 가족에게 줬으며, 나머지 두 봉지는 사돈댁과 두 딸의 집에 나눠 줬습니다.

다음 날 돌아오는 버스 맞은편 좌석에 노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남편은 72세, 아내는 73세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제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 저는 74세라고 대답했습니다. 맞은편 노부부와 비교해 보면, 똑같이 자녀가 셋이고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나지 않는데, 외모와 신체 상태의 차이가 매우 커 그 노부부는 무척 늙어 보였습니다. 노부부는 “줄곧 노동일을 해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26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부부가 “젊을 때 돈도 못 벌고 늙어서 자식이 부양해주나요? 자식이 부양 안 해주면 어떻게 하세요? 땅은 얼마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3상(垧, 동북 지역의 토지 단위)의 땅이 있는데, 전부 아들에게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마을 큰 벽돌집에 사나요?”라고 질문해 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생겼습니다. 저는 제가 법을 얻고 수련한 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네 칸짜리 큰 벽돌집을 지으려고 돌이며 벽돌이며 기와까지 모두 준비해 뒀어요. 막 집을 지으려던 참에 제 두 눈에 병이 생겼고, 모든 저축을 다 써 버렸으며 여러 큰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두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때 아들이 ‘엄마, 죽지 마세요. 제가 문 열고 구들장을 봤을 때 엄마가 거기 앉아만 계시면 돼요. 아무 일도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더군요. 아들의 말이 저를 붙잡았고, 저는 자살하려던 생각을 내려놓았어요.”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저를 바라봤고, 앞 좌석과 뒷좌석 승객들이 모두 저에게 “눈은 어떻게 치료하셨어요?”라고 물어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 한 분이 제가 눈병으로 고생하고 돈이 없어 자살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저를 찾아왔어요. 그분은 신기한 책 한 권이 있다며, 그 책을 보고 연공까지 하면 눈이 나을 거라고 했어요. 한번 해 보라며, 나으면 돈 들여 치료할 필요도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 배웠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연공한 지 닷새 만에 제 눈이 나았지 뭐예요.”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 병을 치료하느라 집에는 더 이상 집을 지을 돈이 없었어요. 아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사돈 내외가 직접 우리집에 와서 살펴보니 작은 흙집 두 채뿐이었죠. 그분들이 ‘아들이 결혼하면 이 작은 흙집 두 채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집 지을 자격도 있고, 목재, 돌, 벽돌, 기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아들이 다 컸으니 스스로 지을 수 있고, 우리는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힘이 있으면 힘을 보태면 됩니다’라고 했어요. 결국 아들과 며느리가 결혼할 때 사돈댁에서는 예물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3상의 땅을 모두 아들에게 줬어요.”

이때 버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물었습니다. “어떤 것을 연마하시는 건가요?” 저는 “제가 수련하는 것은 파룬궁(法輪功)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버스에 탄 모든 사람이 감탄하며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칭찬했습니다.

대법을 배우자 기적이 나타나 황무지에서 초과 수확을 거두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제 두 눈이 나았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모두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병이나 재난이 없습니다.

마을의 당서기와 촌장이 모두 우리집에 와서 농사를 지어달라고 부탁하며 “수확이 나면 돈을 주고, 수확이 안 나면 주지 않아도 되며, 외상으로 농사를 지어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동의했습니다. 우리집 땅을 모두 합치면 7상입니다. 외상으로 지을 4상은 여러 해 동안 경작하지 않은 황무지로, 집에 기계와 농기구가 없어 소로 쟁기질을 해야 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들었습니다. 집에 돈도 넉넉하지 않아 콩 종자만 샀을 뿐, 화학비료나 제초제 같은 것은 사지 않았습니다.

콩 종자를 심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싹이 올라왔는데, 가지런히 돋아났고 풀 하나 없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콩이 자라는 동안 소로 제때에 3번 김을 맸을 뿐,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되자 우리집 콩 줄기는 제 엄지손가락보다도 굵게 자랐습니다. 추수할 때는 사람을 고용해 거두어들였고, 운반도 소달구지를 사용했습니다. 콩을 탈곡하고 나니 우리집 밭은 엄청난 초과 수확을 거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집에서 난 콩이 좋다며 종자로 팔아도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곡식이 높은 수확을 거두자 집에 단번에 여유가 생겨 기계화 농기구를 구입했고, 미리 남겨 둬야 할 돈도 모두 충분히 마련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집 일을 기뻐했고, 제가 파룬따파를 배우고 난 뒤 우리 온 가족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당시 마을에서 저를 포함해 모두 14명이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했으며, 모두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자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당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은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했고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대법을 모함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당시 저는 울면서 사부님께 맹세했습니다. “죽이든지 베든지 제자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수련을 견지할 것이며,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을 간부들이 와서 저를 설득했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을 간부가 “그냥 안 한다고 말만 하세요. 사람들이 가고 나서 몰래 수련하면 되잖아요”라고 하여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몰래 수련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진선인을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떳떳하게 수련할 겁니다.” 마을 간부는 몹시 화가 나서 “고집센 사람 같으니, 내가 할 말은 다 했는데도 여전히 못 알아들으니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대대 서기는 저를 강제로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소장은 제 뺨을 때리고 발로 찼으며, 손을 등 뒤로 돌려 위아래로 수갑을 채웠습니다. 제가 계속 수련한다고 하자 다시 저를 철제의자에 앉혀 수갑을 채웠습니다. 저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만약 제 눈병이 재발한다면 당신들은 치료비를 대줘야 합니다. 우리집 농사를 대신 지어주고 밭을 매어, 추수하여 곡식을 우리집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또 돼지, 소, 닭, 오리, 거위에게 먹이를 당신들이 맡아서 줘야 하고, 우리집의 모든 대소사를 전부 책임져야 합니다!” 소장은 “당신 신앙을 막겠다는 게 아닙니다. 내게 그런 큰 권한이 있겠어요? 능력이 있으면 장쩌민을 찾아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그럼 내일 바로 장쩌민을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소장은 철제의자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파출소장은 제가 정말로 장쩌민을 찾아갈까 봐 두려워 치안주임을 우리집에 앉혀 두고 밤 12시가 돼서야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가는 것을 보고 저는 곧바로 베이징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밤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북서풍이 불었으며, 눈이 쌓인 곳은 이미 제 허리까지 차올라 걷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다리를 들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깊이 빠졌습니다. 어느새 몇 시간이나 걸었고, 구르듯 기어가듯 하여 큰길에 다다랐습니다. 그때는 이미 새벽 5시였고, 시내로 가는 버스 한 대만 있어 그 버스에 올라탔는데 안에는 베이징으로 가는 수련생 몇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순조롭게 시내 기차역에 도착해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우리는 가는 내내 ‘보도(普度)’와 ‘제세(濟世)’ 대법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순풍에 돛 단 듯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베이징에서 반나절 동안 여관에 머물렀고, 여관 주인은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곧바로 베이징 천안문으로 향했습니다. 저 혼자 천안문 광장의 금수교(金水橋)에 막 도착했을 때, 근무 중이던 경찰이 저를 가로막고 “파룬따파가 좋습니까?”라고 물어, 저는 “당신이 보기에 파룬따파가 좋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경찰은 “이거 딱 보니 눈치 빠른 사람이네”라고 말하더니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검은색 경찰차 한 대가 오더니 저를 납치해 차에 태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6명이 함께 왔는데 그때는 흩어졌었습니다. 경찰이 저를 첸먼(前門) 파출소로 납치해 갔고 그곳에서 우리 6명은 다시 만났지만 모두 철창 안에 갇혔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어디서 왔습니까? 이름이 뭡니까? 천안문에는 왜 왔습니까?”라고 물어 저는 “장쩌민을 만나러 왔습니다. 장쩌민에게 직접 묻고 싶습니다. 파룬궁이 대체 어디가 사악하다는 겁니까? 당신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파룬궁을 수련해 본 적이 있나요? 책도 읽어보지 않았고 수련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사악하다고 하고 대법이 나쁘다고 하면 거짓말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경찰들은 모두 웃으며 “당신은 저 작은 방에서 우선 기다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우리 마을의 대대 서기와 현(縣) 정부 서기, 파출소 경찰이 와서 우리에게 수갑을 채우고, 몸에 있던 돈을 모두 수색해 빼앗은 뒤 그들을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저와 수련생 6명은 수갑으로 서로 연결된 채, 기차에서 객차를 하나하나 지나갔고 차 안의 승객들은 모두 “이게 무슨 일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침대칸을 찾은 뒤 대대 서기 3명은 우리 6명을 아래층 침대에 배치하더니 그들 셋은 위층 침대에서 식사를 시작했으며, 우리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들은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해 저는 대대 서기에게 1만3000위안을 갈취당했고, 진(鎭)의 사악한 당위원회 서기에게는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빼앗겼습니다. 이후 현 공안국으로 납치돼 저는 불법적으로 2년 강제노동을 당했고, 제 남편은 1년 6개월의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구치소에서 법을 실증하다

구치소로 납치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침 일찍 경찰이 저와 남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어 우리를 살인범들과 함께 길게 개조한 버스에 태워 거리를 돌아다니며 망신을 주는 조리돌림을 시켰는데,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겁주어 ‘전향’시키려고 했습니다.

차에는 경찰이 가득했고 중앙에는 큼지막한 표지판을 목에 건 살인범 3명이 서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 세 사람은 휘청거렸고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당신들 셋은 제 자리에 앉으세요.” 저를 감시하던 경찰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앉기 싫으면 같이 서 있으시오!” 저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곧바로 3명의 살인범에게 말했습니다. “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감시하던 경찰이 다시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하여 저는 그에게 “제가 누구를 죽였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건 아닙니다”라고 하여 저는 “그렇다면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상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버스가 멈추자 차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렸습니다. 저를 감시하던 경찰이 또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냥 차에 있으시오. 내려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 제가 “당신들은 목적을 달성했나요?”라고 묻자 경찰은 “차에서 내리고 싶습니까?”라고 물어, 저는 “당연히 내리고 싶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내려서 보니 거리 양쪽에 구경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고 도로에는 경찰이 가득했으며 중앙에는 사형수가 압송되고 있었습니다.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보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빙글빙글 돌면서 걸으며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 나의 인권을 돌려주십시오!” 막 세 번을 외쳤을 때, 경찰 무리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저를 붙잡고 목도리로 제 입을 틀어막은 뒤, 저를 버스로 끌고 가 바닥에 넘어뜨렸고 그 경찰들은 곧바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일어나 다시 버스 안에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한 경찰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어디인지 아세요? 그래도 외치십니까?” 저는 “천안문에서도 외쳤는데, 여기가 뭐가 더 대단해요?!”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버스 안의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밖에 있던 경찰들도 사형수를 더 이상 끌고 다니지 않고 모두 버스에 오르게 했습니다. 한 경찰이 “아주머니, 우주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말하여 저는 엄숙하게 “당신도, 나도, 그도 모두 우주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버스가 구치소로 돌아와 멈췄을 때 저는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습니다. 젊은 경찰이 “잊으셨습니까? 구치소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여 저는 “거리로 끌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아직 충분히 외치지 못했는데요!”라고 말하자, 그 경찰은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목적을 달성하셨고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어요. 아주머니는 층차가 높아졌고 원만해지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의 커다란 문에 들어서자 젊은 경찰이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외치면서 왜 구치소에서는 외치지 않습니까?” 저는 웃으며 “일깨워줘서 고마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구치소 안으로 가는 길에 세 번 더 외쳤고,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세 번 외쳤습니다. 안에 있던 경찰들이 모두 뛰어나와 무슨 일인지 물었고 제 뒤에 10여 명의 경찰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중 한 경찰이 말했습니다. “저분은 대법을 실증하러 가신 거예요. 대법이 좋다고 외치러 가신 거죠.” 구치소 경찰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선뜻 거리를 끌려다니는 데 따라가셨군요!” 주변 경찰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제가 있던 감방에는 수련생이 8명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준 음식은 얼어붙은 배춧국으로, 기름기도 없고 소금기조차 없었으며 옥수수 떡에는 모래까지 섞여 있어 도저히 삼키기 힘들었습니다. 한 범죄자 우두머리가 가족들이 우리에게 보내준 식권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매번 식사 때마다 그들은 우리의 식권으로 좋은 음식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한 선한 경찰이 그 범죄자 우두머리의 뺨을 두 차례 때리고는 식권을 모두 되찾아 우리에게 돌려줬습니다.

또 다른 범죄자 우두머리가 한 수련생의 식권을 빼앗아 밥도 주문해주지 않았고, 그 수련생을 묶어 놓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나쁜 사람들이 법도 두려워하지 않고 경찰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정말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그때 거대한 부처님 한 분이 갑자기 나타났고, 그 범죄자 우두머리는 크게 놀라 즉시 밧줄을 풀며 외쳤습니다. “정말로 부처님이 있군요! 큰 부처님! 안심하십시오. 앞으로는 반드시 당신의 제자들을 선하게 대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당신의 제자들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을 몇 배로 보상하고 속죄하겠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이후 저는 노동수용소로 보내졌고, 이전의 일들은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있어 매우 설득력이 있는 실제 이야기가 됐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제가 있던 방에는 수련생이 44명이 있었고 범죄자가 4~5명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범죄자들과 젊은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모두 분명히 이해했으며 더 이상 대법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우리는 단체 법공부를 해야 합니다. 범죄자들과 경찰도 이로부터 이로움을 얻게 될 겁니다.” 범죄자들과 경찰은 우리가 연공하는 모습을 보고도 반대하지 않았고 막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한 일을 하는 것이 불법입니까? 사람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는 것이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집에서 보내온 의류를 사심 없이, 차별 없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참된 선이 아닌가요?”

우리 4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단체로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자 환경이 열렸고, 계속해서 사람을 구하는 데 더욱 유리해졌습니다. 우리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믿게 됐고, 반대에서 지지로 바뀌었으며 마지막에는 모두 대법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경찰은 “저는 이 경찰 제복을 벗더라도 대법을 배우겠습니다!”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또 어떤 범죄자는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대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단체로 연공하고 있을 때 담당 대장이 와서 말했습니다. “소장과 과장이 모두 감시실에 있으니 들키지 않게 일단 연공을 멈추세요. 그들이 가면 다시 하세요.” 우리 6명의 수련생은 잠시 상의한 뒤 곧바로 감시실로 소장과 과장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고 소장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지금 선택할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즉시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법을 배우고 연공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수련할 환경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것을 막는 것은 신불(神佛)에 대한 가장 큰 불경으로 그 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장은 즉시 “연공하세요! 연공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 곧바로 대장에게 말했습니다. “소장님께서 우리가 연공하고 법공부하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는 줄곧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해 기간이 3개월 연장됐습니다. 만기 직전 며칠 동안 그들은 매일 저를 박해하며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혀 놓고 잠도 재우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너무 졸려 견딜 수 없어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한 과장이 강하게 뺨을 때려 저를 바닥에 쓰러뜨린 뒤 범죄자들에게 명령해 감시카메라가 없는 작은 방으로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들은 제 두 손을 각각 위아래 침대 난간에 수갑으로 채우고, 두 침대를 분리해 제 몸을 ‘대(大)’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발아래에 있던 두 개의 의자도 치워버렸습니다. 저는 즉시 공중에 매달린 상태가 됐고 온몸의 무게가 두 손목에 집중돼 곧 피가 흘렀습니다. 두 명의 악한 경찰 과장은 각각 전기봉으로 저를 감전시켰고 전기봉을 입안에 넣어 감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제 손은 완전히 감각을 잃었습니다. 악한 과장은 범죄자들에게 제 손을 잡아끌어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게 하고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악한 과장은 제 딸에게 전화해 만기 출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딸과 현의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 기구)’ 관계자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악한 과장은 답안지 한 장을 가져와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악한 과장은 “서명하고 지장 찍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습니다. 현의 610 관계자가 와서 제 답안지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저를 태워다 준 현의 610 관계자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다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31/5055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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