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투심과 원망심의 뿌리를 제거하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오늘 아침 가부좌를 하면서 어젯밤 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마을의 얼라오후(二老虎)라는 사람이 산비탈에서 우리집 콩 타작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옥수수밭 가장자리 아래쪽에 도랑이 있었고, 옥수수밭 가장자리와 도랑이 연결된 매우 가파른 경사지에 콩이 깔려 있었습니다. 저와 아들은 한쪽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는데, 아들은 11~12세 정도의 아이였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얼라오후가 콩대를 뒤집으면서 일부 콩알들이 도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까워서 급히 일어나 콩대를 뒤집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 꿈은 무슨 의미일까요? 콩(豆, dòu)와 싸움(鬪, dòu)이 같은 발음이니 쟁투심(爭鬪心)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얼라오후(호랑이)가 콩을 타작한다(때리다)는 것은 이 쟁투심이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누구와 다툰 것일까요?

어젯밤이 떠올랐습니다. 여동생 부부가 우리집에 손녀를 보러 왔습니다. 손녀가 막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며느리가 집에서 300~400리 떨어진 사립 중학교를 선택해 보냈습니다. 손녀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하루 이틀만 지나면 견디지 못하고 전화를 해서 데려오는 식을 반복하다보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손녀를 외지 학교에 보낸 후 며느리는 베이징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제부가 말했습니다. “베이징은 돈을 많이 벌지만 지출도 많고, 운전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으니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아요?”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내를 말릴 수 없어요. 장모님도 아내를 말리지 못하고요.” 제가 말을 이었습니다. “다 사돈댁이 가라고 한 거야. 계속 전화를 하니까(사돈댁은 베이징에서 일하고 있음).” 이런 말은 아들에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사람이 둘 더 있으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원망 섞인 말을 했습니다.

며느리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그녀가 결정한 일은 다른 사람이 바꿀 수 없습니다.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본인은 외지로 일하러 가서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후로 저는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았고, 아들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멀고 추운 곳에서 손녀가 얼마나 고생할까. 동네에 돈 안 드는 학교 놔두고, 꼭 저기 가서 그 많은 돈을 써야 하나! 한 학기에 1만 위안(약 200만 원)씩이나. 2주에 한 번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고, 겨울에 눈이 오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다시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손녀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제 오후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어제 창밖을 보니 강풍에 눈발이 휘날리며 온통 하얗게 뒤덮였고, 눈이 매우 많이 왔습니다.

제 마음속에 며느리에 대한 불평이 또 일어났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먼 곳 학교에 보내놓고 본인은 신나겠지? 네가 가고 나면 우리 아들이 데려다줘야 하잖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어떻게 가? 하늘도 눈을 내려 가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가면 안 되는 거 아냐?’ 마음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마치 며느리가 우리에게 큰 어려움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일련의 불평들, 쟁투심이 얼마나 강한지, 그것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선명하고 이상한 꿈이 아니었다면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쟁투심을 품고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깨닫지 못하다니, 이 쟁투심과 원망심을 언제까지 간직할 것입니까? 사부님께서 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이 꿈으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꿈에서 저는 아이와 앉아서 과일을 먹고 다른 사람이 일하게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제가 자손들이 편안하고 안일하기를 바라고, 자손들이 고생할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또 안전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 또한 안일한 마음이 매우 심해서 고생하고 고된 일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어디에 우연한 일이 있겠습니까? 요 며칠 저는 모두 제 자신의 바르지 못한 사람의 마음(人心)과 사람의 생각(人念)이 불러온 것임을 찾았습니다. 교통비 쓰는 것을 두려워하자 요 며칠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가 사흘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데려오면서 왔다 갔다 교통비를 쓰면서 이익심을 닦았습니다. 아이가 아플까 두려워했더니 이번에는 병이 나서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며느리는 이틀이 멀다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약을 받아와서 하루 먹어보고 소용이 없으면 다시 의사를 바꿨습니다. 어느 의사가 봐도 위염이었고, 나중에 천천히 조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며느리는 기다릴 수 없어서 떠났습니다.

저는 원래 손녀와 아들에 대한 정(情)이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췌한 손녀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매우 조급했습니다. 손녀에게 학교 가기 싫은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자유가 없고 즐겁지 않다고 했습니다. “가기 싫으면 전학 와서 다니자”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동의하지 않고 매일 전화로 아이에게 학교 가라고 설득했습니다.

손녀는 스트레스로 온종일 얼굴을 찡그리고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 엄마가 전화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손녀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말했습니다. “가기 싫으면 집에 있어. 그들이 널 돌봐주지 않으면 할머니가 돌봐줄게.”

원래는 매일 숙제를 좀 쓰게 하려고 했지만 안 되겠다 싶어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숙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휴대폰 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음 편하게 가지고, 몸이 좋아지면 공부할지 말지 생각하자. 하고 싶으면 가고 하기 싫으면 안 가도 돼. 할머니가 돌봐줄게.”

밥 먹을 때는 손녀에게 대법제자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신(韓信)이 가랑이 밑을 기어 치욕을 당했지만 후에 대장군이 된 이야기를 하며, 《보도(普度)》·《제세(濟世)》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저는 명리심도 찾아냈습니다. 손녀가 학교에서 첫 달 월말고사에서 학년 4등을 했습니다. 학교 규정상 기말고사 상위 20명은 학비가 전액 면제됩니다. 원래 학비 면제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포기했습니다. 손녀가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성적이 좋든 나쁘든, 돈을 얼마를 쓰든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평안하고 건강한 것이 바로 복입니다. 게다가 손녀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손녀의 운명이고 제가 좌우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데 제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저는 전부 내려놓았습니다.

손녀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엄마가 전화를 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휴대폰에 선생님이 남긴 숙제를 아빠가 복사점에 가서 인쇄해 오면 스스로 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쓸 줄 알아? 모르면 할머니한테 물어봐.” 손녀가 말했습니다. “알아요.”

가부좌 중에 저는 계속 자신의 문제를 찾았고, 포륜(抱輪) 동작을 할 때도 찾았습니다. 찾고 또 찾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인류 사회는 하나의 큰 무대이고, 대본은 이미 있으며, 신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역할을 안배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모두 업력윤보(業力輪報) 속에서 업을 갚는 것입니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이미 오래전에 우리에게 알려주셨지만 저는 구체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정에 이끌리고 인간 세상 속에 빠져, 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것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딸의 학교를 안배할 수 있습니까? 엄마가 딸의 직장을 안배할 수 있습니까? 모두 그녀의 운명에 정해진 것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을 좌우하려 하고,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고, 다른 사람을 안배하려 하는데,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모두 당문화(黨文化)의 것이고,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고집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까?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는데, 정말 부끄럽습니다!

누가 나의 손녀이고, 누가 나의 아들이고, 누가 나의 며느리입니까. 각자는 모두 개체 생명이고, 모두 각자의 천국 중생을 대표하여 세상에 내려와 사부님과 인연을 맺고, 대법을 수련하며,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생하고 업을 소멸하며 단련받는 것은 생명이 돌아가는 길을 닦는 것이니 모두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이 큰 무대에서 한 가정 구성원의 역할을 연기하며, 서로 업력윤보 속에서 업을 갚는 것입니다. 큰 연극이 끝나면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며느리에 대한 불평, 원망, 쟁투심, 그리고 사돈댁에 대한 질투심이 모두 풀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간의 환상에 미혹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도 함부로 망념(妄念)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안배가 있으니, 오직 자신을 착실히 수련할 뿐입니다.

오늘 아들이 손녀를 데려다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아주 잘하네. 또 북을 칠 거니?”(역주: 중국어로 북을 치는 건 중도에 포기하겠다는 의미) 손녀가 “안 그럴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그럼 그 북은 잘 숨겨두자”라고 말하자, 제가 “네 아빠더러 북을 짊어지고 가라고 하려무나”라고 거들었습니다. 아들이 “제가 끌고 갈게요”라고 답해 모두가 즐겁게 웃었습니다. 저도 더 이상 길이 좋은지 나쁜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집착심을 내려놓으니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림)이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저의 최근 수련 체험입니다. 층차에 한계가 있어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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