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망 교류 문장을 들을 때,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고 필사하는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원래 나는 대법서적이 이렇게 두꺼운 것을 보고 어렵다는 마음에 겁이 났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귀중함을 알고 있었고, 수련생들은 모두 법을 외우고 있었다. 사부님 설법에서 창춘(長春) 제자들이 법을 외운다는 것을 언급하셨는데,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외우지 않고, 외우기 쉬운 경문과 ‘홍음(洪吟)’을 외우는 것을 선택했다.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듣고 나는 자신이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가로막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법이 길을 인도해야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보배로운 책 ‘전법륜’을 받쳐 들고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외우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고, 외운 것을 다음 날이면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다음을 외웠다. 이렇게 9개월에 ‘전법륜’을 한 번 외웠다. 두 번 통독한 후, 나는 또 외우고 싶었다. 왜냐하면 법을 외우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고,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으며, 또한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법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법을 외웠고 두 번째는 좀 빨랐다. ‘전법륜’을 여섯 번째 외울 때는 3개월이 걸렸으며, 예전에 나타났던 조급함, 조금 외우면 마치 그릇이 꽉 찬 것 같은 상태가 모두 사라졌고, 또한 시간이 조금만 있어도 법을 외우고 싶어졌다. 올해 나는 ‘전법륜’을 여덟 번째 외우기 시작했다.
매일 명혜망에 접속하여 수련생들이 법을 필사하는 체험을 교류하는 것을 보고, 나도 펜을 들어 법을 필사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매일 ‘전법륜’ 1~2페이지를 외우고, 또 ‘전법륜’ 두 페이지를 필사한다. 현재 ‘전법륜’을 한 번 필사했다. 막 법을 필사하기 시작했을 때, 손으로는 쓰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각종 잡념들이 뒤섞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니며, 나는 법을 필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깨끗이 제거하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법을 필사했고, 이렇게 점차 법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었다.
끊임없이 법을 필사하면서, 때로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홍음 6’을 외우고, ‘정진요지(精進要旨)’를 배우자, 사부님께서 나의 지혜를 열어주셔서 내 마음은 점점 더 맑고 밝아졌다. 비록 법을 외우는 진도는 느려졌지만, 지금은 읽은 법의 표면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이 소제목을 읽고 외운 후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 반복해서 통독할 때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법의 구절이 마치 무언가로 가려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막는 것이 없어졌다.
때로 책 속의 글자가 푸른 빛을 발하는데,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안다. 대법은 나의 심신을 모두 변화시키고 있으며, 게다가 이 과정에서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게 됐다. 위대한 법이 끊임없이 나를 씻어주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나를 일깨워주시며, 나를 인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게 하신다. 제자는 사부님께 절을 올려 감사드립니다!
아래에 나는 최근 몇 년간 갈등 속에서 안으로 자신을 찾은 몇 가지 일을 써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안으로 찾으니 가정환경이 화목해졌다
수련 전, 나는 급한 성격에 성질이 포악했고, 집안사람들이 모두 내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그 사람과 다투고 분개했으며, 남편의 언행이 내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와 대립하고 화내며 다투었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폭풍우처럼 야단을 쳤고, 스스로 지쳐야 겨우 그쳤다. 그때 나는 이치가 있으면 남을 용서하지 않았고, 이치가 없어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수련 후, 파룬따파는 나를 완전히 환골탈태하게 했다. 대법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알게 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 도덕 수준을 제고하여 진(眞)·선(善)·인(忍)에 따라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사심 없는 사람으로 수련하여 반본귀진(返本歸眞)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내가 이렇게 비할 바 없이 귀중한 대법을 얻게 되니 기쁜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는 마음속 깊이 환호했다. ‘드디어 찾았다!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다!’ 대법을 배운 후, 나는 “真(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전법륜)라는 것을 이해했다. 대법의 지도가 있으니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반드시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예전의 그런 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늘 남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정말 괴롭고 힘들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내 내면의 변화로 집안 식구들도 웃음과 소통이 많아졌고, 나도 홀가분하고 즐거워졌다.
2012년 여름 어느 저녁, 저녁 식사 후 남편은 또 택시 운전을 하러 갔다. 나와 수련생이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수련생은 우리집 차가 길가에 주차된 것을 보고 내 남편에게 인사를 했고, 나도 한마디 거들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남편 차 안에 여자가 앉아 있던데, 누구예요?” 나는 “난 못 봤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지?’ 하면서 온갖 상상을 했다.
다음 날, 수련생이 나를 보고 물었다. “그 여자가 누군지 물어봤어요?” 내가 말했다.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요.” 수련생이 약간 나무라듯 말했다. “아이고! 왜 안 물어봐요? 내가 보기엔….” 이때 나는 마음이 좀 불편했고, 저녁에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수련인임을 상기시켰고, 예전처럼 무리하게 따지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어젯밤 길가에서 당신을 봤는데, 차 안에 앉아 있던 여자는 누구예요?” 그는 내게 말했다. “동료 기사인데, 손님을 잠시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음” 하고 대답했다. 나중에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잘 파악하지 못했고, 여전히 남을 간섭하려고 했구나.’ 사부님께서 나를 제고시키려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지 찾을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남편과 다투고 싸웠을 것이고 집안이 평온하지 못했을 것이며, 심지어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한참이 지난 후, 우리집에 자주 와서 법공부 하는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샤오징(가명)이 동수님 남편분 차를 자주 타요.” 우리 지역이 작아서 대부분 사람이 서로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말했다. “택시는 누구나 타잖아요.”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자신이 수련인임을 떠올리며 나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나갔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묻지 않으려 했다. 며칠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샤오징의 형부가 나한테 ‘제 아내와 샤오징은 당신 차만 타니까 안심이 돼요’라고 말하더라고.” 나는 듣고 나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몰랐다. 왜 수련생이 나에게 이 말을 했을까? 그때는 수련생의 어떤 마음을 없애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을 외운 후 어느 날, 갑자기 또 지난 일이 떠올랐고,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깨우쳐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안으로 찾아서 의심(수련 전에는 남편을 자주 의심했는데, 수련 후에 이 마음이 점점 옅어졌다), 질투심, 우려심, 원망심을 발견했다. 이제 나는 이런 더러운 부패물질들을 철저히 제거하려 한다.
나중에 나는 스스로 명혜망에 접속해서 명혜 라디오를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됐고, 일을 하거나 식사할 때 수련생들의 교류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큰 도움이 됐다. 점차 갈등에 부딪힐 때 내게 어떤 좋지 않은 마음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사실대로 논하면서 사람의 관념과 인정(人情)에 주도됐고, 법에서 문제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외손녀가 학교에서 돌아와 밥을 먹으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할아버지와 말다툼을 시작했다. 서로 목소리가 커지더니 점점 더 격렬해졌고, 화가 난 남편이 빗자루를 들어 아이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제지하려 나섰고 이것으로 더 혼란스러워졌다. 외손녀는 울며 소리 질렀고 나와 남편도 고함을 쳤다. 나는 외손녀가 어른을 충분히 존경하지 않고 억지를 쓴다고 원망했고, 남편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원망했다.
사실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가 사리를 모르는 부분을 보면 적시에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종종 격렬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한번은 외손녀를 손으로 때리기까지 했고 나중에 심성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항상 아이가 내 말을 듣기를 바랐는데, 아이가 듣지 않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면 딸을 찾아가 훈계하게 했다. 나는 항상 남을 좌지우지하려 했고, 내가 어른이니 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음,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의 ‘통제(控)’가 매우 심했고, 체면, 허영심, 남을 깔보는 마음, 분노, 억울함이 모두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을 들여다봤고,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겹 한 겹 벗겨냈다. 매번 인식할 때마다 많은 나쁜 것들을 없앤 느낌이었고, 때로는 감정을 조절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잘 대처하지 못했다. 나중에 깨달았다. ‘그들 조손의 다툼이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바로 거울이었고, 내 안의 좋지 않은 것들을 낱낱이 드러내 보인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 내가 잘못했음을 인정했다. 나에게는 많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관념, 사람의 정이 있었고,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바꾸지 못했으며, 수천 년 동안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었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데, 어찌 아직도 남을 바꾸려 하는가? 이런 좋지 않은 마음들을 찾아내어 정념(正念)을 발해 그것들을 소멸시켰다. 사부님께서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을 제거해주셨다. 내 마음속에 막혀 있던 것들이 사라졌으며 나는 가벼워졌다. 나는 외손녀에게 직접 사과했다. “외할머니가 잘못했어.”
2) 법을 외우고 필사한 후 자식 정을 담담히 여기다
딸은 매우 효도했고, 대법을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딸은 어릴 때부터 내가 법을 얻은 후의 심신 변화를 지켜봤다. 몸에 있던 10여 가지 병이 모두 나았고, 건강해지고, 밝고 즐거워졌다. 딸은 내 수련을 지지했다.
딸은 매일 일을 하면서 가정, 아이, 친척 등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몇 년 전까지 딸은 매일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법리에 대한 내 인식을 듣기 좋아했다. 함께 있을 기회가 있을 때면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때로는 명혜망의 대법제자 교류 문장에서 수련생들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말해주며,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일러주었다.
딸은 대법의 은혜를 받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기업에서 일했고, 상사와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그들과의 관계도 매우 화목했고, 급여 대우도 부러움을 샀다. 나는 비록 20여 년을 수련했지만, 딸이 바쁘게 일하다 지쳐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때때로 몰래 눈물을 흘렸다. 법을 얻기 전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며 허덕이던 그 고통을 난 알고 있었고, 몸을 혹사시켜 온갖 질병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룬따파가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딸도 대법 속에서 수련하기를, 딸도 대법의 은혜를 받는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법을 외우고, 특히 올해 법을 필사하면서, 법의 요구에 따라 점차 딸에 대한 정을 담담히 보게 됐다. 며칠 동안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것을 보지 못해도 예전처럼 마음이 동요되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 바쁜 고단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딸을 생각해서 딸에게 번거로움을 주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딸을 얽매지 않으니 딸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외우면서 나는 깨달았다. 딸의 일생에서 고생을 해야 할지 복을 누려야 할지는 딸의 업력이 조성하는 것이며, 고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딸은 업을 갚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 신께서 관리하시며, 대법제자의 가족은 모두 사부님께서 관리하시는데,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이다.
지난 주말 어느 날, 딸이 차를 몰고 와서 날 집으로 데려가 집안 청소를 같이 했다. 평소에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기에 이렇게 시간이 있을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중에 딸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고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딸이 말했다. “남편이 자주 날 책망해요.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집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그에게 관심과 배려가 적다는 등, 나는 어떤 남편을 찾아야 하고, 그는 어떤 아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해요.” 나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 “그것은 현대인의 추구야. 사람의 일생은 신께서 안배하신 것이고, 부부는 인연으로 정해진 것이라 사람이 무언가를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어. 억지로 그렇게 하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나쁜 일을 하는 거야.”
딸이 말했다. “저도 저 자신을 돌아봤는데 역시 잘 못하고 있어요.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찾아달라고 하는데, 제가 바쁠 때는 좋은 태도로 대하지 못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방 정리할 시간도 없이 출근하고, 그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어요. 앞으로는 조정해야겠어요. 그를 원망하면 안 돼요. 그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따뜻함과 보살핌이 필요해요.” 나는 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뻤다. 딸도 자신을 돌아보고 있구나. 나는 말했다. “너는 수련하고 있는 거야, 연마를 받고 있는 거지.” 딸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화가 나지 않아요. 엄마에게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할 거고, 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비웃을지도 몰라요.” 나는 딸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되지 못했을 거야. 어떻게 이런 사람의 도리를 알았겠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을 거야.”
딸이 내게 말했다. 사위가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 모두 자기 장모가 이렇게 저렇게 안 좋고, 이것저것 간섭하며 무슨 일이든 참견한다는데, 사위만은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장모님은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으셔서 우리 부부는 정말 마음이 편해요.”
원문발표: 2026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5/505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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