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는 길 위에서 일어난 사소한 모든 일은 모든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큰 흐름 속 작은 물방울과 같아서, 비록 평범하고 특별할 것은 없지만 맑고 투명합니다. 제자는 스물두 번째 명혜망 중국법회를 맞이하여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두 손으로 받들어 원고를 바칩니다!
제가 걸어온 스물여섯 해의 길고도 짧은 정법 수련의 길을 고요한 마음으로 정리해 봤는데, 그 장면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여전히 선명합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던 초기, 몸무게가 50kg도 되지 않은 마른 제가 체중을 초과하는 진상 자료를 자전거에 싣고 시골길을 가로질러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오르막길이 나올 때마다 사람과 자전거가 뒤에 실린 무게로 인해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자전거의 핸들을 힘껏 잡고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간청드렸으며, 매번 진상 자료를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깊은 밤, 저는 수련생과 협력해 중생의 집 문 앞에 자주 진상 자료를 전달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희미한 달빛 아래 한 골목으로 막 들어섰을 때, 두 마리의 검은색 티베트 마스티프가 반쯤 열린 집 문 안에서 저를 향해 빠르게 달려 나왔습니다. 저의 생각은 마치 억제된 듯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손에 든 자료를 들어 올리며 가볍게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두 마리의 개는 제 말을 잘 듣고 돌아갔으며 짖는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섭지 않았지만 골목을 나선 후에는 극도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제가 수련생과 합류했을 때도 온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습니다. 수련생은 식은땀이 나고 차가워진 제 손을 비비며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우리에게는 늘 사부님이 계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임신 6개월이 넘은 저를 데리고 어떤 국도변의 나무에 진상 현수막을 걸러 갔습니다. 멀리서 경광등을 켜고 달려오는 경찰차가 보이자, 우리는 빠르게 길가 도랑으로 내려갔습니다. 수련생이 저의 몸 어느 한 부분이라도 노출될까 두려워 제 몸 위로 엎드렸습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온 후, 우리는 서로 보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습니다. 수련생은 “내가 정말 바보였어요, 그때는 당신이 배가 부르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그때는 그저 어떻게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내가 발각되면 당신도 발각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계속 웃으며 눈물을 닦았고 그 수련생의 순금같이 정결한 이타심을 봤습니다.
파룬궁 박해의 주범인 장쩌민을 고소할 때 협조인 수련생은 일이 많아 매우 바빴습니다. 중학교 학력만 가진 제가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주변 수련생들이 작성한 ‘장쩌민 고소장’을 명혜망의 양식에 따라 하나하나 정리하고 출력했습니다. 저희는 몇 차례 교류하고 서로 협력해 ‘장쩌민 고소장’을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순조롭게 발송하고 접수 확인을 받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정체(整體)적으로 협력하고 제고하며 강대한 정념을 발해, 저희 지역에서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수련생 중에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수련생이 납치돼 박해를 받을 때, 근거리에서 정념을 발하기 위해 협조인 수련생은 변호사를 통해 판사와 협의해 가족 자격으로 방청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변호사가 구치소에 들어가 판사와 협의하는 동안, 저희 여섯 수련생은 박해받는 수련생의 여든 살 부모님을 부축하고 경비실에서 저희 신분증을 제시해 실명 등록을 했습니다. 저희는 정념을 발하면서 당당하게 구치소로 걸어 들어갔고, 어느 동에서 재판이 열리는지 알아냈으며, 기적적으로 아래층에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전자 문을 통과해 홀에 앉아서 순조롭게 정념을 발했습니다.
약 20분 후, 지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큰 소리로 “누가 당신들을 들어오게 했어?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저희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는 문 쪽을 향해 “누가 이들을 들어오게 했지?”라고 소리쳤습니다. 경비가 달려 들어오자 그 간부처럼 보이는 사람은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경비원은 놀라면서 저희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저희를 밖으로 내쫓았고, 저희는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 앞에서 경비원은 계속해서 욕을 퍼부었습니다. 제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가 경비원 앞에 서서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먼저 화를 푸세요. 누가 이런 일을 겪으면 걱정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저의 친척은 좋은 사람이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분 부모님을 한번 보세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원은 욕설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더니 아래층 그늘진 곳으로 걸어가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사악이 미쳐 날뛰던 시기, 탐스러운 ‘작은 꽃’(가정 자료점)들이 거센 바람과 폭우 속에서도 끈질기게 피어났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도 이 만발한 꽃밭의 한 송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컴퓨터 기초가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으며, 마치 제가 정말 ‘0’ 안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어디서부터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몰랐습니다.
기술 수련생이 박해로 유랑생활을 하게 돼, 아주 오랜만에 한 번씩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기술 수련생은 컴퓨터의 기초 조작, 마우스 사용법, 키보드의 각 키 이름과 용도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수련생은 설명하면서 조작했으며, 떠나기 전에 많이 연습하라고 계속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수련생이 떠난 후 제 머리는 텅 비어서 수련생이 가르쳐 준 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만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매일 밤, 저는 컴퓨터를 안고 걱정했습니다.
어느 날 출근했을 때 공장장이 우리 공장에 와서 일하는 타지의 젊은이를 꾸짖는 것을 봤습니다. 공장장은 만약 그가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러 나가서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안전 문제 때문에 기계를 작동할 수 없게 되므로 출근시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컴퓨터를 할 줄 안다는 것을 듣고 기회를 봐서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너 게임 하는 거 좋아하던데 누가 네게 컴퓨터 가르쳐 줬니?”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컴퓨터는 배울 필요가 없어요. 그냥 마우스를 잡고 클릭하세요. 망가지지 않아요. 컴퓨터를 망가뜨릴 때쯤이면 아주머니는 컴퓨터 고수가 되어 있을 거예요.”
저는 그 젊은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저는 컴퓨터에서 클릭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번씩 계속 클릭해 봤습니다. 점차 저는 컴퓨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마우스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마침내 ‘0’에서 벗어났습니다.
작은 꽃이 성장하는 초기에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천지행(天地行) 기술 포럼의 수련생이 자세한 기술 지원을 제공했지만, 제가 컴퓨터 지식이 너무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전문용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어는 알파벳만 알 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습서를 보면서 대충 따라 하거나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거나 심지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몇 번째 키를 누른 후,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다시 몇 번째 키를 누른다”는 이 말이 제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격려했습니다. 그것은 해외 수련생의 교류 내용이었는데, 해외에서 한 항목이 조직된 초기 단계에 기술 인력이 부족해, 많은 노년 자원봉사 수련생이 기술을 모르고 영어를 몰랐기에 벽에 크고 작은 쪽지를 가득 붙여놓고서 이 쪽지의 도움말을 보며 방송 장비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술 수련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수련생들은 함께 컴퓨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설치와 기본적인 유지 보수 등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함께 학습한 나이 많은 여성 수련생은 3년 학교에 다녔는데, 그것도 ‘문화대혁명’ 시대여서 한어 병음도 거의 잊었고 영어는 더욱 몰랐습니다. 우리가 함께 학습할 때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바꿔가며 교류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 수련생이 ‘N’(엔)을 입력한 후 ‘엔터’를 누르라고 하면, 그 여성 수련생이 조작할 때는 ‘n’(느어)를 입력한 후 ‘엔터’를 누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 수련생이 읽는 알파벳은 모두 한어 병음식이었기에, 우리는 머릿속에서 재빨리 영어로 변환한 후 키를 눌러야 했습니다.
바로 이 한어 병음을 읽는 여성 수련생은 자신의 지역에서 인터넷 접속 및 다운로드, 자료 인쇄, CD 복사 등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 설치, 컴퓨터 및 프린터의 기본 유지 보수까지 배웠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전염병 봉쇄 기간 동안, 아래층 확성기에서는 매일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사람들은 감히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남들과 대화할 용기도 없었으며, 중생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 “대법도(大法徒)는 중생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이네”(홍음3-유일한 희망)를 외우며 날마다 두려운 마음과 맞섰습니다. 전염병 발생 1년 전, 중공 악당이 우리 시에서 회의를 개최했을 때, 일주일 동안 제가 24시간 감시를 받았고, 매일 밤 우리집 건물 입구를 차량이 막고 있었습니다. 전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이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여섯 동만 있는 아파트 단지에 무려 13개의 감시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문은 봉쇄됐고 경비가 삼엄해 외부인이 들어오기가 어려운데, 이때 진상자료를 배포한다면 내가 했다는 것을 모두 다 알게 되지 않을까?’ 저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해, 마침내 법 중에서 생겨난 정념으로 두려운 마음을 이겨냈고, 중생들이 갈망하는 복음을 중생들의 집 문 앞에 전달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봉쇄하더라도 수련생들은 지혜롭게 사부님의 경문을 전달하고 교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냉담한 모습에서 활발하고 개방적인 사람으로 변했고, 소심하고 나약했던 모습에서 용감하게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성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일반인이 보기에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있기 때문이며, 저희는 대법으로 조성된 생명이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대법도이기 때문입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5/50232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5/50232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