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여러분과 지난 1년간의 수련 체험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사부님께서 2024년 6월에 경문 《법난(法難)》과 《각성하라(驚醒)》를 발표하신 후로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수련 상태를 되돌아보았고, 예전에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와 집착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 글을 써서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1. 깊이 숨어있던 집착을 찾아내다
제가 일하는 직장에는 A, B 두 사장님이 있고 직원은 저 혼자입니다. A는 전문 업무를 담당하고 B는 일상 관리를 담당합니다. 저와 A는 모두 고객 응대를 담당하며 똑같이 수수료를 받습니다. 평소 저와 A는 서로 도우며 때로는 큰일을 맡으면 함께 일하고 수수료를 반씩 나눠 비교적 화목하게 지내왔습니다.
2024년 초, 저는 총금액이 2만 5천 위안인 큰일을 하나 맡게 됐습니다. 계약을 성사시킨 후 사장님들이 모두 매우 기뻐하자 저는 A에게 “우리 둘이 함께 일하고 수수료를 반반씩 나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A에게 이 말을 두 번이나 정중히 했는데, A는 매번 “필요 없어요”라며 “내가 당신을 도울 테니 품질만 보장하고 고객에게 잘 마무리해주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A가 이번에 저와 수수료를 나누지 않으려는 것이 설날에 제가 그를 도와 2천 위안짜리 일을 공짜로 해주고 그의 수수료를 받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정상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며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 일은 수익은 높았지만 공사량도 많고 소요 시간도 길었습니다. 저는 A가 수수료를 원하지 않으니 주된 일은 제가 해야 하고 작은 부분만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사장님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보조원을 고용하지 않아서 평소 우리가 서로 보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첫 번째 고객 결제 때(단계별 지불) 1만 위안을 받았는데, 모두 제 이름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저는 고객이 잔금을 지불할 때 남은 1만 5천 위안 중에서 A에게 5천 위안을 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일했든 상관없이 어쨌든 저를 도와주었으니 수련인으로서 저는 그에게 보수를 줘야 하며 공짜로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 마음속 생각일 뿐 말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략 5월 급여를 지급할 때였습니다. 그날 제가 막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돌아왔을 때 A는 일이 있어서 없었고 B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남은 1만 5천 위안을 미리 직장의 5월 성과에 넣어 계산하기 편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B는 또 “이 1만 5천 위안을 당신과 A가 나누어 한 사람당 7천 5백 위안씩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특별히 강조하며 “지난번 그 1만 위안은 A가 원하지 않아 모두 당신 계정에 넣었고 남은 1만 5천 위안을 당신들 둘이 나누어 가져가세요. 당신 급여는 이미 계산 완료됐으니 잠시 후에 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좋습니다,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매우 불쾌했으나 당시에는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분개하고 불평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정말 ‘바보’ 같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이 일하고 지칠 정도로 힘들게 했는데 결국 상대방은 별로 하지도 않고 쉽게 7천 5백 위안을 가져간 것입니다. 저는 지난번 A를 도와 2천 위안의 업무를 완료해주고 한 푼도 받지 않았으니 이번에 그도 저에게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익 앞에서는 여전히 돈이 더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동등한 보답을 받지 못해 마음속으로 좀 서운하고 불균형을 느꼈습니다. ‘다음에 나도 A에게 이렇게 하겠어!’ 하지만 저는 즉시 이 바르지 못한 생각을 바로잡으며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수련인이야, 이렇게 하면 안 돼.’ 당시 제가 깨달은 것은, 저는 수련인이므로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하며 속인들의 표현에 이끌려서는 안 되고, 더 나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행동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련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지나고 한동안이 흘렀습니다. 비록 저는 어떤 불만도 표현하지 않고 일도 여전히 똑같이 했지만, 때때로 이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 깊이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파내야 할 집착을 찾지 못하고 버려야 할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왜 불평을 느끼고 또 좀 서운한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늘 자신이 직장과 사장님들에 대해 모두 무상으로 헌신하며 바라는 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만약 정말 원망도 추구하는 마음도 없다면 어떻게 불평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불평이 바로 원망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원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순간 저는 자신이 드러낸 첫 번째 집착을 보았습니다. 바로 추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이익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갑자기 제가 추구하는 것이 명예와 정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물질적 측면의 보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자신이 그에게 해준 좋은 일을 기억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나 다른 방면에서도 저에게 상응하는 보답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저에게 상응하는 보답과 반응을 해주면 저는 최소한 감정적으로는 만족을 얻게 되어 기꺼이 계속 헌신할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보답을 하지 않거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면 마음에 불만을 품고 분개할 것입니다. 이것도 정(情)의 한 가지 표현입니다.
저는 처음으로 의식했습니다. ‘감정적 측면의 요구도 추구하는 마음의 한 가지였구나!’ 저는 자신이 이전에 속인 친구들과 담소할 때 늘 “뭔가를 바라지도 않는데 왜 하겠어?”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 ‘뭔가를 바란다’는 것이 바로 추구하는 마음이 아닌가요? 수련 후 저는 이익을 담담하게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때로는 물질적 측면에서는 요구가 많지 않은 것 같았지만, 오늘에야 감정적으로, 명예에서 추구하는 마음이 더 깊이 숨어있으며 조금도 수련해서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하신 한 구절 설법을 읽을 때였습니다.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를 논하지 않으며, 보수를 바라지 않고, 명예 또한 바라지 않아 속인 중의 모범인물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인데, 이는 완전히 慈悲心(츠뻬이씬)에서 나온 것이다.” 저는 늘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늘 ‘신은 사람을 도와주고 물질적인 보답은 추구하지 않지만, 최소한 누가 그를 도와 위기를 해소시켜주었는지는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 그를 도와주었는지 사람들이 알게 해야지!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해주고 결국 신의 보호를 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면…’ 저는 마음속에서 불공평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해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의식하니 이런 불공평함이 바로 추구하는 마음이며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도와줄 때 최소한 제가 그를 도와준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고, 그가 저에게 감사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묵묵히 헌신하는 것이 매우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며 또한 제가 줄곧 도달하고 싶었던 경지라고 느꼈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사람을 도와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모른다면 늘 마음속이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해 괴로웠고, 늘 사람들이 제가 한 일임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의식하니 이것이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이었고 이 마음이 이미 제게 매우 강하게 길러져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직장에서 꽤 잘했고 사장님을 위해 무상으로 적지 않게 헌신하며 업무에 마음을 다해 노력했고 사장님도 인정하며 자신의 표현에 만족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니 추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바로 빈틈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자신의 소위 ‘무상 헌신’ 뒤에는 모두 집착이 있었고 모두 명예와 이익과 정에 대한 추구였으며, 순수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홍음-도중)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자신에게 매우 심한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이 직장에 막 왔을 때 A의 기술은 그냥 실습생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을 모두 그에게 알려주고 그가 잘하지 못하는 것도 무상으로 도와주었더니 나중에 그의 기술 수준이 좀 향상됐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A에 대해 질투심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저만 못하니까요! 나중에 우리가 응대하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저는 자신이 때로는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때로는 고객이 그를 찾고 저를 찾지 않거나 그의 업적이 저보다 좋고 그의 고객이 저보다 많을 때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늘 ‘그 정도 기술로 그를 찾다니 정말 보는 눈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A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데 제가 옆에서 도와주며 그가 하는 일을 보았는데,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속으로 그를 깔보는 마음이 생겼고 고객이 저를 찾지 않아 결국 일을 그가 이렇게 해놓으니 고소해했습니다. 저는 문득 이것이 질투심이라는 것을 의식했고 그 순간 자신이 질투심에 이끌릴 때 얼굴 표정이 분명 매우 추악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자신이 언제 질투심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보니 바로 명예와 이익이 건드려질 때였습니다. 특히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이 매우 심해서 늘 그가 저만 못하는데 그의 성과가 저를 넘어서면 마음속이 불편하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저는 또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의 기술이 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늘 그를 깔보고 남을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이전에 수련생 교류 글에서 남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질투라고 언급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 위의 여러 가지 표현이 모두 질투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며 온갖 트집을 잡았습니다. 질투에 이끌릴 때 사유가 완전히 우주 특성과 반대였고 마성이며 이기적이고 추악했으니 정말 있어서는 안 됐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말하면 제가 다른 사람을 질투할 때 저는 여전히 악자(惡者)였으며 각자(覺者)의 경지와는 실로 너무 멀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 질투를 노력해서 수련해 없애야만 진정으로 수련인의 자비와 선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에게는 또 쟁투심이 있어서 겉으로는 매우 온화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실제로 저항과 불복,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때로는 저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이 고비를 넘는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왜 나는 불공정함을 되돌려줄 수 없을까?! 무슨 이유로 나만 참아야 하는 거야?! 나는 그를 봐주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으로 늘 어떤 일에든 저항하려는 정서가 반영됐습니다. 이런 정서가 올라오면 내심이 완전히 균형을 잃고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며 이런 다툼에 이끌려 분개하고 불평하며 제가 안으로 수련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했습니다. 이런 이유 없는 저항 정서는 제가 보기에 당문화(黨文化, 중국공산당 문화)의 증오(恨)에서 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물에든 저항, 증오 심지어 파괴하려는 극단적이고 변태적인 심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완전히 ‘진선인(眞·善·忍)’에 위배됐습니다. 이런 물질이 제게 있는 또 다른 표현은 다른 사람을 깔보는 것이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나 행위가 나타나면 즉시 짜증을 표현하며 완전히 평화롭고 포용하는 마음이 없고 선이 없었는데, 일종의 마성과 악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제게는 이익심도 매우 심해서 평소 좀 손해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이 절실한 이익이 건드려져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게 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익이 물질적 방면에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방방면면에서 모두 우리와 절실히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점을 얻고 편리함을 행하게 하는 것은 모두 이익이고 모두 수련해 없애야 할 집착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제게 있는 이익심, 질투심, 쟁투심, 원망심, 추구하는 마음이 서로 얽혀있고 서로 작용하는 관계라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들의 배후에는 자아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근본적인 자아가 건드려져서 위의 여러 가지 표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을 수련해 없애는 과정이 바로 자아를 수련해 없애고 진아(眞我) 본성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을 만나면 좋고 싫음으로 가늠하고 법으로 가늠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제 수련 중에 존재하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세심히 생각해보니 이런 사유방식 또한 매우 심했으며 거의 습관화 되었습니다. 일상 업무에서 저는 비교적 A를 좋아하고 심리적으로 그와 비교적 친근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격과 문제를 보는 각도가 비슷하고,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좋아하는 화제가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비교적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알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B의 성격은 좀 강하고 그에게 공산당 당문화가 좀 심하다고 느꼈으며, 진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A만 못했고 일상 업무에서 늘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제 개인 관념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 가지는 그가 늘 저에게 그의 가족들의 일부 일을 무상으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제 이익심을 건드려 점차 마음속으로 그와 틈이 생기게 됐습니다.
이 며칠 제가 A와 이익 면에서 연속적으로 고비를 넘은 것은 겉으로는 제 이익심을 건드린 것이지만, 깊은 층에서 안으로 찾아보니 사실은 개인적인 좋고 싫음으로 사물을 헤아리는 관념을 없애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A를 좋아하고 그가 좋다고 여겨서 그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즉시 이기적인 면을 표현해 보인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것이 제 이런 관념을 없애라는 것임을 인식했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이런 관념이 너무 두드러지게 표현됐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깔보는 행위, 깔보는 사람, 일, 물건들이 모두 자신이 여기는 좋고 나쁨의 관념으로 헤아린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법으로 가늠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유방식의 영향 아래 제가 타인에 대해 좋게 대하고 선하게 표현하는 것도 조건이 있었습니다. 즉 상대가 저에게 좋게 대해야 저도 상대에게 좋게 대하거나, 제 개인 관념에 부합해야 그를 좋게 대하고 부합하지 않으면 싫어하거나 못 본 척했습니다. 저에게 부합하면 좋아하고 부합하지 않으면 깔보는데 이런 사유가 바로 사람 아닌가요? 마음이 사람 속에 있는데 어디에서 자비와 선이 나올까요! 저는 늘 자신과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누구에게든 선하라는 그런 경지와는 너무 멀다고 느꼈는데, 제가 이런 관념들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수련인의 사유를 사용하고 일을 만나면 법으로 가늠해야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순선(純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수련에서 올라온 기회를 소중히 여깁니다. 지금 저는 정말로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자신의 깊이 숨어있던, 이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각종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저는 A에 대해 이미 어떤 원망심도 없으며 마음이 정말 평온해졌습니다.
2. 부정적 사유를 없애고 정념이 주도하게 하다
저는 평소 부정적 사유가 심해서 일을 만나면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 좋아하고 정념이 충분히 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맡은 이 큰일은 공사가 절반 진행됐을 때 작은 일이 생겼는데 바로 고객이 받은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아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본래 저를 매우 신뢰했는데 이후로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객이 현 단계에서 느낌이 좋지 않은 것도 매우 정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공사가 모두 완성되지 않았고, 전부 끝나면 사실 정밀 조정 과정이 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저는 고객의 표현에 이끌렸습니다. 비록 이론적으로 나머지 절반이 완성되면 고객의 불편한 느낌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큰일을 처리하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고객의 이런 표현을 보니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마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만약 전체 공사가 끝나도 고객이 여전히 불만족하면 어떡하지?’ 등, 모두 부정적 사유였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는 왜 정념으로 이 일을 대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인데 우리가 과거에 어떤 인연이 있든 모두 법 중에서 선해(善解)해야 하고, 이 고객이 구세력에 이용당해 대법제자의 수련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법 수련자이므로 이 업무를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발정념(發正念)을 해서 이 일 배후에서 방해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들을 해체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반부를 혼자 진행할 때도 지칠 정도로 힘들었고 특별히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은 후 후반부를 진행할 때 저는 발정념을 해서 일체 방해 요소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날 오전 저는 일하면서 발정념을 했는데,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또 특별히 빨리 하게 돼 매우 순조로워서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앞당겨 업무를 완성했습니다. 이 부분의 업무가 끝난 후 고객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비교적 만족했고, 이전의 각종 문제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비교적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저는 일을 만났을 때 발정념을 해야 하고 자신의 정념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는데, 역시 저에게 대법제자 정념의 위력을 깊이 의식하게 했습니다. 2024년 상반기, 현지에서 비교적 큰 박해가 두 차례 발생하자 수련생들은 모두 힘을 더해 발정념을 하고 현지 사악을 청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 별일이 없고 오전에 B도 없어서 저와 A만 있었습니다. 저는 발정념으로 현지 사악을 청리하는 동시에 납치된 수련생을 정념으로 가지(加持)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A가 제 주변에서 돌아다녀서 좀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얼마 후 A가 갑자기 좀 졸린다며 다른 방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한 시간 넘게 제가 발정념을 마친 후에야 그도 깨어났습니다. A는 오전에 잠을 잔 적이 전혀 없었는데, 저는 이것이 대법제자 정념의 작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 두 가지 일로 저는 대법제자가 일할 때는 정념을 써야 하고 우리의 마음만 바로잡으면 신의 기적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3. 수련은 형식에 그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법난》, 《각성하라》 두 편의 경문을 보고 저는 자신이 이 기간에 존재하는 문제를 찾아냈는데, 바로 자신을 방임하고 수련이 형식에 그치는 것입니다. 많은 일을 비록 했지만 마음을 쓰지 않고 그냥 과정만 거쳤습니다.
예를 들어 법 암기의 경우 최근 저는 직장에서 법 암기를 시작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정진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외우고 나면 끝이었고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일을 만날 때도 법으로 헤아릴 수 없었고 마음을 닦지 않았습니다. 비록 세 가지 일을 계속했지만 형식에 그쳤고 수련 상태도 오랫동안 한 층차와 상태에 머물러 돌파가 없었는데, 이것도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방임과 만족이며 안일함을 탐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못 본 척했고, 더 나아가 마주하고 돌파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으면 된다고, 그것이 바로 수련이라고 여겼습니다. 진상을 알릴 때만 주의식(主意識)이 정신을 차리고 평소 수련에서는 자신을 방임했습니다. 얼마나 일했는지만 중시하고 자신을 수련했는지 여부는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의식은 이미 청성하지 못하고 마비됐으며, 시간이 길어지자 자신을 속인과 같이 여겼습니다.
많은 시간이 이런 애매한 수련 속에서 서서히 흘러갔는데, 저는 오히려 스스로 좋은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각성하라》를 배우고 사부님의 매 구절 법이 모두 저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존께서 제자를 일깨워주시어 제자가 부족함을 찾아내고 자신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잘 노력해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18/48811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9/18/4881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