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66년 겨울에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난산이었습니다. 저는 앉은 자세로 태어났고, 태어난 후 온몸이 시퍼렇게 변해 정오부터 저녁까지 계속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제 앞에 형제자매 여덟이 있었고, 또한 가난한 농촌이었기에 당시에는 아이가 죽어도 애석해 할 사람이 없어서 저를 밖에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질병이 모두 사라지다
이때 이웃집 고모가 저희 집에 와서 이런 상황을 보고 말했습니다. “죽은 말도 산 말처럼 치료해 봐요.” 추운 겨울날, 고모는 얼음이 떠 있는 찬물을 떠서 그 물로 제 전신을 힘껏 두드렸고, 20분 후에 저는 울 수 있게 됐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다음날에야 제 피부색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저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연꽃 화분을 타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얻은 후에야 사부님께서 저의 생생세세를 돌봐주셨기에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저는 십대 시절에 심장 판막 폐쇄 부전이 발견됐습니다. 결혼 후에는 더욱 많은 병에 시달렸습니다. 신장 낭종, 허리 디스크, 대칭성 피부염, 위경련, 치질, 유미뇨, 관절염, 삼차신경통, 어깨 주위염, 췌장염, 담낭염, 부인과 질환, 알레르기 체질에 얼굴이 붉게 부어오르는 증상이 7~8년간 지속되어 정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2014년에 저는 대법을 얻게 됐고 4개월 후 모든 질병이 사라졌습니다. 저희 직장의 100여 명 교사들은 모두 제게서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으며, 병약하던 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어제도 서기가 계단에서 저를 만났을 때 엄지를 치켜세우며 제 체력을 칭찬했습니다.
“당신은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곳곳에서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8명의 교사가 쓰는 사무실은 항상 제가 혼자 청소했고, 불평 한마디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동료들에게 따뜻한 물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누군가 아프면 더욱 따뜻하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한 젊은 교사는 “언니가 퇴직하면 누가 우리를 아이처럼 챙겨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만으로 60세가 됐지만 여전히 담임 교사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 담임 교사 중 원로가 됐습니다. 이 담임 교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2020년, 1학년 신입생들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학부모가 앞에서 아이의 캐리어를 끌고 회전의자를 들고 있었으며, 뒤에는 매우 활발한 남자아이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담당 교사들은 모두 이 남자아이가 수업을 방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의용 대형 스크린을 꺼버리고, 교사와 반 친구들에게 수시로 손을 대며, 교실은 그의 운동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반의 담임은 갓 대학을 졸업한 경험이 적고 내성적인 사람이라 교실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매일 번갈아 학교에 와서 담임 교체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교사들은 모두 몰래 수군거렸지만 아무도 이 반을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 반은 학교의 큰 골칫거리가 됐고 학교 지도부는 근심에 빠졌습니다.
마침내 학교 지도부는 제가 최적임자라고 생각하고 1학년 2반의 담임과 이 반의 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전법륜)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대법 수련생으로서 업무 배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 이 반을 맡기로 했습니다.
저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단속하고 수련으로 얻은 자비로 아이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일상생활이든 학급 관리든 문화 수업이든 모두 학교 지도부와 학부모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문제 학생도 많이 좋아져 캐리어와 회전의자도 다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스승의 날이 됐습니다. 법을 얻기 전엔 이날이 교사들이 돈벌이를 기대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문제 아이의 어머니는 저에게 감사하려고 고급 선물 상자와 큰 봉투를 몰래 건넸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가 해야 할 일만 했을 뿐이며, 선물을 받는 것은 저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그 학부모는 저를 더욱 존경하게 됐습니다. 다른 학부모들도 제 휴대폰으로 돈을 보냈지만 저는 모두 되돌려줬습니다. 여러 명절에 학부모들이 경비실에 맡긴 선물도 저는 모두 가져가게 하고,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좋은 사람으로 된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라고 가르치셨다고 알려드렸습니다. 학부모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교사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감사하시려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법을 얻기 전의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반 학생들을 잘 지도해서 담임 수당이 300위안에서 600위안으로 올랐습니다. 수학 교사가 교장을 찾아가 제 반을 맡겠다고 제안했고, 저는 양보했지만 여전히 이 반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수학 교사가 반을 맡은 후에는 자주 학부모들과 갈등이 생겼고, 쌓인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자 화가 나서 이 반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학교 지도부가 두 번째로 저를 찾아와 다시 이 반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위챗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도부는 일 년만 가르치면 된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교육 교장이 저를 데리고 이 반에 와서 발표했습니다. “오늘부터 국어 선생님이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에서는 천둥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어서 아이들이 한 명씩 저에게 달려와 저를 둘러싸고 울었으며, 순식간에 우리 사제는 양배추처럼 둘러싸였습니다. 교육 교장은 나중에 제게 그 순간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아이들이 제 일과 인품을 인정해 준 것임을 알았고, 지도부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일 년 동안 저는 학생들과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 존중하는 매우 화목한 관계를 맺었고, 아이들 마음속에 존경받는 담임 선생님이 됐습니다.
일 년 후, 학부모들은 제가 이 반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각자 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 학부모는 “지난 3년간 모든 아이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선생님은 모두 똑같이 대하시고 자신의 아이처럼 아껴주셨습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학부모로서 선생님께서 아이들 졸업할 때까지 가르쳐 주셨으면 하지만, 선생님의 연세를 생각하면 아무리 보내기 싫어도 보내드려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빕니다! 만약 개학 후에도 아이들과 만날 수 있다면 휴대폰으로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찍어주세요. 돌아와서 프린터로 인쇄해 나중에 볼 수 있게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선생님께서 항상 아이들에게 세심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고 심지어 방학 중에도 저희와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 소통하셨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선생님은 제가 만나고 접한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어머니처럼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됐을 때, 두 학부모가 저에게 연락해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선물을 받지 않으셨지만, 오늘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니 순수하게 친구로서 집에서 키운 농산물을 좀 드리니 꼭 받아주세요.” 한 학생의 어머니는 직접 삼륜차를 몰고 와서 재배한 옥수수를 가져왔습니다. 다른 학부모는 손수 말린 감자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진심 어린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나중에 저는 두 집 아이들에게 각각 그 가치를 초과하는 책가방을 사줬습니다. 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이런 선생님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다시는 선생님께 물건을 드릴 수 없잖아요!”
그런데 뜻밖에도 개학 후, 교사들은 모두 우리 반의 학부모와 일부 학생들을 두려워해 아무도 이 반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장이 다시 저를 찾아와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수업을 가르치지 않고 담임 업무만 하면 되며, 교실과 가까운 독립된 사무실을 주고, 교사가 위챗에서 해야 하는 모든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을 찾아주었습니다.(저는 위챗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반을 맡기로 한 후에도 저는 자발적으로 몇 시간의 수업을 요청했습니다. 교학 교장은 매우 감사해하며 지도부 회의에서 제 인품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수업 중에 저는 전통문화를 중시하며 학생들에게 진실하고 선량하며 인내심 있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되라고 가르치고, 사람 됨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수업을 듣는 반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 6학년 2반의 경도 우울증이 있는 남자아이가 달려와 저에게 뽀뽀했고, 다른 교사들은 모두 존경스러운 눈길을 보냈습니다.
방과 후 보육 수업은 교사들이 돈 버는 시간으로 한 수업에 80여 위안이며, 하루에 두 번 있습니다. 많은 교사가 돈을 위해 머리를 싸매며 수업을 차지하려고 다투어 항상 배분이 불균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2년 동안 보육 수업을 한 번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법공부에 활용했습니다.) 다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고, 저는 학교 지도부가 가장 안심하는 ‘3불(不)’ 교사가 됐습니다 – 학급을 운영하지 않고, 보충 수업을 하지 않으며, 선물을 받지 않는 교사입니다. 요즘 사회에는 가장 독한 뱀 두 종류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의사는 작은 흰 뱀, 교사는 안경뱀으로 불립니다. 이 두 직업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의 행위가 사회에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스승의 날이 될 때마다 저는 항상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학부모들에게 저는 돈을 받지 않고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다고 전하세요. 학생들에게는 선생님께 그림 한 장을 그려주거나 들꽃 한 다발을 꺾어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학부모들은 모두 저를 인정합니다. 제 교육 아래 대부분의 학생은 연장자를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해 보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친구들 간에 작은 마찰이 있으면 저는 양측에게 침착하게 각자 자신의 잘못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니 아이들은 변명하지 않고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으며 매우 빨리 발전합니다. 불쾌한 일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저는 수백 위안을 써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줍니다. 큰 줄넘기를 사주고 여자아이들에게는 몰래 생리대 몇 팩을 준비해두어 비상시에 사용하도록 합니다. 작년에는 400여 위안의 상품도 나눠주어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징이가 변하다
편부모 아이가 가장 가르치기 어려워서 저는 더 따뜻하게 관심을 기울여 돌봤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징이(靜怡)는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은 모두 할머니가 돌봤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무책임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이어서, 어르신이 아이들을 돌볼 때도 자주 아들에게 욕설을 들었습니다. 이런 가정 환경은 징이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휴대폰이 그녀의 성장을 함께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조기 연애를 했으며, 수업 중에는 립스틱을 바르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으며 거울을 보고 화장했습니다. 머리에는 빨간색으로 염색한 부분을 달고 작은 선글라스를 썼으며, 입만 열면 욕설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그녀는 큰 상자의 작은 가재와 수이주위(水煮魚, 생선요리)를 가져와 책상 위아래 좌우를 엉망으로 만들고 치우지 않았습니다. 매일 하교 후 저는 그녀의 자리를 청소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쪽지를 남겨 놓았는데, 거기에는 “○○, 내 물건을 건드리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 (욕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흔들리지 않고 매일 계속해서 그녀의 자리를 청소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다시 쪽지를 남겼습니다. “내 물건을 건드리지 않으면 정말 죽기라도 하냐고!”
한번은 수업 중에 그녀가 고무찰흙을 가지고 놀다가 제가 압수했는데, 그녀가 저를 교사동 복도까지 쫓아와 제 코를 가리키며 매우 듣기 싫은 심한 욕설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녀의 욕설 소리에 여러 교사가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저는 주먹을 쥐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대법이 요구하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전법륜)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잠시 후 저는 교실로 돌아와 그녀가 진정된 후 인내심을 갖고 교육했습니다.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화가 나면 몸에 해롭고, 네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단다. 선생님은 네가 좋은 아이라고 믿어. 선생님에게 욕한 건 네 본심이 아니지.” 그녀는 원래 제가 다른 교사들처럼 그녀를 처벌하거나 때리고 욕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제 행동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고 그녀에게서 약간의 뉘우침이 보였습니다. 저는 또한 자주 집에서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점차 그녀는 저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됐고 착해졌으며 욕설이 크게 줄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항상 저에게 붙어 있습니다.
최근 저는 그녀가 책상 위에 다시 메모를 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 치우지 않으셔도 돼요.” 징이가 변했습니다. 그녀는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고, 바닥을 쓸고 대걸레를 빨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일을 합니다. 저는 이것이 대법의 힘임을 압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학생이 저를 그렇게 욕했을 때 분명히 심하게 훈계했을 것이고 아마도 따귀를 두 대 때렸을 것입니다. 대법의 위력이 제 심성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넘어야 할 고비로, 사부님께서 아이들을 통해 제 심성을 제고시키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징이라는 아이의 변화로 제 평판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법의 세례가 없었다면 오늘의 새로운 저도 없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부님의 요구에서 아직 매우 멀리 있고 많은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는 반드시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서약을 이행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 깊이 절을 올립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허스
(명혜망 2025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5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18/4940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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