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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濟南) 감옥, 파룬궁수련자 잔혹하게 ‘전향’시켜…출소 시 서명 강요

[명혜망](북미 통신원)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불법 납치되어 2년형을 선고받은 톈진 출신 노년 파룬궁수련자 자오린후이(焦麟慧·여)가 2025년 5월 9일 산둥성 지난(濟南) 감옥에서 안전하게 귀가했다.

자오린후이는 1963년생으로 올해 62세이며 톈진시 다강구 출신이다. 그녀는 1999년 3월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심신이 모두 혜택을 받았다.

톈진에서 박해를 받던 중, 경찰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자오린후이는 산둥성 룽커우 동해 지역으로 이주했다.

산둥성 옌타이시 룽커우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는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자오린후이 포함)을 약 1년간 감시하고 추적한 후 일제 체포 작전을 펼쳤다. 2023년 5월 9일 새벽 5시경, 10여 개 파출소에서 온 100여 명의 경찰들이 동네 주민이나 아래층 이웃이라고 거짓말하며 파룬궁수련자들의 집 문을 열게 했다. 경찰이 자오린후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7시경이었다. 사복 경찰이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자 자물쇠 기술자를 불러 밖에서 자오린후이의 집 대문을 강제로 열고 그녀를 납치한 후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했다. 당일 약 30명의 파룬궁수련자와 그 가족들이 납치됐다. 5주 후인 6월 14일, 룽커우 난산 지역의 파룬궁수련자 거리쥐안(葛麗娟), 자오린후이, 천구이팡(陳桂芳), 왕저우린(王周林·남)이 불법 납치됐으며, 나머지는 석방돼 귀가했다.

2024년 3월 12일, 룽커우 법원은 형사 판결문을 내려 자오린후이에게 2년형을 불법적으로 선고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올해(2025년) 5월 9일 지난 감옥에서 귀가한 자오린후이는 정신 상태와 신체 상태가 문제없어 보였고, 체중도 줄지 않았으며, 여전히 법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감옥에 불법적으로 수감된 파룬궁수련자들은 전부 ‘전향’됐다. 그들은 마음속으로는 ‘진선인(眞·善·忍)’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중공에 ‘전향’ 등의 ‘3서’, ‘5서’(각종 수련 포기 각서)를 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자에 따르면, 쓰지 않으면 정신병자가 되도록 고문을 당해 결국 무너진다고 한다.

자오린후이의 행방을 알게 된 톈진 경찰도 그녀가 출소하는 날 현장에 왔다. 알려진 바로는, 출소 전 자오린후이는 경찰과 5년 계약을 강제로 맺어야 했다.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귀가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법공부에 집중하고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빨리 회복하도록 권고한다.


[배경 자료]

산둥성 지난 감옥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도구 중 하나로, 오랫동안 박해에 가담해 왔다.

사례1: 2002년, 산둥성 웨이팡 제약 2공장 여직원 웨샤(岳霞)는 파룬궁 수련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10월 30일 불법 납치된 후 12년형을 선고받아 산둥성 지난 감옥 4대대에 수감됐다.

사례2: 칭다오시 화공대학 대학생 왕밍량(王明亮·남, 룽커우 출신)은 2001년 대학 졸업 후 칭다오에서 진상 자료를 만들던 중, 거주지에서 휴대폰으로 한 배신자에게 선행을 권하는 전화를 했다가 칭다오 국가안전부의 도청과 위치 추적으로 납치돼 5년형을 선고받았다. 왕밍량 역시 산둥성 지난 감옥에 불법 수감됐었다.

사례3: 산둥성 룽커우시 파룬궁수련자 충페이칭(叢培淸)은 2003년 11월 3일 아내와 함께 중공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각각 8년, 10년의 중형을 불법으로 선고받았으며, 구치소와 지난 감옥에서 각종 고문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충페이칭이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내용이다.

“2004년 5월 4일, 나는 산둥성 지난 감옥으로 납치됐다. 11감구에서 ‘전향’을 거부했다가 경찰과 나쁜 사람들의 광적인 박해를 당했고, 여러 차례 엄격한 관리와 격리 조치를 받았다.

2005년 나는 파룬궁수련자 둥촨옌(董傳彦), 왕신중(王新忠), 가오훙제(高洪潔), 왕량(王亮)과 함께 ‘전향’을 거부하고 박해에 저항하다가 경찰과 나쁜 사람들에게 격리 박해를 당했다. 6월에는 파룬궁수련자 왕신보(王新博·이미 박해로 사망), 량징(梁晶), 쑨궈(孫國), 우샹완(吳相萬)과 함께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홍음 2’를 암송하며 함께 사악을 억제했는데, 나는 중점 박해 대상으로 지목됐다. 7월 20일에는 파룬궁수련자 인샹양(尹向陽), 류웨이셴(劉維先), 쑨전산(孫振山)과 함께 파룬궁 수련을 새롭게 확고히 하겠다고 엄정히 성명했다가 다시 각각 작은 감방에 격리되어 박해당했다.

2006년 말, 사악한 2감구에서 나는 류웨이셴(여전히 감옥에서 박해 받는 중)과 함께 산둥성 감옥 검찰관과 감옥장에게 감구의 악인들이 파룬궁수련자를 잔혹하게 박해한 죄행을 폭로하는 편지를 썼으나 성과가 없었다. 2007년 4월 25일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감옥 감찰관과 감옥장에게 11감구 악인들의 폭력 행위와 파룬궁수련자 학대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편지를 써서 악질 경찰과 나쁜 사람들의 잔혹한 박해 수단, 비열한 술책, 깡패 같은 수법, 악인 명단을 진실하고 상세하게 반영하며 조사 실시, 나쁜 사람들의 엄벌, 박해 중단을 요구하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할 것을 요구했다. 나와 류웨이셴은 법률 법규 위반과 관리 저항이라는 큰 죄명을 씌워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내가 작은 감방으로 납치됐을 때 문이 즉시 봉쇄됐고 7~8명의 나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나를 준비해둔 네모난 나무 의자에 눌렀다. 옷은 벗겨졌고, 머리를 누르는 자, 팔을 비트는 자, 다리를 누르는 자가 있었으며, 구두솔로 갈비뼈와 척추뼈를 문질렀다. 동시에 칫솔 손잡이를 내 손가락 사이에 끼운 후 돌려 열 손가락 모두 뼈가 드러나게 하고 감각을 잃게 했다. 폭도들은 구두 밑창으로 엉덩이를 맹타해 보라색 피멍이 들게 했고, 주먹과 발로 가슴, 아랫배, 머리와 얼굴을 가격했으며, 손가락을 힘껏 꺾어 내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나는 오랫동안 양팔이 묶인 채 발끝만 땅에 닿고 발뒤꿈치는 바닥에 깐 침대 가장자리에 받친 상태로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는데, 온몸이 아팠다. 잠을 자거나 씻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악한 무리들은 불 붙인 담배로 눈을 찔렀다. 당시 나는 맞아서 피와 살이 뒤엉키고 피부가 터지고 살이 드러나 내복과 피부가 함께 피로 붙어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다리와 발이 처참히 아프고 치질이 갑자기 발병해 걸을 수 없었다. 생활 면에서도 온갖 학대를 당했는데, 매 끼니마다 100g 미만의 작은 빵 하나와 작은 짠지 한 조각만 주고 물 마시는 것도 제한했다. 파룬궁수련자 류웨이셴도 비슷한 박해를 당해 소장이 망가지고(탈장) 행동이 불편해졌다.

작은 감방은 매우 밀폐돼 있어 문과 창문이 꽉 닫혀 있고 감시 장비도 철거됐으며, 출입문도 네모난 목재나 긴 나무 의자로 막아두었다. 문 밖에는 ‘정부 허가 없이 출입 금지’라는 표지가 걸려 있어 환경이 극도로 공포스러웠으며, 말 그대로 감옥 속의 감옥이었다. 안에는 두 명의 사악한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모두 경찰이 선별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자들이었다. 새로 감옥에 들어온 6명의 일반 범죄자들은 대부분 조직폭력배, 살인범, 강도, 강간범이었다. 이런 방이 7~8개 있었고 많을 때는 10여 개가 있었는데, 모두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내가 겪은 이런 박해들은 수백 가지 고문 중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것으로는 팔을 수갑으로 매달기, 매달아 때리기, 끓는 물로 데우기, 담배 불로 지지기, 절연판으로 온몸의 민감한 부위 두드리기, 발로 손등, 발등, 머리, 목을 밟기, 더러운 천을 입에 밀어넣기, 목 조르기, 7~8명의 악인이 땅에 눌러 때리기, 이불을 덮고 때리기, 묶어놓고 때리기, 밀고 비틀며 때리기, 둥근 통나무에 무릎 꿇기, 뒤집어 놓은 의자 다리에 앉히기,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손으로 갈비뼈 후비기, 문과 창문을 봉쇄하고 TV 소리를 크게 틀기, 집단 폭행과 각종 육체적 고문, 오랫동안 화장실에 쪼그려 앉히기 등 사악한 수단들이 있었다. 파룬궁수련자 첸둥차이(錢棟才), 뤼전(呂震)은 이런 참혹한 고문 속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사례4: 산둥성 멍인현 파룬궁수련자 뤼전(呂震), 남성, 당시 30세 정도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현지 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아 2004년 산둥성 감옥에 수감되어 박해를 당했다.

11감구에서 지도원 리웨이(李偉), 감구장 장레이광(張磊光), 부감구장 천옌(陳炎)의 조종 하에, 취원광(曲文廣) 등 악인의 지휘 아래 세뇌 교육을 받았다. 2005년, 뤼전은 1감구로 옮겨져 강제노동 박해를 당했다. 2009년 6월, 뤼전은 왕 감옥장을 만나 11감구의 파룬궁수련자 박해 상황의 심각성을 직접 진술했다. 당시 왕 감옥장은 화가 나서 “네가 뭘 하려는 거냐?! 여긴 공산당의 세상이다!”라며 악랄하게 말하고는 손을 휘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뤼전은 11감구로 보내져 엄중 관리 박해를 받았다.

감옥경찰의 부추김 아래, 살인범 셰샤오강(謝曉剛), 리다펑(李大鵬), 차이허제(蔡和傑), 리펑(李鵬), 장덩윈(張登雲), 저우윈룽(周雲龍), 리훙샹(李宏祥)이 구타범으로 나서 뤼전을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온갖 고문과 수단을 동원했다. 뤼전이 기절하면 찬물을 뿌려 깨운 뒤 다시 때렸다. 10여일 동안 계속 박해를 가하다가 마지막에는 거의 죽어가는 뤼전의 양손과 양발을 함께 묶어 머리는 아래로, 발은 위로 향하게 매달아 놓았다. 그 광경은 충격적이고 참혹해 보기 힘들었으며, 결국 뤼전은 고문으로 사망했다.

더 많은 관련 사례는 명혜망 문서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https://minghui.org

 

원문발표: 2025년 5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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